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풍경 바꾸는 코로나19..."며느리들 살판 났다"는 단편적 시각은 위험

지난해 추석 명절을 앞둬 열린 제주시민속오일장 풍경.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지난해 추석 명절을 앞둬 열린 제주시민속오일장 풍경.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50대 직장인 A씨. 
A씨는 매년 자신의 집에서 추석을 보냈다. 민족대명절 추석이면 사촌들을 비롯한 가까운 친척들이 모두 집에 찾아왔고, 조카 등을 포함하면 수십명이 넘는 인원이 함께했다. 작년 2월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퍼지면서 A씨는 친척들과 제사 명절을 나누어 지내기로 했다. 올해 추석 명절은 각 집안의 대표자 1명씩 총 5명만 모여 단출한 추석을 보내기로 했다. 

“명절이 아니면 친척들 모두가 다함께 모일 기회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코로나19 때문에 부득이 명절 풍경이 바뀌는 것을 거를 수 없네요”

50대 주부 B씨.
며느리로서 명절마다 전을 부치느라 정신이 없던 B씨. 코로나 확산으로 인해 올해 추석은 백신 접종 완료자끼리만 추석을 보내기로 했다. 매년 20여명이 먹을 음식을 하던 B씨는 올해 단 8명만 먹을 음식을 준비할 예정이다. 

“코로나가 끝나도 지금처럼 간소화한 명절을 보낼 것 같아요. 코로나가 많은 것을 바꾸고 있는 것 같아요”

50대 공무원 C씨. 
코로나 확산으로 C씨는 올해 추석을 앞둬 모둠벌초를 다녀와선 녹초가 됐다. 코로나 이전에는 친척들이 모두 모여 모둠벌초를 함께 했지만, 올해는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방역 지침에 따라 8명의 친척만 모여 벌초를 해야 했다. 20여명이 함께 하던 모둠벌초를 단 8명이서 했으니 벌초후 진이 다 빠져나간 기분이란다. 추석 차례에도 C씨는 가족을 대표해 혼자 큰 아버지댁을 찾을 예정이다. 

“모둠벌초는 힘들었지만, 추석명절 전에 벌초를 모두 끝내 마음이 놓입니다. 이미 간소화됐어야 할 명절 문화가 코로나를 ‘핑계’로 간소화되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아내가 제일 좋아합니다. 하하.” 

30대 맞벌이 주부 D씨. 
D씨의 시댁은 그동안에도 가족끼리만 단출한 명절을 보내왔다.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더욱 단출하게 보낼 예정이다. 육지에 살고 있는 아주버님 가족이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제주에 오지 않기로 했다. 올해 D씨는 남편과 만 15개월의 자녀와 함께 시댁에서 추석을 보내려 한다.

“코로나 때문에 어른들께 손주를 자주 보여주지 못해 아쉬워요. 추석에라도 인사드려 손주를 보여드리려고 해요.”  

40대 직장인 E씨. 
매년 추석이 다가오면 E씨는 추석을 앞두고 약 일주일 동안은 내내 외식을 해왔다. 회사와 친구, 친목 모임 등 각종 회식 자리가 끊이질 않아서다. 2년 가까이 이어지는 코로나 시국으로 올해 추석에는 모임이 극히 줄었다. 특히 매년 회사 동료들과 회식자리를 가졌지만, 올해는 '회식'이라는 단어는 금기어가 된 것 같은 분위기가 역력하다. 

“예전에는 회식이 너무 많아 힘들었지만, 코로나 시국이 길어지면서 지금은 가끔 회식이 그리울 때도 있습니다. 하하. 코로나가 사라져도 밤 10시까지는 모든 회식 자리가 끝났으면 합니다. 이런 문화가 자리 잡겠죠?”

50대 공무원 F씨. 
F씨도 E씨와 비슷한 상황이다. 부서에서 선배보다 후배가 많은 F씨는 평소 부서내에서 축하할 일 등이 생겨 회식해야 할 상황이면 회식 일정이나 메뉴를 주도해 정하는 위치다. 의례적으로 추석이나 설 명절 전에 부서 직원끼리 회식했지만, 올해 추석은 코로나19로 인해 회식을 하지 않기로 했다. 

“코로나 덕에 형식적인 회식이 없어져 장점도 있지만, 직원들간 진솔한 소통의 자리도 줄어든 기분이라 한편으론 서운하기도 합니다.”

30대 은행원 G씨. 
큰 집에 어른들만 모여 매년 명절을 보낸 G씨. 어른들만 모여도 10여명이 한 곳에 모였었다. 코로나로 인해 지난해부터 각자 집에서 명절을 보내기로 했고, 올해 추석도 가족끼리만 지내기로 했다. 그래도 어른들께는 명절 연휴에 따로 찾아 봬 인사드릴 예정이다. 

“솔직히 명절은 허례허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또래에는 다들 명절을 간소화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을 뿐이죠. 코로나를 계기로 간소화된 명절 문화가 앞으로도 이어질 것 같습니다. 내 주변인들은 모두 같은 생각입니다.”

40대 맞벌이 주부 H씨. 
매년 추석을 단출하게 치렀던 H씨는 코로나로 인해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 평소라면 명절에 모인 친척들과 다 같이 외식으로 마무리했지만, 지난해부터 코로나로 외식이 힘든 상황이다. 외식 하기가 어려워 다같이 집에서 식사하기로 했다. 8명이 먹을 음식을 조금씩 미리 만들기 시작했다. 

“예전부터 우리 집은 명절 차례는 단출하게 지내고 가까운 친척들과 함께 외식으로 명절을 마무리 했는데, 코로나가 확산되니 이것도 힘들다. 명절에는 최소한 친척들이 다함께 밥한끼는 먹으며 우애를 다져야 한다는 문화가 있어 결국 우리집에서 다 같이 먹을 음식을 새로 만들고 있어요. 사먹다가 직접 하려니 쉽지 않네요.”  

60대 주부 I씨. 
명절 음식을 도맡아 만들던 집안의 맞며느리인 I씨는 이미 10여년 전부터 추석 명절을 간소화해 가족끼리 보내고 있다. 육지에서 일하는 큰 아들에게는 코로나 때문에 제주에 오지 말라고 했다. I씨는 작은 아들과 함께 조용히 추석을 보내기로 했다. 

“얼마전 태풍이 지나갔잖아요. 육지 있는 큰 아들에게 장난 말로 ‘하늘도 너보고 제주에 오지 말라고 태풍을 보냈다’고 말했어요. 큰아들도 명절 핑계로 보고 싶지만 코로나 확산을 막아야 보고 싶은 아들도 오래오래 볼테니 아쉽지만 올해는 오지 말라고 했어요.”

ⓒ제주학아카이브.
#이 사진은 해당 기사와 관련이 없습니다. 50년 전인 1971년 10월3일 당시 제주시 오라동에서 진행된 문중 추석날. ⓒ제주학아카이브.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코로나19로 인해 민족대명절 추석의 풍경이 바뀌고 있다. 명절을 간소화해 치르는 제주도민이 늘고 있다. 관혼상제를 중시해온 우리의 전통 문화와 고정관념을 코로나가 일거에 바꾸고 있다는 말이 실감나는 상황이다. 

그러나 과거에도 전염병을 막기 위한 조상들의 지혜는 있었다. 약 54만점의 민간 기록유산을 보유한 한국학진흥원이 지난해 공개한 조선시대 기록에 눈길을 끄는 자료가 포함됐다. 조선시대에 역병을 막기 위해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는 기록이다.

특히 제주는 섬이라는 특성상 다른 지역과 달리 예로부터 독특하고 더 끈끈한 관혼상제 문화가 자리 잡았다. 가족과 친족을 넘어 궨당(친인척)과 이웃들까지 생노병사와 희노애락이 내재된 관혼상제 의례에 함께했다. 

제주형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올해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22일까지 예정되면서 많은 도민들이 추석 명절을 간소화하고 연휴도 차분히 보내려 하고 있다.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지난해 추석부터 올해 추석까지 해가 바뀌는 동안 코로나 상황 속에 명절을 치루면서 전통적인 명절 풍경이 시대에 맞게 조금씩 바뀌는 모양새다. 

전문가들은 사회학적으로 대가족 중심의 제주의 문화가 핵가족화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들어서 시작됐다고 분석한다. 

제주는 2000년대부터 각종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집성촌을 떠나는 도민들이 늘었고, 자연스레 외부에서 유입된 이주민도 많아졌다. 학업과 취업 등으로 제주를 떠나는 청년들도 끊이질 않고 있다. 이 같은 추세로 제주의 가족 문화도 갈수록 핵가족화되고 있다. 

종종 예기치 않은 ‘변수’가 사회 문화를 바꾸기도 한다. 그동안 대표적인 변수 사례로는 ‘IMF 사태’가 있다. 일각에선 우리나라의 문화가 IMF 사태 이전·이후로 크게 나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코로나19는 우리나라에 국한됐던 90년대 말 ‘IMF 사태’가 아닌, 전 지구촌 사회가 공동 경험하고 있는 ‘인류의 변수’인 셈이다.  

일각에서는 코로나로 간소화되면서 ‘며느리들만 살판났다’고 꼬집지만, 이는 매우 단편적이고 세대간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위험한 시각이다. 

최근 코로나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제주여성가족연구원 정여진 선임연구위원은 사회의 뿌리깊은 고정관념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정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코로나 관련 연구를 진행하면서 기혼 여성을 대상으로 심층면접을 진행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삶이 편해졌다는 응답자와 더 불편해졌다는 응답자의 비율 차이가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코로나로 인해 며느리들이 웃는다는 내용의 기사를 본 어른들이 불편함을 느꼈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세대갈등을 유발했다는 얘기”라며 “애초에 명절에 특정 성별이 힘들다, 편하다는 생각 자체가 뿌리 깊은 고정관념이며,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올 추석 명절이 코로나를 물리치고 국가간, 인종간, 세대간을 비롯한 존재하는 모든 차별과 갈등이 해소되는 그런 넉넉한 계기가 되길 팔월 대보름달에 기원해보는 건 어떨까. 혹시 보름달을 보지 못하더라도 마음속에 떠오른 그 달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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