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詩 한 편] (79) 무임승차/ 공란영

나비처럼 내려앉은 나도샤프란 ⓒ김연미
나비처럼 내려앉은 나도샤프란 ⓒ김연미

달리는 화물 트럭에 날개 접은 호랑나비
꽃 찾아 나설 시간 여정 없는 여행길
번데기
탈바꿈하던
다짐 새로 고친다

땅 딛고 서 있지만 어디서 헤어질지
내일을 꿈꾸지만 어디에 다다를지
지구에 
그저 몸 실은
나비 떼다 우리는

- 공란영, <무임승차> 전문-

나비처럼 가벼워야 한다. 어디에 내려 앉아도 발자국 남기지 않고 언제 몸을 일으켜도 가쁜하게 공중으로 날아올라야 한다. 흔적을 남기는 것은 지극히 아마추어적이다. 그러나 우주의 어느 곳, 어느 차원을 헤매다 잠깐 발 붙이고 선 지구. ‘달리는 화물 트럭에 날개 접은 호랑나비’처럼 잠깐 몸을 부려 쉬고 있는 지금, 우리는 너무 많은 흔적을 남기고 있다. 

전 세계 모든 하천이 지금까지 모아놓은 퇴적물보다 인간이 쌓아놓은 퇴적물이 더 많다고 한다. 플라스틱 하나만으로 한반도 일곱 배가 넘는 바다 섬을 만들어 놓기도 했다. 암석에 달라붙거나 모래 등에 달라붙은 플라스틱이 새로운 종류의 암석을 만들었다고도 한다. 이른바 ‘플라스틱괴’다. 공룡이 멸종하고 나서 지구에 살았던 사피엔스라는 종을 확인하기 위해 후대의 누군가는 플라스틱이 나오는 지층의 한 지점을 확인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암석화된 플라스틱괴를 채굴하고 나선 그의 심정이 어떠할까. 

인간이 지구에 발붙인 건 아주 잠깐. 그 아주 잠깐 동안 지구에 낸 발자국의 깊이가 너무 깊다. 그 깊이에 지구의 상처와 병이 덩달아 깊어지고 있다. 그 구렁에 우리 인간도 빠져 목이 잠기다 결국은 영영 지구를 떠나야 할지도 모르겠다. 

‘무임승차’의 성공여부는 흔적을 남기지 말아야 하는 데 있다. 좀 더 가볍게 몸을 움직여야 한다. ‘어디서 헤어질지’, ‘어디에 다다를지’ 아무도 모르는 채로 그저 잠시 ‘지구에’ ‘몸 실’었다면 앉았던 흔적도 남기지 말고 떠나자. 내가 먹다 남긴 음식찌꺼기, 내가 입다 버린 옷가지들, 내가 뱉어버린 말들, 내가 함부로 결정해버린 생각까지 지구의 쓰레기가 되어 떠돌아다니게 하지 말자.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김연미 시인은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리 출신이다. 『연인』으로 등단했고 시집 『바다 쪽으로 피는 꽃』,  『오래된 것들은 골목이 되어갔다』, 산문집 <비오는 날의 오후>를 펴냈다.

젊은시조문학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현재 오랫동안 하던 일을 그만두고 ‘글만 쓰면서 먹고 살수는 없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제주의소리>에서 ‘어리숙한 농부의 농사일기’ 연재를 통해 초보 농부의 일상을 감각적으로 풀어낸 바 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