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갤러리 - 이중섭의 귀향] 섶섬이 보이는 풍경, 해변의 가족

 

한국을 대표하는 서양화가 이중섭(1916~1956)이 세상에 머물렀던 시간은 재능에 비해 너무나 짧았던 40년이다. 그 중에서 제주에 머물렀던 시기는 1951년 한 해 뿐이다. 비록 고단한 생활이었지만 부인과 두 아들을 포함한 온 가족이 함께 지낸 몇 없는 시절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그리운 제주도 풍경’. ‘서귀포의 환상’, ‘섶섬이 보이는 풍경’ 같은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다. 이중섭 가족이 서귀포를 떠난 지 70년이 흘러, 원화 12점이 서귀포에 왔다. 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보유했던 일명 ‘이건희 컬렉션’이다. [제주의소리]는 9월 5일부터 시작하는 이중섭미술관 특별전 ‘70년 만의 서귀포 귀향’을 앞두고 ‘특별기획 - 웹 갤러리’를 통해 다섯 차례에 걸쳐 전시작품을 소개한다. 원화의 감동은 이중섭미술관을 찾아 직접 느껴보도록 하자. [편집자 주]

 작품 소개 순서

① 물고기와 노는 아이들, 비둘기와 아이들, 연날리기 
② 섶섬이 보이는 풍경, 해변의 가족
③ 풀밭 위의 소와 사람들, 토끼풀, 바닷가에서 새와 노는 아이들
④ 아이들과 끈, 현해탄, 물고기와 두 어린이
⑤ 게와 아이들, 은지화


# 섶섬이 보이는 풍경, 32.8×58cm, 패널에 유채, 1951.

사진=이중섭미술관. ⓒ제주의소리
이중섭, 섶섬이 보이는 풍경, 32.8×58cm, 패널에 유채, 1951. 사진=이중섭미술관. ⓒ제주의소리

‘섶섬이 보이는 풍경’은 이중섭의 제주 생활을 상징하는 작품 가운데 하나다. 높은 위치에서 서귀포 섶섬과 주변 바다, 마을을 한눈에 바라보는 구도는 지금도 이중섭미술관에서 비교적 온전히 느낄 수 있다.  

1951년 1월 초 제주항에 도착하고 그해 12월 부산으로 떠날 때까지, 요즈음 표현을 빌려 이중섭 가족의 '제주 1년 살기'는 매우 팍팍했다. 3일 동안 고구마를 얻어먹고 소 외양간에서 밤을 보내면서 눈 속을 헤치며 서귀포에 도착했다. 서귀포에서도 작은 방 하나에서 쌀을 배급받아 생계를 유지했다. 그것으로는 당연히 턱없이 부족했기에 게를 잡거나 해초를 뜯어 죽을 쑤거나 반찬으로 삼았다.

경제적으로는 매우 빈곤하게 살았어도 이중섭, 마사코 부부와 두 아들이 함께 지낸 서귀포 생활은 그에게 평생 기억에 남을 순간임은 분명하다. 섶섬과 서귀포 바다를 배경으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반갑게 바라보는 작품에 ‘그리운 제주도 풍경’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나. 그렇기에 서귀포 시절에 그린 ‘섶섬이 보이는 풍경’ 작품은 색채 이상으로 따스함이 느껴진다.

ⓒ제주의소리
이중섭의 '섶섬이 보이는 풍경'(왼쪽)과 이중섭미술관에서 바라본 현재 섶섬 풍경(오른쪽)을 나란히 배치했다. ⓒ제주의소리

전은자 이중섭미술관 큐레이터는 전시 소개 글에서 “‘섶섬이 보이는 풍경’은 1951년 이중섭이 한국전쟁으로 인해 가족을 데리고 서귀포로 피난 왔을 때 그린 작품이다. 서귀포 주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이 작품은 현재의 이중섭미술관 인근에서 그린 작품이다. 작품의 구도가 주민들의 증언을 뒷받침해 준다. 이 작품이 서귀포를 떠난 지 70년 만에 서귀포의 품에 안기게 되어 이중섭의 아련한 서귀포 추억도 되살아나는 분위기”라고 설명한다.

더불어 “이 작품은 약간 부감법이 적용된 평원시의 구도로 그려졌다. 전체적인 색조를 황톳빛으로 처리해 차분하고 전쟁의 참화를 겪었다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평화로운 서귀포 마을의 모습을 담고 있다. 초가집 사이로 눌(낟가리)과 전봇대, 나목을 지나 섶섬으로 시선이 이어져 한가로운 남국의 정취가 느껴지는 그림”이라고 소개한다.


사진=이중섭미술관. ⓒ제주의소리
이중섭, 해변의 가족, 29×41.2cm, 종이에 유채, 1953~1955. 사진=이중섭미술관. ⓒ제주의소리

# 해변의 가족, 29×41.2cm, 종이에 유채, 1953~1955.

이중섭에게 ‘가족’은 그의 인생과 예술 세계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김동화 정신과 전문의는 이중섭 말년에 드리운 정신적 고통을 탄생 100주년 전시 ‘이중섭, 백년의 신화’ 도록에 상세히 풀어냈다.

그는 “결국 화가의 발병에 가장 결정적인 인자로 작용한 것은 가족, 특히 그 중에서도 사랑하는 대상인 아내와의 이별 및 그녀와의 향후 재회에 대한 가능성이 전적으로 좌절된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여기에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의 각별한 사랑 속에 자랐지만, 그리운 어머니마저 1950년 피난길 이후 다시는 만날 수 없었다. 은지화·편지화를 빼곡이 채운 가족 그림들과 생의 끝자락에서 어머니를 추억한 ‘돌아오지 않는 강’ 연작까지. 이중섭 인생에 있어 가족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희망이었다. 그렇기에 가족과의 이별은 너무나 큰 고통으로 바뀌어 육체와 정신을 갉아먹었다.

김인혜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탄생 100주년 전시에서 “이중섭은 가족과 헤어져 몇 년째 그리움 속에 이들을 만나지 못하고 있을 때에, 가족들 특히 두 아들과 함께 노니는 자신의 모습을 열심히 그려 넣었다. 당장의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고 있지만, 꼭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자신의 바람을 그림으로 대체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중섭의 ‘해변의 가족’은 일본에 머물던 가족과 떨어져 홀로 지낸 1953년에서 1955년 사이그린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아름다운 초록빛 바닷가에서 새를 잡으며 뛰노는 가족들은 천진난만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열심히 새를 움켜쥐려 하지만 한 명도 제대로 잡지 못한다. 간절히 가족과의 해후를 염원하지만 이루지 못하는 현실과 애타는 마음, 그리고 잊지 못할 서귀포에서의 추억이, 날개를 펼치며 손에서 빠져나가나는 하얀 새들에게 투영된 것이 아닐까.

이건희 컬렉션 이중섭 특별전
- 70년 만의 서귀포 귀향(歸鄕)

작가미술관(Single artist museum)이란 한 개인 작가의 작품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미술관을 말한다. 그러므로 미술관의 성격 또한 해당 작가의 작품과 삶에 대한 다양한 흔적을 수집·보관·연구하는 특성을 가지며, 이런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전시와 교육 등을 행하게 된다.

세계적인 작가미술관 건립 사례는 작가의 고향, 혹은 작업실이 있었던 지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스페인 바로셀로나 몬카타 거리에 있는 피카소 미술관은 1963년 개관하였다. 그런데 프랑스의 작은 마을 앙티브에도 1966년 피카소 미술관이 들어섰다. 앙티브는 피카소가 스페인 출신이지만, 가장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던 곳이다. 프랑스 출신인 로댕의 작품 애호가의 컬렉션에 의해 미국 필라델피아에도 로댕미술관이 세워졌다.

이처럼 대중의 사랑을 받는 유명 작가미술관의 건립 사례는 매우 다양하다. 어느 지역이나 특정 국가의 출신 작가가 아닐지라도 한때 작업을 했던 곳이나 수집된 작품이 좋으면 작가미술관을 건립하여 해당 지역의 문화 자산으로 삼았다.

이중섭.

작가미술관으로서 이중섭미술관은 국내에서 가장 뚜렷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미술관 중 하나이다. 이중섭미술관은 1951년 이중섭이 가족과 함께 서귀포에서 1년간 작품 활동을 했던 역사성에 근거하여 2002년 전시관으로 개관을 했고, 기증에 의해 2003년 미술관으로 등록된 이후 관람객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져 연간 약 27만 명이 찾아오는 명소가 되었다.

이중섭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기라는 시대적으로나 미술사적으로나 우리 민족의 수난 시대의 중심에서 활약했던 화가이다. 자신의 삶과 죽음에 드리워진 비극성에도 불구하고 이중섭은 가족 사랑이라는 인륜의 가치를 끝까지 품었던 위대한 화가이기 때문에 코로나19로 힘든 일상을 보내고 있는 많은 사람에게도 마음의 위안을 주고 있다.

그런데 미술관이 제 기능을 충분히 발휘하기 위해서는 좋은 소장품이 있어야 한다. 소장품 확보의 길은 구입과 기증이 있는데, 기증은 개인의 소유권을 공공의 자산으로 전환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치 있는 일이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올해 4월, 아직 기증문화의 기반이 취약한 우리 사회에서 삼성가(家) 유족의 고(故) 이건희 컬렉션 사회 환원 소식은 세상 사람들에게 놀라움과 감동을 주었으며, 예술작품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었다.

서귀포에 있는 이중섭미술관 또한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국민화가 이중섭의 주옥같은 작품 12점을 기증받았다. 이번 기증 작품들은 이중섭의 짧은 생애에서 피난 이후 가족과 함께 가장 행복했던 서귀포 시절의 추억을 담은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

그동안 서귀포는 이중섭을 문화도시의 중점 문화 자산으로 인식하고 이중섭 원화 작품 확보에 주력해 왔다. 그러나 이중섭의 작품은 귀하기도 하지만 작품가 또한 만만치 않아서 미술관 예산으로는 작품 구입에 한계가 있었다. 이번 삼성가의 이중섭 원화 작품 기증으로 이중섭미술관은 관람 서비스 향상뿐만 아니라 이중섭 예술 세계의 교육 범위를 더욱 넓힐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이중섭의 서귀포 관련 작품들을 기증받음으로써 이중섭의 서귀포시대 연구의 기반이 어느 정도 갖추어졌으며, 미술관은 새로운 도약을 위한 마스터플랜을 제시해야 할 시점에 서게 되었다.

이번 기증을 계기로 이중섭미술관은 인근 부지를 활용하여 미술관 시설 확충 계획을 세우고 있다. 또한 지속적으로 이중섭의 대표 작품을 확보하는데 주력하여 2022년 개관 20주년을 21세기 새로운 미술관 탄생의 원년으로 삼아 명실공히 세계적인 작가미술관으로 발돋음할 수 있는 기틀을 다지려고 한다.

이번 기증 작품들은 이중섭미술관에서‘이건희 컬렉션 이중섭 특별전 <70년 만의 서귀포 귀향>’展을 통해 일반에게 공개하여 소중한 문화유산을 국민에게 환원해주신 고인의 고귀한 뜻을 기리고자 한다. 기증 전시는 9월 5일부터 2022년 3월 6일까지 진행된다.

기증 작품 중 대표적인 작품이 <섶섬이 보이는 풍경>이다. 이 작품은 1951년 이중섭이 한국전쟁으로 인해 가족을 데리고 서귀포로 피난 왔을 때 그린 작품이다. 약간 부감법이 적용된 평원시의 구도로 그려진 작품으로, 전체적인 색조를 황톳빛으로 처리하여 전쟁의 참화를 겪었다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평화로운 서귀포 마을의 모습을 담고 있다. 초가집 사이로 눌(낟가리)과 전봇대, 나목을 지나 섶섬으로 시선이 이어져 한가로운 남국의 정취가 느껴지는 그림이다.

<해변의 가족>은 짙은 초록색 바다를 배경으로 새들과 가족이 하나가 되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는 작품으로, 이중섭의 속도감 있는 터치로 인하여 생동감이 넘쳐난다. 사람과 새와 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져 자연과 인간을 대하는 이중섭의 심경이 그대로 투영된 작품이다. 짙은 바다색과 흰 새와 살색의 삼색 대비를 통해 각 화면이 강조되면서 생명의 경쾌함을 더해준다. <아이들과 끈>은 이중섭 그림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아이들의 천진무구한 모습을 그린 것으로, 아이들이 서로 끈과 신체 일부로 연결된 리드미컬한 구조를 통해 아이들 간의 긴밀한 유대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이 그림은 1955년 이중섭이 일본에 있는 아들에게 그려 보낸 것이다.

전은자 큐레이터.

그 밖의 기증 작품들로는 이중섭 가족과 서귀포 시절의 연결고리와도 같은‘게(蟹:깅이)’ 그림이 나오는 <은지화>와 이중섭 작품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1940년대의 <엽서화>가 포함되어 있다. 또 서귀포 바닷가의 추억을 담은 <물고기와 노는 아이들>, 해맑은 아이들과 단란한 가족의 모습을 담은 <비둘기와 아이들>, 1954년 아들에게 그려 보낸 <물고기와 두 어린이>, 그리운 가족과의 재회의 꿈을 실은 <현해탄> 등 이중섭이 가족에게 보내는 사랑의 편지와도 같은 소중한 작품들이다. / 전은자(이중섭미술관 큐레이터)

* 이 글은 월간미술 9월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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