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239) 대정 망아지 야무지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편집자 글] 

* 몽생이 : 망아지
* 요망지다 : 야무지다

사람은 살고 있는 곳의 영향을 받아 그 기후나 풍토를 닮아 간다. 열대지방 사람들은 더운 곳이라 동작이 느리고 한대지방 사람들은 동작이 빠르다. 기후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생각하는 것이 더디고 활동이 굼뜬 것도 마찬가지다.

제주도에서 서귀포시 ‘대정읍’은 섬의 서쪽 끝에 위치한 곳으로 바람이 제일 세게 불어 거친 곳이다. 8,9월에 불어 닥치는 태풍도 다른 곳에 비해 심해 피해가 우심하다. 이 어려운 재해와 맞닥뜨려 견뎌 오다 보니 이곳에 사는 주민들의 성향이 강인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생활력이 강해진 정도가 아니다. 대대로 기후에 맞서 살아오면서 대정읍의 독특한 ‘풍토성’ 내지 ‘지역성’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고 보게 된다.

야무지고 다부진 사람을 펄펄 날뛰는 망아지에 빗댄 것도 예사롭지 않다. 발랄한 생동감으로 생명력이 넘친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야무지고 다부진 사람을 펄펄 날뛰는 망아지에 빗댄 것도 예사롭지 않다. 발랄한 생동감으로 생명력이 넘친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약하면 힘든 곳에서 살아갈 수 없다. 자연히 그런 물리적인 상황을 이겨 내는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형성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 아닌가. 자연환경과의 싸움에서 견뎌 내는 일종의 내성(耐性)이 생긴 것이다.

몸 어느 부위에 큰 종기가 생기면 병균의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멍을(멍울)’이 생기는 것과 같은 이치다. 종기가 퍼져 아파하다 상처가 아물고 나면 새로 단단한 피부로 덮는다. 생물학에서 ‘재생(再生)’이라고 하는 것인데, 사람도 결코 예외일 수가 없다. 상처가 완전히 아물고 난 상처의 자리엔 다시 종기가 나지 않는다. 이를테면 방어기제가 진을 치고 들어앉아 있는 형국이나 매한가지다.

대정 사람들이 이와 유사한 경우다. ‘요망지다’란 제주 방언은 아무에게나 갖다 붙이는 형용사가 아니다. 대정 사람들이 얼마나 똘똘하고 다부지고 야무졌으면 요망지다고 했겠는가. 그곳 출신들을 대하면 다른 지역사람과는 확연히 다른 면모를 느낄 수 있다. 끊고 맺음이 분명한 데다 의지가 강하고, 똑 부러진 성격을 갖고 있다. 한 번 한다면 흐지부지하지 않고 끝까지 간다.

동서 현상이라 할까. 내가 작년까지 30년을 살았던 조천마을을 떠올리게 된다. 왜 있지 않은가. ‘조천 사름 아자난 딘 풀도 나지 아니헌다’는 말. 일제강점기 때 일제(日製, 일본 제품) 불매운동으로 알려진 곳 아닌가. 사람들이 기질이 강해 까탈스러운 것 같은데 알고 나면 그렇지 않다. 그게 그 마을 사람들의 지역성 특성 같은 것으로 오히려 무얼 확실히 하는 성격이라 결코 나쁘지 않았다.

‘동촌엔 조천, 서촌에 대정’이라 해도 좋을 것 같다. 두 지역 사람들, 참 ‘요망진다.’

‘대정 몽생이 요망진다.’ 야무지고 다부진 사람을 펄펄 날뛰는 망아지에 빗댄 것도 예사롭지 않다. 발랄한 생동감으로 생명력이 넘친다.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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