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예술칼럼 Peace Art Column] (66) 토미야마 카즈미

제주도는 평화의 섬입니다. 항쟁과 학살의 역사를 가지고 있기에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은 더욱 간절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제주4.3이 그렇듯이 비극적 전쟁을 겪은 오키나와, 2.28 이래 40년간 독재체제를 겪어온 타이완도, 우산혁명으로 알려진 홍콩도 예술을 통해 평화를 갈구하는 ‘평화예술’이 역사와 함께 현실 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들 네 지역 예술가들이 연대해 평화예술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들의 평화예술운동에 대한 창작과 비평, 이론과 실천의 공진화(共進化)도 매우 중요합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네 나라 예술가들의 활동을 ‘평화예술칼럼(Peace Art Column)’을 통해 매주 소개합니다. 필자 국적에 따른 언어가 제각각 달라 영어 일어 중국어 번역 원고도 함께 게재합니다. [편집자 글]

1929년 교토제국대학의 카나세키 타케오는 오키나와 각지에서 류큐인의 유골을 수집해 교토로 가져왔다. 이들 중에는 오키나와 섬 북부에 있는 나키진 촌의 무무자카 바카 무덤에 묻혀 있던 유골도 포함된다. 절벽 중턱의 동굴을 이용해 만든 이 묘소는 16세기 이전에 이 지역에서 활약한 유력 인사와 그 일족의 무덤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이 행위는 무덤 파헤치기라고 할 수 있지만, 대학의 권위를 배경으로 학술연구에 이바지한다는 명목이 있었기 때문에 자료의 수집으로서 정당화되었다. 오키나와 현 당국이나 경찰은 카나세키의 행동을 용인해, 현지 학자는 카나세키의 안내역까지 맡았다. 그러나 무덤을 지키는 후손들에게는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았다.

카나세키는 1930년 <류큐인의 인류학적 연구>라는 논문으로 교토제국대학으로부터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후 타이베이제국대학으로 옮긴 카나세키는 수집한 류큐인의 유골도 타이베이제대학 해부학교실로 이관했다. 마찬가지로 교토제국대학의 미야케 소에추도 1933년에 오키나와에서 류큐인의 유골을 수집하였으며, 이들은 현재 교토대학종합박물관에 수장되어 있다(이타가키 류타 도시샤대학 교수, 『류큐민족 유골반환소송에 대한 의견서』 2020년 4월 7일부터). 2017년, 류큐신보가 교토대학에서 보관하고 있는 류큐인의 유골에 대해 크게 보도하면서 도굴 경위가 분명한 무무자니 바카 무덤의 유골에 대해 그 자손들이 반환과 재풍장을 요구하게 되었다.

사진=토미야마 카즈미. ⓒ제주의소리
약 90년 전에 유골이 반출된 백안사묘의 외벽. 사진=마쓰시마 야스카츠. ⓒ제주의소리

교토대학과 국립대만대학. 일본의 구제국대학을 전신으로 하는 이 두 대학의 대응은 다소 다른 양상을 보인다. 26구를 보관한 것으로 알려진 교토대학은 반환을 요구하는 사람들과 일체의 대화에 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2018년 12월 자손을 포함한 5명의 원고로부터 류큐민족 유골반환 청구소송을 제기받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대학 교수, 법률가, 정치인, 예술가, 시민들이 후손들과 함께 유골 봉환 운동을 끈질기게 이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국립대만대는 2019년 카나세키가 모은 류큐인 63구의 두개골을 오키나와 현에 이관했지만 후손들의 의사는 배제된 채 그대로다. 국립대만대학과 오키나와현 등 관계기관은 '인류의 중요한 문화적 유산'인 이들의 유골을 국립대만대학이 앞으로도 조사할 수 있도록 하고 연구재료로서 오키나와현립매장문화재센터가 보관하게 되었다. 후손들이 찾는 유골의 반환과 재풍장은 일고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국립대만대는 비슷한 시기에 대만 원주민 부눈 족에 대해 대학이 1960년대 수집해 표본으로 만들어 온 유골 64구를 화롄현 마위안(馬遠)에 반환해 재매장에 응하고 있다. 그 행위는 많은 연구기관과 박물관이 원주민이나 식민지였던 지역 사람들의 수탈을 반성하고 인골과 부장품 등을 반환하고 있는 세계적 조류에 따른 것이다. 류큐인의 유골에 대해서는 그런 배려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유감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일본인류학회는 노골적으로 반동적이어서 2019년 교토대학에 대해 무무자나 바카 무덤의 류큐인 유골을 '국민공유의 문화재'로 간주하여 그 반환을 거부하고 학술조사를 계속할 것을 공식적으로 요청하였다. 그러나 홋카이도의 아이누족 유골 반환 소송에서는 북해도대학과 도쿄대학이 최근 청구자들에 대한 반환과 재매장의 화해를 이끌어냈다. 류큐인 유골에 대한 불가사의한 집착마저 느껴지는 배경에 무엇이 있을까.

사진=토미야마 카즈미. ⓒ제주의소리
올해 9월 교토 대학 종합 박물관이 소장한 유골에 접근할 수 없는 후손들이 박물관 입구에서 공물과 기도를 올렸다. 사진=마쓰시마 야스카츠. ⓒ제주의소리
사진=토미야마 카즈미. ⓒ제주의소리
올해 9월, 국립대만대학이 반환한 유골을 보관하는 오키나와현립 매장문화재센터 앞에서 위령제가 열렸다. 유족에게 기도 장소조차 제공되지 않는다. 사진=마쓰시마 야스카츠. ⓒ제주의소리

후손들이 조상의 유골은 남의 자료 등이 아니라 자기들 정신문화의 핵이자 그에 걸맞은 형태로 돌아가자는 것은 정당한 요구다. 더 말할 것도 없지만 그 뼈는 무단탈취한 것이다. 조상들의 뼈가 연구 재료로 쌓여 창고 선반에 진열되어 있는 모습을 상상하는 후손들의 고뇌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류큐인 유골 반환 문제가 조사하는 것은 아카데미즘의 오만함만이 아니다. 카나세키를 비롯한 인류학자들은 당시 형질인류학의 트렌드를 따라 인골을 자료로 수집했지만 오키나와 이외의 일본 내에서는 더 신중한 윤리적 배려를 갖고 임했던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런데 오키나와/류큐에서는 류큐왕국의 후예를 잇는 유골조차도 대담하게 빼앗을 수 있었다. 그것은 <타자>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식민지적 권력의 발로였으며, 류큐/오키나와에서 일어난 일은 대만과 조선에서도 일어났던 것이다. 인류학이라는 지식이 제국 내 서열을 규범화하기 위해 권력을 섬긴 역사를 우리는 알고 있다. 유골 반환 요구는 현대 오키나와에 계속되는 식민주의에 대한 새로운 이의 제기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오키나와 현 당국이 후손들의 뜻에 따르는 것을 기피하는 현실이 존재한다. 윤리 없는 학술 연구의 유대는 그렇게 단단한 것인지, 식민지주의적 폭력에 마비된 결과인지 아직 결론을 내리기에는 이르다. 오키나와 현이 후손들의 대화를 시작해 인도적 문화적 견지에서 바람직한 미래를 구축하기를 기대한다. 그것은 정신적 탈식민지화의 중요한 과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10월 25일, 유골반환청구소송 원고단장인 마쓰시마 야스카츠(松島泰勝) 류고쿠(龍谷)대학교 교수가 중심이 되어 오키나와에서 개최한 심포지엄에서는 일본인 인류학자와 역사학자들이 학문에 있어서의 윤리와 식민주의에 입각한 과거의 부정의를 바로잡는 지식에 대해 열심히 토론하였다. 과거에 대한 맹목을 미래의 빛으로 바꾸는 것, 그것은 때로 아픔을 수반하는 작업일지 몰라도 서광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믿고 싶다.

# 토미야마 카즈미

토미야마 카즈미(豊見山和美 TOMIYAMA Kazumi) 씨는 도쿄 소재 추오대학교와 류큐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며, 영국 런던대학교 아카이브연구 석사과정을 마쳤습니다. 이후 오키나와현립공문서관의 아키비스트로 일하면서, 오키나와 전후사를 중심으로 문화평론을 하고 있습니다.


奪われた琉球人の遺骨
豊見山和美

1929年、京都帝国大学の金関丈夫は、沖縄の各地から琉球人の遺骨を収集し京都へ持ち帰った。その中には、沖縄島北部にある今帰仁村の百按司墓(むむじゃなばか)に収められていた遺骨も含まれる。崖の中腹の洞窟を利用して作ったこの墓所は、16世紀以前にこの地域で活躍した有力者とその一族の墓と推定されている。普通に考えればこの行為は墓荒らしと言うべきものだが、大学の権威を背景に学術研究に資するという名目があったために、資料の「収集」として正当化された。沖縄県当局や警察は金関の行動を容認し、地元の学者は金関の案内役さえ務めた。しかし墓を守る子孫たちには何も知らされなかった。

金関は1930年、「琉球人の人類学的研究」という論文で京都帝国大学から医学博士号を取得した。その後台北帝国大学に移った金関は、収集した琉球人の遺骨も台北帝大解剖学教室に移管した。同じく京都帝国大学の三宅宗悦も1933年に沖縄で琉球人の遺骨を収集し、それらは現在、京都大学の総合博物館に収蔵されている(板垣竜太同志社大学教授『琉球民族遺骨返還訴訟への意見書』2020年4月7日より)。2017年、琉球新報が京都大学の保管する琉球人の遺骨について大きく報じ、盗掘の経緯がはっきりしている百按司墓からの遺骨に対して、その子孫たちが返還と再風葬を求めるようになった。

京都大学と国立台湾大学。日本の旧帝国大学を前身とするこの二つの大学の対応はいささか異なる様相を示す。26体を保管するとされる京都大学は、返還を求める人々と一切の対話に応じなかったため、2018年12月、子孫を含む5人の原告から琉球民族遺骨返還請求訴訟を提起され継続中である。大学教授や法律家、政治家、芸術家や市民らが子孫らと共に遺骨返還運動を粘り強く続けているのが現状だ。一方、国立台湾大学は2019年に金関が集めた琉球人63体分の頭蓋骨を沖縄県に移管したが、そこでも子孫たちの意思は排除されたままだ。国立台湾大学と沖縄県等の関係機関は、「人類の重要な文化的遺産」であるこれらの遺骨を国立台湾大学が今後も調査できることを取り決め、研究材料として沖縄県立埋蔵文化財センターが保管することとなった。子孫が求める遺骨の返還と再風葬は一考もされていない。

しかし国立台湾大学はそれと同時期に、台湾先住民ブヌン族に対して、大学が1960年代に収集して標本としてきた遺骨64体を花蓮県馬遠に返還し再埋葬に応じている。その行為は、多くの研究機関や博物館が,先住民族や植民地とした地域の人々からの収奪を反省し、人骨や副葬品等を返還している世界的潮流に添ったものだ。琉球人の遺骨に対してはそのような配慮がなされなかったのは残念と言うしかない。日本人類学会は露骨に反動的で、2019年、京都大学に対して、百按司墓琉球人遺骨を「国民共有の文化財」としてその返還を拒否して学術調査を継続するよう公式に要望した。ところが、北海道のアイヌ民族遺骨返還訴訟では、北海島大学と東京大学が近年、請求者らへの返還と再埋葬の和解を成立させている。琉球人遺骨に対する不可思議な執着さえ感じられる背景に何があるのだろうか。

子孫たちが、先祖の遺骨は他人の「資料」などではなく、自分たちの精神文化の核であり、それにふさわしいあり方に戻そうというのは正当な要求だ。さらに、繰り返すまでもないが、その骨は無断で奪われたものだ。大事に祀るべき先祖の骨が、研究材料として箱詰めされて倉庫の棚に並ぶ様子を想像する子孫の苦悩は察するに余りある。琉球人遺骨返還問題が照射するのは、アカデミズムの傲慢さだけではない。金関をはじめとする人類学者は、当時の形質人類学のトレンドにならって人骨を資料として収集したが、沖縄以外の日本国内ではもっと慎重な倫理的配慮をもって臨んだことが指摘されている。ところが沖縄/琉球では、琉球王国の裔につながる遺骨でさえも大胆に奪うことができた。それは<他者>に対する暴力を正当化する植民地的権力の発露であり、琉球/沖縄で起こったことは、台湾や朝鮮でも起こっていたのである。人類学という知が帝国内の序列を規範化するために権力に仕えた歴史を私たちは知っている。遺骨返還の要求は、現代の沖縄に継続する植民地主義への新たな異議申し立てでもあるのだ。

しかし、他ならぬ沖縄県当局が子孫の思いに寄り添うことを忌避するという現実が存在する。倫理なき学術研究の紐帯はそれほどに固いのか、それとも植民地主義的暴力に麻痺した結果なのか、まだ結論を出すには早い。沖縄県が子孫たちの対話を開始し、人道的そして文化的な見地から、望ましい未来を構築することを切に期待する。それは精神的な脱植民地化の重要なプロセスとなるだろうからだ。10月25日、遺骨返還請求訴訟原告団長である松島泰勝・龍谷大学教授が中心となって沖縄で開催したシンポジウムでは、日本人の人類学者や歴史学者たちが、学問における倫理や、植民地主義に基づく過去の不正義を正す知のあり方を熱心に議論した。過去への盲目を未来の光へと変えること、それは時に痛みを伴う作業かもしれないが、曙光はすでに始まっているのだと信じたい。

 

写真1  約90年前に遺骨が持ち出された百按司墓の外壁  松島泰勝氏提供

写真2 京都大学総合博物館前。博物館が収蔵する遺骨に接近できない子孫たちは館の入口で供物と祈りを捧げた。2021年9月 松島泰勝氏提供

写真3 国立台湾大学が返還した遺骨を保管する沖縄県立埋蔵文化財センターの前で行われた慰霊祭。遺族には祈りの場所さえ提供されない。2021年9月 松島泰勝氏提供


被剝奪的琉球遺骸和尊嚴
豊見山和美

 
1929年,京都帝國大學金關丈夫從沖繩各地收集琉球人的遺骸,帶回京都。其中包括存放在沖繩本島北部今歸仁村的百按司墓的遺骸。這座墓建在懸崖邊的一個洞穴中,據推測是 16 世紀之前活躍在該地區的有影響力的人和他們的氏族的墳墓。一般來說,這種行為應該被稱為嚴重的故意破壞,但它被稱為“收集”材料是有道理的,因為它應該在大學權威的背景下為學術研究做出貢獻。沖繩當局和警察容忍金關的行為,當地學者甚至還擔任金關的嚮導。然而,守墓的後人卻一無所知。

1930年,金關因著作《琉球人的人類學研究》獲得京都帝國大學醫學博士學位。搬到台北帝國大學後,金關也將收集到的琉球人遺骸移管到台北帝國大學解剖教室。同樣,京都帝國大學的三宅宗悅於1933年在沖繩收集了琉球人的遺骸,現在存放在京都大學的綜合博物館(同志社大學教授板垣龍太,《琉球民族遺骨歸還訴訟意見書》,2020 年 4 月 7 日)。 2017年,琉球新報對京都大學保存的琉球人遺骸進行了大量報導,其後人開始要求歸還和重新安葬百按司墓地的遺骨,先前的盜墓史已經很清楚了。

京都大學和國立台灣大學。這兩所大學的前身是前日本帝國大學,它們之間的對應關係略有不同。據說存放了26具屍體的京都大學沒有回應與尋求歸還者的任何對話,因此在2018年12月,包括後代在內的五名原告就琉球民族的遺體歸還提起訴訟,目前仍在繼續......目前的情況是,大學教授、律師、政治家、藝術家和公民都在堅持與他們的後代一起進行骨灰歸還運動。另一方面,國立台灣大學於2019年將金關收集的63具琉球人的頭骨移管至沖繩縣,但仍排除其後代的意願。國立台灣大學與沖繩縣等相關機構一致同意,這些遺骨是「人類重要的文化遺產」,未來可以由台大進行調查,並由沖繩縣考古中心作為研究資料保存. 它變成了一個文物。子孫要求的遺骨歸還和重新安葬並沒有考慮。

但同時,台大將1960年代該校收集取樣的64具遺骨歸還給台灣原住民布農部落,並回到花蓮縣馬遠部落重新安葬。這樣的行為符合許多研究機構和博物館反思原住民和對殖民的剝奪以及歸還人骨和隨葬品的世界潮流趨勢。遺憾的是,琉球民族的遺骸沒有得到這樣的考慮。日本人類學會公然反對,並於2019年正式要求京都大學拒絕將琉球人的遺骸作為「人民共有的文化財產」歸還百按司的墳墓,並繼續進行學術研究……不過,在北海道歸還阿伊努遺骸的訴訟中,北海道大學和東京大學最近就歸還索賠人和重新安葬達成和解。對琉球人遺骸不可思議的執著背後到底是什麼?

子孫後代將祖先的遺骸歸還給他們是屬於精神文化的核心,而不是他人的「資料」,這是合理的要求。更不用說,骨頭是未經許可被盜取的。子孫後代對待著祖先的骸骨,應是仔細被供奉,被裝在盒子裡作為研究材料,排列在倉庫的貨架上,這種痛苦是無法猜測的。琉球人的骨灰歸還問題,不僅說明了學術界的傲慢。金關等人類學家根據當時特徵人類學的趨勢收集人骨作為材料,但有人指出,他們在沖繩以外的日本以更謹慎的倫理考慮接近。然而,在沖繩/琉球,甚至琉球王國的遺跡也可能被大膽盜取。這是殖民權力的體現,為對<他者>的暴力辯護,琉球/沖繩發生的事情也發生在台灣和韓國。我們知道人類學知識服務於規範帝國等級制度的歷史。要求歸還遺骸也是體現對現代沖繩持續存在著殖民主義新的異議。

然而,現實是沖繩縣當局避免接近他們後代的想法。現在下結論是不道德的學術研究的聯繫如此緊密,還是被殖民暴力癱瘓的結果還為時過早。我真誠地希望沖繩縣與其後代展開對話,從人道主義和文化的角度構築理想的未來,這將是精神非殖民化的一個重要過程。 10月25日在沖繩舉行的一場座談會上,由龍谷大學教授松島泰勝主持的一場遺骨歸還訴訟,日本人類學家和歷史學家參與了學術倫理和殖民主義,熱心地討論了理想上如何根據糾正過去的不正義轉型。將過去的盲目變成未來的光明,這有時是一項痛苦的任務,我願意相信曙光已經開始。

 

圖1 大約90年前遺骨出土的百按司外牆。(松島泰勝先生提供)

圖2 京都大學博物館前。無法進入博物館藏品區的後代在博物館入口處獻祭和祈禱。 2021 年 9 月 (松島泰勝先生提供)

圖3 沖繩縣立考古中心前舉行的追思會,館內存放國立臺灣大學歸還的遺骸。失去親人的後代甚至沒有追悼的地方。 2021年 9 月 (松島泰勝先生提供)


Deprived of the Ryukyuan Bones and Dignity
TOMIYAMA Kazumi 

In 1929, KANASEKI Takeo of Kyoto Imperial University collected Ryukyuan remains from various places in Okinawa and brought them back to Kyoto. Among them were the remains stored in the Mumujana Baka tomb in Nakijin Village in the northern part of Okinawa Island. This cemetery, built in a cave in the middle of a cliff, is presumed to be the grave of an influential person and his family who were active in the area before the 16th century. Normally, this act would be called grave robbing, but it was justified as "collection" of materials because the name of the act was to contribute to academic research with the authority of the university. The Okinawa prefectural authorities and the police tolerated Kanaseki's actions, and local scholars even served as his guides. However, the descendants who guarded the tomb were not informed of any of this.

Kanaseki received his doctorate in medicine from Kyoto Imperial University in 1930 with a thesis entitled "Anthropological Study of Ryukyuan People.” He then moved to Taipei Imperial University, where he also transferred the Ryukyuan remains he had collected to the Department of Anatomy at Taipei Imperial University. MIYAKE Soetsu, also of Kyoto Imperial University, collected Ryukyuan remains in Okinawa in 1933, and these are now housed in the Kyoto University General Museum (ITAGAKI Ryuta, Professor of Doshisha University, "Opinion on the Lawsuit to Return the Remains of the Ryukyuan People," April 7, 2020). In 2017, Okinawan local newspaper reported extensively on the Ryukyuan remains in Kyoto University's custody, and their descendants began to demand the return and reburial of the remains from the Mumujana Baka tomb, which has a clear history of theft.

Kyoto University and National Taiwan University, both of which were formerly Japan's Imperial Universities, have somewhat different treatment of their descendants. In December 2018, five plaintiffs, including two descendants, filed an ongoing lawsuit demanding the return of the remains of the Ryukyuan people, because Kyoto University, which is supposed to hold the 26 remains, did not respond to any dialogue with those seeking their return. University professors, lawyers, politicians, artists, and citizens are persistently campaigning with the descendants. On the other hand, in 2019, National Taiwan University transferred the skulls of 63 Ryukyuan people collected by Kanaseki to Okinawa Prefecture, but the will of their descendants is still excluded there. National Taiwan University, Okinawa Prefecture, and other related organizations agreed that National Taiwan University can continue to study these remains, which are "an important cultural heritage of humanity," and the Okinawa Prefectural Archaeological Center will keep them as research materials. The return and reburial of the remains sought by the descendants has not been considered.

However, about the same time, the National Taiwan University agreed to return and re-inter the 64 remains that the university had collected in the 1960s and kept as specimens to the Bunun people in Hualien County. This action is in line with the global trend where many research institutes and museums are returning human remains and burial accessories to reflect on the deprivation of indigenous peoples and colonized areas. It is a pity that no such consideration was given to the remains of the Ryukyuan. In 2019, the Anthropological Society of Nippon (ASN) officially requested Kyoto University to refuse to return the remains of the Ryukyuan in the Mumujana Baka tomb as "cultural property shared by everyone" and to continue its academic research. Nevertheless, in the lawsuit for the return of the remains of the Ainu people in Hokkaido, Hokkai University and the University of Tokyo have recently reached a settlement for the return of the remains to the claimants and their reburial. What is behind this mysterious obsession with the remains of the Ryukyuan people?

It is a legitimate demand by the descendants that the remains of their ancestors be returned to them in a manner appropriate to their own spiritual and cultural core, not as "materials" for others. Furthermore, it goes without saying that the bones were taken without permission. We can only imagine the anguish of the descendants who imagine that the bones of their ancestors, which should be enshrined with great care, are being packed in boxes and lined up on shelves in a warehouse as research materials. It is not only the arrogance of academia that the issue of the return of Ryukyuan remains illuminates. It has been pointed out that anthropologists such as Kanaseki, who followed the trend of anthropomorphic anthropology at the time and collected human remains as materials, were more cautious about ethical considerations in Japan mainland other than Okinawa. In Okinawa/Ryukyu, however, even the remains of the descendants of the Ryukyu loyal family could be boldly taken. This was an outburst of colonial power that justified violence against the "other," and what happened in Ryukyu/Okinawa was also happening in Taiwan and Korea. We know the history of how anthropology served power in order to establish a normative hierarchy within the empire. The demand for the return of the remains is also a new challenge to the colonialism that continues in Okinawa today.

However, the reality is that the authorities of Okinawa Prefecture are unwilling to come to terms with the feelings of the descendants. It is still too early to conclude whether the bonds of academia without ethics are so tight or whether they are the result of being numbed by colonialist violence. It is my sincere hope that Prefecture authority will initiate a dialogue among its descendants to build a desirable future from a humanitarian and cultural standpoint. At a symposium held in Okinawa on October 25, led by Ryukoku University professor MATSUSHIMA Yasukatsu, head of the plaintiffs' group in the lawsuit demanding the return of the remains, Japanese anthropologists and historians enthusiastically discussed ethics in academia and how intelligence or wisdom can correct the injustices of the past based on colonialism. I would like to believe that we have already begun the process of changing our blindness to the past to the light of the future, a process that may be painful at times.

 

Photo 1: The outer wall of the Mumujana Baka tomb, where the remains were taken out about 90 years ago, courtesy of MATSUSHIMA Yasukatsu.

Photo 2: In front of the Kyoto University General Museum. Descendants who were unable to access the remains under the custody of the museum offered and prayed at the entrance to the museum, September 2021, courtesy of MATSUSHIMA Yasukatsu.

Photo 3: A memorial service held in front of the Okinawa Prefectural Archaeological Center, where the remains returned by the National Taiwan University are kept. The Descendants are not even offered a place to pray. September 2021 courtesy of MATSUSHIMA Yasukat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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