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김창열 화백은 물방울만을 그렸을까?
왜 김창열 화백은 물방울만을 그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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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호의 짧은 글, 긴 생각] 쉰 한 번째
시간이 지날수록 제주다움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제주출신의 공학자, 이문호 전북대학교 초빙교수가 '제주의소리' 독자들과 만난다. 제주다움과 고향에 대한 성찰까지 필자의 제언을 ‘짧은 글, 긴 생각’ 코너를 통해 만나본다. / 편집자 주

神의 물방울 이야기

19세기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종교학 과목 시험 시간에 출제된 주관식 문제는 “물을 포도주로 바꾼 예수에 대해 논하라”였다. 시험 시작 종이 울리자 일제히 답안지에 펜촉 닿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렸지만, 유독 한 학생 만은 멍하니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감독관이 다가가 주의를 주었지만, 학생은 시험에 하나도 관심 없어 보였다. 시험 종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학생의 멍 때리기는 계속 됐다. 그러자, 화가 난 감독 교수가 다가가 백지 제출은 당연히 영점 처리되고 학사 경고의 대상이 될 수 있으니, 뭐든 써 넣어야 한다고 최후통첩 했다. 이 말에 딴청을 피우던 학생의 시선이 돌연 시험지를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정말 단 한 줄만 써 놓고, 고사장을 유유히 빠져 나갔다. 하지만, 달랑 한 줄 답안지는 이 대학 신학과 창립 이후 전설이 된 만점 답안지! 그 학생의 이름은 영국의 3대 낭만파 시인 중 한 사람인 ‘조지 고든 바이런’이다. 대학의 모든 신학 교수들을 감동시켜 올 하트를 받은 ‘바이런’의 촌철살인 답안은 이랬다.

“물이 그 주인을 만나니, 얼굴을 붉히더라.”

지난 여름, 고향인 서광 옆 마을인 한경면 저지리에 있는 김창열 화백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물방울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리스인들은 우주를 구성하는 4대 원소가 물, 불, 공기, 흙이라고 했다. 김 화백은 세상의 근원인 물을 통찰한 것이다. 사람은 70%가 물이고, 물은 항상 높은데서 낮은 데로 흐르면서 모든 것을 다 품고 간다. 수소와 산소 원자가 합해지면 물 분자와 전기에너지가 나오는 환경오염이 없는 수소 차(車)가 된다. 물은 표면장력(表面張力)이 클 경우, 응집력(凝集力)이 커져 구(球) 형태의 물방울이 된다. 물방울을 닮으려는 김창열(1929~2021), 사물이 전체인 물을 본 것이 아니라 물의 원소(元素)인 방울이 특징을 봤다. 그 물방울이 지난 3월 5일 떨어졌다. 향년 92세.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세상의 근본인 물, 공기, 불, 흙, 그 근본 중 물방울을 화두(畵頭)로 평생을 그리고 간 김창열 화백은 저 세상에서 ‘수소 전기 차와 물방울’을 그리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김 화백은 1929년 평안남도 맹산에서 태어나 서울대, 뉴욕 아트 스튜던트 리그, 파리국립미술학교를 거치면서 미술을 공부했다. 1972년부터 물방울을 소재로 다루면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다. 한국전쟁 당시 1952년부터 1년 6개월간 제주에서 피난 생활을 가졌다. 그리고 긴 시간이 흘러 2016년 9월 한경면 저지리에 이름을 내건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이 개관했다. 노벨상 수상자가 그러하듯 하나의 주제를 걸고 일생을 매달리는 것은 종교가, 과학자나 예술가도 마찬가지, 그 물방울 속에서 세상을 보았다.

물방울이 모인 것이 강, 그 강을 막은 것이 저수지와 댐, 한라산에 떨어지는 빗물 방울도 현무암 송이를 거처 19년 후에 한라산 속 큰 컵에 모아진다. 그 물을 우리가 마신다. 가뭄이 장기간 들면 농작물 피해는 물론 생체 자체가 위험이 온다. 그가 물방울을 그리게 된 동기는 우연이었다. 파리 근교 마구간을 작업실이자 숙소로 쓰던 고인은 1970년 평생의 반려자가 된 부인 마르틴 질롱 씨를 만났다. 그의 평생 화업(畫業)에 주축이 된 ‘물방울’이 탄생한 때도 이즈음이다. 1972년 마구간에서 물을 뿌려둔 캔버스가 계기다. 가난했던 화가는 말라붙은 유화 물감을 떼어내 재활용할 요량이었다. 다음 날 아침, 그의 눈에 들어온 건 유화 물감이 아닌 영롱하게 빛나는 물방울이었다. 바로 우연한 발견(Serendipity)이 평생이 업(業)이 되었다. 고인을 대표하는 작업인 ‘물방울 회화’는 그해 파리에서 열린 ‘살롱 드 메’에서 처음 선보였다. 이후 본격적으로 유럽 화단에 데뷔하면서 출품한 ‘밤의 행사’를 시작으로 물방울 소재 작품 활동을 50년 가까이 이어왔다. 고인의 작품은 미술품 경매나 아트페어 등에서도 높은 가격에 거래됐다. 최고가 작품은 1973년 마포에 그린 유화 ‘물방울’로 2016년 케이 옥션 홍콩경매에서 5억1282만원에 낙찰됐다.

최근 물의 응용은 수소차다. 연료전지(FuelCell) 기술은 1839년 영국의 물리학자 ‘William Grove(1811-1896)’에 의해 우연히 발견, 미 항공우주국(NASA)이 위성 통신의 전력 및 물 공급 장치로 1960년대부터 사용하고 있다. 연료 전지는 연료가 가진 화학 에너지를 화학 반응에 의해 직접 전기 에너지로 바꾸는 에너지 전환 장치다. 물을 전기 분해하면 수소와 산소가 생긴다. 이 역반응(逆反應, Reverse Respose)을 이용해서 수소와 산소로부터 물과 전기를 만드는 것이 수소 전지의 원리다. 가장 큰 장점은 높은 에너지 변환 효율과 환경 친화성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13년 현대자동차가 양산형 수소차를, 2003년 미국의 엘론 머스크(Elon Musk)가 만든 테슬라의 전기차가 선두를 달리고 있다. 

우연히 발견된 김창열 화백의 물방울, Grove의 우연한 발견 수소 연료 전지, 청정 제주에서 친환경 수소 전기차. 제주가 이산화탄소가 없는 섬으로 친환경의 수소차의 테스트 베드(전기차 엑스포개최지)인 이유다. 세상의 근본인 물, 공기, 불, 흙, 그 근본 중 물방울을 화두(畵頭)로 평생을 그리고 간 김 화백은 저 세상에서 ‘수소 전기차와 물방울’을 그리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 이문호

이문호 교수는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 출신 전기통신 기술사(1980)로 일본 동경대 전자과(1990), 전남대 전기과(1984)에서 공학박사를 각각 받고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서 포스트닥(1985) 과정을 밟았다. 이후 캐나다 Concordia대학, 호주 울릉공- RMIT대학, 독일 뮌헨,하노버-아흔대학 등에서 연구교수를 지냈다. 1970년대는 제주 남양 MBC 송신소장을 역임했고 1980년부터 전북대 전자공학부 교수,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며 세계최초 Jacket 행렬을 발견했다. 2007년 이달의 과학자상, 과학기술훈장 도약장, 해동 정보통신 학술대상, 한국통신학회, 대한전자공학회 논문상, 2013년 제주-전북도 문화상(학술)을 수상했고 2015년 국가연구개발 100선선정, 2018년 한국공학교육학회 논문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제주문화의 원형(原型)과 정낭(錠木) 관련 이동통신 DNA코드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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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희 2021-10-08 08:13:32
글이 조용하고 옛날 벽계수가 일구는 글월 같아요
여우가 죽어도 머리는 언덕의 고향쪽으로 두고 죽는 다는 말처럼 근본을 지향하는 것 같습니다.
지는 해가 어두울 지라도 어둠속에서 여명이 필것을 기약해 봅니다
112.***.***.6

유만형 2021-10-07 20:37:16
@ 물방울 떨어지는 낙수물 소리가 들리는 기분이다. 처마 밑에서 한두방울씩, 장마비가 퍼불때는 폭포수처럼 쏫아져 땅을 푹파놓는다. 처마는 영롱한 물방울을 은구슬 처럼 달고 중력의 무게에 못이겨 멋지게 낙하한다. 못내 공기가 그리워 땅바닥에서 다시 튕겨 올라 떨어지며 산산히 사라진다. 아마 공기와 물이 서로 사이좋게 스킨쉽하는 일련의 과정이 자연스럽고 과학적이다. 산소와 수소의 분자량이 모여 물이되는 원리가 마냥 신비롭다. 모든 우주의 이치가 이렇게 과학원리로 똘똘뭉쳐 있나 보다. 위대한 물망울 예술의 거장 김창렬 화백 정보 훌륭하다. 저마다 평생 심취할 꺼리를 만들어 긴시간을 짧게 보낼 방편을 생각해봐야한다. 우연이 필연이 되는 기회를 찾으려 비누방울 허공에 불며 여기저기 뛰어보자
221.***.***.68

권기열 2021-10-07 19:02:55
영국의 3대 낭만파 시인중 하나인 ,조지 고든 바이런, 의 ,물이 그 주인을 만나니, 얼굴을 붉히더라, 라는 촌철살인 답안을 보고 시사하는 바가 크다. 누구나 특기 하나는 갖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218.***.***.157

김낙훈 2021-10-07 17:56:33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있는 속담이나 사자성어 또는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의 차이만 있을 뿐, 수 백마디의 말 보다 촌철살인 “물이 그 주인을 만나니, 얼굴을 붉히더라.” 처럼 스스로 삶을 자각할 수 있도록 깨우쳐주시는 글에 감사 드리며 자연현상을 공학과 융합하여 인류에 이로운 수소 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비전의 예시가 현실에 와 닿습니다.
14.***.***.127

돌고돌아 2021-10-07 16:24:59
물방울의 아룸다움에 반하여 그 아름다움을 그려보려 했건만
그 영롱함에 빠져 한평생을 그려도 다 못그리시고 세상을 등지시다.
그가 하루 하루 어쩌면 남이 보기에는 똑같은 것을 계속 그려갈 수 있었던 것은
그릴때마다 새롭게 느끼는 아륾다움이 주는 즐거움일지라...
물방울을 평생의 화두로 삼았던 김창렬화백님처럼
나도 머릿속에 나만의 화두를 되새기며 오늘도 한발 내일도 한발 ~ 앞으로를 외치며 인생의 발길을 즐겁게 내딛는다.
125.***.***.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