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 (30) 제주동초등학교 맞은편 골목 ‘책가방’

마을책방은 단순한 기호품을 파는 곳이 아닙니다. 대형서점처럼 책을 어마어마하게 팔아치우는 곳은 더욱 아닙니다. 후미진 도심 골목이나 시골 언저리에서 마을책방을 만난다면 그것은 행운이지요. 마을 초입 팽나무 아래 마을사람들이 모여들듯 책벌레들이 도란도란 어우러질 수 있는 사랑방 같은 곳입니다. 제주도 마을 곳곳에 작은 책방들이 사람을 살리고, 다시 사람이 마을을 살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마을책방의 가치입니다. [제주의소리] 시민기자인 고봉선 작가가 바람을 쐬듯 책방마실을 다니고 있습니다. 책과 사람이 만나는 곳 ‘마을 책방’에서 책방지기의 책 살림 이야기를 함께 나눕니다. [편집자 글] 

책가방, 생각만 해도 아련하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땐 책가방이라기보다 '책보'였다. 언제부터인가 책가방을 만났다. 처음 만났을 때 잊지 못할 흥분이 있었던 것도 같은데, 그 기억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오간 데 없다.

고교 시절 등교할 때 만원 버스, 책가방이 사람에 걸려 낑낑대던 기억만이 얼굴을 붉어지게 할 뿐이다. 빨리 내리라고 소리 지르던 차장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동초등학교 맞은편 골목에서 김미화 씨가 운영하는 ‘책가방’을 찾았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동초등학교 맞은편 골목으로 조금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책방 ‘책가방’이다. 책방 앞에 있는 자동차는 조카가 어릴 때 갖고 놀던 장난감이다. 이미 작가이자 화가인 책방지기는 버려지는 것들을 리사이클 하여 다시 살려낸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은 작지만, 의식은 크다’

졸업 후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제주 토박이인 김미화 씨는 디자인을 전공했다. 하지만 학습지 교사로 발을 들여놓았고, 나중엔 국어학원을 운영했다. 꿈이 아니라 직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살아온 날을 돌이켜 보면 그렇다. 원하는 직업이 아니라 아무 데나 취직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살았다. 인생 후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글을 쓰게 되었고, 독서지도사란 직업으로 자리도 굳혔다. 

김미화 씨는 학습지 교사로 있을 때 잠재되어 있던 의식이 되살아났다. 이는 국어학원에서 다시 책방으로 이어졌다.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는 게 가장 큰 이유다. 독서는 모든 과목의 기본이다. 최근엔 독서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이가 많아졌지만, 여전히 영어•수학에 밀리는 게 현실이다. 독서는 한두 달에 이뤄지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습관화되어야 한다. 

김미화 씨는 지금 책과 그림에 푹 빠져 있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한 건 아니다. 독서는 우연히, 아니 끌림이었다. 대학 시절 어느 날, 서점 앞을 지나던 그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서점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조신영, 박현찬의 《경청》과 아네스 안의 《프린세스 마법의 주문》 두 권을 골랐다. 그 책을 읽으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했다. 다행이랄까, 그 후 마법에 걸린 것처럼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읽었다. 

디자인을 전공했는데 왜 하필 국어학원이었을까? 읽고 쓰는 게 좋았기 때문이다. 늦기 전에 좋아하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전공을 버리고, 그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학교 다닐 때 책방지기는 그림에 눈이나 뜬 정도였지 잘 그리지는 못했다. 국어학원을 하면서 그는 다시 그림을 시작했다. 자신이 쓴 글에 직접 그림을 그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책을 내고 싶은데 글만 가지고는 안 될 것 같았다. 출판한 책은 없지만, 아직 젊다. 그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그는 지금 출판사에 그림책을 응모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이미 작가가 되어 있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작가 김미화 씨가 계산대 앞에 서 있다. 책방을 찾는 손님은 대부분 관광객으로 하루 한두 명이다. 책만 팔아서는 운영하기가 힘들다. 책 외의 수입을 찾아야 한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제주의소리’에 연재하시는 이문호 교수님의 ‘짧은 글 긴 생각’이란 칼럼 타이틀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비록 서점은 작지만, 작가의 삶에선 한없이 큰 의식을 볼 수 있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선 명망 있고 돈 잘 버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출세하고 성공한 사람이다.

그러나 소신껏 주관을 펼치며 일하는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라는 의식 또한 팽배하다. 물론 나만의 생각이다. 그래도 예전과 달라진 것은 분명하다. 책방은 작지만, 작가 김미화 씨는 큰 사람이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벽에는 작가 김미화 씨가 직접 그린 그림들이 걸려 있다. 모두 판매하는 상품이다. 작가 김미화 씨는 그림을 못 그린다는 콤플렉스에 도전하고 기어이 극복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그림과 글’

그림과 글은 창작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그림은 이미지를 읽어 이야기를 상상하고, 글은 읽으면서 이미지를 그려내는 차이가 있다. 그림 작가이자 글 작가인 김미화 씨는 그림을 그릴 때가 더 행복하다. 둘 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그림은 어릴 때부터 못 그린다는 콤플렉스가 있었다. 그는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정면으로 도전했다.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면서 흥미가 생겼다. 거뜬히 극복했다. 미술을 작업하는 동안엔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그야말로 무아지경의 세계다. 그림이 더 행복한 이유다. 처음엔 학원이며 화실, 평생교육원에서 배웠지만, 나중엔 독학했다. 이제 그는 책방에서 본인의 그림도 판매하고 있다. 

글은 오래전부터 써 왔지만, 때에 따라 다르다. 어떤 때는 잘 쓰는 것 같고, 어떤 때는 방황하기도 한다. 쓰기 싫다가도 마구 쓰고 싶어질 때가 있다. 글을 놓고 싶지 않다. 미술이 도전이라면 그에게 글은 일기이자 삶이다. 

책방에 오는 손님들은 거의 20대 여성이다. 굳이 책을 사지 않더라도 부담 없이 고를 수 있는 소품도 있다. 마치 문구점 같은 분위기다. 작가 김미화 씨에겐 편안함이 있었다. 좁은 공간에 낮은 천장은 작가와 손님을 더 끈끈한 정으로 엮어주는 마법이 있다. 왠지 정이 가는 작가에게 한없는 응원을 보내고 싶었다. 책방은 그의 삶을 파는 곳이다. 

유일하게 기쁘거나 우울할 때 작가는 일기를 쓴다.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을 땐 그림을 그린다. 소재나 장르는 가리지 않는다. 주로 캔버스화나 수채화를 그리지만, 연습 차원에서 소묘도 그린다. 요즘은 의뢰받은 그림이나 작품 전시를 위주로 그린다. 개인 전시도 있지만, 독서대전 때문에 도서관에서 전시하는 것도 있다. 

손님은 아무래도 그림보다는 책을 많이 찾는다. 대부분의 고객인 20대 여성들은 에세이를 선호한다. 하지만 방황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이런 손님들에게 작가는 아마도 자기계발서를 추천하지 않을까? 자기계발서로 책의 재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추천은 없다. 손님들은 작가가 붙여 놓은 포스트잇의 내용을 참고하면서 책을 고르기도 한다.

책방 수입은 임대료도 나오지 않는다. 지금까지는 대출로 운영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다. 그림이라도 잘 팔리고, 출판사에 응모한 그림책도 좋은 결과를 가져다줬으면 좋겠다. 책방에 진열된 책, 늘어놓은 소품 모두 그가 전공했던 디자인의 영향이 크다. 전공인 디자인과 전혀 다른 일을 하는 것 같지만 전공은 살아 있다. 그렇게 알게 모르게 그의 곁을 맴도는 보이지 않는 손이 되어 작가를 키우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림책 응모며 그림, 독서에 빠지게 된 것도 마찬가지다. 애덤 스미스는 시장에서 가격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결정된다고 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시장에만 있는 것일까? 아니다. 우리 삶에도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 삶은 그 보이지 않는 손을 따른다. 그러나 노력하면 얄궂은 운명도 피할 수 있다. 제아무리 좋은 운명도 노력하지 않으면 꽝이다.

나이가 들면서 깨닫는 건 운명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환경이 삶을 지배하는 것도 맞다. 운명론이 정답이라면 이미 환경론은 소용없다. 그러나 환경을 무시할 수 없다. 올곧은 잣대가 필요하다. 돈도 안 되는 거 때려치우라고 염려하는 사람도 내 실패를 책임지지 않는다. 모든 건 때가 있다, 즉 보이지 않는 손의 끌림이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가방’의 마스코트인 책가방이 책방 가운데 걸려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인어가 잠든 집‘

작가 김미화 씨를 가장 많이 생각하게 했던 책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인어가 잠든 집》이다. 추리소설로 유명한 히가시노 게이고는 어느 순간 사건의 해결 과정보다는 질문을 던지는 책을 많이 쓴다. 《인어가 잠든 집》 역시 마찬가지다. 이 책에서 히가시노 게이고는 질문을 던져놓고 생각하게 한다. 

사람이 죽는다는 시점은 언제일까? 물론 호흡이 정지하는 순간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 고민에 빠진다. 뇌사 판정을 받은 주인공이 죽은 것인지 산 것인지에 대한 고민, 생명의 존엄성, 장기기증 등 읽는 내내 고민에 빠진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저 열린 질문을 던질 뿐이다. 

‘어느 날 느닷없이 가족을 덮친 비극, 딸을 지키려는 금단의 선택은 사랑인가 광기인가’ 

책 띠지 앞부분에 있는 내용이다. 507쪽의 분량, 일을 마친 후 이틀 밤을 꼬박 새워 읽었다. 
유럽풍의 저택 앞을 지나던 소고는 담장 안으로 날아간 모자를 찾으러 갔다가 잠자는 소녀를 보았다. 다리가 불편하지는 않지만 걸을 수 없는 아이, 소고는 잠만 자는 소녀의 얼굴을 잊을 수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그 소녀를 생각할 때마다 인어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첨단 IT 회사를 운영하는 가즈마사와 아내 가오루코는 첫딸 미즈호의 입학이 일단락되면 이혼하기로 한 부부이다. 그런데 일이 터졌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미즈호는 수영장에서의 사고로 뇌사 상태가 되었다. 

부모가 장기기증을 허락하면 미즈호는 죽으면서 다른 아이의 생명을 살린다. ‘미즈호라면 어떻게 했을까?’ 엄마는 공원에서의 일화를 떠올렸다. 공원에서 네 잎 클로버를 찾았을 때, 엄마는 행복해진다는 이유로 집에 가져가자고 했다. 그러나 미즈호는 누군가를 위해서 그냥 두겠다고 했다. 자신은 이미 행복하기 때문이다. 이런 미즈호라면? 부부는 장기기증을 결정했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려던 미즈호의 손에서 떨림을 감지한 가오루코는 장기기증을 거부했다. 그리고 남편의 경제적인 지원과 남편 회사의 연구원인 호시노의 도움으로 자기 자극 장치인 코일에 의지하게 된다. 자발적인 호흡은 없지만, 맥박도 혈압도 안정적이다. 육체도 성장한다. 담당 의사는 희망이 없다고 하지만, 가오루코는 온갖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내가 가오루쿠와 같은 상황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객관적으로 보면 간단하다. 하지만 당사자는 다르다. 심장이 뛰는 아이의 장기기증, 누군가에게서 내 아이의 심장이 뛰고 있다고 위안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대로 두었다면 살아날 수 있었잖을까?’ 미련이 괴롭힐지도 모른다. 광기라고 할지언정 가오루코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반대로 심장이식이 필요한 유카라의 이야기도 나온다. 이 또한 히가시노 게이고가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가오루코는 유카라의 수술비 마련을 위한 모금 운동에 동참했다. 그러면서도 3년이 넘도록 미즈호를 보내지 못한다. 엄마이기 때문이다. 예기치 못한 위험이 가득한 세상, 어쩌면 이런 걱정도 부모가 누릴 수 있는 기쁨이다. 눈을 뜨지 않는 자식을 보살피는 것도 부모의 기쁨이 아닐까. 그것이 최선이고, 딸을 사랑하는 방법이다. 논리가 정답은 아니다. 

뇌사를 판단하는 기준도 다르다. 장기기증을 허락해야만 테스트를 거치고 뇌사 판정을 내린다. 허락하지 않으면 뇌사로 보일 뿐 뇌사 판정을 내릴 수 없다. 사망이 아닌 상태에서 장기 적출은 살인이다. 뇌사 판정을 내리고 사망 선고를 해야 이식 수술을 하게 된다. 비록 뇌사라 해도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가오루코에게 딸은 살아 있었다.

어느 날 새벽, 딸의 환영을 본 가오루코는 헤어질 때가 되었음을 직감했다. 그러나 슬프지 않다. 이런 순간이 올 거라고 각오했겠지만 갈등도 컸을 것이다. 기꺼이 장기 이식에 동의했다. 세상엔 미쳐서라도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 아이를 위해 미칠 수 있는 사람은 엄마뿐이다. 사람마다 가오루코의 선택을 달리 받아들이겠지만 잘못된 선택이라고 할 수 없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사람이 죽었다고 말할 수 있을 때는 언제인가?’라는 질문도 던진다. 의사는 뇌사 판정을 내린 날이, 가오루코는 미즈호가 환영으로 인사하고 떠나던 그 날이, 가즈마사는 심장이 멈추었을 때가 사망일이라고 말한다. 가즈마사의 말대로라면 미즈호는 누군가의 몸에서 심장이 뛰고 있다. 그러므로 살아 있다.

프롤로그에서 등장했던 소고는 미즈호의 심장을 이식받은 아이다. 그러나 에필로그에서 소고는 인어를 떠올리게 한 그 아이를 다시 만날 수 없다. 그 아이의 심장을 이식받았다는 사실은 모른다. 그래도 느낄 수는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누군가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을 때 간단한 메시지와 함께 남겨주면 책방지기가 전해주는 릴레이 책 추천도 진행하고 있다. 이는 책방 ‘책가방’만의 독서 비법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잠들기 전엔 지루한 책을’

작가는 눈에 보이는 곳마다 책을 두고 언제 어디서나 읽는다. 제일 집중해서 읽을 때는 자기 전이다. 그런데 자기 전에 책을 읽으면 잠을 설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전엔 소설책을 읽지 않는다. 잠들기 위해 지루한 책을 읽는다. 

편독 경향이 있는 나는 자기 전에 꼭 소설책을 읽는다.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도 그냥 자려면 왠지 억울하다. 그래서 자기 전에 책을 읽는다. 막 몰입되기 시작할 땐 이튿날을 위해 자야 한다며 책을 덮는다. 그러나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잠이 오지 않는다. 다시 일어나 몇 장 넘기다가 다시 눕는다. 그런데 도저히 잘 수 없다. 결국에는 ‘에라 모르겠다, 차라리 읽고 말자.’ 하고서는 일어나 앉는다. 그렇게 읽기 시작하면 아침이다. 알면서도 바보 같은 짓을 반복한다. 

작가는 책을 읽으면 현실적인 것을 잠시 접어둘 수 있어 좋다.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상의 세계를 펼칠 수 있어서 더 좋다. 그는 감정에 몰입하기보다는 ‘드라마 같다, 혹은 영화 같다.’라는 식으로 이미지화하면서 책을 읽는다. 나는 이미지화보다는 공감하면서 읽는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으며 많이 우는 편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에 들어서면 양옆으로 중고 독서실 책상을 활용한 장식이 있다. 이는 모두 작가 김미화 씨가 안 쓰는 물건을 리사이클 한 것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에 들어서면 양옆으로 중고 독서실 책상을 활용한 장식이 있다. 이는 모두 작가 김미화 씨가 안 쓰는 물건을 리사이클 한 것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82년생 김지영’

작가 김미화 씨가 최근 읽으며 울었던 책은 《82년생 김지영》이다. 읽을 때도 눈물이 났지만, 영화를 보면서 더 울었다. 배우의 연기가 감정을 더 풍부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조남주 작가의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은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다룬 작품이다. 지영(정유미)은 3년 전 결혼하고 딸을 낳으며 퇴사했다 세 살 많은 남편 대현(공유)은 IT 계열 중견 기업에 다닌다. 이 책은 작년에 히트 치면서 영화로도 나왔다.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82년생 김지영》도 구매했다. 나는 책을 읽으면 책으로 끝나지 않는다. 영화가 나왔다면 영화를 보고, 다시 그 책 속에서 연계되는 책까지 구매해서 읽는 편이다. 

시간이 없어서 영화부터 보았다. 아닌 게 아니라 나도 많이 울었다. 지영도 그렇지만, 남편 대현이 안절부절못하고 전전긍긍하는 모습, 특히 친정어머니(김미경)가 딸의 빙의된 듯한 모습을 볼 때 그 연기는 눈물이 왈칵왈칵 쏟아졌다. 숨을 쉴 수 없었다.

‘사부인, 쉬게 해 주고 싶으면 집에 좀 보내주세요. 사실 그렇지 않아요. 사부인도 명절에 딸 보니 반가우시죠? 저도 제 딸 보고 싶어요. 딸 오는 시간이면 제 딸도 보내주셔야죠. 시누이 상까지 다 봐주고 보내시니, 우리 지영이는 얼마나 서운하겠어요? 사돈, 저도 제 딸 귀해요.’ 

- 영화 《82년생 김지영》 중에서

설날, 친정어머니를 빙의한 모습은 섬뜩하였다. 아마 대한민국의 며느리들이 마음속에 품었던 마음을 대변하는 게 아닌가도 싶었다. 멘붕에 빠진 시댁 식구들을 보며 한편으로는 통쾌하기도 했다. 

지영의 어릴 적 꿈은 소설가였다. 그런 지영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아내이자 엄마로 살아가는 모습은 행복한 것도 같았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다른 누군가가 되어 빙의한 듯한 말을 뱉어낼 때는 참으로 아팠다. 

작가 김미화 씨는 진열된 책에 일일이 책 내용을 적은 포스트잇을 붙여 놓았다. 손님을 위한 배려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작가 김미화 씨는 진열된 책에 일일이 책 내용을 적은 포스트잇을 붙여 놓았다. 손님을 위한 배려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꿈을 꾸는 자는 다르다’

전공을 살리지 못했어도 작가 김미화 씨는 아쉬운 게 없다. 이미 삶에 디자인을 충분히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 한두 명의 관광객 손님이 전부지만 책방을 포기하고픈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는 지금 다른 곳에서 수입을 마련하려고 애쓴다. 어른 수강생들과 클래스는 물론 아이들 관련 클래스도 준비하고 있다. 피어나고 자리잡히는 건 순간이다. 힘들다고 한탄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긍정적 마인드를 지닌 그에게선 희망이 보였다. 그래서 더 멋있었다. 

자기 뜻을 펼치며 사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작가 나이 올해 서른네 살, 그는 아름다웠다. 내가 그 나이에 그렇게 살았더라면 다른 내가 되지 않았을까? 그 사실이 아프면서도 행복했다. 꿈을 꾸는 자와 꾸지 않는 자는 다르다. 

내가 20대일 때 오빠는 서울에서 Y대 국문학과에 다녔다. 그때 난 오빠에게 자주 편지를 썼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느닷없이 오빠가 내려왔다. 오빠는 나에게 글을 쓰라고 했다.

“너, 참 나쁜 놈이다.”

오빠가 아무렇게나 책상 위에 놓아둔 내 편지를 하숙집에 왔던 친구들이 읽고 한 말이다. 모두 국문학도들이다. 처음에 오빠는 친구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다.

“이런 동생을 놔두고 혼자 서울에 와서 공부하는 너는 참 나쁜 놈이다.”

그들이 하는 말을 듣고 오빠는 머리가 띵하더라고 했다. 오빠는 서둘러 막 비행기를 타고 내려왔다. 그리고는 나에게 글을 쓰라는 것이다. 그것도 운문 말고 산문으로 쓰라고 했다. 

“글을 쓸래, 안 쓸래? 쓰겠다면 올라가서 네가 공부할 수 있도록 책들을 보낼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내 손이 네 따귀를 향해 날아갈 것이다.”

오빠는 말했다. 맞을 수는 없다. 나는 뭣도 모르고 쓰겠다고 했다. 오빠는 올라가는 즉시 소설의 이론 등 많은 책을 보내왔다. 하지만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건 그 후로도 20여 년이 훨씬 지나서였다. 그때 진작 쓸걸.

디자인을 전공한 작가 김미화 씨는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버리지 않는다. 천장의 책 제목들도 태권도장에서 격파하고 난 뒤 버려지는 송판을 이용한 것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디자인을 전공한 작가 김미화 씨는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버리지 않는다. 천장의 책 제목들도 태권도장에서 격파하고 난 뒤 버려지는 송판을 이용한 것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기분 좋은 손님들’

책방엔 기분 좋은 단골이 있다. 물론 동네 손님이다. 왠지 어린이집 선생님처럼 보이는 40대 정도의 그분은 한 달에 한 번 꼭 오신다. 언제나 한결같다. 손님이 친근감을 표시하는 것도 좋지만  한결같은 사람, 무엇이든 꾸준한 게 좋다는 걸 책방지기는 이분을 통해서 알았다. 

또 한 분은 모녀다. 책을 좋아하는 모녀는 이사 와서 근처에 책방이 있으니까 반가웠다고 했다. 골목길에서 만난 책방, 당연할 것이다. 책방에서 아이는 아이 책을, 어머니는 당신의 책을 고른다. 한번은 아이의 학교 숙제  때문에 위인전이 필요했다. 그런데 아이 수준에 맞는 위인전이 없었다. 김미화 씨가 그림책 한 권을 빌려주었다. 모녀는 덕분에 숙제 잘했다고, 책을 돌려줄 땐 커피도 사고 왔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때는 아이들이 좋아서 학원을 시작했던 작가다. 아이들은 체면치레하지 않는다. 이게 또 성인에게는 상처가 되기도 한다. 작가 김미화 씨도 그런 상처로 학원을 접었다. 그런데 다시 아이들이 예뻐 보이기 시작했다. 단골 모녀의 아이가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이다. 이제 아이들 수업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책방 입구엔 무료 나눔 도서가 있다. 난 여기에서 명성황후 상-하를 가져왔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 입구엔 무료 나눔 도서가 있다. 난 여기에서 명성황후 상-하를 가져왔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이 가득한 방, 그리고 에티켓’

학원을 운영할 때, 김미화 씨는 외적인 활동으로 블로그를 운영했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게 무엇일까? 독서였다. 그는 독서와 관련된 것을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다. 그때 블로그 제목이 책가방이다. 책방 이름으로도 괜찮은 것 같았다. 그렇게 책방은 ‘책가방’이란 이름을 얻었다. 풀어 보면 ‘책이 가득한 방’이다.

책방의 중앙 벽에는 마스코트인 책가방이 걸려 있다. 요새는 신상이니 메이커니, 각양각색의 책가방이 마구 쏟아진다. 하지만 내가 어릴 땐 책보였다. 책보를 허리에 매거나 어깨에 비스듬히 걸치기도 했다. 여기서 잊을 수 없는 건 양은도시락이다. 그때 우리는 벤또라고 했다. 반찬은 대부분 마늘장아찌나 콩자반이다. 3.8km의 거리, 보통 한 시간은 걸어야 한다. 집에 돌아올 땐 배가 고파서 우는 아이도 있다. 그러면 남은 반찬이 있다며 도시락 속에서 뒹구는 콩자반이나 마늘장아찌를 꺼내는 아이도 있었다. 도시락 뚜껑 주변엔 잿빛 알루미늄이 겉돌기도 했다. 그래도 지금 생각하면 정겨운 시절이다. 그래서인지 책가방에 가는 길은 설렜다. 

요즘은 에티켓이 많이 정착되었다. 예전처럼 무례하거나 그런 사람은 별로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아직도 에티켓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많다. 이곳은 책을 파는 곳이다. 그런데 이곳을 도서관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상품의 가치를 잃어버릴 때가 있다. 어떤 분들은  들어오자마자 사진 몇 컷 찍고는 그냥 나가기도 한다. 손님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책방지기도 피해자다. 작가는 이런 것들을 조심해 줬으면 하고 넌지시 바란다. 우리 모두 지켜야 할 에티켓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체온계, 손 소독제, 방문일지. 어딜 가나 볼 수 있는 현시대의 코로나 풍경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 책가방은’

허물없는 친구가 필요하신가요? 동초등학교 맞은편 골목 ‘책가방’을 찾아가 보세요. 그림 작가이자 글 작가인 책방지기가 늘어놓은 소품들, 그의 섬세함이 담긴 그림들, 정성껏 책의 내용을 적어서 붙여 놓은 포스트잇이 소개하는 책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편안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찾아가는 길: 제주시 동문로14길 11

문 여는 시간: 13:30~18:30(일요일 휴무)
인스타: bookbagshop
책 문의: lcjkmh0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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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봉선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나 식물과 함께 자랐다. 지금은 허름한 고향 시골집에서 꽃과 함께, 독서지도를 하며 아이들과 지내고 있다. 한국해양아동문화연구소 운영위원, 애월문학회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독립언론 [제주의소리]에서 [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를 통해 격주로 독자들을 만난다. 마을 책방에 깃든 사람과 책 이야기가 소개된다.저서로는 시집 ‘詩를 먹고 자라는 식물원’, 꽃과 함께 사는 이야기 ‘詩가 사는 기행식물원1, 2, 3, 4’, 동화집 ‘지우개’가 있다. 식물원 시리즈로 전자도서관에 식물원을 꾸미는 게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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