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예술칼럼 Peace Art Column] (63) 김준기

제주도는 평화의 섬입니다. 항쟁과 학살의 역사를 가지고 있기에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은 더욱 간절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제주4.3이 그렇듯이 비극적 전쟁을 겪은 오키나와, 2.28 이래 40년간 독재체제를 겪어온 타이완도, 우산혁명으로 알려진 홍콩도 예술을 통해 평화를 갈구하는 ‘평화예술’이 역사와 함께 현실 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들 네 지역 예술가들이 연대해 평화예술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들의 평화예술운동에 대한 창작과 비평, 이론과 실천의 공진화(共進化)도 매우 중요합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네 나라 예술가들의 활동을 ‘평화예술칼럼(Peace Art Column)’을 통해 매주 소개합니다. 필자 국적에 따른 언어가 제각각 달라 영어 일어 중국어 번역 원고도 함께 게재합니다. [편집자 글]

2020년 여름. 유난히 길었던 여름장마의 한가운데서 정재철은 그 많은 꿈들을 접고 저 세상으로 떠났다. 그로부터 1년 후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린 1주기전은 그의 30년 예술 인생을 압축적이면서도 풍부하게 펼쳐보였다. 주어진 시간에 비해 탄탄하게 조사연구를 거쳐 정재철 세계의 큰 그림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호평을 얻었다. 지난 20년간 정재철과 동행해온 미술인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그의 1주기전이 ‘사랑과 평화’라는 제목으로 이뤄진 것에 각별한 공감의 열기를 느꼈다. 사랑과 평화가 맞다. 정재철이 평생을 찾아다녔던 세계는 그 어떠한 예각의 이데올로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둔탁한 구체제의 답습은 더더욱 아니었다. 인간으로서의 가장 보편적 가치인 사랑과 평화를 찾아 그는 자신의 그 예민하고 섬세한 촉수를 세우고 한 걸음 한 걸음 움직이면서도, 순간의 이지에 흔들리지 않고 유연하면서도 묵직하게 한길을 걸어온 예술가이다. 

사진=김준기.
정재철, 제주일화도, 2019, 장지에 채색, 150×210cm. 사진=김준기.

정재철은 물질형식으로서의 조각이라는 저 확고한 물질성의 세계를 넘어 비물질예술의 세계로 전환하였다. 그것은 버러진 물건을 수집하여 되살리는 재생의 예술이었다. 일정 기간동안 상품광고나 행사홍보 목적으로 거리나 실내외 건물에 부착했다가 버려진 현수막들을 모아서 예술작품으로 재활용하는 정재철의 작업은 재생의 예술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그의 실크로드 프로젝트는 우리나라에서 쓰고 버린 폐현수막을 유라시아 대륙 17개국의 50여 개 지역으로 보내고, 작가가 직접 그곳을 방문하여 현지인들과 공동으로 작업하는 프로젝트이다. 그것은 쓸모없음을 쓸모있음으로 바꾸는 재생예술의 한 갈래이자 동시에 각기 다른 공동체 구성원들과 함께 창작하는 공동체예술의 새로운 방법론이었다. 

자원의 재생과 쌍방향 소통이라는 관점에서 정재철의 실크로드 프로젝트는 행동주의예술과 공동체예술을 두 축으로 하는 한국 사회예술의 대표적인 선례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공동체예술의 관점에서 그가 남긴 유산은 기존의 시각예술 어법을 벗어난 것이다. 그의 공동체예술은 방문과 재생, 대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했다. 또한 그것은 예술가 주체와 수용자 주체 사이의 상호작용 과정을 중요시하는 새로운 예술로 진화했다. 정재철은 실크로드를 따라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는 네트워크로 대륙 곳곳의 마을공동체를 만났다. 정주 기반 예술활동이라는 공동체예술의 일반적 관행과는 달리 비정주의 방문 프로그램으로 공동체와의 소통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공동체예술의 새로운 사례로 꼽힌다. 

대부분의 시각예술작품은 소통을 매개하는 물질형식이다. 이 가운데서도 실재의 장소와 상황, 사건 등과 직접적인 연관을 맺고 있는 오브제를 사용하는 예술작품은 독창적인 스타일을 확보할 뿐만 아니라 풍부한 서사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정재철의 실크로드 프로젝트의 결과물인 현수막 오브제 작품들은 오브제 그 자체로서 감성적인 아우라를 풍긴다기보다는 실재의 공간에서 벌어졌던 예술가의 퍼포먼스와의 연계 속에서 온전하게 의미망을 형성한다. 그런 점에서 그의 실크로드 프로젝트들와 폐 현수막 작업은 물질형식을 동반하면서도 물질 이상의 문제들, 가령 이동이나 만남, 대화, 소통, 협업 등과 같은 과정으로서의 예술로서 큰 의미를 가진다. 

유라시아대륙과 해양은 정재철의 사유가 얼마나 거대하고 드넓었는지를 알려주는 키워드이다. 실크로드라는 이름에 담긴 유라시아 문명의 거대한 줄기는 정재철의 여행의 자유를 담보하는 기반이었다. 그는 아시아대륙을 넘어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는 사유와 실천의 여정을 누비고 다녔다. 그 한 몸으로 오롯하게 유라시아라는 문명사의 땅을 누볐다. 몸으로 담은 유라시아 대륙은 정재철에게 각별하게 남아, 이후 바다길에 대한 탐구의 길을 여는 데 마중물 역할을 한다. 후기작들 중에서 눈에 띄는 해양예술도 상당부분 해양에 대한 지리학적 관심으로부터 출발한다.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는 실크로드는 태평양과 인도양을 거치는 해상 실크로드로 완결된다. 동북아시아 해류지도 작업에서 보듯 정재철은 문명사적 성찰로 땅과 바다를 누볐다. 이처럼 유라시아대륙과 해양을 꿈꾼 정재철은 문명이나 이동, 여행 등과 같은 비물질 요소를 바탕으로 ‘과정으로서 예술’을 일궈나갔다. 

정재철은 생명과 평화의 관점에서 예술적 실천을 이어갔다. 이와 관련 정재철과 도법스님의 만남은 유의미한 사건이었다. 도법스님은 불교사상을 토대로 생명평화운동을 펼쳐왔는데, 지리산프로젝트는 그 정신을 살리는 예술프로젝트이다. 2014년부터 정재철은 지리산 자락의 남원 실상사에서 열리는 이 행사에 참가했다. 첫 작업은 너럭바위 쉼터를 만드는 일이었다. 실상사 경내에서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후미진 곳을 넉넉한 쉼터로 만드는 일이었다. 양구에서 작업한 청화백자편에 글과 그림을 그려넣고 그것을 실상사 경내에 묻어두고 그 위에 쉼터를 만들었다. 그는 이후 사찰 내에 무심코 쌓여있던 바위들을 재배치해 놀이터 겸 쉼터로 만들기도 했다. 울산의 태화강국제설치미술제에서 실행했던 <바람그물> 작업의 실상사 버전으로, 사찰 경내의 대나무숲에 길을 내고 내부에 공간을 만드는 <대나무법당> 작업도 있다. 도법스님과의 협업으로 이뤄진 이 작업에서 그는 푸른 대나무들을 붉은 실로 엮어서 흔들리는 존재들을 서로 연결하는 인드라망 설치미술을 선보였다.

사진=김준기.
전시장 전경. 사진=김준기.
사진=김준기.
전시장 전경. 사진=김준기.
사진=김준기.
전시장 전경. 사진=김준기.

정재철이 참여한 지리산프로젝트의 문제의식은 생명평화 사상을 예술적 실천으로 생명평화 사상을 펼침으로서 우주적 정신성을 지리산의 역사성과 장소성, 자연생태와 마을공동체과 결합하는 데 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의 총체로서 우주적 사유는 존재한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인드라망 사유로 이어진다. 먼지하나에도 우주가 담겨있다는 생각으로부터 출발하는 우주론은 개별과 총체, 질서와 혼돈 등과 같은 이분법적인 사유를 넘어 생명과 평화를 지향하는 예술의 사회적 실천과 결합하여 지리산의 정신성으로 뭉쳐졌다. 그것은 장소특정적 예술이나 자연생태와 마을공동체와 동행하는 융합의 예술, 상호성에 기반한 서로예술로 진화해갔다. 정재철은 도법스님과 함께 지리산의 우주정신에 자신의 마음을 담았다. 

정재철의 관심사는 바다로 이어졌다. 작고하기 전까지 그는 해양예술에 매진했다. 제주도와 전국의 도서 지방과 오키나와에 걸친 그의 해양예술은 문명사적인 관점의 해양지도 작업을 포함하여 해양쓰레기를 모아서 설치작업으로까지 이어내는 생태예술과 결합했다. 1주기전에 출품한 그 무수한 해양쓰레기들을 일일이 모아온 그의 채집 활동들은 그가 얼마나 치열하고 지속적인 노력으로 해양예술에 매진해 왔는지를 가늠하게 해준다. 유기식물 프로젝트도 유작으로 남았다. 그는 과천 작업실 근처를 비롯한 거리와 골목에서 버려진 식물들을 거둬서 살려내서 기르는 유기식물 프로젝트를 했다. 인도에서 채집한 보리수나무 씨앗을 정성스럽게 싹틔워 길러낸 화분도 있다. 작고한 지 1년이 넘은 지금도 그의 반려예술가가 수십개의 화분을 기르고 있다. 식물성의 사유와 실천으로 진행한 화분프로젝트를 마무리하는 일이 관계자들의 몫으로 남아있다. 

지난 30년간 정진해온 정재철의 삶과 예술은 20세기 형 근대미술 패러다임을 극복하고 21세형의 탈근대미술을 열어나가고자 했던 실험의 연속이었다. 그의 실험은 모험에 찬 도전이었고, 결과 지향이 아닌 과정 지향이었으며, 완결을 염두에 두지 않은 영구 미완의 것이었기에 미술사적인 위치를 가늠하여 기록하는 일은 시간적 거리를 좀 더 확보한 후에나 가능할 일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재철의 세계를 21세기 초반 한국미술계의 일정한 맥락 속에서 파악하는 비평적 작업은 필수불가결한 일이다. 이 글에서 언급하고 있는 비평적 용어들을 간추려보면서 정재철 예술의 윤곽을 파악해 볼 수 있을 것이다. 1주기전 리뷰 지면을 통하여 정재철의 세계를 살펴보는 이 지면에서 언급한 비평 작업의 핵심 의제들은 이동, 여행, 과정, 비물질, 탈근대, 유라시아, 해양예술, 생평평화, 공동체 그리고 사회예술 등이다. 

본격적인 의미의 사회예술은 21세기에 접어들어 창작과 비평과 제도 속에서 꽃피기 시작했다. 정재철의 예술이 한국의 동시대미술에 핵심적으로 중요한 지점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그는 20세기 예술의 질곡을 딛고 자라난 21세기 사회예술의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데 지난 20년의 시간을 바쳤다. 혼신을 다해 걸어온 정재철의 시간은 자폐적 예술언어에 갇힌 근대주의예술, 국가주의에 갇히거나 국가주의와의 전쟁이라는 틀에 갇힌 정치예술로부터 예술의 이탈하여 창의적인 예술의 가능성을 사회적 지평 위로 올려놓는 데 함께 하였다. 정재철의 시간에 동행한 무수한 예술인들과 함께 정재철의 시간은 탈근대예술을 본격화한 생명평화의 사회예술가로 기억될 것이다. 예술적 실천으로 사랑과 평화의 세계를 향하여 혼신의 힘을 다했던 예술가 정재철에게 바치는 나의 헌사는 여기에 적은 몇 마디 말들로 다할 수 없는 마음 속 깊은 울림으로 맴돌고 있다. 그와 함께 했던 대구와 부산과 지리산과 제주도와 오키나와에서의 추억을 돌아보며 다시 한 번 그의 명복을 빈다.

# 김준기

홍익대학교 예술학 석사, 미술학 박사.

현(現)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한국큐레이터협회 회장, 미술평론가.

전(前) 부산비엔날레 전시기획 팀장,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제주도립미술관 관장.


JEONG Jaecheol, Social Art of Life and Peace

GIM Jungi

In the middle of the particularly long rainy season of 2020, JEONG Jaecheoll gave up his many dreams and departed for Hades. A year later, the first anniversary exhibition at the ARCO Museum of Art presented a compressed and richly evocative account of his 30-year artistic life. The exhibition was well received because it showed the big picture of Jung's world, based on thorough research despite the limited time constraints. As one of the art people who has accompanied JEONG for the past 20 years, I felt an exceptional sympathy and enthusiasm for the first anniversary exhibition of his death, entitled "Love and Peace". JEONG’s lifelong search for a world that was not based on any sharp-edged ideology, nor on the bluntness of the old order. In his search for love and peace, the most universal values of humanity, he is an artist who has set up his sharp and delicate tentacles, moving step by step, unmoved by the logic of the moment, and taking flexible but heavy steps.
 
JEONG went beyond the solid materiality of sculpture as a material form and turned to the world of immaterial art. It was an art of rebirth, collecting discarded objects and bringing them back to life. His work of collecting banners that have been discarded after being pasted on streets and indoor and outdoor buildings for a certain period of time for the purpose of advertising products and publicizing events, and reusing them in works of art, has attracted attention as the art of rebirth. His Silk Road Project was the one in which banners used in Korea were sent to more than 50 locations in 17 countries on the Eurasian continent, and the artist visited them in person to collaborate with the local people. It was part of the art of rebirth, turning the 'useless' into the 'useful', and at the same time a new methodology of community art, created with members of different communities. 
 
From the point of view of resource regeneration and interactive communication, JEONG 's Silk Road Project was positioned as a representative precedent for Korean social art with its two axes of action-oriented art and community art. In particular, from the perspective of community art, his legacy is one that departs from conventional visual art terminology. His community art extended to various forms such as visitation, reproduction and dialogue. It also evolved into a new art form that emphasises the process of interaction between the artist and the recipient. JEONG formed a network that crossed Eurasia along the Silk Road and met village communities all over the continent. It is a new example of community art in that, unlike the general practice of community art activities, which is based on a settled base, he attempted to communicate with communities through a programme of non-settled visits. 
 
Many visual artworks are material forms that mediate communication. Among these, artworks that use objects in direct relation to real places, situations and events not only ensure an originality, but also have rich narrative potential. The banner-object works, which are the result of JEONG’s Silk Road project, form a fully meaningful perspective in conjunction with the artist's performance in a real space, rather than emitting a sensible aura as objects themselves. As such, the Silk Road project and the work of banner reproduction, while involving material forms, have great significance as art as a process that concerns more than material matters, such as movement, encounter, dialogue, communication and collaboration.

The Eurasian continent and the oceans are the key words to show how huge JEONG's thinking was. The immense flow of Eurasian civilization, known as the Silk Road, was the basis for JEONG's free travel. He crossed the Asian continent on a journey of thought and practice that took him across the Eurasian continent, a land of civilisation history. The Eurasian continent, which his body had learnt, stayed with JEONG, and thereafter acted as a springboard for his exploration of the sea. A significant part of the maritime art that features prominently in his later works stems from his geographical interest in the sea. The Silk Road that crosses the Eurasian continent is completed by the Maritime Silk Road that passes through the Pacific and Indian Oceans. As can be seen from his work mapping the currents of Northeast Asia, JEONG roamed the land and sea in his historical reflection on civilization. In this way, JEONG, who dreamed of the Eurasian continent and the oceans, constructed "art as a process" on the basis of the immaterial elements of civilization, migration and travel. 

The encounter between JEONG and Monk Dopop was a meaningful event. Dopop monk has developed a movement for peace for life based on Buddhist thought, and the Jirisan project is an artistic project that brings this spirit to life. Since 2014, JEONG has been participating in this event at Silsangsa Temple in Namwon, at the foot of Jirisan. The first task was to turn a secluded area in the precincts of the Temple, almost inaccessible to the public, into a rich resting place. He painted letters and pictures on one side of a piece of porcelain, buried it in the precincts of the Temple and built a resting place on it. Later, the rocks that had been piled up in the temple were rearranged to create a playground and resting place. In the Silsangsa version of the ' work carried out at the Taehwagang International Installation Art Festival in Ulsan, there was also a 'bamboo Dharma hall' work to create a path through the bamboo forest in the temple and create a space inside. In collaboration with Monk Dopop he presented an Indraman installation in which blue bamboo was woven with red thread to connect the swaying beings.
 
The Jirisan project is concerned with the development of the idea of life and peace through artistic practice, and with combining cosmic spirituality with the history and location of Jirisan, its natural ecology and village community. Cosmic thinking leads Indra thinking that all things in existence are interconnected. Starting from the idea that even a speck of dust contains the universe, cosmology has transcended the dichotomies of the individual and the whole, order and chaos, and combined with the social practice of art aiming at life and peace, has converged in the spirituality of Jirisan. It evolved into site-specific art, the art of fusion that accompanies natural ecology and village community, and mutual art based on mutuality. JEONG, together with the monk Dopop, poured his soul into the cosmic spirit of Jirisan.

JEONG's interest has turned to the sea. His marine art, which spans Jeju Island, the islands of Korea and Okinawa, is combined with ecological art, including marine mapping from the historical perspective of civilization, collecting marine debris and connecting it to installations. Looking at the works exhibited at the first anniversary exhibition, we can understand how fierce and sustained his efforts to collect countless marine debris one by one were in pursuit of marine art. The organic plant project which is also his last work involved harvesting and growing discarded plants from street corners and alleys, including those near his studio in Gwacheon. Some of the flowerpots were carefully grown from seeds of lime trees collected in India. Now, a year after his death, his companion, an artist, is growing dozens of flowerpots. It remains for those involved to finish the flowerpot project.
JEONG's life and art were a series of experiments that overcame the modern art paradigm of the 20th century and opened up the way for the de-modern art of the 21st century. His experiments were adventurous and challenging, process-oriented rather than result-oriented, and never intended to be completed, so that their place in art history can only be documented after a further distance in time. Nevertheless, it is essential to do some critical work to understand JEONG's world in the context of Korean art at the beginning of the 21st century. By looking at the critical terms mentioned in this article, it will be possible to grasp the contours of Chung's art. Movement, travel, process, immateriality, de-modernity, Eurasia, maritime art, life and peace, community, and social art.

Full-fledged social art has begun to blossom in the 21st century, in creation, criticism and institutions. It is precisely this part of JEONG's art that is of core importance in Korean contemporary art: he has dedicated 20 years to the flowering of 21st century social art that has sprouted from the fetters of 20th century art. JEONG's time, which he spent with all his might, pushed the potential of creative art onto the social horizon, breaking away from modernism confined to an autistic language of art, and political art confined to the frame of nationalism and war against nationalism. Together with the countless artists who accompanied JEONG during his time, the "Age of JEONG Jaecheol" will be remembered as a social art of life and peace that fully embraced a de-modern art. My dedication to JEONG Jaecheol resonates from deep within my heart in a way that cannot be fully expressed in the limited sentences. I look back on the memories of the time I spent with him in Daegu, Busan, Jirisan, Jeju and Okinawa, and pray for his soul here again.

Photos
1. Jeju Route Map, JEONG Jaecheol  2019.
2. 1st anniversary Exhibition of JEONG Jaecheol
3. 1st Anniversary Exhibition of JEONG Jaecheol
4. 1st anniversary of Exhibition of JEONG Jaecheol


チョン·ジェチョル(鄭在哲) 生命平和の社会芸術

ギム・ジュンギ(金俊起)

2020年の特に長かった梅雨のさなかに、チョン·ジェチョルはその多くの夢を諦め、黄泉へ旅立った。それから1年後、アルコ美術館で開かれた一周忌展は彼の30年間の芸術人生を圧縮し、かつ豊かに繰り広げてみせた。限られた時間にもかかわらずしっかりとした調査研究を経て、チョンの世界のビッグ・ピクチャを示した点で好評を博した。チョンに過去20年間同行してきた美術人の一人として、私は彼の一周忌展が「愛と平和」というタイトルで行われたことに格別な共感の熱情を感じた。愛と平和が出合う。チョンが生涯探し求めた世界は、いかなる鋭角のイデオロギーでもなく、かといって鈍い旧体制の踏襲でもなかった。人間にとって最も普遍的価値である愛と平和を求めて、彼はその鋭敏で繊細な触手を立て、一歩ずつ動きながらも、瞬間の理知に動揺せず、柔軟ながらも重い歩みを重ねてきた芸術家だ。 

チョンは彫刻という形式の確固たる物質性の世界を越えて非物質芸術の世界に転換した。それは捨てられた物を集めて蘇らせる再生の芸術だった。商品広告やイベント広報の目的で一定期間に通りや屋内外の建物に貼り付けてから捨てられたバナーを集めて芸術作品に再利用するチョンの作業は、再生の芸術として注目を集めた。彼のシルクロード・プロジェクトは韓国で使われたバナーをユーラシア大陸17カ国の50余の地域に送り、作家が直接そこを訪問して現地の人々と共同で作業するプロジェクトだった。それは「使い道のないこと」を「使い道のあること」に変える再生芸術の一環であり、同時にそれぞれ違う共同体の構成員と共に創作する共同体芸術の新しい方法論だった。 

資源の再生と双方向コミュニケーションという観点から、チョンのシルクロード・プロジェクトは、行動主義芸術と共同体芸術を2つの軸とする韓国社会芸術の代表的な先例として位置づけられた。特に共同体芸術の観点からすると、彼の残した遺産は従来の視覚芸術語法から外れたものだ。彼の共同体芸術は訪問や再生、対話など多様な方式に拡張した。また、それは芸術家と受容者の間の相互作用過程を重視する新しい芸術へと進化した。チョンは、シルクロードに沿ってユーラシア大陸を横切るネットワークを形成し、大陸のいたるところの村共同体に出会った。定住基盤という共同体芸術活動の一般的慣行とは異なり、非定住の訪問プログラムで共同体との疎通を試みたという点で、共同体芸術の新たな事例として挙げられる。 

多くの視覚芸術作品はコミュニケーションを媒介する物質の形式をとる。この中でも実在の場所と状況、事件などと直接的な関係を結んだオブジェを用いる芸術作品は、独創的なスタイルを確保するだけでなく、豊かな叙事の可能性を持つ。チョンのシルクロード・プロジェクトの成果であるバナー・オブジェは、オブジェそのものとして感性的なオーラを放つというよりは、実在の空間で行われた芸術家のパフォーマンスとの連携の中で、完全に意味ある展望を形成する。そのような点で、彼のシルクロード・プロジェクトとバナー再生作業は、物質形式を伴いながらも物質以上の問題、例えば移動や出会い、対話、疎通、協業などのような過程としての芸術として大きな意味を持つ。 

ユーラシア大陸と海洋は、チョンの思惟がどれほど巨大だったかを示すキーワードだ。シルクロードという名のユーラシア文明の巨大な流れは、チョンの自由な旅行を担保する基盤だった。彼は身をもってアジア大陸を越え、ユーラシア大陸を横断する思惟と実践の旅路、ユーラシアという文明史の地を駆け巡った。体得したユーラシア大陸はチョンの中にとどまり、以後、海の道への探求を開く呼び水の役割をする。後期作の中で目立つ海洋芸術の相当な部分は、海洋に対する地理学的関心から出発する。ユーラシア大陸を横切るシルクロードは、太平洋とインド洋を通る海上シルクロードで完結する。北東アジアの海流地図作業からも分かるように、チョンは文明史的省察で地と海を歩き回った。このようにユーラシア大陸と海洋を夢見たチョンは文明や移動、旅行などの非物質要素を土台に「過程としての芸術」を構築した。 

チョンとドポプ僧侶の出会いは有意義な事件だった。ドポプ僧は仏教思想を土台に生命平和運動を展開しており、智異山(ジリサン)プロジェクトはその精神を生かすアート・プロジェクトだ。2014年からチョンはジリサンの麓の南原 (ナムウォン)にある実相寺(シルサンサ)で開かれるこの行事に参加した。最初の作業は実相寺の境内で人がほとんど足を踏み入れない奥まった場所を豊かな憩いの場にすることだった。磁器の片側に文字と絵を描き入れ、それを寺の境内に埋めてその上に休憩所を作った。その後、寺院内に積み上げられていた岩を再配置し、遊び場兼憩いの場にした。蔚山(ウルサン)の太和江(テファガン)国際インスタレーション美術祭で実施した作業の実相寺バージョンでは、寺院内の竹林に道を作り、内部に空間を作る「竹の法堂」も見られた。ドポプ僧とのコラボレーションで、彼は青い竹を赤い糸で編んで揺れる存在をつなげるインドラマン・インスタレーションを披露した。 

チョンが参加した智異山プロジェクトの問題意識は、生命平和思想を芸術的実践で展開することにあり、宇宙的精神性を智異山の歴史性と場所性、自然生態や村共同体と結合することにある。宇宙的思惟は、存在するすべてのものは互いに結びついているというインドラマン思惟につながる。埃一つにも宇宙が内在するという考えから出発する宇宙論は、個別と総体、秩序と混沌などの二分法的な思惟を越え、生命と平和を目指す芸術の社会的実践と結合して智異山の精神性に収斂した。それはサイト・スペシフィック・アートや、自然生態と村共同体とに同行する融合の芸術、相互性に基づく相互芸術に進化していった。 チョンは、ドポプ僧とともに智異山の宇宙精神に自分の心を注いだ。 

チョンの関心は海に向かった。済州島と国内の島嶼地域、沖縄にわたる彼の海洋芸術は文明史的観点の海洋地図作業を含め、海洋ごみを集めてインスタレーションにつなぐ生態芸術と結合した。一周忌展に出品した作品を見れば、無数の海洋ゴミを一つ一つ集めてきた彼がどれほど熾烈で持続的な努力をもって海洋芸術に邁進したかが理解できるだろう。有機植物プロジェクトも遺作として残った。彼は果川(クァチョン)のアトリエ付近をはじめ、街角や路地で捨てられた植物を刈り取って育てる有機植物プロジェクトを行った。インドで採集した菩提樹の種を丹念に育てた植木鉢もある。亡くなって1年が過ぎた今、彼の伴侶である芸術家が数十個の植木鉢を育てている。植木鉢プロジェクトを仕上げることが関係者たちの役割として残された。 

チョンの人生と芸術は、20世紀型近代美術パラダイムを克服し、21世紀型の脱近代美術を開く実験の連続だった。その実験は冒険に満ちた挑戦であり、結果志向ではなく過程志向であり、完結を念頭に置かない永久未完のものだったため、その美術史的な位置を記録することは時間的距離をさらに確保した後に可能となろう。ではあっても、チョンの世界を21世紀初めの韓国美術界という一定の脈絡において把握する批評的作業は必要不可欠だ。本稿で言及した批評的用語を総覧すれば、チョン·ジェチョル芸術の輪郭を把握することができるだろう。一周忌展レビューの紙面を通じてチョン·ジェチョルの世界に言及した批評の核心議題は、移動、旅行、過程、非物質、脱近代、ユーラシア、海洋芸術、生命平和、共同体、そして社会芸術などだ。 

本格的な意味の社会芸術は21世紀に入って創作と批評と制度の中で開花し始めた。チョンの芸術が韓国のコンテンポラリー・アートにおいて核心的に重要な位置を占めるのはまさにこの部分だ。20世紀の芸術の桎梏を乗り越えて芽生えた21世紀の社会芸術の花を咲かせるのに20年という時間を捧げた。渾身をもって歩んできたチョンの時間は、自閉的な芸術言語に閉じ込められた近代主義芸術、国家主義や、国家主義との戦争というフレームに閉じ込められた政治芸術から芸術を離脱し、創意的な芸術の可能性を社会的地平の上に押し上げた。チョンの時間に同行した無数の芸術家とともに、「チョン·ジェチョルの時代」は脱近代芸術を本格化した生命平和の社会芸術として記憶されるだろう。チョン·ジェチョルに捧げる「私の献辞」は、限られた紙面では言い尽くしようのないほど、心の奥深くから響いている。彼と一緒に過ごした大邱(テグ)、釜山(プサン)、智異山(チリサン)、済州道(チェジュド)そして沖縄での思い出を振り返り、再びここに冥福を祈る。 

図版
1.鄭在哲(チョン·ジェチョル)、済州地図 2019。
2.鄭在哲(チョン·ジェチョル)一周忌展全景
3.鄭在哲(チョン·ジェチョル)一周忌展全景
4.鄭在哲(チョン·ジェチョル)一周忌展全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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