[BOOK世通, 제주 읽기] (211) 평화학과 평화운동, 서보혁, 정욱식 저, 모시는사람들, 2016.

평화학과 평화운동, 서보혁, 정욱식 저, 모시는사람들, 2016. 사진=교보문고 누리집.
평화학과 평화운동, 서보혁, 정욱식 저, 모시는사람들, 2016. 사진=교보문고 누리집.

인류의 역사는 혼돈 속에서 조화를 찾아내는 자연과 마찬가지로 폭력과 갈등 속에서 평화를 만들어내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한정된 자원으로 최대다수가 공동생존을 모색하는 상황에서 모두에게 평등하고 조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일이기에 평화는 인류 공동체 전체의 과제이다. 그중에서도 20세기 이후 한국의 상황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절박하게 평화를 갈망하는 삶을 살아왔다. 제국주의 침탈로 인해 식민지를 겪었고, 남북 분단과 전쟁을 겪은 한반도는 이후 냉전체제가 자리잡으면서 첨예한 대립의 땅으로 굳어졌다.

"평화운동의 기본은 전쟁을 막는 데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한국의 평화운동은 백범 김구 선생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1948년, 남북한이 분단정권 수립의 길로 들어서자 ‘동족상잔의 비참한 내전이 발생할 위험’이 있다며 단독정부 수립 반대, 통일국가건설운동에 나섰다. 이러한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국의 평화운동은 통일운동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 평화학과 평화운동

20세기 한반도의 평화담론을 강력하게 주창한 백범 김구에 관한 저자들의 생각이다. 백범의 절박한 평화 열망에서 보듯이 한반도와 같이 엄청난 전쟁과 대립을 겪어온 지역일수록 평화학과 평화운동의 필요성은 절박하다. 70여 년간 이어오고 있는 남북의 분단과 대치 상황은 가히 기록적인 대결 구도이다. 미국과 북한은 휴전협정 이후 아직도 그 상태를 유지하며 종전을 미루고 있다. 전대미문의 동족간 전쟁을 거친 후 70여년이 지나도록 종전에 이르지 못하고 대립하고 있는 남과 북은 강도 높은 군사적 대치 상황으로 대립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종식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일은 한반도는 물론 전세계의 현안이지만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한반도의 평화는 한반도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전지구적인 자본과 국가의 관계망 속에서 한반도는 강 대 강이 대립하는 힘의 대결 장으로 존재해왔다. 제국주의시기부터 열강들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지정학적 위치에 속해 있었으므로 일본과 청나라, 러시아, 미국, 유럽 열강 등이 맞부디치는 곳이었다. 2차대전 이후에는 미국과 소련이 대결하는 장이었으며, 오늘날에는 미국과 일본, 중국과 러시아의 이해관계가 직간접적으로 대립하는 상황에 처해있다. 이러한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담론과 실천의 장이 바로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학이며 평화운동이다. 

정치학 박사 서보혁과 평화네트워크 대표 정욱식이 함께 쓴 이 책 <평화학과 평화운동>은 평화에 대한 한문적 접근. 평화운동의 지향, 평화학과 평화운동의 관계와 전망 등에 관한 논의를 담고 있다. I부 평화학과 평화운동의 이해에서는 평화학의 정의와 용어 영여가 특징, 방법론, 평화운동의 개념과 역사, 그리고 평화학과 평화운동의 관계를 소개한다. Ⅱ부 한국의 평화학과 평화운동은 한국 평화학과 평화운동의 태동과 현황, 영역과 특징, 방향과 과제를 살피고, 한반도발 세계평화의 비전을 제시한다. 

기실 평화는 인간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다. 평화를 이야기하는 대상이나 주체가 사람이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에서 평화는 언제나 인간중심주의 사유 틀 안에서 맴돌고 있었다. 평화의 영어 단어 피스(Peace)는 로마 제국의 질서 아래서 존재가능한 평화인 ‘팍스 로마나(PAX Romana)’에서 왔다. 한자어 평화(平和) 또한 ‘고르게 먹는다’는 뜻을 담고 있다. 양자 모두 인간 사회나 개인의 문제에서 나온 개념이다. 20세기까지의 역사는 철저하게 인간중심의 평화 개념에 기초를 두고 있었다. 20세기 후반 이후에 나타난 동물권이나 식물권을 옹호하는 생태학적 논의는 평화의 범위를 넓혔다. 평화란 사람을 포함한 생명체 모두의 것이어야 한다는 확장적 평화론이다. 

공장에서 쫓겨난 노동자가 원직복직하는 것이 평화 / 두꺼비 맹꽁이 도롱뇽이 서식처 잃지 않는 것이 평화 / 가고 싶은 곳을 장애인도 갈 수 있게 하는 것이 평화 / 이 땅을 일궈온 농민들이 더 이상 빼앗기지 않는 것이 평화 / 성매매 성폭력 성차별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상 / 군대와 전쟁이 없는 세상 신나게 노래 부르는 것이 평화 / 배고픔이 없는 세상 서러움이 없는 세상 / 쫓겨나지 않는 세상 군림하지 않는 세상 / 빼앗긴 자 힘없는 자 마주보고 손을 잡자 / 새 세상이 다가온다 노래하며 춤을 추자

- 작사 문정현, 작곡 조약골, <평화가 무엇이냐>

문정현 신부의 연설을 토대로 가사를 만들고 곡을 입힌 싱어송라이터 조약골 노래 <평화가 무엇이냐>는 평화가 실현되는 세상의 모습을 일상의 언어로 풀어낸다. 노동자와 자연 생태와 장애인과 농민과 여성과 반전과 기아와 거주 및 생존권 등의 의제로 간략하게 풀어내는 이 평화의 서사는 우리가 갈구하는 평화는 만인의 것이며 만인의 요구와 의지에 따라 각각 다른 평화의 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평화는 국가의 것이거나 공동체의 것만이 아니라 개인의 것이기도 하다. 내 안의 평화를 만드는 일이 그것이다. 종교는 마음의 평화를 만든 데 집중한다. 그런 의미에서 유사 이래 종교가 가르쳐온 평화는 주어진 상황에 순응하며 평화의 상황으로 심리상태를 조율하는 훈육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것이 내면의 성찰을 기하는 데는 유효하지만, 사회와 공동체를 성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종교가 가르쳐 온대로 주어진 상황을 평화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공동체의 평화를 꿈꾸고 실천하는 평화 담론과 실천이 필요한 이유이다. 

역사적으로 평화 담론과 실천은 국가와 공동체, 개인의 수준에서 활발하게 논의되어 왔다. 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인간의 문제만으로 귀결했다. 미래의 평화는 뭇 생명의 평화로 확장한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인간의 문제 또한 자연의 것과 필연으로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생명평화야 말로 가장 소중한 평화 담론과 실천의 근본이다. 국제정치의 변동과 자본의 전지구화가 요동치는 가운데, 인류는 점점 기후변동과 생태위기로 파국의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 더욱 절박하게 생명평화를 사유하고 실천해야 하는 이유이다.  

# 김준기

홍익대학교 예술학 석사, 미술학 박사.

현(現)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한국큐레이터협회 회장, 미술평론가.

전(前) 부산비엔날레 전시기획 팀장,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제주도립미술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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