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현장] 세계유산축전 코로나19로 비대면 전환...경이로운 1만년, 길이 4481m 동굴의 위용   

경이롭고 신비롭다. 그리고 장엄하다. 이처럼 위대한 자연의 위용을 카메라와 펜으로 담기엔 도무지 역부족이다. 굽이굽이 미로처럼 이어진 ‘제주 선흘리 벵뒤굴’은 1만년이란 나이테를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약 1만 년 전, 제주 거문오름에서는 수차례에 걸쳐 용암이 분출됐다. 흘러나온 용암은 지표를 따라 14km 떨어진 해안까지 흘러들어갔고, 용암을 따라 형성된 동굴 경관을 현대인들은 ‘거문오름용암동굴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거문오름용암동굴계 가운데 ‘제주 선흘리 벵뒤굴’은 미로형 동굴로서 고유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2008년 1월 15일 천연기념물 제490호로 지정됐다. 

올해 세계유산축전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은 신청을 받아 벵뒤굴 탐방을 소수 인원으로 진행할 방침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영향으로 대면 일정이 전면 비대면으로 전환되면서 안타깝게도 탐방 행사는 취소됐다.

공개 행사를 대신해 [제주의소리]는 세계유산축전 사무국과 함께 12일 벵뒤굴 탐방취재에 동행한 현장기사를 통해 제주섬이 1만년을 품어온 용암동굴계의 신비로움을 일부 소개하기로 했다. 벵뒤굴 탐방은 사전에 방문자 인적 사항을 문화재청에 보고해야만 입장이 가능할 만큼, 엄격하게 출입이 관리되고 있다.

벵뒤굴 모습. ⓒ제주의소리
용암이 흐르는 흔적이 위 아래로 남아있는 벵뒤굴. ⓒ제주의소리
벵뒤굴 모습. ⓒ제주의소리
비가 내리면서 벵뒤굴 안에도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다. ⓒ제주의소리
벵뒤굴 모습. ⓒ제주의소리
용암으로 형성된 구조. ⓒ제주의소리
벵뒤굴 모습. ⓒ제주의소리
빗물이 흘러내리는 폭포 구조. ⓒ제주의소리
벵뒤굴 모습. ⓒ제주의소리
비좁은 벵뒤굴. ⓒ제주의소리
벵뒤굴 모습. ⓒ제주의소리
벵뒤굴 천장. ⓒ제주의소리
벵뒤굴 모습. ⓒ제주의소리
정희준 벵뒤굴 탐험큐레이터가 용암 흔적을 설명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벵뒤굴 모습. ⓒ제주의소리
1만년 전 용암이 흐르면서 생겨난 구조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제주의소리
벵뒤굴 모습. ⓒ제주의소리
벵뒤굴 모습. ⓒ제주의소리
벵뒤굴 모습. ⓒ제주의소리
1만년 동안 형성된 박테리아층. 작은 접촉만으로 복구하기 힘들 만큼 훼손될 수 있다. ⓒ제주의소리

주말 사이 적지 않은 비가 내리고 당일에도 빗줄기가 약하게 계속 내리는 가운데, 벵뒤굴 안에는 현무암 사이를 타고 내려온 빗물이 바닥을 촉촉이 적시고 있었다.

벵뒤굴의 총 길이는 4481m에 이른다. 거문오름에서 분출한 용암류의 일부가 웃바매기 오름 일대에서 어떤 이유로 흐르지 못하고 막혔고, 그것이 소용돌이치듯 돌면서 세계적으로 가장 복잡한 미로형 동굴 ‘벵뒤굴’로 만들어졌다. 벵뒤굴 구멍은 23곳인데, 사람이 출입할 수 있는 입구는 3곳이다. 이날 탐방은 전날 내린 비를 고려해 동선을 줄여서 2번 입구로 들어가 1번 입구로 나왔다.  

벵뒤굴은 특수 재질로 만든 탐사복, 헬멧, 무릎·팔꿈치 보호대를 착용해야 원활하게 내부를 둘러볼 수 있다. 상당 구간을 기어서 이동해야 할 만큼 제약이 뒤따른다. 

그러나 깊은 동굴 속 제주는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 초록의 수풀로 대표되는 고유한 제주 풍경과는 전혀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벵뒤굴 모습. ⓒ제주의소리
비좁은 벵뒤굴. ⓒ제주의소리
벵뒤굴 모습. ⓒ제주의소리
벵뒤굴 모습. ⓒ제주의소리
벵뒤굴 모습. ⓒ제주의소리
벵뒤굴 모습. ⓒ제주의소리
벵뒤굴 모습. ⓒ제주의소리
산호 형태의 동굴 생성물. ⓒ제주의소리

용암이 흐른 자국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용암주석와 용암교, 작은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공간에서 1만년 동안 켜켜이 쌓이며 황금빛을 내뿜는 박테리아층, 동굴에서만 볼 수 있는 동굴산호와 박쥐. 벵뒤굴 속 풍경은 내려가서 만나지 못하면 결코 상상하지 못하는 새로운 제주라고 봐도 무방하다. 

내가 보는 벽면, 걷는 바닥이 1만 년 전 용암이 만들어낸 ‘불의 길’이라는 사실, 가지고 있는 조명을 모두 끄고 나서 자기 손 조차 보이지 않는, 단어 그대로의 ‘칠흑 같은 어둠’은 공포 보다 경외감을 느끼게 한다. 그것은 내가 아는 제주가 ‘제주’의 전부가 아니라는 자연의 일깨움인 동시에, 보전에 대한 필요성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준다.

어떤 문장, 사진, 영상으로도 1만 년의 시간과 함께하는 경험을 대신하지 못하기에 비대면 전환은 더더욱 아쉬움으로 남는다.

벵뒤굴 모습. ⓒ제주의소리
벵뒤굴 벽에 형성된 박테리아층. ⓒ제주의소리
벵뒤굴 모습. ⓒ제주의소리
탐사대가 벵뒤굴을 조심스럽게 살피며 이동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벵뒤굴 모습. ⓒ제주의소리
박테리아층이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다. ⓒ제주의소리
벵뒤굴 모습. ⓒ제주의소리
천장에서 떨어져 고인 빗물이 바닥에 모여있다. 길 안내를 위해 파란색 끈을 깔아놓았다. ⓒ제주의소리
벵뒤굴 모습. ⓒ제주의소리
용암류가 순차적으로 흐른 흔적. ⓒ제주의소리

통제 공간을 개방하는 것만으로 크고 작은 훼손은 불가피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세계유산축전이라는 기회로 잠깐이나마 천연기념물의 문을 여는 이유는, 시야와 상상력을 키우기 위해서다. 특히 자라나는 미래 세대들에게는 더욱 큰 자극이 될 수 있다. 비록 무산됐지만, 만장굴 전 구간 탐험대가 전 국민 공모에서 196대 1이라는 어마어마한 참가 경쟁률을 기록한 과정을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정희준 벵뒤굴 탐험큐레이터는 이날 [제주의소리]와 만난 자리에서 “지구가 태어난 자연, 그 속에서 사람들이 살면서 역사와 문화가 나온다. 자연이 최우선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제주 세계자연유산은 세계 어디를 내놔도 손색이 없다”면서 “그러나 오히려 세계자연유산의 가치를 제주도민들이 모르고 있다. 주위에 있음에도 내용이나 의미를 모르는 경우가 많아 아쉬움이 크다. 비록 올해는 비대면으로 치러지지만 세계유산축전 프로그램을 통해, 제주 자연이 우리가 꼭 지켜야 할 유산이라고 느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세계유산축전이 단순 행사로 오해하는 경우도 많다. 제주의 숨겨진 가치를 깨닫는 소중한 기회로 받아들이고 내년, 내후년 이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제주도를 비롯한 행정적인 관리가 절실하다”고 신신 당부했다.

벵뒤굴 모습. ⓒ제주의소리
벵뒤굴을 살펴보는 탐사대. ⓒ제주의소리
벵뒤굴 모습. ⓒ제주의소리
4.3 당시 피난민들이 빛을 차단하기 위해 바위를 모아뒀다. ⓒ제주의소리
벵뒤굴 모습. ⓒ제주의소리
벵뒤굴에서 발견한 거미. ⓒ제주의소리
벵뒤굴 모습. ⓒ제주의소리
벵뒤굴에서 발견한 박쥐.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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