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왓 칼럼] 신현정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 활동가

편견으로 무장한 이들이 사회적 약자들에게 여전히 반인권적 발언과 행동을 주저하지 않는 일들을 우리는 종종 목격하곤 합니다. 존재 자체로 차별받는 사회적 약자들이 있어선 안됩니다.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난민 등 대상은 다르나 일상 곳곳에서 여전히 차별이나 혐오, 폭력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인권문제에 천착한 '인권왓 칼럼'을 격주로 연재합니다. 인권활동가들의 현장 목소리를 싣습니다. [편집자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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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수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차선을 대중교통과 자전거, 보행자에게 내어주어야 할 때에, 도로를 넓히고 새로운 도로를 건설하자는 정책은 시대착오적이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올해 초 늦깎이로 자전거 타기를 배우고, 중고 자전거 한 대를 삼만원에 구입했다. 차도, 면허도 없는 뚜벅이 생활을 해 온 나에게 새로운 세상이 열린 셈이다. 더 먼 거리를, 더 건강하게 이동하는 기쁨도 잠시, 나는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자동차들로 꽉 차 있는 도로에서 자전거를 탄다는 것이 얼마나 목숨을 위협하는 일인지를 배울 수 있었고, 자전거는 주로 차가 없는 새벽에만 이용하게 되어버렸다.

이동은 누구에게나, 그리고 언제나 필요한 일이다. 가장 기본적인 이동인 ‘보행’에 대해, ‘보행안전 및 편의증진에 관한 법률’ 제3조 보행권의 보장에서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쾌적한 보행환경에서 안전하고 편리하게 보행권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고 증진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는 것은 그러한 맥락일 것이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필요한’ 이동의 체계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설계되어 있는지를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다. 20년째 현재진행형인 저상버스 도입을 위한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나, 노인과 임산부, 어린이가 걷는 도로의 위험들을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제주에서 ‘이동’은 매우 중요하다. 지역 에너지 소비 중 48%가 수송에 사용되고 있으며, 도로 포장률도 99%로 서울과 광주, 대전, 세종의 100%를 이어 전국 2위의 도로보급률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나 전국 기준으로 수송부문 에너지 사용이 전체의 18.5%인 것을 감안하면 아주 큰 숫자다.

지난 26일, 고용호 의원을 대표발의자로 제주도의회 의원 26명은 ‘비자림로 확·포장사업 조개 개설 촉구 결의안’을 발표했다. 2018년 시작했다가 대규모 벌채 논란, 법정보호종 발견, 환경저감대책 부실로 여러 번 중단되었던 공사다. 나 역시 올해 지구의 날 기념행사를 위해 비자림로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제주시내에서 비자림로로 가는 버스는 한 시간에 한 대 왔고, 내가 탄 버스는 기껏해야 한두 명을 태운 수많은 자동차들과 함께 그 도로를 지났다. 

2021년 6월 기준으로 제주의 자동차는 39만8080대. 2017년 대중교통체계 개편 이후로도 3만6030대가 늘어났다. 2020년 기준 이동수단별 분담률에서 버스가 차지하는 비율이 14.4%, 승용차가 차지하는 비율이 48.6%로, 대중교통체계 개편 이후에도 버스의 분담률 상승은 1.1%에 그쳤다.

정부는 이미 지난 10월 2050년 탄소 순배출 제로를 선언했다. 이제 지방정부에서도 탄소배출량을 어떻게 줄일 것인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제주의 탄소배출량 중 최대량은 수송 부문이 차지하고 있다. ‘카본 프리 아일랜드’를 선언하며 전기차를 보급해 이동수단을 전환하려던 정책은 실패했다. 전기자동차가 1만5594대 늘어났지만 내연기관 자동차도 2만436대 이상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도 새로운 도로를 건설하려는 계획이 있다. 제3차 제주국제자유도시 종합계획안(2022~2031)에 포함된, 제주도 중산간을 빙 둘러 고속화도로를 건설하는, ‘중산간 순환형 고속화노로 노선안’ 이야기다.

도로는 그저 이동하기 위한 길 아니다. 어디론가 가기 위한 통로이며, 때론 지대를 상승시키며, 특정한 이동수단만으로 이용할 수 있기도 하다. 누가 그 도로를 사용하고, 어디로 가고, 도로 주변에는 무엇이 생기는가? 어떤 성별이, 어떤 소득 수준의 사람들이, 어떤 연령의 사람들이 자동차를 이용하는가? 

기후위기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평등하고, 더 안전하고,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는 이동이다. 자동차 수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차선을 대중교통과 자전거, 보행자에게 내어주어야 할 때에, 도로를 넓히고 새로운 도로를 건설하자는 정책은 시대착오적이다. / 신현정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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