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여·순 10.19항쟁 73주년] ④ 동백꽃 화백 강종열 여순 기획전시 개최

제주와 동백을 소재로 기획전시를 개최하며 제주와도 인연이 깊은 화백 강종열이 이번엔 여순항쟁을 소재로 그려낸 혼을 불태운 작품을 통해 우리 사회에 다양한 메시지를 던졌다.

전라남도와 여수시가 주최하고 여수·순천 10.19사건 지역민 희생자 지원사업 시민추진위원회가 주관하는 ‘존엄, 여수의 해원(解冤)’전시가 오는 11월 18일까지 여수 엑스포국제관B관 1층 전시장에서 마련된다. 

화백은 이번 전시를 통해 여순항쟁을 통해 촉발된 서로 간의 갈등을 치유하고 해원과 상생의 길로 나아가야 함을 천명했다. 

전시 주제인 ‘존엄, 여수의 해원’처럼 작가의 그림 곳곳에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고찰과 진정한 지역민의 해원을 바라는 감정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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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강종열 화백.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고찰과 진정한 지역민의 해원을 바라는 그의 작품 80여 점이 오는 11월 18일까지 여수 엑스포국제관B관 1층 전시장에서 공개된다. ⓒ제주의소리

화백은 동백꽃 화백으로 불릴 정도로 그림에서 동백을 소재로 많이 활용하는데 이번 전시에서 동백은 국가폭력에 의해 ‘툭’하고 쓰러져 차가운 주검이 된 희생자들을 표현하면서도 새롭게 피어나는 꽃을 통해 진정한 해원과 숨겨지지 않는 진실, 희망을 표현하기도 했다.

부당한 권력에 의해 억울한 죽음을 맞은 희생자를 표현하기 위해 화백은 지난 수년간 그들과 함께했다. 그림을 그리다가도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위해 주검이 된 모습을 상상하며 작품으로 표현한 것.

꿈에서는 나무에 걸린 시체가 되기도 했고 동이 트기 전 산을 오르다 마주한 숲에서는 나뭇가지 사이로 영혼들이 나타나는 듯 느껴졌다. 

화백은 목탄화 작업을 통해 작품을 만들어내기도 했는데 이는 그에게 있어 여순을 재현하고 기록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강렬한 색채와 화려한 기법이 사라진 목탄화에서는 억울하고 서글픈 역사의 장면이 고스란히 녹아났다. 

화백은 “미술대학을 가기 위한 입시용 도구로만 생각했던 재료가 이토록 의미 있는 재료로 사용될 줄 몰랐다”며 “각기 다른 속도감이 있는 선들이 중첩돼 그려진 목탄이 주는 맛은 유화나 수채화 연필들과는 완전히 또 다른 느낌으로 표현된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흑백의 거친 선들의 구성으로 이뤄진 이 재료는 차분하면서도 경건한 나의 그리는 행위의 족적을 그대로 남기고 있다”며 “부드럽지만 강하게 이번 전시 분위기를 진지하게 만들고 있다”고 소개한다. 

이어 ‘신이시여’라는 제목을 붙인 작가노트를 통해 “어찌 이렇게 감당하기 힘든 큰일을 맡기셨나. 겨울이면 꽁꽁 언 손, 떨리는 심장으로 붓질을 하고 여름이면 온갖 날파리들과 함께 원통하게 생을 달리한 영혼들을 그리며 그들의 억울한 한을 풀어줘야만 한다는 일념으로 지낸 지 어느덧 5년이 흘렀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오늘은 그림이 완성된 역사적인 날이다. 캔버스 속 이들은 역사가 살아있고 강종열의 작품으로 존재하는 한 더 이상 죽은 자들이 아니다”라며 “진실을 말하는 전령으로 부활했다. 신이시여, 이제 당신이 내린 명을 완수했다. 나는 구름 위와 바다를 걸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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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 15m에 달하는 작품 ‘여순사건’. 작가는 수년간에 걸쳐 그들의 고통과 마주하며 작품을 그려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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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한가운데에는 민간인과 군인이 서로 손을 맞잡고 고개를 숙인 장면이 담겼다. 용서와 화해를 통해 진정한 해원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화백의 진심이 담긴 장면이다. ⓒ제주의소리

이번 전시를 대표하는 작품은 8년여 만에 완성된 가로 15m에 달하는 작품 ‘여순사건’이다. 5년여 간의 준비와 3년여 간의 활동을 통해 그려진 그야말로 대작이다.

화백은 작품을 통해 용서와 화해라는 메시지를 무겁게 던진다. 그림 가운데는 민간인과 군인이 십자가 아래 서로 손을 맞잡고 고개를 숙인 채 악수하는 장면이 담겼다. 이들의 용서와 화해 없이는 여순의 진정한 해원을 이룰 수 없다는 것.

그림의 양쪽으로는 집이 불타는 장면과 절망에 빠진 주민들, 시체가 된 누군가를 끌어안고 통곡하는 모습 등 다양한 이야기가 담겼다. 

그가 표현하고자 한 여순은 피카소의 대표작 ‘게르니카(Guernica)’를 닮았다.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의 작은 마을 이름인 게르니카에서는 내란 도중 군 폭격에 의해 2000여 명의 시민이 숨진 비극적인 사건이다. 

피카소는 게르니카를 통해 스페인 전쟁의 잔혹한 실상을 알렸고, 강 화백은 작품을 통해 여수에 서린 한을 그림으로 풀어내며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취재 기자가 전시장에서 강 화백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작품을 그리며 어려웠던 것은 무엇을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다”며 “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알리는 데 그치지 않고 무언가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고뇌했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여순은 지금도 좌우의 대립에 의해 희생당한 자손들이 서로 피해자라고 말하고 있지 않나”라며 “마주보고 악수하며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지 않으면 앞으로의 사회는 계속 갈등과 반목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피력했다. 

또 “독재자의 욕심이나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괜한 갈등에 놓여왔으며 인간의 존엄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학살과 같은 잔혹한 일이 벌어졌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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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살된 남자, 캔버스에 유채, 162.0x96.5cm, 2019.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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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백은 대작 '여순사건'의 마지막 붓질로 촛불을 그려냈다. 환하게 밝힌 촛불을 그려넣는 순간, 작품이 완성됐다고 느꼈단다. ⓒ제주의소리

화백은 어느 날 그림을 그린 뒤 집으로 돌아가던 중 눈물을 쏟아냈다고 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쏟아진 눈물이 당황스러웠지만 이내 모든 것이 씻겨 내려간 듯 편안한 기분이 들었단다. 마치 해원을 온몸으로 느낀 듯한 전율이었다.

그는 “그 이후로 잠도 잘 자게 됐다. 그림 속에 있는 사람들을 보며 당신들의 한을 그림으로라도 풀어주겠다 말하며 다독거렸다”며 “그 속에서 나 역시 마음이 편해졌고 완성도 높은 작품을 그려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제주와 관련해선 “제주4.3 관련 좋은 작가가 많은데 여순은 조금 늦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단단하게 잘 해야겠다 생각한다”며 “개인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라도 해야 하고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려야 된다. 나이가 들었지만 재밌게 하려고 한다. 의미가 있으면 힘이 생기니까”라고 밝혔다. 

강종열 화백은 여수에서 창작 생활을 하고 있으며 선과 색 동인회를 창립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장과 다수 공모전 심사위원을 역임했으며, 프랑스·이탈리아·미국·우즈베키스탄·필리핀 등에서 다수 개인 초대전을 개최했다. 

또 서울과 부산, 광주, 전주, 여수 등에서 99회에 이르는 개인전과 600여 회의 단체전, 40여 회의 아트페어에 참가했다. 

그의 작품은 바티칸 성당 프란체스코 교황청과 워싱턴 시립은행, 동티모르 대통령궁, 필리핀 대통령궁, 우즈베키스탄 대사관, 국립현대미술관 등 국내외 다수에 걸려 있다. 

여순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한 해 열린 이번 ‘존엄, 여수의 해원’ 전시는 화백의 100번째 개인전으로 그 의미가 더욱 깊다. / 여수=김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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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동백, 캔버스에 유채, 162.2x130.3cm, 2021.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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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묘, 캔버스에 유채, 258.5x96.5cm, 2018.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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