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어스름이 내리는 삼양 방파제 위에 앉아
저녁 어스름이 내리는 삼양 방파제 위에 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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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詩 한 편] (80) 살아온 날들 쪽으로 술잔이 기울었다/김연미
삼양동 방파제에서 바라본 저녁 어스름 바다. ⓒ김연미
삼양동 방파제에서 바라본 저녁 어스름 바다. ⓒ김연미

석양의 실루엣 속으로 물새가 날아왔다
삼십 년 된 친구와 밤새 나누는 수다처럼
자잘한 물결이 깔린 삼양동 방파제

턱을 괸 저녁 노을 저 먼저 집으로 가고
날개 접은 등 뒤로 오랜만에 별이 뜬다.
스무 살 거기 두고 온 우리들 눈빛 같은,

살아온 날들 쪽으로 술잔이 기울었다
바다와 하늘 사이 수평선 집어등 사이
흐르는 시간의 틈에서 술 한 잔을 나누고

젊음은 어느 별에서 현재형으로 반짝일까
더 깊게 드리워지는 기억의 바다 속으로
잘려진 동영상처럼 별이 내리고 있었다.

-김연미, <살아온 날들 쪽으로 술잔이 기울었다> 전문-

30년도 더 된 친구와 만났다. 저녁 어스름이 내리는 삼양동 방파제에 우리는 취향대로 고른 술병 하나씩을 앞에 놓고 앉았다. 캔맥주 하나, 소주 한 병, 술을 끊었다는 친구는 커피 한 잔을 들고 있었다. 한 송이 꽃에서 피어나 세상을 향해 훌훌 떠났던 민들레 홀씨처럼, 그 홀씨 먼 데서 뿌리를 내리고 새싹을 피우고, 화사하게 꽃을 피워 이제 다시 홀씨처럼 날아갈 자식들을 바라보는 나이. 그 먼 길을 돌아 떠났던 자리에 다시 돌아오면, 우리는 서로 말을 하지 않아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충분히 알 것만 같았다. 

푸릇한 스무 살. 제비꽃처럼 만난 우리였다. 세상의 음과 양에서 우린 햇빛이 비치는 쪽으로 새순을 감아올리며 자랐었다. 태양 쪽으로 난 꿈을 따라, 그 꿈의 줄기를 따라 하루하루의 시간이 아름답게 흘러갔다. 새롭게 눈을 뜨기 시작한 세상의 다른 쪽에 온몸을 불사르다, 지쳐 돌아온 저녁엔 친구들과 나누는 한 잔 술이 달았었다. 

좌절과 슬픔마저도 아름다웠던 시절. 그 시절은 지금 ‘어느 별에서 현재형으로 반짝일까’, 가끔씩 이어지는 우리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과거형 종결어미를 달고 바다 속으로 드리워지고, 술잔은 ‘살아온 날들 쪽으로’만 ‘기울었다’ ‘스무 살 거기 두고 온 우리들 눈빛 같은’ ‘별이’ 뜨고, ‘수평선 집어등’에 켜졌던 불빛도 서쪽 어둠에 점점이 박혀들 때까지도 우리는 방파제 위에서 일어설 줄을 몰랐다. 

추석을 앞둔 이맘 때쯤이면 우린 그렇게 먼 길을 돌아 다시 출발점을 찾아온 친구들을 만나곤 했었다. 해가 갈수록 ‘살아온 날들 쪽으로’만 기울던 술잔이었지만 그렇게 한 잔 술과 한마디 말과, 가끔 부딪쳐보는 눈빛만으로도 충분한 위안이 되던 만남이었다. 그런 만남이 지금 두 해가 가도록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석양의 실루엣 속으로 물새가 날아’들고, ‘자잘한 물결’을 깔며 방파제는 우리들의 자리를 마련해 놓고 있는데, 우리의 만남은 아직 시기상조다. 미래의 어느 시기 우린 또 저녁 어스름이 내리는 삼양 방파제 위에 앉아, 이 깊어가는 ‘역병’의 시기 쪽으로 술잔을 기울일지 모를 일이다.

김연미 시인은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리 출신이다. 『연인』으로 등단했고 시집 『바다 쪽으로 피는 꽃』,  『오래된 것들은 골목이 되어갔다』, 산문집 <비오는 날의 오후>를 펴냈다.

젊은시조문학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현재 오랫동안 하던 일을 그만두고 ‘글만 쓰면서 먹고 살수는 없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제주의소리>에서 ‘어리숙한 농부의 농사일기’ 연재를 통해 초보 농부의 일상을 감각적으로 풀어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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