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가게, 고치가게] (7) 큰아버지 부부 이어 조카 2대째 전통 잇는 삼복당 제과

창간17주년을 맞은 [제주의소리]가 오랜 기간 제주 곳곳을 지키며 이어온 공간과 인물을 소개하는 연중 기획 [이어가게, 고치가게]를 2021년 시작합니다. 오래된 점포(老鋪)와 그 속에 숨은 장인(匠人)들이 소개됩니다. 과거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고 미래의 나침반입니다. 제주의 기억을 이어가고 앞으로도 함께 지켜감으로써, 제주의 미래를 같이 가꾸고 조명하자는 취지입니다. 세월만큼 켜켜이 쌓인 이야기는 제주 현대사를 관통하는 타임캡슐과 같습니다. 이들의 기억을 공유하는 일이 제주의 오늘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주춧돌이 됐으면 합니다. [편집자 주]
제주시 서문시장 입구 바로 옆에 위치한 삼복당제과. 이 곳에서는 새벽 5시 30분부터 반죽기와 오븐이 쉴 틈 없이 움직인다. ⓒ제주의소리
제주시 서문시장 입구 바로 옆에 위치한 삼복당제과. 이 곳에서는 새벽 5시 30분부터 반죽기와 오븐이 쉴 틈 없이 움직인다. 지난 11일 새벽, 취재기자가 삼복당을 찾았을 때도 이미 제빵 작업이 한창이었다. ⓒ제주의소리

 언뜻봐도 소위 '내공'이 느껴진다. 제주시 서문시장 입구에 위치한 삼복당제과는 남다른 세월의 향기를 풍기는 곳이다. 초록색 줄무늬 차양과, 타일로 된 바닥, 간판의 색감까지. 언제부턴가 베이커리 마니아들이 제주에서 성지순례처럼 찾는 이른바 '빵지순례'의 명소가 된 곳이다. 

안내판에 적힌 빵 가격은 개당 단돈 600원. 이것도 작년까지 500원이었는데 식재료 물가 때문에 부득이 100원 올린 거라고 한다. ‘이래서 남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40여년 서문시장 앞 터줏대감 빵집

평일 오후 가게를 찾은 68세의 여성 손님은 비닐 가득 소보루와 잼빵을 담았다. “빵도 맛있고, 사장님도 친절해서 10년 넘게 계속 온다”고 말했다. 이 곳에는 10년, 20년, 30년 단골이 즐비하다. 중학교 졸업 후 오랜만에 왔다는 청년은 ‘지금도 여기를 운영하시네요!’라고 반가워하고, 8년 전 여행을 왔다 접한 맛을 잊지 못한 관광객들이 다시 이 곳을 찾는다.

동네빵집이 사라져가는 요즘, 대를 이어가는 삼복당제과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 단골들의 발걸음이 쌓여있다. 

삼복당제과를 연 이봉화 할머니는 항상 웃는 얼굴로 손님들을 맞이했다. 사진은 2017년 4월 촬영 모습. 올해 79살이 된 이 할머니는 지난 2월 조카에게 가게를 물려줬다. / 사진 제공=어반플레이

삼복당제과가 문을 연 것은 48년 전. 양수남(83) 할아버지와 이봉화(79) 할머니 부부. 당시 일년 집세 40만원으로 작은 점포를 빌린 뒤 “먹고살기 위해” 남편과 빵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때는 우리가 먹고살기 힘들 때난 그냥 한 거지 뭐 조금씩. 그냥 찐빵하고 군빵이라고 해서 이 두 가지만 조금씩 조금씩 좀 싸게 팔았주. 그때가 딱 우리나라가 막 배고프다가 음식을 (제대로)먹기 시작할 때. 손님들이 와서 찐빵을 플라스틱 접시에 담으면 7개를 천원에 줬어. 하나에 150원이라 7개면 1050원인데, 50원을 어떵(어떻게) 받나. 그래서 7개로 한 사라(접시의 일본말)로 가득하면 가게 안 테이블에 다 아장그네 먹엉 가서.(앉아서 먹고 갔어.)”

 옛날엔 배고파서 먹고, 요샌 맛있어서 먹고

팥방에 넣을 앙꼬는 가공품을 쓰지 않고 직접 좋은 팥을 구해서 끓였다. 타협하지 않는 손맛의 진가는 서서히 알려졌다. 주문이 쏟아지면 밤을 새면서 성실하게 일했고, 가게를 찾는 손님들에게는 늘 친절했다. 입소문을 타면서 여기저기에서 손님이 늘었다. 

빵이 가장 많이 나가는 시기는 명절 직전. 벼농사가 힘들어 쌀이 귀했던 제주는 타 지역과 달리 제사상에 빵이 오르는 일이 많았고, 삼복당제과의 맛을 알게 된 사람들은 설과 추석을 앞두고 대량주문을 했다.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을 정도였다.

“우리 할아버지(남편)하고 나하고 둘이만 해서 사람을 안 들여 쓴 거여. 둘이 손 맞으니까, 밤에도 밤 새면서 하고, 주문하는대로 그렇게 했어. 옛날에는 제사상에도 미리미리 와서 주문을 해. 누가 돌아가시면 소상, 대상 할때도 사가고. 그때는 빵을 많이 먹었어. 명절 때는 더 하질 못해서 (주문물량이 많아서 주문을 더 받지 못해서) 싸웠어. 빵으로 싸웠어. 밤낮으로 죽기살기로 했주. 밤잠도 얼마 안 자고. 옛날엔 배고파서 먹고 요샌 맛있어서 먹고. 하하”

1970년대부터 서문시장 앞을 지켜온 삼복당제과. 간판부터 내부 분위기까지 세월의 향기가 물씬 느껴진다. ⓒ제주의소리
1970년대부터 서문시장 앞을 지켜온 삼복당제과. 간판부터 내부 분위기까지 세월의 향기가 물씬 느껴진다. ⓒ제주의소리

국화빵, 메론빵, 도너츠, 크림빵... 메뉴는 조금씩 늘었다. 뭐니뭐니해도 삼복당제과의 히트상품은 ‘판 카스테라’였다.

“네모난 판 위에 카스테라, 맨 처음 우리가 처음 한 거야. 그때 제주시 큰 빵집들은 케이크만 했지만 판 카스테라를 내놓지 않았어. 아이고, 그게 엄청나게 팔려서 명절 때면 계란이 80판 들어갈 정도였지. 여자들이 처음에 주문했고, 나중엔 남자들이 주문해서 찾으러 왔다가 ‘아이고 이걸 하나 통째로 그냥 복삭복삭 먹어시믄 조으쿠다(먹었으면 좋겠다)’라고도 애기했어.”

그를 이끌어온 원동력은 가족이었다. 처음 문을 열었을 때 가장 대목인 명절 때면 주문량을 맞추느라 남편과 밤을 꼬박 새워 빵을 만들었다. 네 명의 자녀들이 제법 자라자 아이들 고사리손까지 모두 일손을 도왔다. 명절을 앞두고 두 부모와 네 명의 아이들은 함께 빵을 빚었다.

“아이들이 일하는 거 본 손님들은 ‘아이고 아르바이트생들을 어떵(어떻게) 잘 구했져?’라고 그런 말을 했어. 이 빵으로 장사해서 아이들 다 공부시키고 키웠지. 지금 애들 커서 다 잘 돼서 참 편안하고 좋아.”

개업 초기 가게를 찾은 어떤 어르신이 “아따 먹음직하다”며 건네던 칭찬은 아직 그의 기억에 남아있다. 수업이 끝나면 가게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던 인근 제주중학교 학생들의 모습이 선하고, 명절 전날 남편과 반죽을 하고 빵을 만들던 기억도 생생하다. 이봉화 할머니에게 삼복당제과는 평생의 순간들이 머물러 있는 타임캡슐이다.

삼복당제과에서 만날 수 있는 빵들. 지금도 단팥방은 600원, 피자빵과 1300원이다. 자주 찾는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가격을 쉽게 올릴 수 없었다고 한다. ⓒ제주의소리
삼복당제과에서 만날 수 있는 빵들. 지금도 단팥방은 600원, 피자빵과 1300원이다. 자주 찾는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가격을 쉽게 올릴 수 없었다고 한다. ⓒ제주의소리

 “대를 이은 우리 조카 잘 부탁드리쿠다”

이봉화 할머니는 올 2월 가게 일을 멈췄다. 허리가 아파 오래 일하기 힘들었다. 여든이 다가오니 기력도 달렸다. 여전히 목소리에는 힘이 넘쳤지만, 꾸준한 외출과 노동은 이제 그에게 힘든 일이 됐다.

“오늘 아침에도 병원에 가는데 단골 손님이 ‘빵은 어떵행 어디감수꽈’(빵은 어떻게하고 어디가세요)라고 해서. ‘나 막 못 견뎡 병원에 감서’(내가 매우 견딜수 없어서 병원에 가고 있어)라고 얘기를 했지. 이젠 병원에 취직한 것 같아. 취직.(웃음). 우리 아이들도 나한테 편하게 살라고 얘기햄서. 이젠 나이가 많으난 도저히 (내 몸을) 이길 수가 어서. 나이 80이 되믄 모든 힘이 몸에서 다 나가버리고 힘이 어서(웃음).”

삼복당제과는 그녀의 조카인 양영심(56)씨가 이어받았다. 대를 이을 사람이 없을까봐 걱정하던 이봉화 할머니 부부는 빵집을 이어받겠다는 조카의 얘기를 듣고 ‘아이고 잘됐다’라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현재 삼복당제과를 운영하는 양영심 씨. 그는 1대 대표인 이봉화 씨의 조카다. ⓒ제주의소리
현재 삼복당제과를 운영하는 양영심 씨. 그는 1대 대표인 이봉화 씨의 조카다. ⓒ제주의소리

삼복당제과의 2대 대표 양영심 씨의 말이다.  

“두 분이 평생을 몸 담아서 운영을 하셨는데 어느 날 여기가 없어진다고 생각을 하니 허전한 거에요. 그래서 일주일 동안 고민을 하다 큰아버지한테 가서 제가 한 번 해보겠다고 했죠. 두 달 배웠고, 지금도 배워가고 있어요. 큰아버지, 큰어머니가 묵묵히 한 자리를 지켜오신 뚝심이 없었다면 삼복당제과가 지금까지 버티기 힘들었을 거에요. 이젠 제가 단골들에게 건강하고 맛있는 빵을 만들어 대접하려 합니다.”

삼복당제과 시즌2는 이제 막을 올렸다. 오늘 새벽에도 고소한 빵굽는 내음과 함께 ‘백년가게’를 향한 여정은 계속된다. 

노하우를 전수하고 물러난 이봉화 할머니는 단골들에게 인사말을 전했다. 대를 잇고 있는 조카를 잘 부탁한다는 말을 거듭 반복했다.

“서문시장 삼복당 빵집은 우리 부부를 이어서 우리 조카가 잘 허난 하영들 옵서양! 잘 헐거우다!”

올해 79살이 된 이봉화 1대 대표는 지난 2월 조카 양영심씨에게 가게를 물려줬다. 사진은 올해 1월 이봉화 대표의 모습. /사진 제공=멍하니바라보기(blog.naver.com/bambi_0202) ⓒ제주의소리
올해 79살이 된 이봉화 1대 대표는 지난 2월 조카 양영심씨에게 가게를 물려줬다. 사진은 올해 1월 이봉화 대표의 모습. /사진 제공=멍하니바라보기(blog.naver.com/bambi_0202)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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