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원의 영어어휘 톡톡 talk-talk] (86) 이 가을에 ‘문명’을 말하다

civilization [sìvǝlizéiʃən] n. 문명(文明)
이 고슬에 ‘문명’을 곧다
(이 가을에 ‘문명’을 말하다)

civilization에서의 civil은 기본적으로 “시민(市民)의/공민(公民)의”를 뜻한다. 이 civil이란 어근(語根)에서 나온 낱말로는 civilize “문명화하다”, civilian “일반 국민”, civility “정중/공손” 등이 있다. civilization의 어원적 의미는 “문명화된 상태에 이른 인간 사회(a particular human society in a civilized condition)”이다. 흔히들 ‘문화(culture)’와 ‘문명’을 혼동하기도 한다. 하지만 문화(culture)는 살아가는 삶 자체를 의미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반대적 개념이 없지만, 문명은 문명화가 이루어지기 이전인 미개나 야만(barbarism)이 그 반대적 개념이 된다는 점에서 분명히 구별된다고 볼 수 있다.

아시다시피, 서양문명(Western civilization)의 원류(headstream)인 그리스·로마문명은 처음 형성될 때부터 바다에 가까운 구릉지(hill land)를 자연적 배경으로 삼았다. 그런 까닭에 농업(agriculture)으로는 자급자족(self-sufficiency)이 될 수 없었고, 상업(commerce)과 수공업(manual industry) 중심으로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상업과 더불어 일찍부터 항해술(navigation)이 발달하면서 해외식민지(overseas colonies) 개척을 활발히 추구하게 되는데, 서양에서 유달리 모험정신(spirit of adventure)과 개척정신(the pioneer spirit)을 중시하는 것도 바로 이런 분위기에서 나온 것이다.

반면, 평야지대(wide plains)에서 농경을 주요 산업으로 하여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한 자연환경 속에서 자라난 중국문명은 자연의 변화에 순응(adaptation)하고 어우러지는 것을 중시하였다. 이런 상반된 환경적 분위기(environmental atmosphere) 속에서 서양문명은 바깥 세계로 에너지를 발산하는 발산형(divergence type)으로, 중국문명은 안으로 차분하게 침잠하는 수렴형(convergence type)으로 형성되어 나갔던 것이다. 그러다가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마침내 이 발산형 서양문명과 수렴형 중국문명이 전면적으로 충돌(clash)하게 되는데, 그게 바로 ‘역사상 가장 부도덕한(immoral) 전쟁’이라 불리는 아편전쟁(Opium War)이었다.

아편전쟁에서의 승리를 필두로 하여 발산형 문명이 수렴형 문명을 잠재우는 결정적 무기(weapon)는 자본주의(capitalism)였다. 자본주의는 처음 형성될 때부터 강력한 팽창력(expensive power)으로 주변을 초토화시키면서 성장했다. 자본주의는 처음에 섬유산업(textile industry)을 위주로 발전을 했는데, 섬유산업을 위해 주변의 목장이나 농장들을 사들여 면화밭(cotton field)으로 만들었고 거기서 쫓겨난 농민들을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도시빈민(the urban poor)으로 전락시킨다. 

문제는, 처음에는 인간이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자본을 형성했지만 나중에는 그렇게 형성된 자본이 스스로 관성(inertia)의 힘을 지니면서 인간을 지배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자본주의 팽창의 논리가 작용하는데, 자본주의는 수축(contraction)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계속 몸을 부풀려야만 한다는 것이다. 비만아(obese child)가 자신의 비대해진 몸집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더 많이 먹어야 하듯이, 자본주의 또한 비대해진 몸집을 유지하기 위해서 끝없이 시장을 개척하고 소비(consumption)를 창출(creation)해야만 하며 그렇지 못하면 쓰러진다는 것이다.

기후위기(climate change)나 코로나 재난 등을 통해서 보고 있듯이, 앞으로도 계속 팽창과 발산만을 추구한다면 인류 문명 전체가 심각한 위기에 처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사진=픽사베이.
기후위기(climate change)나 코로나 재난 등을 통해서 보고 있듯이, 앞으로도 계속 팽창과 발산만을 추구한다면 인류 문명 전체가 심각한 위기에 처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사진=픽사베이.

사실, 농업과 목축(livestock farming)을 통해 문명이 움트기 시작한 이래 인류는 끝없이 팽창을 추구해왔다. 문명의 역사는 자연에 대하여 인간의 영역(human territory)을 확장하는 역사였다. 문명권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어떤 문명이든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경작지(arable land)와 목초지(grass land)를 확대하면서 도시라는 문명의 공간을 확충해왔다. 그것은 중국문명권에서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이렇게 인간 문명의 영역이 점차 확대될수록 자연은 거꾸로 점차 파괴(destruction)되어갔던 것이다.

하지만 농경문명(agrarian civilization) 1만 년 동안은 인간의 영역이 아무리 확대되었다고 해도 자연계의 균형(the balance of nature)을 깨트리는 상태까지 나아가지는 않았다. 그러나 산업혁명(Industrial Revolution)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시작된 발산형 서구문명의 자본주의는 불과 2백 년 남짓한 짧은 기간 동안에 수백만 년 동안 인류가 써온 자원보다 수백 수천 배나 더 많은 자원을 사용했으며 치명적인(lethal) 오염물질(pollutant)로 지구의 자연을 지속불가능할(unsustainable) 정도의 심각한 수준으로 망쳐놓았고 우리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그런데도 자본주의는 여전히 배고프다고 하면서 팽창만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지구문명의 가을(fall of civilizations)을 목도하고 있다. 기후위기(climate change)나 코로나 재난 등을 통해서 보고 있듯이, 앞으로도 계속 팽창과 발산만을 추구한다면 인류 문명 전체가 심각한 위기에 처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 문명의 가을에서, 슈펭글러(1880-1936)의 말처럼 지구문명도 다른 유기체(organism)처럼 때가 되면 소멸하게 될지, 토인비(1889-1975)의 말처럼 도전(challenge)에 대한 응전(response)을 잘하여 다시 봄을 맞이하게 될지는 인류의 각성(awakening)에 달려 있다. 들떠 있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우리가 타고 있는 문명의 열차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직시(face up to)해야만 한다. 그저 막연한 환상 속에서 장밋빛 미래(rosy future)가 있을 것이라는 불확실한 상상(uncertain imagination)을 거두고 세계의 문명이, 한국의 문명과 제주의 문명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깊은 통찰(profound insight)이 있어야만 할 것이다.

* ‘김재원의 영어어휘 톡톡 talk-talk’ 코너는 제주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영과에 재직 중인 김재원 교수가 시사성 있는 키워드 ‘영어어휘’를 통해 그 안에 담긴 어원적 의미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링 해설 코너입니다. 제주 태생인 그가 ‘한줄 제주어’로 키워드 영어어휘를 소개하는 것도 이 코너를 즐기는 백미입니다.

# 김재원

제주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영과 교수(現)

언론중재위원회 위원(前)

미래영어영문학회 회장(前)

제주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장(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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