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웅의 지금 제주는] (59) 국토부-정치권, 제주도민 결정 존중해야

중심을 못 잡는 정치권과 막무가내로 나오는 국토부 사이에서 피해를 보는 당사자는 결국 제주도민들이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중심을 못 잡는 정치권과 막무가내로 나오는 국토부 사이에서 피해를 보는 당사자는 결국 제주도민들이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국토교통부가 최근 연구용역 하나를 발주하기 위한 사전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바로 환경부가 반려 결정한 ‘제주 제2공항 건설사업 전략환경영향평가서’에 대해 보완 가능성 검토를 과업으로 하는 용역이다. 전략환경영향평가서의 반려 사유들을 보완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 여부를 연구용역을 통해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용역기간은 착수일로부터 7개월로 잡아 놓았다. 지금껏 유례없는 수상한 용역을 발주해 놓고, 사실상 제2공항 문제는 내년 대선 이후로 미루겠다는 심산이다.

도민의 신뢰 보호 저버린 국토부

지난 7월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에 대한 환경부의 반려 결정 전에 이미 제2공항 건설계획은 사업주체인 국토부에 의해 백지화 선언이 돼야 했었다. 공식적인 도민 의견수렴 절차로 진행된 도민 여론조사에서 제주도민들은 제2공항 반대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는 국토부가 참여한 당·정 협의 결과와 문재인 대통령이 제주도민의 선택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약속에 따른 도민 의견수렴 결과였다.

더욱이 국토부는 도민 여론조사 실시 한 달여 전에 <국토부는 제주도민의 도민 의견수렴 결과를 존중할 계획입니다>라는 제목의 보도설명자료를 내기도 했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2020년 12월 8일 국토부는 제주도 및 도의회와 각각 면담을 추진한 바 있고, 이 자리를 통해 국토부는 제주도와 도의회가 서로 합의하여 여론조사를 실시해 줄 것을 요청한 바 있습니다.”라고 했다. 이어 “추후 제주도에서 공문으로 여론조사 결과를 보내오면 제주도 등 관계기관과의 협의 등을 거쳐 정책결정에 충실히 반영할 계획입니다.”라고 했다. 

이로써 당시 제주도민들은 모두 금번 도민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성산읍을 예정지로 한 제2공항의 운명이 결정될 것으로 신뢰하고, 여론조사에 참여했다. 타 여론조사에 비해 3∼4배 높은 응답률을 보인 것 역시 국토부의 정책결정에 반영될 매우 중요한 여론조사라는 도민의 신뢰에서 나온 결과였다.

그러나 국토부는 도민의 신뢰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말았다. 보도자료를 통해 여론조사 결과를 정책에 반영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약속하고도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오히려 보란 듯이 전략환경영향평가 보완서를 환경부에 제출했다.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하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민의를 배반하고, 기만한 부당한 행정행위가 아닐 수 없다. 

도민에 대한 국토부의 신뢰원칙 훼손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환경부의 전략환경영향평가 반려 이후에도 노형욱 국토부 장관은 기자단과 간담회 자리에서 제2공항 계획의 추진 필요성을 강조하며 논란을 이어나갔다. 그리고는 내년 예산안에 제2공항 예산을 버젓이 반영해 놓았다. 최근 제6차 공항개발종합계획에는 기어이 제2공항 계획을 집어넣어 제2공항 건설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참으로 용납하기 힘든 독선적인 행정의 연속이다.

국토부와 정치권, 도민사회 민의 존중해야

이처럼 제2공항 건설에 대한 국토부의 병적인 집착은 전략환경영향평가서 반려 사유에 대한 보완 가능성을 연구용역을 통해 검토하겠다는 초유의 발상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용역 기간을 대선 결과가 나오는 시점까지로 둬 대선 결과에 따른 정치적 판단도 고려하려는 전략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하다. 지역의 민의는 안중에도 없이 비열한 꼼수만 부리고 있는 셈이다.

도민의 신뢰를 저버린 국토부의 거짓행정과 막무가내식 행보에는 정치권의 책임도 무시할 수가 없다. 알다시피 도민 의견수렴을 거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당·정 협의의 결과였다. 따라서 도민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이후 민주당은 당·정 협의를 통해 도민 의견수렴 결과의 정책반영을 포함한 후속 조치 이행 여부를 확인하고 점검했어야 했다. 그러나 정치권은 아직도 이를 진행하지 않는 가운데 국토부의 일탈은 계속되고 있다.

제2공항 문제에 대한 대선주자들의 무책임한 공약과 발언도 문제다. 민주적 합의 과정을 무력화하고, 민의를 짓밟은 국토부를 성토하기는커녕 오히려 표심만 의식한 발언으로 도민사회의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여권인 민주당 대선후보들은 찬반의 여론을 의식한 듯 명확한 입장을 유보한 채 도민의 의견이 중요하다는 식의 모호한 답변으로 일관한다. 제1야당인 국민의 힘은 한술 더 떠서 도민의 민의는 무시한 채 제2공항 찬성을 당론으로 삼겠다는 발언까지 일삼는다.

중심을 못 잡는 정치권과 막무가내로 나오는 국토부 사이에서 피해를 보는 당사자는 결국 제주도민들이다. 도민 여론조사 결과와 환경부의 전략환경영향평가 반려 결정으로 도민사회의 갈등은 수습 국면으로 접어들어야 했다. 제2공항 문제의 대안 모색과 더 나아가 제주의 지속가능한 미래 방향성까지 담론화하는 기회였다. 제주지역의 민주주의가 한 단계 발전하고, 도민사회의 시민역량이 성숙하는 계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일련의 기회와 경험, 그리고 도민의 결정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 그 발현의 시간이 조금 늦춰지는 것일 뿐이다. 국토부가 아무리 성산 제2공항의 불씨를 살려보려고 해도 대의를 거스를 수는 없다. 이미 제주도민의 뜻은 확인되었다. 최근 몇몇 언론의 여론조사에서도 도민의 제2공항 반대 입장은 재확인되고 있다. 

따라서 국토부는 민의를 배반한 일탈 행위를 멈추고, 즉각 제주도민의 결정을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대선 후보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제주의 환경 가치를 높이고, 지속가능한 제주사회를 위한 길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정책을 내놓기를 바란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민의를 배반한 정책은 국민적 저항이 있을 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이영웅 제주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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