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환경영향평가제도 개선방안 차일피일 / 김효철 객원논설위원

‘소리시선’(視線)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 편집자 글

습지보호구역이자 곶자왈인 조천읍 선흘 동백동산과 맞닿은 제주자연체험파크 사업이 삼수 끝에 제주특별자치도 환경영향평가심의를 통과했다.

제주자연체험파크 사업부지는 지금까지 도내에서 이뤄졌던 개발 사업 중 가장 많은 멸종위기식물과 희귀식물이 분포하는 곳이자 곶자왈보호구역 예정지가 포함된 곳이다.

그럼에도 환경영향평가심의위원회는 조건부 동의란 결정으로 환경영향평가심의를 통과시킴으로써 개발 사업으로부터 환경을 보전하는 마지막 방패 역할을 포기했다. 이제 환경영향평가심의 제도를 평가하고 전면적 제도개선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지금까지 개발 사업에 대한 환경영향평가 심의 때마다 불거지는 환경영향평가심의 무용론은 무엇보다 부실한 영향평가서에 대해 제동을 걸 수 없는 제도적 한계에서 비롯한다. 아무리 환경파괴가 예상되는 부실한 환경영향평가서라도 심의위원회가 내릴 수 있는 결정은 재심의가 전부이고 이후 형식적 보완절차만 거치면 조건부 동의나 원안동의로 통과되어온 게 전례가 됐다.

이번에 조건부 통과된 제주자연체험파크 사업부지는 세계적 멸종위기식물인 제주고사리삼이 수 십 군데 군락을 이루며 자생하는 곳이다. 또 다른 멸종위기식물 개가시나무를 비롯한 여러 희귀식물들이 자생하는 곳이며 습지와 곶자왈 튜물러스도 군데군데 발견된다. 

때문에 앞선 두 차례 영향평가심의에서는 재심의 결정으로 반려됐으나 지난 1일 열린 세 번째 심의에서는 결국 조건부 동의로 통과됐다.

이번 심의 과정에서도 나타나듯이 한 사업에 대한 환경영향평가심의가 몇 차례 거듭될 경우 환경영향평가심의위원들은 재심의에 대한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환경영향평가심위위원회는 몇 차례 재심의 후에는 조건부 동의로 이어지고 이 과정에서 스스로 내린 재심의 결정조차 뒤집는 결과도 낳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환경영향평가 조례에는 심의 결과를 동의와 조건부 동의, 재심의로 정하고 있다. 사실상 부결에 해당하는 재심의는 해당 사업의 시행으로 인한 환경 영향이 환경 보전상 상당한 문제점이 있다고 판단되어 해당 사업의 규모·내용·시행시기 또는 위치에 대하여 변경·조정 등 사업계획을 재검토하도록 의견을 제시하는 것을 말함으로 정의한다. 재심의 결정은 영향평가서에 대해 부결과 다름없다. 따라서 사업 규모나 내용, 시행시기 등 사업계획을 재검토하고 이를 기반으로 환경영향평가가 이뤄져야 하는데도 생색내기 수준과 다름없는 보완서가 2~3개월 만에 재심의에 오르고 있다. 

제주시 구좌읍 동복리 제주자연체험파크 개발사업 조성 부지. ⓒ제주의소리
제주시 구좌읍 동복리 제주자연체험파크 개발사업 조성 부지.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이번 제주자연체험파크 사업도 지난 2월과 4월 두 번에 걸친 재심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사업내용이나 개발면적에 큰 변동이 없이 또다시 심의에 올라왔다. 재심의 조건이던 멸종위기식물 보호대책이나 튜물러스와 같은 곶자왈 지형지질 보호 대책 등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거나 오히려 후퇴한 내용이 있음에도 환경영향평가심의위는 조건부 동의로 개발 사업에 길을 터 주었다.

나아가 멸종위기동식물에 대한 보호막이 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서식지 파괴를 합법화하는 결과로도 이어진다.

자연환경분야 조사에서 보존이 필요한 동식물상이 누락되거나 잘못 기재되는 오류와 부실에도 이를 처벌하거나 제한할 권한이 없다. 다시 제주자연체험파크 환경영향평가 과정을 보면 처음 평가서에 제시한 멸종위기종 제주고사리삼 군락지에 대해 환경단체는 15곳에 이르는 서식지가 누락됐으며 다른 희귀종 식물들에 대해서도 조사결과가 부실하다는 지적을 해왔다. 이는 재심의 과정에서 추가 조사를 거쳐 사실로 확인됐다. 환경단체가 조사한 자료가 없었다면 현장 조사를 할 수 없는 심의 과정을 볼 때 수많은 희귀식물 서식지가 빠진 부실한 평가서가 심의에서 통과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이번 환경영향평가심의에서 사업자는 추가로 발견된 멸종위기식물 보전대책으로 내놓은 방안은 이식이다. 개발로 서식지가 훼손되는데도 멸종위기식물 마저 이식해서 보존하면 된다는 민망스런 영향평가서가 통과되면서 멸종위기종에 대한 서식지 파괴를 합법화하는 결과마저 낳고 있다.

여기에다 있으나 마나 한 환경영향평가 전문기관 의견에 대한 강제 규정도 필요하다.

현재 조례를 보면 제주특별자치도지사는 환경영향평가서를 협의할 때 환경영향평가 전문기관 의견을 듣고 반영하도록 하고 있으나 실제 사업추진에는 참고사항 수준에 지나지 않고 있다.

제주자연체험파크에 대해 환경영향평가전문기관인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은 자연생태계 우수성을 들어 사업부지로 타당하지 않다면 사업부지를 재검토하도록 의견을 제시했으나 사업자는 이를 수용하지 않은 채 사업을 추진해 결국 환경영향평가심의 마저 통과했다. 전문기관 의견마저 반영하지 않아도 무사통과되는 환경영향평가심의가 현실이다. 

부실한 환경영향평가서는 환경영향평가서 작성을 둘러싼 구조적 문제에서 시작한다. 현재 사업자는 평가대행업체를 선정하고 평가서 작성을 대행하고 있다.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할 평가서 작성 업체와 사업자 간 독립성이 보장받지 못하고 종속적 관계에 놓이게 되니 사업자 요구를 수용하다 보면 부실한 평가서로 이어진다는 비판이 오랫동안 제기돼왔다. 더욱이 제주지역은 관련 전문가가 부족하고 좁은 지역 특성으로 환경영향평가를 둘러싼 평가대행업체나 심의위원회, 학계, 전직 공무원까지 얽히고설킨 상황이다. 환경영향평가 심의에 영향을 미치고 공정성 시비를 부르는 일들이 잇따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환경영향평가서 작성부터 심의 과정까지 투명하고 공정한 심의를 보장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환경영향평가제도 개선 요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부실한 영향평가서가 환경단체 현장조사나 심의 과정에서 드러난 일은 많다. 환경파괴가 심각한 사업인데도 제대로 환경보전 대책도 없이 심의를 통과한 일도 많다. 심지어 영향평가심의위원이 사업자로부터 돈을 받고 처벌받은 일도 있었다.

그럼에도 환경영향평가 제도개선을 위한 노력과 대안은 지지부진하다.

김효철 (사)제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 상임대표 ⓒ제주의소리<br>

제주특별자치도는 지난 2015년 재심의를 두 차례 이상 초과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부동의 의결 조항을 넣는 조례 개정안을 추진한 적이 있으나 이뤄지지 않았다. 지금도 환경영향평가제도 개선방안은 차일 피일이다.

그런 사이 크고 작은 개발 사업들이 아름아름 제주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제주를 생각할 때 환경을 위한 마지막 방패가 되도록 환경영향평가제도 보완을 서둘러야 한다. / 김효철 객원논설위원, (사)제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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