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년 전 뜨거웠던 항쟁을 기억하며 ‘청년 이재수’전
120년 전 뜨거웠던 항쟁을 기억하며 ‘청년 이재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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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미술인협회 10월 2일부터 11월 30일까지 4.3평화기념관서 전시

탐라미술인협회(대표 강문석)는 오는 10월 2일부터 11월 30일까지 제주4.3평화기념관 기획전시실에서 기획전 ‘청년 이재수’를 개최한다.

올해는 신축항쟁 120주년이 되는 해다. 1901년, 신축년 제주 땅에는 봉건의 암흑을 거부하고 교폐의 탄압에 저항하는 창의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탐라 자존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던진 저항이었다. 이 저항의 중심에는 강우백, 오대현, 이재수가 있었다. 이 세 장두를 삼의사라 부른다. 

탐라미술인협회는 “1901년 시작된 신축항쟁은 1919년 조천항쟁으로, 1932년 해녀항쟁으로, 1948년 4월의 항쟁으로, 1987년 군사독재정권과 개발 광풍에 맞선 민주화의 열기와 함성으로 이어져 2021 신축년에 이르고 있다”고 역사성을 부여했다. 

이번 전시는 신축에서 신축으로 이어지는 제주의 역사를 예술가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창작 작업을 통해 대중에게 선보이는 자리다. 1901년 신축항쟁 당시 장두로 나서 목숨을 던졌던 22세 청년 이재수 중심으로 신축항쟁의 의미와 가치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작품들이 펼쳐진다.

출품 작가는 강문석, 강동균, 고경화, 고길천, 고승욱, 고혁진, 김수범, 김영화, 김영훈, 박소연, 서성봉, 양동규, 양미경, 양천우, 오석훈, 오현림, 이경재, 이명복, 이준규, 이종후, 정용성, 정유진, 최소형, 홍덕표 등이다.

전시 서문을 작성한 김동현 문예비평가는 “지금으로부터 120년 전 제주의 땅은 뜨거웠다. 땅과 하늘, 바다의 지혜를 익히며 살아온 제주사람들의 삶에 낯선 폭풍이 불어 닥쳤다. 바다 건너 낯선 얼굴은 권력과 종교, 문명의 이름으로 제주를 옭아매었다. 이백년간의 출륙금지는 효율적인 수탈을 위한 방편이었다”면서 “바다 건너 무사 안녕을 기원했던 신목이 잘려나갈 때 제주 사람의 삶도 함께 무너졌다. 장작과 소금과 화전... 겨우 먹고 사는 삶들에 매겨진 세금은 무거웠다. 살아야 해서, 살아내야 해서 일어났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백 스무 해가 지나도 그 해 뜨거웠던 심장은 제주 땅에 여전하다. 한라산 자락자락 인기척도 없이 놀라 나는 새들은 알고 있으리. 스물 둘 뜨거운 심장의 고동을. 바람 없어도 지치지 않는 파도는 알고 있으리. 화산처럼 타올랐던 그해 스물의 가슴을. 하여 우리는 기억한다. 영원의 기억으로 남을 그날의 함성을. 찬란한 봄꽃으로 다시 피어날 그날의 횃불을”이라고 밝혔다.

'청년 이재수' 전은 탐라미술인협회에서 주최하고 제주4.3평화재단, 제주문화예술재단, 신축항쟁120주년기념사업회가 후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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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인 2021-09-30 22:54:53
한편 프랑스 정부는 한국 정부에 천주교도 피해에 대한 배상금 5,160원을 요구하였고 이 배상금은 3년 뒤인 광무 8년(1904년) 6월, 제주 삼읍에서 6,315원(이자 포함)을 거두어 모두 갚을 수 있었다.
- 이와같은 수탈을 자행한 제국주의 외세 프랑스와 그 제주민 수탈에 압장선 제주 천주교가 대외적으로는 사죄한다 하면서 거꾸로 희생양인 양 역사를 왜곡하여
'신축교난'이니 '황사평 순교성지' 지껄이며 진정한 사죄없이 또다른 120주년 기념사업을 진행하는 작태를 규탄하며 1902년 수탈의 압잡이로 온 프랑스 타케신부를 미화하는 일 또한 규탄하며 진정한 제주의 후손이라면 이제라도 힘을 합쳐 피폐해진 제주도민 가가호호로부터 프랑스에 수탈당한 1904년 당시 거금 6,315원 반환을 요구해야 한다!!!
211.***.***.1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