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홍의 세상 사는 이야기] (83) 보수와 진보는 이란성 쌍둥이다

1. 

코로나 바이러스의 집단 감염으로 온 나라가 야단법석인데 대장동 의혹으로 벌집을 쑤신 듯 시끄럽다. 역병보다 더 심각한 건 확증편향의 집단 감염이다. 여기에 더해서 아노미 상태에 빠진 무규범의 집단감염이 치명적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일시적인 격정이나 열정에 휘말리는 파토스만 있지 사회 집단의 도덕적인 기풍을 뜻하는 에토스가 사라졌다. 과거에는 만인 공통의 가치관이나 도덕 기준,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규범이 있어서 대다수 시민이 이에 동의했다.

그런데 지금은 자칭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적 편견에 사로잡힌 자들이 자신만이 선이고 정의라고 외치며 사사건건 맞선다. 진영논리라는 해괴한 발상으로 자기편이면 무조건 감싸고 상대편은 덮어놓고 비판하고 비난한다.

가짜 진보와 사이비 보수가 난무하면서 사회를 분열시키고 나라를 망치고 있다. 이들은 루쉰의 소설 ‘아큐정전’의 주인공 아큐처럼 인지부조화와 정신승리에 취해서 ‘비키니섬의 거북이’ 같이 방향 감각을 상실한 지 오래다.

진보와 보수는 새의 양 날개요, 수레의 두 바퀴와 같다. 한 사회와 국가가 제대로 굴러가려면 양 날개, 두 바퀴가 다 필요하다. 말하자면 진보와 보수는 한 배를 탄 운명공동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쌍방은 사생결단하듯 피 튀기며 싸운다. 과연 누구를 위한 싸움인가?

사진=픽사베이.
온건하고 합리적인 진보로 개혁적이고 생산적인 보수로 거듭날 때 이 나라의 장래는 밝아진다. 사진=픽사베이.

2.

마틴 루터 킹 목사의 ‘I have a dream(나에겐 꿈이 있습니다)’은 백인 소년과 흑인 소녀가 손을 맞잡고 걸어가는 행복한 화해를 꿈꾸고 있다. 흑백의 인종 갈등이 아니고 종교 갈등도 아닌 한국의 보수와 진보가 화해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2022년 대선에선 먼저 화해를 제의하는 국민통합형 후보가 승리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요구는 공염불에 불과하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여야 정치권의 상대에 대한 불신과 증오는 최고조에 이르렀고 ‘너 죽고, 나 살자’는 이판사판의 막다른 벼랑 끝에 서 있는 형국이다.

현실이 난마처럼 얽히고 해결책이 없을 때는 언제나 원점으로,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곳에 해결의 실마리가 있다.

‘보수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드먼드 버크는 “보수란 수구나 반동이 아니라 전통과 질서를 존중하며 점진적 개혁을 모색하는 것”이라고 했다. 보수가 점진 개혁이면 진보는 급진 개혁을 원한다.

보수는 성장·자유·시장을 중시하고 진보는 분배·평등·복지를 중시한다. 결국 보수와 진보는 개혁의 속도와 방향(내용)을 두고 갈라지는 것일 뿐, 한 배에서 태어난 이란성 쌍생아이다.

보수는 보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보수의 라틴어 어원은 ‘지킨다’이다) 끊임없이 진보해야 한다. 반면에 진보는 보수에 맞서기 위해 부단히 보수(補修)해야 한다.

3. 
필자가 보기에 한국의 진보와 보수가 사는 길은 서로 박 터지게 싸우다 죽는 것이다. 기독교가 세계적 종교가 된 가장 획기적인 사건은 예수의 부활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예수의 승천으로 이 종교 드라마가 막을 내렸다면, 부활이라는 장엄한 스펙터클과 화려한 미장센이 없었다면 오늘의 기독교는 존재하지 않았을 거다.

로마 원형 경기장에서 사자의 아가리 속으로 들어가면서도 기독교 신자들이 찬송가를 부를 수 있었던 것은 부활의 희망이 죽음의 공포를 이기게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활은 죽음을 전제로 한다. ‘죽어야 산다’는 건 이런 뜻이다. 보수와 진보의 장례식 후에 부활이 찾아오고, 그제서야 양측은 우리가 ‘공생공사(共生共死)’의 끈적한 관계에 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될 거다.

아이젠하워는 “길 가운데가 아닌 양 옆, 극우와 극좌는 시궁창일 뿐이다”고 하면서 양 극단을 경계했다. 이 땅의 극우·극좌 모험주의자들이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결론적으로 국민들이 바라는 건 진보와 보수가 평화롭게 공존하면서 선의의 경쟁을 하라는 것이다. 따라서 양자는 투쟁 일변도의 시대 착오적 행태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 환골탈태해야 한다.

온건하고 합리적인 진보로 개혁적이고 생산적인 보수로 거듭날 때 이 나라의 장래는 밝아진다.

정말로 그런 날이 오긴 올까…? / 장일홍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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