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연극협회 ‘제30회 소극장 연극 축제’

제주연극협회가 주최하는 ‘소극장 연극 축제’는 1991년 겨울 첫 선을 보였다. ‘제주 지역 연극 발전과 소극장 문화 확산’이란 목적 아래, 올해로 30주년을 맞는 제법 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 

소극장 연극 축제의 최근 10년 흐름을 살펴보면 제주 지역 극단·단체 중심으로 진행돼 오다, 도외 극단도 초청하면서 문호를 넓혔다. 그리고 코로나19가 발생한 지난해부터는 다시 제주 극단 위주로 꾸렸다.

8월 24일부터 29일까지 열린 올해 소극장 연극 축제는 ‘30년’이란 숫자에 걸맞게 상당히 의미 있는 시도들이 감지됐다. 새로운 인재 발굴을 비롯해 극단의 체질 개선, 창작 역량의 확대 등 흥미로운 변화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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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레의 '엄마' 출연진. ⓒ제주의소리

# 극단 세이레 - 상처 입은 존재들이 서로를 위로하는 슬픔

세이레는 김숙종 작가의 2014년 작 ‘엄마’를 공연했다. 작품은 서로를 낯설게 대하는 청년과 중년 여성 간의 만남으로 시동이 켜진다. 

예정에도 없이 집에 들어온 초췌한 낯선 청년을 ‘자녀 친구’라고 여기고 정성껏 대하는 여성, 어색함에 손사래 치다 어찌어찌 목욕도 하고 밥도 먹게 되며 중년 여성의 친구들까지 만나게 된 청년. 왜 청년은 그 여자의 집으로 찾아갔는지, 왜 중년 여성의 자녀는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는지, 관객들은 궁금증을 가진다. 

작품은 2009년 발생한 일명 ‘용산 참사’ 사건으로 자녀를 잃은 엄마, 그리고 대를 이은 가난과 좌절로 극단으로 몰린 청년의 만남을 보여준다. 청년은 ‘보상금’을 운운하며 자신의 목에 칼을 대고 감정을 토해내지만, 엄마는 “너는 (스스로) 죽을 수도 있구나”라며 또 다른 고통을 토로한다. 그들 앞에 찾아온 절망은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것이기에 더더욱 힘겹지만, 결국 두 사람은 너무도 서글프게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살아보자’는 의지를 다시 확인한다. 청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준비한 번개탄이, 종국에 삼겹살 구이를 위한 연료로 쓰이는 전개는 무척 상징적이다.

갈등 해소의 중요한 장치는 바로 ‘엄마의 집밥’이다. “자녀를 입히고 먹이고 재워서 내보내는 역할이 엄마”라며 “내가 (너를) 잘 먹여야 내 자식도 어디선가 잘 먹고 있지 않겠냐”는 대사 속에는 사회가 아무리 빠르게 고도화 되더라도, 인간에게 가족과 사랑을 대체할 만 한 원동력이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세이레는 양순덕, 박은주, 정민자, 설승혜라는 주축 구성원으로 출연진을 꾸렸다. 여러 작품에서 익숙하게 만난 조합이지만, 그만큼 유기적인 호흡으로 안정감 있는 무대를 완성했다. 여건 상 조명이나 음향에 있어서는 별 다른 연출이 가미되지 않았지만, 배우들의 힘으로 끌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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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공간 오이의 '감금' 출연진. ⓒ제주의소리

# 예술공간 오이 - 계속 진화하는 무대 연출

예술공간 오이는 2인극 ‘덤웨이터’로 지난 2012년 ‘제21회 소극장 연극 축제’에 초청받은 바 있다. 창단 한 지 1년 밖에 지나지 않은 신생 단체가, 9년이 흘러 정식 연극협회 회원사로 당당히 돌아왔으니 오이 입장에서는 특별한 기분이지 않을까 싶다.

이번에 선보인 ‘감금’은 창작 3부작에 속한다. 감금, 사슬, 룸 순서다. 사슬 작품은 2016년에 초연한 사실을 고려하면, 감금은 프리퀄(prequel, 기존 작품보다 앞선 시기의 이야기를 다루는 속편)로 볼 수 있다. 

유리로 둘러싸인 공간 안에는 노숙자 남녀 2명 씩 네 사람이 갇혀 있다. 안에서는 바깥을 볼 수 없고, 바깥에서는 안을 볼 수 있다는 공간 설정과 함께 상황을 통제하는 사회자가 존재한다. 작품은 ‘안에서 끝까지 버티면 100억원 지급’이라는 파격 조건을 내세우며, 세 편의 게임을 진행한다. 서로 이간질하며 편 가르고 합종연횡 하는 과정 속에 하나 씩 탈락자가 발생하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100억원의 주인이 결정된다.

통제된 환경에서 갈등을 겪으며 문제를 해결하는 설정은 영화 '쏘우'(2004)부터 웹툰 겸 유튜브 예능 ‘머니게임’(2021)까지 꾸준히 다뤄져 왔다. 갇혀 있는 인간 군상들이 보이는 가식 없는 욕망은 무척 자극적이지만 동시에 거부하기 힘든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소재다. ‘감금’은 관객을 감금 게임에 초청받아 상황을 지켜보는 VVIP라고 설정하면서 관음적 요소까지 추가했다. 

게임 참가자들 배경이나 과거 회상 같은 요소는 다소 평범한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무대를 꽉 채운 유리 세트, 게임 진행 상황을 수시로 알려주고 극의 마지막을 보여주는 화면 장치까지…, 무대 연출이 작품의 날개를 달아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속에서 펼쳐지는 심리전과 한껏 몰입한 배우들(전혁준, 이휘연, 홍수지, 강영지, 노현정) 덕분에 관객은 계속 긴장한 채 무대를 응시한다. 이번 작품에서 전혁준, 강영지를 제외하고는 비교적 신입 배우들이라, 전담 액팅 코치(김소여)를 투입하며 연기력 향상에 공을 기울였다. 공연 입장권부터 대기실까지 작품에 어울리게 꾸미는 섬세함은 ‘오이답다’는 말이 나오게 했다. 

오이는 창작극에 대한 고민을 비중 있게 이어오는 극단이다. 동시에 재기발랄한 무대 활용을 꾸준히 모색해왔다. ‘감금’은 재공연이 논의 중이라고 하니, 궁금한 사람들은 다음 무대를 기다려 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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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람의 '당신이 잃어버린 것' 출연진. ⓒ제주의소리

# 극단 가람 - 변화를 위한 고민

가람은 지난해 소극장 연극 축제에서 신선한 무대를 선보였다. 출연진 전원과 제작진 대부분을 20대 청년들로 채우고, 가람의 레파토리 작품인 세미 뮤지컬 ‘낮술’을 공연했다. 무대를 갈망하는 청년들이 소중한 경험을 쌓은 자리였지만, 그들의 고민이 반영된 ‘낮술’이 아닌 단순 재현에 불과했기에 빛이 바랬다. 

올해 소극장 연극 축제는 마치 지난해 무대가 미덥지 못했다는 듯, 기획 단계까지 청년들이 책임지는 파격적인 시도에 나섰다. 바로 ‘당신이 잃어버린 것’이다.

‘당신이 잃어버린 것’은 지난 2015년 극작가 9명이 모여 발간한 희곡집이다. 책에 실린 26개 단편 가운데 가람은 ▲두통 ▲갈까 말까 망설일 때 ▲크리스마스 특선 ▲언제나 꽃가게 등 네 편을 공연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상당수는 특정 교통사고와 연관돼 있다. 그 사고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는데, 등장인물들은 직접 피해를 입진 않았지만 트라우마로 고통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사고와 무관한 작품 속 다른 인물들도 각자의 아픔과 고민을 지닌 채 묘한 인연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 마음까지 얼어붙은 겨울을 보내는 이들에게 문뜩 들리는 ‘한 여름 매미 소리’는 때로는 버티기 힘들 만큼 버거워도 살아있음을 알려주는 삶의 신호다.

이번 공연은 가람의 이름으로 열리긴 했으나, 기획 담당 강지훈과 구성원 면면을 고려하면 사실상 제주 청년극단 RED에게 통째로 맡겼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리고 지난해 2월 같은 작품을 공연한 제주청년예술단체 ‘프로젝트 그리다’ 무대의 출연진까지 제법 겹치고 있다. 때문에 연기력을 포함해 냉정하게 경험 이상의 의미를 찾기에는 여러모로 힘들어 보였다. 청년들이 전면에 나선 점은 반갑다.

지난 7월 대한민국연극제 본선 참가를 앞두고 열린 ‘종이 비행기’ 공연에서도 느꼈지만, 현재 가람의 장점은 산업화시기를 겪은 세대 이상의 연령대가 강하게 공감할 법 한 작품 구성과 이를 무대 위에서 구현하는 탄탄한 중견 배우진, 이 두 가지가 결합해 만들어내는 완성도에 있다. 최근 젊은 출연진들을 다수 섭외하는 시도는 이런 장점에 집중돼 있는 극단의 예술성을 넓히기 위한 일종의 체질 개선이라고 느껴진다. 다만, 그 방식이 유기적인 결합이라기보다는 청년극단 RED를 중심으로 한 협업 단계에 머물러 있는 인상을 준다. 조금씩이라도 변화를 추구하는 움직임은 높이 평가하며, 가람이 추구하는 방향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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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도의 '자살에 관하여' 출연진. ⓒ제주의소리

# 극단 이어도 - 살아있음을 알리다

이어도는 올해 소극장 연극 축제에서 국내 유명 극작가 이강백의 유명 작품인 ‘자살에 관하여’를 선택했다. 지난해는 창작극 ‘보통은 망하니까’로 색다른 재미를 선사했다면, 올해는 무난하게 작품을 골랐다. 

그러나 나름의 고민도 엿볼 수 있었다. 타 극단 소속인 변종수 대표(문화놀이터 도채비)를 연출로 섭외했고, 이어도에 몸 담았어도 한 동안 연기 활동을 쉬었거나 주로 조연을 도맡은 중견 단원 송애순·이선숙을 주연으로 발탁했다.

‘자살에 관하여’는 언제나 자살을 생각하는 작가 유경화, 자녀·남편과도 떨어져 홀로 살아가는데 익숙한 방송작가 남지인, 두 친구 이야기다. 자살 상담 라디오 프로그램으로 일약 스타가 된 유경화. 그런 친구가 여간 불안하기만 한 남지인. 결국 화무십일홍처럼 유경화는 진행자에서 퇴출되고, 남지인 마저 사표를 쓴다. 작품은 전전긍긍하는 유경화가 자신이 상담했던 사람들에게 전화로 자살을 독촉하며, 진행자 복귀를 바라는 아이러니한 상황으로 끝이 난다.

할머니에서 고독한 자살 희망자까지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며 소소한 웃음을 안겨준 단역 김경만을 제외하고 작품은 나머지 2명이 끌고 간다. 송애순·이선숙 배우의 역할이 중요한데, 다소 어색한 면이 없지 않았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한결 나아졌고, 무엇보다 긴 호흡의 대사도 어느 정도 수월하게 소화했다. 

1978년 창단하며 제주 연극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이어도는 최근 여러모로 부침을 겪었다. 대표 교체가 잇달아 이뤄졌고 거점으로 활동하던 미예랑 소극장도 문을 닫았다. 그러나 소수 정예로서 끈끈한 팀워크를 자랑하며 재기의 발판을 모색하고 있다. ‘자살에 관하여’ 제작진으로 힘을 보탠 단원들과 초대 극단 대표 강용준 작가가 현장을 찾아 후배들을 격려한 분위기에서 잘 알 수 있다.

이어도는 12월 2~4일 문화예술진흥원 기획공연으로 새 창작극 ‘3대째 손두부’를 앞두고 있다. 모처럼 이어도의 역량을 발휘할 연말 공연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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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노가리의 '우리 행복할 수 있을까요?' 출연진. ⓒ제주의소리

# 극단 파노가리 - 뜨고 지는 해는 붙잡을 수 없기에

파노가리 역시 파격적인 선택으로 소극장 연극 축제에 참여했다. 지난해 소극장 연극 축제뿐만 아니라 파노가리의 상당수 작품 활동이 문무환 대표가 글을 쓰고 연출하는 방식이었는데, 이번에 대표는 한 발짝 물러났다. 대신 작품 전반에 걸쳐 2세대인 문재용·문재승 형제 중심으로 재편한 모양새다. 

창작극 ‘우리 행복할 수 있을까요?’는 출연진 세 명이 각자 글을 쓰고 연기까지 도맡은 독특한 구조다.

작품 분위기는 시종일관 어둡다. 주요 등장인물은 신경질적이고 심한 강박 증세를 보이거나, 극심한 내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모두 청년이라는 공통점과 함께 아픈 상처를 지니고 있다.

어린 시절 자신에게는 폭력, 여동생에게는 성적 학대까지 가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며 어느새 아버지처럼 술에 중독돼 원치 않는 폭력의 대물림에 망가진 남자, 원하는 대기업에 취업했지만 남자 상사의 성추행과 이어진 사내 언어폭력으로 점점 피폐해져 가는 여자, 무척 부유한 기업가 집안이지만 부모의 불화로 어린 나이에 어머니와 헤어져 아버지와의 냉담한 관계뿐만 아니라 어머니에 대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남자. 

세 사람은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고난에 울부짖으며 힘겨워하지만, 가족과 주위의 도움으로 혹은 나 스스로와 약속하면서 조금 더 나은 삶을 살아보겠다고 다짐한다.

“이제 서로를 위해서 살자”는 동생의 간곡한 부탁, “스스로를 믿어보라”는 의사의 당부, 그리고 “온 몸에 상처가 남을지언정 살아야 해. 상처의 흔적은 내가 이겨냈다는 의미”라고 자기 자신을 다독이면서, 연극은 “우리 행복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으로 막을 내린다.

작품은 가정 폭력·이혼, 직장 내 성문제 같은 강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문제들을 다루면서 감정을 자극한다. 반대로 보면 소재 자체는 익숙한 편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김수용·임청아·문재용이란 훈련된 젊은 배우들의 호소력 짙은 연기는 관객을 몰입시키기 충분했다. 그림자를 활용한 조명 연출이나, 소박하지만 실용적이면서 주제와도 맞닿은 백색 무대는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 이번 작품은 문재용 배우가 연기한 ‘문선민’과 그 이야기에 방점이 찍혀 있다고 본다. “아버지의 그늘 아래에서 밖에 살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만 결국에는 아버지를 이해하는 모습에서 자연스럽게 극단 파노가리가 떠올랐다. 예술에 대한 진지한 자세를 물려받은 젊은 연극인들의 비행(飛行)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묵묵히 지켜보는 것도 분명 가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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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포먼스단 몸짓의 '그대는 봄' 출연진. ⓒ제주의소리

# 극단 퍼포먼스단 몸짓 - 몸에 맞는 옷이 보기에도 편하다

마지막 순서를 장식한 퍼포먼스단 몸짓은 김정숙 작가의 ‘그대는 봄’을 공연했다. 지난해 초연을 가진 따끈따끈한 신작이다. 

작품은 세 할머니가 등장하는 인물 구성과 발랄한 느낌의 첫 배경음악만으로 대략 느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늘 옥신각신하지만 기쁨과 슬픔 모두 함께 나누는 정겨운 노년이 아닐까.’ 공연 시작 조명이 켜지는 순간 예상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자녀가 보내준 경량 패딩을 자랑하며 한 여름에도 입고 다니지만, 알고 보면 자녀의 연락도 발길도 뜸한 명길네. 두 번의 결혼에도 배우자를 모두 먼저 떠나보내며 강아지가 유일한 가족인 장계네, 그리고 땅까지 팔아가며 자녀를 뒷바라지 했지만 사실상 인연이 끊긴 민관이네. 

세 할머니는 티격태격 하는 사이지만 밭일에도, 장날에도, 보건소 가는 날에도, 강아지를 땅에 묻는 날에도, 봄나들이 꽃구경에도 언제나 함께하며 서로를 의지한다. 치매 판정을 받아 절망에 빠진 민관이네를 위해 이웃들 손자 장난감을 모아오면서 “우리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냐”고 다독이고, 이제부터는 자녀 이름 대신 잊고 있던 각자 이름으로 남은 생을 살자는 다짐은 노년의 아름다운 우정을 잘 보여준다.

앞서 언급했듯 일찌감치 흐름이 예상됐지만, 감동과 유머가 잘 버무려지며 훈훈하고 유쾌하게 관객에게 다가선다. 특히 치매를 감안한 민관이네의 애매모호한 말주변과 장계네의 억지 논리는 큰 웃음을 선사했다. 

‘그대는 봄’ 원작은 전라북도가 배경이다. 퍼포먼스단 몸짓은 전북 사투리 대신 제주어로 각색했다. 억양만이 아니라 문장을 이루는 요소마다 골고루 제주어 ‘번역’을 시도한 흔적이 곳곳에서 보였다. 

배우 세 명이 연기하는 세 인물로 진행해야 하기에 출연진 간의 호흡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톡톡 쏘는 명길네(진정아 배우)와 그걸 받아치는 장계네(강종임)가 티격태격 싸우면 민관이네(양현정)가 말리거나 어쩔 줄 몰라 하는 구도가 주로 나타났다. 세 명 모두 무대 경험이 풍부한 만큼 호흡은 잘 맞았는데, 그 중에서 양현정 배우는 대사가 많거나 주목도가 높진 않아도, 언성을 높이는 두 사람 사이에서 적절히 스며드는 역할로 눈길을 끌었다. 특히, 이번 축제에서 세이레와 퍼포먼스단 몸짓 작품의 주연을 맡으며 독보적인 존재감을 발휘했다.

퍼포먼스단 몸짓은 지난해와 올해를 거치면서 가급적 소극장 연극 축제마다 제주어를 사용한 작품으로 참여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여성 단원들이 중심인 특징도 감안해, 본인들이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영역에서 경쟁력을 쌓아가는 방향을 이번 ‘그대는 봄’을 보며 다시 한 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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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소극장 연극 축제를 반면 교사 삼아, 다음 협회 행사인 ‘더불어-놀다 연극제’에서부터는 보다 생산적인 운영을 기대해본다. 사진은 소극장 연극 축제가 열린 문예회관 소극장. ⓒ제주의소리

최근 10년 동안 제주연극협회 소극장 연극 축제의 흐름을 살펴보면 널리 알려진 작품이나 레퍼토리를 재연하는 경우가 많았다. 소극장 연극 축제만의 뚜렷한 매력을 찾기 어려워 보였다. 그래서일까. 30년이나 흐른 행사임에도 현장에서 느낀 관객 분포와 분위기는, 동료 연극인이나 지인 정도에 머물러 있는 폐쇄성으로 다가왔다. 물론 코로나19로 인해 좌석 수를 제한한 여건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줬을 것이다.

극단마다 여건이 다른 만큼 단번에 행사 성격을 규정하기는 어려울 지라도, 적어도 관객들이 어떤 소극장 연극 축제를 원하는지, 혹은 제주연극협회와 제주 연극계에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현장 의견부터 찾아서 들을 필요가 있겠다. 이런 측면에서 현장을 찾는 관객들에게 설문지를 배포해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는 건 어떨까. 시도한 바 있지만 소감 이벤트처럼 관객과 접점을 늘리는 것은 언제라도 꾸준히 필요해보인다.  

지난 3월 대한민국연극제 제주예선대회에서도 느꼈지만 매일 이어지는 공연 일정 보다는 간격을 두고 진행하는 편이 관객·창작자 모두에게 나은 편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평범한 관객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매일 저녁 7시 30분마다 소극장을 찾을 수 있는 처지가 얼마나 될까. 어느 정도 간격을 두는 운영은 관객 부담을 덜고, 공연이 끝나자마자 철거에 급급해 밤새 다음 작품을 준비해야 하는 창작자들의 부담도 줄일 수 있다. 제주문예회관은 무료 공연에 대해서는 가장 저렴한 대관료를 책정하고 있다. 비용 부담도 그리 많지 않으리라 본다. 매일 이어지는 공연은 밀집을 피해야 하는 코로나 상황에서도 나아보이진 않는다.

제주연극협회는 이번 소극장 연극 축제를 준비하면서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로 인해 일정을 조정하고, 매 공연마다 지원 인력을 배치하는 등 역할을 맡았다. 관객과 창작자 입장에서 보다 나은 축제를 어떻게 만들지 조금 더 고민해주길 당부한다.

덧붙여 소극장 연극 축제에 참여한 청년들을 보며 협회 차원의 청소년·청년 연극교실을 운영하는 아이디어도 떠올려 봤다. 지금은 극단 별로 제각각이지만, 제주 연극계가 힘을 모아 협회가 연극교실을 운영한다면 연극-연기 진로를 희망하는 미래 세대들이 느끼는 문턱이 크게 낮아지지 않을까. 극단 입장에서도 보다 훈련된 인재들을 수급하는데 용이하겠다.

결론으로 올해 소극장 연극 축제를 반면 교사 삼아, 다음 협회 행사인 ‘더불어-놀다 연극제’에서부터는 보다 생산적인 운영을 기대해본다. 그리고 극단 마다 변화를 위해 나름 고민하고 모색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의미한 계기였다. 제주 극단들이 저마다 안고 있는 숙제를 얼마나 적극적으로 해결할지 앞으로 지켜볼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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