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여·순 10.19항쟁 73주년] ⑦ 순천유족회 합동 위령제

“애기 업은 채로 한집 식구가 전부 죽기도 하고 애가 한 명 남은 집도 있고 우리 신전은 어린애 밥 주었다고 난리를 만나부렀어. 조사라도 한번 해보고 해야지(정달막 증언, 선희성 녹취, 순천 여순항쟁탑 기록 中).”

1948년 10월 19일 시작된 이후 1955년 4월 지리산 입산 금지 조치가 해제될 때까지 무수한 민간인이 희생된 대한민국 현대사의 아픈 기억 여순항쟁. 20일 오전 10시 30분께 순천시 연향동 팔마체육관 옆 여순항쟁탑에서는 순천유족회의 합동 위령제가 개최됐다. 

지난 19일 여수 이순신광장에서 전남도 주관 합동위령제 및 추념식이 진행됐지만, 순천유족회는 지역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별도 위령제를 진행한 것. 

이날 행사는 여순10·19범국민연대와 순천 YMCA, 여순항쟁 교육강사회, 순천환경운동연합 등 다양한 순천지역 시민단체와 제주4·3기념사업회, 제주다크투어가 함께했다.

ⓒ제주의소리
헌화 중인 유족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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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한 뒤 처음으로 맞는 위령제에서는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나타났다. ⓒ제주의소리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여순사건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난 뒤의 첫 추념식인 만큼 해원을 바라는 유족회의 간절한 마음이 담겼다. 유족들은 저마다 준비된 엽서에 희생자를 기리는 문구를 작성해 항쟁탑 주변에 걸기도 했다.

허석 순천시장은 추념사를 통해 “73년 세월 찢긴 가슴을 부여안고 울음을 삼겨가며 눈물마저 마른 유족의 아픔이 얼마나 크겠나”라며 “73년 전 이 땅에서 억울하게 쓰러져간 넋을 달래고 엉킨 실타래가 풀리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이어 유족들은 희생자를 추모하는 묵념을 진행한 뒤 제단 앞으로 가 헌향하며 고인의 넋을 달래고 독축문을 낭독했다.

유족회는 “살육의 시절을 만나 천길 나락의 어둠을 떠돌고 계실 혼령들이시여. 억울함과 분노의 세월 동안 역사의 뒤안길을 헤메고 계실 망자들이시여. 오늘 그 모든 통한을 털고 저희들의 술잔을 받아달라”고 운을 뗐다.

또 “시절이 바뀌어 21대 국회에서 특별법이 통과되고 19대 정부에서 특별법 제정을 공포했으니 이념과 사상으로 대립하던 시대도 이젠 끝날 거라고 생각한다”고 기대감을 내비첬다.

이어 “이번엔 반드시 제대로 된 조사와 진상규명으로 역사의 사실 앞에 국가가 잘못했음을 인정하고 진정한 사죄로 영령들과 우리 유족들의 명예회복을 이루게 해달라”며 “좌우대립의 갈등도 사라지고 반인권, 반생명, 반평화의 세태 또한 사라지게 해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늘 이 위령제가 유족 간, 지역 안의 반목과 불신을 치유하는 데 기여하게 하고 생명의 순결함과 소중함의 가치를 알게 해달라”며 “서로 화해하고 용서하는 마음으로 하나 되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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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항쟁 피해자 유족이 아버지를 그리는 마음을 엽서에 담아내고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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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순천 팔마체육관 옆 여순항쟁탑에서 진행된 순천유족회 합동위령제에 참여한 유족들. ⓒ제주의소리

독축문 낭독과 헌화가 끝난 뒤 행사 준비를 함께 도운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와 제주다크투어는 순천유족회가 마련해준 발언 기회를 통해 여순과 4.3의 연대를 강조하기도 했다.

강호진 제주4.3기념사업회 집행위원장은 “올해는 여순특별법제정과 제주4.3특별법 개정을 함께 이루며 기쁜 소식을 나눈 의미 있는 한 해”라며 “제주4.3에서 여순 10.19항쟁까지 올바른 역사를 향해 제주지역 시민단체도 동행하겠다”고 말했다. 

위령제가 끝난 뒤 취재기자와 만난 최경필 여순10.19범국민연대 사무처장은 “특별법 제정 이후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동안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던 14연대 군인 유족들도 문의할 정도”라고 지역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여순특별법은 제주4.3특별법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번에 시행령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비공식적으로 정부에 요구사항을 전달했다”며 “이달 중 시행령이 발표되면 문제를 살펴보고 공식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제주4.3의 ‘쌍둥이 사건’이라고 불리는 여수·순천 10.19항쟁은 4.3과 마찬가지로 끔찍한 이데올로기의 대립 아래 국가폭력에 의해 수많은 민간인이 끔찍하게 학살당한 대한민국의 아픈 기억이다. 

4.3을 진압하기 위해 제주로 내려가라는 명령에 ‘동포를 죽일 수 없다’고 반기를 들고 전남 일대를 장악한 여수 14연대를 진압하기 위해 출동한 정부군은 진압뿐만 아니라 거침없이 민간인 학살을 자행했다.

올해 6월 여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해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으로 향하는 물꼬가 트였다. 이를 통해 여순항쟁은 국무총리 소속 ‘여순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와 전남도지사 소속 ‘실무위원회’를 둘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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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항쟁 희생자를 위해 헌화하고 있는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와 제주다크투어 관계자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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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와 순천 일대에서 여순항쟁 답사를 진행하고 있는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와 제주다크투어는 이날 화환을 준비해 제단에 올리기도 했다. 그 옆으로는 제주교육청과 전남교육청의 합동 화환이 놓여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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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항쟁 희생자 유족은 엽서를 통해서라도 보고싶은 마음을 표현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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