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왓 칼럼] 부동산 양극화 속 청년 주거권 목소리 높아져

편견으로 무장한 이들이 사회적 약자들에게 여전히 반인권적 발언과 행동을 주저하지 않는 일들을 우리는 종종 목격하곤 합니다. 존재 자체로 차별받는 사회적 약자들이 있어선 안됩니다.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난민 등 대상은 다르나 일상 곳곳에서 여전히 차별이나 혐오, 폭력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인권문제에 천착한 '인권왓 칼럼' 연재를 통해 인권활동가들의 현장 목소리를 싣습니다. [편집자 글]

낡은 아파트에 들어온 지 2년이 다 되어간다. 재건축으로 철거해야 할 상황에서는 아무 조건 없이 퇴거해야 한다는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마련한 보금자리다. 가끔 녹물이 나오는 수도꼭지나, 폭우가 내리면 집 안 벽을 타고 흐르는 빗물, 외벽 낙석 안내문 같은 것에는 통장 사정을 생각하면 금방 익숙해질 수 있었다. 착실히 소득을 모아도 손끝조차 닿지 않는, ‘살 만한 집’ 에 관한 이야기다.

제주의 새로운 문제, 부동산 양극화

내가 살 수 있는 집은 어디에 있을까? 우선 평범한 시민들이 당장 살 수 있는 집은 없다. 제주의 주택구입가격배수(PIR)가 이를 잘 보여주는데, 올해 4월 기준으로 제주지역 주택구입가격배수(PIR)은 6.81로 전국 17개 시도 중 6위다. 집 한 채를 사려면 6.81년 동안 가계소득을 단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한다는 뜻이다. 아파트 평당 가격이 2003년부터 2018년까지 316% 상승했고, 전국에서 임금 대비 최고의 집값을 기록하는 지역에서 ‘내 집 마련’은 이미 하늘의 별 따기 같은 이야기다. 누군가는 중국 자본을, 누군가는 외지 투기 세력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2019년 기준 제주의 3주택 이상 소유자가 지역의 주택 소유자 중 5.4%로, 전국 시도 중 가장 높은 3주택 이상 소유자 비율을 기록했다. 특히 3주택 소유자가 2016년에 비해 1147명 증가했다. 눈여겨볼만한 것은 청년 가구 비율이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3주택 이상을 보유한 청년가구 비율이 796가구에서 1120가구로 늘었고, 2건 이상 주택을 소유한 청년가구도 22.8%나 된다. 2주택이상 보유 청년과, 3주택 이상 보유 청년 가구 비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다. 반면 무주택 청년가구 비율은 계속해서 늘어가고 있다. 미래세대가 이미 겪고 있는 문제가 부동산 양극화며, 곧 맞이하게 될 것이 주거 불평등인 셈이다.

지역의 주거불평등 완화를 위한 해법을 고민해야 하는 이 시기에, 지난 8월 국회 본회의에서는 1가구 1주택자의 종부세 과세 기준선을 9억원에서 11억원으로 완화하는 내용의 종부세법 개정안의 의결되었다. 화북동 어느 사거리에서는 한동안 제주시 을지역 오영훈 국회의원의 명의로 걸린 ‘종부세법 개정을 달성해냈다’는 내용의 현수막을 볼 수 있었다.

사진=픽사베이.
청년들의 새로운 문제는 곧 주거 빈곤이 될 것이다. 우리에게는 주거권을 보장할 정책이 시급하게 필요하다. 사진=픽사베이.

‘집 다운 집’에 살 권리

주거권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하는 최소한의 생활이 가능한 주택에 거주할 권리다. 1990년 우리나라의 국회 비준을 통과해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는 사회권규약(ICESCR)에서는 “본 규약에 가입한 국가는 모든 사람이 적당한 식량, 의복, 주택을 포함하여 자기 자신과 가정을 위한 적당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와 생활조건을 지속적으로 개선할 권리를 가지는 것을 인정한다”라고 규정하며, 이에 대한 국가의 의무를 언급하고 있다. 

인구 중 35.6%가 전월세로 거주하고 있는 제주 청년들의 주거 실태는 어떨까? 제주에서 오피스텔을 제외한 ‘주택이외 거처’ 에 거주하고 있는 20~39세의 1인가구가 3999가구나 된다. 숙박업소의 객실이나 기숙사 등의 시설, 판잣집이나 비닐하우스, 잠만 자는 방에 살고 있는 청년이 제주에 약 4000가구가 있는 셈이다. 누군가 집을 자산 증식의 수단으로 거래하고 사고파는 동안, 누군가는 집답지 않은 집에서, 그마저도 년·월세를 꼬박꼬박 지불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더 많은 주택을 보급하는 것만이 답일까. 그렇다면 그 주택은 어느 땅에 지어야 하는 것일까?

기후위기라는 새로운 조건, 녹지공간 vs. 주거공간 구도가 감추고 있는 것들

2018년, 제주도가 시민복지타운 내에 700세대 규모의 행복주택 조성계획을 발표하면서 녹지공간 vs. 주거공간이라는 대립구도가 생겨났다. 제주도는 무주택자 청년들을 위한 주거복지를, 인근 주민들은 공원녹지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어제 공개된 협약서로 논란을 빚고 있는 오등봉공원 아파트단지 건설 민간특례사업도 이와 유사한 구도를 띤다. 안동우 제주시장은 오등봉공원 민간특례사업 협약 체결식에서 ‘도심권 공원과 숲 보존’, ‘쾌적한 주거환경’을 내세웠다. 도시공원을 이렇게 ‘비어있는 땅’ 정도로만 보고 주택 공급을 위해 사용해도 괜찮을까? 

우리는 이제 기후위기라는 새로운 삶의 조건을 고려해야 한다. 도시의 녹지는 미세먼지를 줄이고, 탄소를 흡수하고, 열쾌적성을 낮춘다. 다양한 생물종이 살아가는 곳이기도 하고, 인근 주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사용되며 시민들이 ‘모두의 공간’을 경험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한편, 한국은 2030 국가온실가스 감축로드맵에 따라 10년 이내로 수송부문에서 29.3%의 온실가스를 줄여야 하는 과제도 있다. 행복주택 건설에 따른 주차난과 교통혼잡에 대한 우려보다도, 자동차 대수를 어떻게 줄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더 먼저라는 것이다.

제주에 2019년 기준으로 빈집이 3만 6000채, 그 중에도 건축연도 5년 미만의 빈집이 1만2000채가 있다. 집이 없는 것이 아니라, 살 수 있는 집이 없다. 결국 2018년 제주도는 ‘시민복지타운을 미래세대를 위한 공공용지로 남겨두겠다’며 시민복지타운 부지 행복주택 건립을 철회했다. 그러나 지금 시민복지타운을 지나쳐 봤다면 그 자리가 거대한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공공임대주택을 반드시 시민복지타운 부지에 지어야만 한다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시민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녹지로 남겨두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다만, 지금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어마어마한 탄소를 배출하는 쇳덩어리들이 미래세대를 위한 공공성과 무슨 상관이 있냐는 것이다.

지난 달 26일에 베를린에서 실시된 대기업 부동산 사회화 주민투표에서는 과반이 넘는 유권자가 찬성표를 던졌다. 베를린의 임대료가 5년간 42% 이상 폭등한 결과다. 

부동산 양극화의 시대, 제주에도 이제 코앞에 와 있다. 주거 문제만큼은 유달리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손에 닿지 않기에 더욱 국가와 지방정부의 역할이 크다. 청년들의 새로운 문제는 곧 주거 빈곤이 될 것이다. 우리에게는 주거권을 보장할 정책이 시급하게 필요하다. / 신현정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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