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여·순 10.19항쟁 73주년] ⑤ 현장-여수 곳곳 새겨진 기록과 전시…최초 기념관 개관도

10월 19일 여순항쟁 73주년을 맞아 전남도 합동위령제와 추념식이 개최된 여수에서는 도서관과 갤러리, 기념관 등에서 여순을 알리기 위한 전시와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는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와 제주다크투어 관계자와 함께 여순을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한 현장을 돌아봤다. 

먼저 여수이순신도서관에서는 ‘10.19 여수‧순천사건 자료 전시展’이 개최됐다. 이번 전시는 여순특별법이 73년 만에 통과된 것을 기념하며 역사를 바로 알리고 여순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심어주고자 마련됐다.

전시는 이순신도서관에서 오는 10월 29일까지 열리며 1층부터 3층까지 곳곳에서 여순항쟁 관련 전시들과 3층 일반자료실에서 여순사건 관련 소장도서를 만나볼 수 있게 꾸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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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이순신도서관 한편에 마련된 전시.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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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이순신도서관에 마련된 추모 엽서 작성 공간에는 '손가락 총에 빼앗긴 그들의 목숨을 잊지 않겠다'는 어느 시민이 다짐이 남겨졌다. ⓒ제주의소리

일반자료실에서는 당시 타임-라이프지 도쿄국장이었던 칼 마이던스의 사진 기록 모음집인 ‘1948, 칼 마이던스가 본 여순사건’을 비롯한 다양한 논문집이 소개됐다. 각 층에서는 지역 초‧중‧고등학생들로 구성된 몽이네예나눔 회원들의 재능기부로 그림 전시회가 마련됐다.

도서관 한편에 마련된 추모 엽서 작성 코너에서는 ‘손가락 총에 빼앗긴 그들의 목숨을 잊지 않겠다’, ‘동포들을 죽이지 않겠다는 14연대를 따랐다는 이유로, 어쩌면 이유없이 억울하게 몰려 죽게 된 희생자의 죽음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기억하겠다’ 등 추모의 글이 이어졌다.

한 시민은 “희생자분들의 죽음이 헛된 죽음이 되지 않도록 이젠 우리가 발 벗고 나서겠다”며 “여수 시민들이 여순을 제대로 기억하고 추모하는 그날이 빨리 오길 바란다”고 소감을 남기기도 했다. 

또 여순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데 앞장서온 박금만 화가는 여순항쟁 73주년과 여순특별법 제정 원년을 기념하는 전시회를 여수 예울마루 7층 전시실에서 개최하기도 했다. 

여순사건 역사화전 ‘불꽃, 여순 희망의 역사’를 주제로 열린 전시에서는 화가가 심혈을 기울여 그려낸 70여 점의 작품이 공개됐다. 역사화인 만큼 작품들은 해설이 곁들여졌다.

여수 오동도에서는 여순 10.19항쟁 최초의 기념관이 문을 열었다. 기념관에는 여순에 대한 사건 개요와 진행 상황 등 제주4.3으로부터 시작된 여순의 역사를 담아냈다. 기념관은 여수세계박람회 유치기념관에 마련돼 규모가 매우 협소한 편이나 최초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특히 무고한 민간인을 객관적 증거 없이 손가락으로 지목해 부역 혐의자로 분류한 ‘손가락 총’ 동상이 마련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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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손가락 총'을 나타낸 동상. 여순 당시 진압군은 손가락 총으로 부역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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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오동도 여순사건 기념관에는 당시 부역혐의자 심사방법이 소개된다. 미군용 군용팬티를 입었다거나 머리가 짧다는 이유로 무고한 시민이 학살되기도 했다. ⓒ제주의소리

여수엑스포 국제관 B관 1층 전시장에서는 동백꽃 화백으로 유명한 강종열 화백의 ‘존엄, 여수의 해원(解冤)’ 전시가 개최됐다. 

전라남도와 여수시가 주최하고 여수·순천 10.19사건 지역민 희생자 지원사업 시민추진위원회가 주관하는 이번 전시는 11월 18일까지 열린다.

화백은 이번 전시를 통해 여순항쟁을 통해 촉발된 서로 간의 갈등을 치유하고 해원과 상생의 길로 나아가야 함을 천명했다. 전시 주제인 ‘존엄, 여수의 해원’처럼 작가의 그림 곳곳에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고찰과 진정한 지역민의 해원을 바라는 감정이 담겼다. 

화백은 동백꽃 화백으로 불릴 정도로 그림에서 동백을 소재로 많이 활용하는데 이번 전시에서 동백은 국가폭력에 의해 ‘툭’하고 쓰러져 차가운 주검이 된 희생자들을 표현하면서도 새롭게 피어나는 꽃을 통해 진정한 해원과 숨겨지지 않는 진실, 희망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를 대표하는 작품은 8년여 만에 완성된 가로 15m에 달하는 작품 ‘여순사건’이다. 5년여 간의 준비와 3년여 간의 활동을 통해 그려진 그야말로 대작이다.

화백은 작품을 통해 용서와 화해라는 메시지를 무겁게 던진다. 그림 가운데는 민간인과 군인이 십자가 아래 서로 손을 맞잡고 고개를 숙인 채 악수하는 장면이 담겼다. 이들의 용서와 화해 없이는 여순의 진정한 해원을 이룰 수 없다는 것.

그림의 양쪽으로는 집이 불타는 장면과 절망에 빠진 주민들, 시체가 된 누군가를 끌어안고 통곡하는 모습 등 다양한 이야기가 담겼다. 

작품 한가운데에는 민간인과 군인이 서로 손을 맞잡고 고개를 숙인 장면이 담겼다. 용서와 화해를 통해 진정한 해원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화백의 진심이 담긴 장면이다. ⓒ제주의소리
작품 한가운데에는 민간인과 군인이 서로 손을 맞잡고 고개를 숙인 장면이 담겼다. 용서와 화해를 통해 진정한 해원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강종열 화백의 진심이 담긴 장면이다. ⓒ제주의소리
아! 동백, 캔버스에 유채, 162.2x130.3cm, 2021. ⓒ제주의소리
강종열, 아! 동백, 캔버스에 유채, 162.2x130.3cm, 2021. ⓒ제주의소리

이어 여수 신기동 갤러리노마드에서는 ‘여순항쟁의 기록’이라는 이름의 전시가 개최됐다. 오는 29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여순으로 유명한 역사학자 주철희의 기록과 다양한 작가의 작품이 마련됐다.

여순항쟁 용어에 대한 역사적 개념과 사건 개요, 당시 언론에 나타난 여순의 모습, 제주4.3 당시 다랑쉬 굴의 비극과 제주경비사령부 등 자세한 내막이 소개된다. 

제주경비사령부와 관련해선 ‘1948년 10월 11일 설치된 제주도경비사령부는 제주도에 특별한 사항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초토화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설치됐으며 여기 여수 주둔 제14연대 1개 대대 병력이 출동명령을 받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어 ‘여수주둔 제14연대의 제주도 출동명령은 반헌법적이며, 반시대적인 명령이었다. 제14연대 군인들은 부당한 명령에 항명했고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불만과 폭정에 시달리던 민중이 합세하면서 항쟁으로 발전했다’고 기술한다.

김상현 갤러리노마드 대표는 “제주 동포 학살을 거부한 국군 제14연대 봉기로 시작된 여순항쟁은 한국사회가 반공국가로 고착화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며 “이념과 사상의 대립, 국가권력의 일탈로 1만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역사”라고 말했다.

이어 “역사가 진실을 밝혔다고 해서 끝나버리면 의미가 없다. 어쩌면 역사의 진실은 지속해서 추구해야 할 인류의 과정”이라며 “역사의 진실이 영원히 기억되지 않으면 역사의 정의는 없다. 진실은 공식기록으로 표기, 교육, 기록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가권력이 자행한 민간인 학살 등에 대한 사건을 되짚어 봄으로써 역사의 진실을 망각하지 않고 기억하고자 한다”며 “이번 전시는 분단으로 야기된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을 새롭게 인식하고 승화시키는 새로운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 여수=김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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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9일까지 갤러리노마드에서 개최되는 '여순항쟁의 기록'.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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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노마드에 전시된 민간인 학살 규모 도표. 1949년 전남도 당국에 따르면 당시 희생자는 1만1000여 명으로 집계됐다. 여수지역사회연구소는 지리산 입산 금지가 풀린 1955년까지 전남북도와 경상도 일부의 희생자가 더 많을 것으로 예상, 1만 5000여 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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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금만, 오빠, Conte on Canvas, 90.0x72.0cm, 2021.ⓒ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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