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르포] ‘물 폭탄’ 쏟아붓고 떠난 제14호 태풍 찬투... 제주 월동작물 아수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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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제주를 강타한 17일 오후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의 한 밭에서 농민이 고무대야를 이용해 물을 퍼내고 있다. 기자가 지켜보기에도 침수된 너른 밭의 빗물을 혼자 퍼내기엔 도무지 역부족이어서 안타까움이 스쳤다.  ⓒ제주의소리

제14호 태풍 찬투(CHANTHU)가 17일 새벽 제주를 강타하면서 도내 곳곳이 물에 잠기는 등 침수 피해가 발생했다. 특히 월동작물 재배 농가들의 피해가 심각해보인다. 

그중에서도 작물을 파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거나 이제야 막 심기 시작한 농지가 물에 잠기면서 많은 농가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농지에 침수된 물이 빠지면 다시 파종하면 되지 않겠냐지만, 파종 시기의 문제, 파종을 한다해도 추석연휴 직후 부족한 일손 문제, 재파종 시기가 겹치면 결국 수확과 출하시기도 겹쳐 농산물 가격 폭락 등의 부작용이 속출한다. 농가의 어려움은 이중삼중이 된다. 

취재기자가 17일 오후 서귀포시 성산읍과 제주시 구좌읍 일대를 취재해 보니 빗물에 잠겨 있는 농지는 여기저기서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농지 전체가 침수되거나 일부라도 물에 잠겨 있는 밭들이 흔하게 눈에 띄었다.

침수 피해가 심각한 것으로 보이는 농지는 밭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물이 가득 들어차거나 심긴 작물의 이파리만 겨우 보이는 수준이었다.

태풍이 제주를 빠져나간 17일 오후 1시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의 한 농지는 밭담이 없었다면 연못으로 생각할 만큼 물이 가득 차 물결이 일렁이기도 했다. 이와 비슷한 상황의 농지는 성산읍 시흥리 등 인근 지역에서도 자주 발견할 수 있었다. 

제주 당근 주 생산지로 알려진 제주시 구좌읍에서는 당근이 물에 잠긴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구좌읍 하도리의 한 밭에서는 농민이 고무대야로 밭에 가득 찬 물을 손수 빼내기도 했다. 

오후 2시께 만난 하도리 농민 한애자(67) 씨는 “기계도 없고 같이 일해줄 사람도 당장 없어 바가지로라도 물을 빼볼까 해서 나왔다”며 “아침 11시부터 바가지로 물을 퍼내고 있는데 참 속상하다”고 토로했다. 기자가 지켜보기에도 혼자 퍼내기엔 도무지 역부족이어서 안타까움이 스쳤다. 

한 씨는 이어 “(당근을)손 본 지 얼마 안 됐는데 이렇게 물에 빠져서 어떻게 하나. 바닷가 쪽 동네도 물에 많이 잠겼던데 오늘 안에 물을 빼야 살아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며 “기계라도 있으면 한 번에 뺄 텐데 답답하다”라고 속상한 심정을 내비쳤다.

한 씨의 당근밭은 약간 기울어진 채로 이뤄져 있었으며 상대적으로 지면이 낮은 쪽에는 이파리까지 물에 잠긴 상태였다. 그는 바가지로 물을 빼다가 고무대야를 가져와 연신 밭에 들어찬 물을 두 손으로 빼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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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잠긴 채 이파리만 겨우 보이는 한 씨의 당근밭.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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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릇푸릇한 이파리들이 흙탕물에 잠겨 있는 서귀포시 성산읍 시흥리 밭. ⓒ제주의소리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는 다른 농민이 양수기를 써서 밭 한가득 들어찬 물을 빼내고 있었다. 태풍 영향이 완전히 사라지기도 전인 오전 10시 20분께부터 나와 물을 빼고 있다는 홍기택(70) 씨는 침수된 이후를 걱정했다.

홍 씨는 “어제부터 비가 갑자기 쏟아지는 통에 밭에 물을 빼주지 않으면 뿌리가 썩는 병에 걸리는 등 당근이 죽을 수 있어서 아침 일찍부터 황급히 나왔다”며 “그때부터 양수기를 돌려 오후 2시까지 작업을 하고 있는데 앞으로 1시간 정도만 더 빼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밭에 있는 당근은 크기가 좀 커서 다행이지 이제야 심어 크기가 작은 것들은 순간 해가 나버리면 흙에 뒤섞여 말라 죽는다”며 “더 큰 문제는 들어찬 물이 뿌리를 흔들었을 경우다. 그때는 당근이 곧게 자라지 않는 등 상품 가치가 떨어져 못 팔 수도 있다”고 염려했다.

제주는 태풍의 간접 영향이 시작된 13일부터 17일 오전 10시까지 한라산 진달래밭 누적 강수량이 약 1271.5mm에 달하는 등 그야말로 ‘물 폭탄’이 쏟아졌다. 

같은 기간 주요지점 누적 강수량은 ▲제주 347.8mm ▲산천단 605.5mm ▲선흘 541mm ▲서귀포 511.1mm ▲성산 328.3mm ▲송당 479.5mm ▲대정 191.5mm ▲한라산남벽 1089.5mm ▲윗세오름 1078.5mm 등이다.

이와 같이 많은 비가 쏟아지면서 토양 유실, 파종시기 지연, 육묘 불량 등 밭작물의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마늘과 양배추, 무 등 월동채소는 물에 잠기면 뿌리가 썩거나 유실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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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후 1시께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의 한 농지는 연못처럼 변해있기도 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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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구좌읍 평대리의 한 농지에 물이 가득 들어차 있다. ⓒ제주의소리

이에 따라 제주도 농업기술원은 17일 태풍 피해에 따른 농작물 사후관리요령을 발표하기도 했다. 

농업기술원에 따르면 △하우스 철골 및 비닐 파손, 하우스 전기고장에 이은 2차 피해 △고접갱신 및 착과량이 많은 노지감귤 가지 부러짐, 역병 △감자·브로콜리·당근·양배추 등 밭작물 유실과 침수에 의한 병해 발생 등이 예상된다.

피해를 최소화 하기 위해서는 △침수 포장의 신속한 물빼기 △병해 예방 약제 살포 △수세 회복을 위한 엽면시비 등이 필요하다. 

시설하우스의 경우 빠르게 물을 빼고 환풍기 등을 이용해 건조하고 적용 약제를 살포하는 등 병해에 대비해야 한다. 감귤원의 경우 부러진 나뭇가지를 잘라내고 잘린 단면에 도포제를 바르는 등 대처해야 한다. 

감자·브로콜리·당근·양배추 등 밭작물, 월동채소는 강한 바람에 의한 뿌리 돌림 증상과 잎·줄기 상처를 통한 병해가 우려되므로 해당 약제 살포를 살포하거나 수세 회복을 위해 요소 또는 4종 복비로 엽면시비 해야 한다.

양창희 감귤기술팀장은 “태풍 통과에 따른 사후관리로 농작물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며 “농작물 관리요령 홍보와 현장 기술지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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