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평화포럼] ‘제주4.3 기억과 기록의 연대’ 한홍구 성공회대 민주자료관장 ‘4.3과 오늘’ 기조강연

제주4.3 진상규명에 있어 기록물의 성과를 재조명하고 그 중요성을 논의하는 평화포럼이 시작됐다.

제주4.3평화재단은 21일부터 22일, 이틀간 제주칼호텔에서 열한 번째 제주4.3평화포럼 ‘제주4.3 기억과 기록의 연대’를 개최한다. 

포럼은 제주4.3 유족들의 염원인 제주4.3특별법 전부 개정안이 통과된 뒤 진정한 해원과 상생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 4.3의 기록 성과들을 조명하고 공유하는 장으로 마련됐다. 

이날 오후 5시 시작된 포럼은 한홍구 성공회대학교 민주자료관장의 ‘4.3과 오늘’ 기조강연으로 막이 올랐다.

한 관장은 강연을 통해 섬 밖에서 철저히 지워진 제주4.3과 끝난 이후에도 조작간첩 등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지난 아픈 기억들을 톺았다.

그는 “4.3항쟁에서 민중들은 폭도로 불리며 죽어갔다. 지금도 계속되는 끝나지 않은 세월로 희생자와 유족들은 아직도 고통받고 있다”며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같은 다큐멘터리도 나왔지만 아직도 말하지 못한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4.3은 섬 밖의 기억 속에서 철저히 지워졌고 우리는 가위에 눌려 비명 속에 죽어가는 답답한 이야기만 겨우 꺼내놓았다”며 “죽었다고 제대로 울어주지도, 그 죽음을 아무도 애도할 수 없었다. 터져나온 설움에도 잡혀가는 것이 현실이었다”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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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홍구 성공회대학교 민주자료관장은 ‘4.3과 오늘’을 주제로 섬 밖에서 철저히 지워진 제주4.3과 끝난 이후에도 조작간첩 등에 연루되며 고통받은 도민들의 아픈 기억들을 말했다. ⓒ제주의소리

한 관장은 소설가 한강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 중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라는 문구를 통해 산 자들의 고통을 표현하기도 했다. 

또 4.3을 간첩으로 연결하며 붙잡아 간 사례들을 나열하며 4.3을 말하는 사람들이 더 위축될 수밖에 없었던 시대의 비극을 언급했다. 

그는 “제주 인구가 대한민국 1%에 불과하다는데 간접 사건들을 보면 대부분이 제주 사람들로 이뤄져 있다”며 “바람과 돌, 여자를 뜻하는 삼다도는 이 시대 새롭게 정의될 수 있다. 재일동포와 아픔, 그리고 조작간첩이다”라고 주장했다. 

2006년 천주교인권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조작 간첩 사건 109건 가운데 약 34%인 37건이 제주 출신이라는 것. 이는 4.3과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면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한 관장은 “4.3이 발생했을 때 많은 사람이 일본으로 피해갔는데, 국가 입장에서 4.3 경력도 있고 제주 사회에 일본 조총련 관련자가 있으니 마음 먹고 표적 삼으면 걸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김종민 전 국무총리 소속 4.3중앙위원회 전문위원 역시 ‘4.3은 공산폭동이라고 오랫동안 군사정권에서 규정했다. 그래서 정권 입장에선 무언가 대중들에게 뜬금없이 조작간첩을 만들 수 없고, 조금이라도 설득력있는 모양새를 만들어야해서 제주인이 타겟이 됐다’며 설명한다”고 했다.

이어 김녕중학교 이방택 교장의 경우 일본에서 성공한 동창이 학교 증축을 위한 기금을 전달했는데 공안당국이 조총련계임을 알면서도 돈을 받았다며 공작금을 받은 것이라고 몰아갔단다.

이 사건은 1971년 1차 사법파동과 맞닿는다. 당시 서울형사지방법원 판사들은 현장을 보기 위해 제주도 출장을 나갔는데 이방택 측 변호사로부터 항공료와 숙박비 등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로 검사가 구속영장을 신청하게 됐고 이에 사법파동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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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제주4.3평화포럼은 '제주4.3 기억과 기록의 연대'를 주제로 21일~22일, 이틀간 진행된다. ⓒ제주의소리

한 관장은 “당시 법관들은 출장비가 따로 없어 증인신문 등을 위한 목적으로 출장을 가게 되면 자비를 들일 수밖에 없었고 피고인측은 당연히 현장까지 와주는 일이니까 비용을 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사건은 판사가 이익을 제공받은 일은 문제될 수 있지만, 당시엔 관행이었고 핵심은 검찰이 사법부에 대한 탄압을 의도한 것이라는 평가가 따르기도 한다. 

이에 서울형사지방법원 판사 37명이 검찰의 행동에 항의하며 사표를 제출, 전국 법관 역시 사법권 독립을 외치며 사표를 내면서 동참하게 돼 확대됐다. 그러자 박정희는 수사 중지를 명령하고 대법원장이 일을 수습토록 하면서 일단락 됐다. 

한 관장은 “어떻게 죽었는지 영문도 모르는 상황에서 해원은 절대 이뤄질 수 없다. 가해자를 기억하고 기록해 정리하며 역사에 이름을 남겨야 한다”며 “통탄의 세월 힘이 없어 법정에 세우지 못했더라도 역사의 법정에는 세워 기록을 남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4.3관련 기록물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작업을 하면서 가해자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다면 해원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말이다. 

이어 “화해는 호소조차 하지 못하게 억누른 것에 대한 사과를 받았을 때 가능하다. 가해자가 용서를 구하지 않는데 피해자가 어떻게 용서할 수 있나”라면서 “가슴에 칼날이 박히는 괴로움을 덜어내고 싶은 것은 피해자들이지만 이들이 화해와 용서를 구걸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가해자 부분에 대한 명확한 정리가 필요하다. 이런 부분을 포함한 회복과 화해의 정의 모델을 새롭게 마련해야 한다”며 “힘들게 여기까지 온 4.3이 정말 피해자 중심의 화해 모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정리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제주4.3평화포럼은 21일 한 관장의 기조강연과 개회식에 이어 22일 ▲1세션 ‘기억의 기록화와 유네스코’ ▲제2세션 ‘4.3기록물의 역사와 보존’ ▲제3세션 ‘기억과 기록의 연대·계승’ ▲종합토론 등이 진행될 예정이다.

1세션에서는 양정심 제주4.3평화재단 조사연구실장이 좌장을 맡고 △얀 보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심사소위원회 위원장 ‘역사를 증언하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사업과 기록’ △김지욱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전문위원 ‘국채보상운동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과정과 의미’ 발표가 진행된다. 

2세션은 이규배 제주4.3연구소 이사장이 좌장을 맡고 △박찬식 제주와미래연구원 연구위원 ‘제주4.3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적합성 검토’ △곽건홍 한남대 대학원 기록관리학과 교수 ‘4.3기록 아카이빙 전략’ 발표가 이어진다. 

3세션은 아네트 비에비오르카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 수석 연구원 ‘증인과 아카이브’와 전진성 부산교대 사회교육과 교수 ‘역사적 진실은 재현될 수 있는가? 역사적 상대주의, 트라우마, 인권사’ 주제발표가 이뤄진다. 

또 박희태 성균관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의 ‘기록에서 기억으로의 촉매-아카이브 영상’, 정병준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의 ‘미군정기 기록의 현재와 제주4.3기록의 미래’ 발표가 이어진다. 좌장은 허은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가 맡는다. 

마지막 종합토론에서는 △김태우 한국외대 한국학과 교수 △고유경 원광대 역사교육과 교수 △박선영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가 열띤 토론을 이어갈 예정이다. 

한편, 포럼 기간 제주4.3평화재단은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출입구에 전신 소독기를 설치하고 출입자 명부를 작성토록 하는 등 방역수칙을 준수한 채 행사를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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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관장의 기조강연을 경청하고 있는 청중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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