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호의 짧은 글, 긴 생각] 쉰 번째

시간이 지날수록 제주다움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제주출신의 공학자, 이문호 전북대학교 초빙교수가 '제주의소리' 독자들과 만난다. 제주다움과 고향에 대한 성찰까지 필자의 제언을 ‘짧은 글, 긴 생각’ 코너를 통해 만나본다. / 편집자 주

한국에서 미국을 가려면 미국 중부에 있는 교통의 요충지 ‘시카고 오헤어 국제공항’을 거친다. 1984년 여름 포스트닥 연구를 위해 미국 미네소타대학으로 갈 때 시카고에서 미니에폴리스 공항으로 갔다. 그때 흑인 포터가 친절히 대해줘 커피를 한잔 샀는데, 포터는 오헤어 공항의 역사를 이야기 해줬다. 그때 들은 이야기인데, 최근 관련 글을 문후경 선생이 보내왔다. 옛날 생각이 떠올라 여기 옮긴다. 

시카고 오헤어 국제공항 전경. 사진=오헤어 국제공항 누리집.
시카고 오헤어 국제공항 전경. 사진=오헤어 국제공항 누리집.

1. 시카고 ‘오헤어’ 국제공항​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았던 시카고의 마피아 두목, ‘알 카포네’(Alphonse Gabriel Al Capone, 1899~1947). 그는 26세의 젊은 나이에 시카고를 주무대로 하여 밀주 매매, 매춘 그리고 살인을 일삼는 갱단 ‘시카고 아웃핏(Chicago Outfit)’의 두목이 된 후, 미국 서부까지 영향을 미치는 대조직의 보스였다. 그는 '밤의 대통령'이란 별명까지 얻게 된다. 1927년엔 '한 해 총수입이 1억 달러인 세계 최고의 시민'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한 거부가 되었다. 

또한 그 시절 알 카포네는 아인슈타인, 헨리 포드와 함께 시카고의 젊은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하나가 되기까지 했다. 당시 알 카포네는 이지 에디(Easy Eddie)란 애칭으로 불리던 아일랜드 출신의 유능한 변호사를 고용하고 있었는데, 그는 해박한 법률 지식으로 악랄한 범죄자인 알 카포네를 변호해 그가 감옥에 가는 걸 막아주곤 했다. 알 카포네는 그 의리에 보답하고자 에디 변호사에게 큰 돈을 지불했다.

직접적인 수고비뿐만 아니라 사업 배당금 조로 하인까지 딸린 성채 같은 맨션에서 식구 전체가 호의호식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 저택은 시카고의 거리 한 블록을 몽땅 차지할 정도로 컸다. 그런 에디 변호사에게 사랑하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아들이 평생 모든 면에서 최고를 누리며 살 수 있는 경제적 부를 쌓아놓은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양심의 가책과 함께 깊은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아들이 자기처럼 돈의 노예가 되어 악독한 범죄에 연루된 더러운 삶을 살지 않고, 깨끗한 양심으로 행복한 삶을 살도록 일깨워줘야 할, 아버지로서의 무거운 책임감이 강하게 생긴 것이다. 깨끗하고 빛나는 가문의 이름과 모범이 되는 좋은 아버지의 모습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얼마 후, 에디 변호사는 고심 끝에 아주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당국에 알 카포네의 흉악한 범죄 사실을 모조리 고발하고, 여태까지 저지른 자신의 잘못을 자백함으로써 더러운 이름을 깨끗하게 씻어버려야 하겠다는 결단이었다. 사법 당국을 찾아가 알 카포네의 끔찍한 범죄 사실을 낱낱이 폭로했다.

에디 변호사의 증언과 증거 자료 덕분에 사법 당국은 오랜 기간 잡지 못했던 범죄 조직의 두목을 탈세 혐의로 구속할 수 있었다. 시카고는 드디어 알 카포네 일당의 악행에서 벗어나 안전을 되찾게 되었다. 하지만 그 해가 끝나기 전에, 에디 변호사는 시 외곽의 한 외딴 거리에서 온 몸에 총알 세례를 받고 삶을 마감했다. 그는 인생의 가장 큰 대가를 지불하고서야 아들에게 위대한 ‘정의’의 선물을 남길 수 있었다.

당시 사건 현장에서 경찰은 몇 가지 물건을 발견한다. 에디 변호사의 주머니 속에는 묵주와 십자가 등과 함께 잡지에서 오려낸 어떤 시 구절이 있었다.

“인생의 시계는 한 번 밖에 감을 수 없다. 아무에게도 이 시계를 언제 멈추라고 할 능력은 없다. 지금이야말로 당신이 소유한 유일한 시간이다. 살고 사랑하고 힘써 일하라. 인생은 어느덧 끝나 버린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의 믿음은 갈 자리를 잃고 말 것이다.”

2. 부치 오헤어(Butch O’Hare) 중위의 태평양 전쟁

1941년 12월 7일, 일본 해군이 선전포고도 없이 진주만을 기습해 태평양 전쟁이 시작됐다. 부치 오헤어(Butch O’Hare) 중위는 태평양 전쟁 당시 미 해군 전투기 조종사로서, 남태평양의 렉싱턴 항공모함에 배치되어 있었다. 어느 날 그가 속한 비행 중대가 임무 수행 명령을 받았다. 전투기 이륙 직후, 오헤어 중위는 연료 계기판을 보고 정비사가 연료 탱크를 꽉 채우지 않은 것을 알았다. 임무를 마치고 모함으로 돌아올 연료가 충분하지 않아, 오헤어는 이를 편대장에게 보고했고, 결국 오헤어는 항공모함으로 돌아가라는 지시를 받았다.

혼자 모함으로 돌아가고 있던 중 오헤어는 뭔가를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적국인 일본의 대규모 비행편대가 모함을 공격하러 저고도로 날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군 전투기들은 모조리 출격해 남아있는 게 없으니 모함은 거의 무방비 상태였다. 소속 편대에 연락해 돌아가 함대를 구하도록 할 시간도 없었다. 심지어 모함 함대에 위험이 닥치고 있다는 경고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긴박한 상황이었다. 오헤어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 어떻게든 모함 함대로 향하는 일본 비행편대의 기수를 돌리게 하는 것뿐이었다. 그는 주저할 틈도 없이 일본 비행편대를 향해 하강해, 날개에 탑재한 50인치 기관포를 내뿜었다. 기습에 놀란 적기를 한 대씩 차례로 공격했다. 적의 무너진 진형 사이를 누비며 탄알이 다 떨어질 때까지 될 수 있는 한 많은 적기에 총탄을 퍼부었다. 오헤어는 필사적으로 일본 비행편대가 미군 함대에 이르지 못 하도록 모든 방법을 다 동원했다. 마침내 상황이 좋지 않다고 판단한 일본 비행편대는 기수를 돌렸다. 오헤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의 전투기와 함께 항공모함으로 겨우 돌아 올 수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그는 상황을 자세히 보고했다. 오헤어가 탄 비행기에 탑재된 카메라의 필름이 사건의 전모를 구체적으로 밝혀주었다. 오헤어 중위 혼자 모함과 거기에 승선해 있던 장병 2800명을 구해낸 것이다. 적기 9대를 혼자서 물리치고 항모에 착함한 오헤어의 와일드 캣 주위로 온 장병들이 몰려들어 환호했다. 오헤어가 조종했던 전투기는 좌측 날개에 총알 구멍 하나만 있을 뿐, 기체가 멀쩡했던 것이다. 오헤어는 이 공로로 전쟁 영웅으로 인정받아 최고 무공훈장인 의회명예훈장(Congressional medal of honor) 등 여러 개의 훈장을 받고, 중위에서 단숨에 2계급 특진해 소령으로 진급했다.

1945년 6월 22일, 영웅 오헤어 소령을 기리기 위해 새로 건조된 구축함(Gearing-class destroyer)에 USS 오헤어(USS O'Hare) 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덩치가 워낙 커 ‘Butch’ O'Hare 란 별칭으로 불린 이 조종사의 정식 이름은 ‘에드워드 헨리 오헤어(Edward Henry O’Hare, 1914~1943)였다. 오헤어의 고향인 시카고 시민들은 2차 대전의 가장 위대했던 영웅 중 한 명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1949년 9월 19일에, 미국 중서부에서 가장 큰 국제공항인 시카고 오차드 디포트 공항(Orchard Depot Airport)을 '오헤어 국제공항(O'Hare International Airport)'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알카포네 조직의 변호사였던 '이지 에디'의 정식 이름은 에드워드 조셉 오헤어(Edward Joseph O'Hare, 1893~1939)였고, 부치 오헤어 소령은 바로 그가 목숨을 걸고 정의감을 일깨워주려 했던 그의 사랑하는 아들이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 정의를 위해 목숨을 내놓았던 이들 부자(父子)의 삶이 시카고 오헤어공항으로 환생했다.

3. 제주국제공항, ‘김영관공항’은 어떤가

36세 준장 김영관 장군(경기도 김화군 출신, 1961~1963년 현역 준장으로 제12대 제주도지사). ‘제주 사람을 하늘로 받들어’ 물, 불(전기), 교통, 대학을 해결한 사람이 김 지사다. 제주의 물, 5.16도로, 전기를 해결하고 제주대학의 국립대 승격과 감귤 조성 농업을 뿌리 내리게 했다.

김 지사의 3년 간의 지사직 회고록을 보면 제주 사랑이 넘쳐난다. 그의 제주사랑에 감복한 조력자들도 나타났다. 당시 북제주군의 박종실(朴宗實, 1875-1966, 1957년 제주도서관 건립, 전 제주MBC 박태훈 사장 부친)씨, 남제주군의 강성익(康性益, 1890-1968, 11대 제주지사) 사업가가 김 지사를 적극 도왔다. 

김 지사는 제주 근대화의 선구자이다. 그의 이름을 ‘제주 김영관 국제공항’으로 환생시키는 일을 거론할 때가 아닐까. 미국 시카고 오헤어공항에서 보듯.​

# 이문호

이문호 교수는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 출신 전기통신 기술사(1980)로 일본 동경대 전자과(1990), 전남대 전기과(1984)에서 공학박사를 각각 받고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서 포스트닥(1985) 과정을 밟았다. 이후 캐나다 Concordia대학, 호주 울릉공- RMIT대학, 독일 뮌헨,하노버-아흔대학 등에서 연구교수를 지냈다. 1970년대는 제주 남양 MBC 송신소장을 역임했고 1980년부터 전북대 전자공학부 교수,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며 세계최초 Jacket 행렬을 발견했다. 2007년 이달의 과학자상, 과학기술훈장 도약장, 해동 정보통신 학술대상, 한국통신학회, 대한전자공학회 논문상, 2013년 제주-전북도 문화상(학술)을 수상했고 2015년 국가연구개발 100선선정, 2018년 한국공학교육학회 논문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제주문화의 원형(原型)과 정낭(錠木) 관련 이동통신 DNA코드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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