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홍의 세상 사는 이야기] (82) 다시 오신 메시아를 알아볼 자 누구인가?

<1>

2021년 9월의 어느 날,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 예수가 나타났다. 그의 옷차림 남루했고 얼굴엔 덕지덕지 때가 묻었으며 덥수룩한 수염이 안면을 덮었다. 오래 굶주렸기 때문에 그의 걸음걸이는 비틀거렸고 고사목처럼 곧 쓰러질 것 같았다.

범상치 않은 건 광채나는 그의 눈빛이었다. 형형한 안광은 사람을 압도하는 위엄이 있었으며 그와 눈을 마주친 자들은 얼른 시선을 돌려버렸다.

얼마 후, 그는 도심의 시장통에 들어가 상인들에게 말했다. 
“회개하십시오. 회개한 자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그 분은 우주만물의 창조주요, 참된 주인입니다.”
상인들 중 하나가 의아해서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예수: …예수라고 합니다.
상인1: 예수가 누구요?
예수: 하나님의 아들이지요. 2천 년 전부터 그리스도(구세주)라고도 불렸지요.
상인2: 당신이 예수라고? 미친 놈이 또 하나 나타났군.
예수: 믿지 않을 줄 알았어요. 하지만 나는 예숩니다.
상인3: 진짜 예수라면 증거를 보이시오. 예수는 죽은 사람도 살리고 병자도 많이 고쳤다는데…
상인4: 맞아, 물을 포도주로 바꾸고 떡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로 5천 명을 먹였다고 하더군.
상인5: 과부와 고아와 창녀…약하고 소외되고 가난한 자들의 편의 섰다고 하더구만.
상인1: 나는 아토피(피부병) 환자요. 수십 년 동안 별의별 치료를 받았지만 낫지 않았소. 고쳐 보시오.

<2>

예수가 상인1의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기도를 하자 아토피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상인1이 기뻐 날뛰자 상인들은 예수의 옷자락을 부여잡고 너도나도 자신의 고질병을 고쳐달라고 간청했다.

예수가 몇 사람에게 안수기도를 마쳤을 때, 별안간 애앵~! 경적을 울리며 경찰 백차가 들이닥쳤다. 로마 병정처럼 생긴 경찰관은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며 예수를 우악스럽게 차 안으로 밀어넣었다.

어린 양처럼 순순히 경찰서로 끌려간 예수는 곧 현행범으로 체포되어 수감됐다. 예수에게 씌워진 죄명은 일일이 나열하기가 벅찰 지경이었다.

(1) 유언비어 유포: 선교활동은 성직자(신부, 목사, 승려)나 신도들의 고유한 영역인데 종교와 무관한 자가 괴담을 유포하여 대중을 현혹하고 사회질서를 교란하였음-질서위반행위규제법 17조
(2) 허위사실 공표: 복음과 진리 전파라는 미명 하에 있지도 않고 입증할 수도 없는 천국을 운위하고, 역시 존재증명이 불가능한 신의 아들임을 참칭하는 등 허위사실을 공표하였음-형법 313조
(3) 무면허 의료행위: 의료인(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조산사, 간호사)은 국가시험에 합격한 후, 보건복지부 장관의 면허를 받아야 하는데 면허 없는 자가 의료행위(아토피 치료 등)를 하였음-의료법 27조
(4) 무전취식: 식당에서 음식을 먹고 정당한 이유 없이 제 값을 치르지 아니하였음-경범죄 처벌법 3조
(5) 내란 음모 및 선동: 우주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주장은 우주의 일부인 대한민국의 국체를 부인하는 것으로서, 국헌을 부정할 목적으로 내란을 예비, 음모하고 선동·선전하였음-형법 90조

이밖에도 이현령 비현령의 온갖 죄목을 뒤집어씌우고 옭아맸다. 예수는 골고다 산상에서 당한 수치와 모욕보다 더한 능멸을 견뎌야 했다. 그는 속으로 이럴 바엔 차라리 손발에 대못이 박히고 창으로 옆구리를 찔리는 십자가 형벌이 더 낫지 않겠냐고 생각할 정도였다.

<3>

마침내 예수가 법정에 도착했다.
방청객 대다수는 기독교 신자들과 성직자였다. 무리 중 일부가 예수를 향해 사악한 이단! 가짜 메시아!라고 손가락질 하며 바리새인과 서기관보다 더 격렬하게 예수를 성토했다. 어떤 과격분자는 사탄아, 물라가라!고 외치며 조롱하고 비아냥거렸다.

(A) 검사의 논고: 피고의 비인도적, 반국가적 범죄행위는 명백한 실정법 위반이므로 ‘죄형 법률주의’의 원칙에 따라 위반 사례와 적용 법률의 근거조항을 다음과 같이 명시함
(B) 국선 변호인의 변론: 피고는 향정신성 의약품을 복용한 전력이 있는 심신미약자요, 행려병자이므로 관대한 처분을 바람

논고와 변론이 끝난 후, 유대 총독 빌라도처럼 냉혹한 재판장이 선고를 내리기 전에 피고에게 최후진술의 기회를 부여했다.

<4>

조용히 일어선 예수가 하늘을 우러르며 통곡 같은 기도를 올렸다.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짧지만 애끓는 기도가 법정에 울려퍼지자 장내에 찬 물을 끼얹은 듯 일순간 모두를 침묵시켰고 분노와 증오로 이글거리던 사람들의 가슴에 고요한 파문을 일으켰다. / 장일홍 극작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