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디 골아봅주’ 제주가치-제주의소리 공동기획] 김현지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 공동대표

제주도개발특별법 제정 후 30년, 제주국제자유도시 출범 20년을 맞은 제주. 개발과 성장만을 외치며 달려온 오늘 제주의 모습은 도민이 바라던 행복과 풍요에 얼마나 가까워졌을까. 지난 30년을 냉철하게 평가하고 미래 100년을 향한 진단과 성찰, 그리고 근본적인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자발적이고 다양한 정치참여를 통해 제주다움을 지키고 더 나은 제주를 만들어가려는 시민모임인 '제주가치'와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공동기획으로 마련한 릴레이 칼럼 ‘혼디 골아봅주’(함께 이야기해봅시다)를 매주 싣는다. 제주가 과잉관광과 난개발 위기로부터 탈출, 지속가능한 생태평화 공동체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제주가치 공동대표 8인의 참여로 도민들의 목소리를 전한다. [편집자 글]

숨이 차다. 주변을 살피면 해결해야 할 문제는 너무나도 많고, 이제는 코와 입마저 마스크가 막았다. 코로나로 인해 각국에서 병들고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수치도 믿기 어려운데, 어디는 물난리가 나고, 어디는 불에 타고 있다는 소식이 매일 같이 전해진다. 시베리아를 시작해서 미국과 호주, 유럽까지 전 대륙이 심상치 않다. 요즘은 하루하루가 인류의 미래는 장밋빛이라는 꿈속에서 깨버린, 그래서 허허벌판에 혼자 내동그라진, 몹시도 애처러운 현실이라는 아침을 맞는 기분이다.

얼마 전 아시아기후변화교육센터에서 주관한 <2021 기후위기적응 교육과정>에 참여했다. 교육과정명의 의미를 곱씹을 때 마다 등골이 서늘해진다. 기후위기에 적응하기 위한 교육이라니. 교육과정에 참여한 대부분의 사람들의 연령은 4,50대였지만, 문득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은 필수로 받아야 할 훈련이 아닐까 두려워졌다. 기후위기가 초래하고 있는 산불, 감염병, 식량 위기, 해수면 상승 등의 문제와 더불어 현재보다 미래세대에게는 더욱 암담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가 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는 것이, 올해가 가장 시원한 여름일 것이라는 말에 숨이 갑갑해졌다. 우리가 알던 일상과 세계로의 회복은 ‘불가능’이며, 이제는 적응해야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뜨거운 햇볕에 말라버린 큰 갈파래. 그러나 큰 갈파래는 계속해서 자라나고 있다. 만조 시각, 큰 갈파래가 바다 위에 둥둥 떠다니고 있다.(위) 성산읍 신양리 해변에 띠를 두른 큰갈파래의 모습. 큰갈파래는 끊어진 상태에서도 계속해서 자라난다고 한다. (아래) 사진=김현지.
뜨거운 햇볕에 말라버린 큰 갈파래. 그러나 큰 갈파래는 계속해서 자라나고 있다. 만조 시각, 큰 갈파래가 바다 위에 둥둥 떠다니고 있다.(위) 성산읍 신양리 해변에 띠를 두른 큰갈파래의 모습. 큰갈파래는 끊어진 상태에서도 계속해서 자라난다고 한다. (아래) 사진=김현지.

우리는 티핑포인트(Tipping point, 임계점) 위에 서있는 세대다. 티핑포인트란, 균형을 이루던 것이 깨어지고 급속도로 특정 현상이 퍼지거나 우세하게 되는 것을 일컫는 용어를 말한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 위기로 인해 아름답고 풍요로웠던 제주도 생태계의 균형이 깨져 황폐해져가고 있다. 얼마 전 kbs에서 방영한 <붉은 지구, 침묵의 바다 편>에서 첫 장면으로 신양섭지해변이 나왔다. 나의 고향이기도 하고 현재 내가 살고있는 곳이기도 한 신양리. 아름다운 해변을 품은 마을에서 나고 자란 것이 늘 가슴 속 자랑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내가 늘 목격해온 것은 해변에 등장한 초록색 괴물이었다. 큰갈파래, 그저 끊임없이 밀려들어온다고 생각했던 것이, 알고 보니 이곳을 점령하여 자라나 번식하고 있으며, 그 규모는 1000t을 넘어섰고, 사람이 치울 수 있는 수준(50~100t)을 한참이나 넘어섰다는 충격적인 보도였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해수 온도의 상승으로 인한 것이라면 대책을 마련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기후위기의 징후이자 신호였으며, 사실상 바다 아래는 더욱 심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제주연구소의 통계에 따르면, 최근 35년간 제주도 해역 동계수 수온 변화는 무려 3.6도나 상승했다고 한다. 해수온의 상승과 함께 제주 바다 연안에는 울창했던 숲이 사라지고 바다의 사막화가 빠르게 진행중이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존재했던 해조류 숲들은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으며, 이것을 먹고 사는 어종들도 사라져 어민들에게도 피해가 크다고 한다. 수온이 높아지고 해조류가 사라지면서 해녀들은 ‘바당이 죽었다’고, 성게도, 미역도, 더 이상 자라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 자리를 대신해서 번식하기 시작한 아열대종은 매우 빠른 속도로 제주의 생태계를 변화시키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는 과연 그 변화에 적응할 수 있을까’하는 것이다. 자연이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나가겠지만, 우리는 그 속도에 비해 아무런 준비를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욱 안타까운 일은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여름, 조천리 마을안길을 지나다가 ‘용천수가 말랐다’는 주민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중산간 어느 지역에서 공사를 하면서 문제가 생긴 것 같다는 말에, 민원은 넣어보셨나 물으니 ‘행정에서는 답이 없다’고 한다. 얼마나 하소연 할 곳이 없으면 지나가는 젊은이에게 자신들의 말을 들어달라고 하겠나 싶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사람들이 이야기를 들을 때 마다 심장이 쿵쿵 뛴다. 어디 조천리만의 일인가. 도두, 애월, 한림, 예래, 동복, 선흘, 우도, 하도, 평대, 신도, 성산까지. 제주 곳곳이 현장이다.  

근 10년간 전 세계의 기후위기가 가속화 되고 있을 때, 제주는 국제자유도시를 조성하겠다며 제주 곳곳을 파헤쳐 왔다. ‘청정 제주’, ‘유네스코 3관왕’,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제주’ 등의 간판을 내밀면서 말이다. 이미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는 바다에는 처리 가능한 용량을 넘어섰다며 오폐수를 그대로 흘려보냈고, 숨골을 메우고, 탄소를 흡수하는 숲을 베어 타운 하우스를 건설하고, 더 이상 쓰레기는 매립할 곳이 없어 외국에 불법으로 팔아 넘기기까지 했다. 그 와중에 무슨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이 섬에 두 개의 공항을 짓겠다고 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최근 ‘탐나는가치맵핑’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소멸위기의 처한 제주의 생태와 환경을 둘러보고 있다. 난개발로 인해 생채기 투성이인 현장을 보며 가슴 아파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 잘 견디고 있는 생명들을 만나면 고마운 마음이 드는 요즘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늘 우리를 지키던 주변의 존재들은 사라질 위험에 처하자 그 모습을 드러낸다. ‘맹꽁이’와 ‘철새’, 그리고 ‘제주 고사리삼’까지. 그리고 그들은 아직 지켜내야 할 것이, 지켜낼 수 있는 것들이 있다고 말을 건네 온다. 

우리는 지금 황폐화된 바다, 매립할 곳 없는 쓰레기 문제, 말라가는 지하수 문제, 그리고 기후위기와 코로나 시대에 처한 어느 섬에 살고 있으며, 동시에 ‘맹꽁이‘와 ’철새‘의 존재는 그들이 살만한 건강한 생태계가 아직 우리 곁에 남아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숨이 가쁜 오늘이지만, 우리에게는 미래세대에는 허락되지 않을 ‘선택권’이, 다른 말로 ‘희망’이 남아 있다. 예측 불가능과 혼란의 시대, 우리가 올바른 길로 나아가는 유일한 방법은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과 세계를 똑바로 마주하고 이해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생태계의 보존’이다.

# 김현지

제주동쪽 신문 곱을락 대표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 공동대표
제주생태관광협회 보전국 팀장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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