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휴공간 사업 대상지...제주문예재단 “안전진단 D등급” vs 서귀포시 “진단한적 없어”

옛 중문 소방서 건물(사진)을 문화 공간으로 활용하려는 제주문화예술재단과 서귀포시 간의 협약이 미뤄졌다. 중·장기 공간 운영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에 대한 반응이다. ⓒ제주의소리
옛 중문119센터 건물(사진)을 문화 공간으로 활용하려는 제주문화예술재단(문예재단) 사업이 추진 과정에서 삐걱대고 있다. ⓒ제주의소리

제주 서귀포시 중문동 소재의 중문119센터 건물을 문화 공간으로 활용하려는 제주문화예술재단(문예재단) 사업이 추진이 출발부터 삐걱대고 있다. 특히 재단은 해당건물의 안전등급을 D등급라고 서귀포시로부터 전달받았다고 밝혔지만, 관리를 맡고 있는 서귀포시는 “안전진단을 받은 적이 없다”는 완전히 상반된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다수의 문화 공간을 자리매김하는데 집중하는 상황에서, 예산·인력 등 준비가 부족한 공간 확대로 '내실'과 '조직 부담'이라는 이중고가 우려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문예재단은 올해 ‘제주문화예술섬 프로젝트’ 가운데 ‘연결 공간 프로젝트’를 핵심 사업으로 추진 중이다. 동부권역, 서귀포권역에 문화 공간을 발굴해 지역 문화 균형 발전을 도모한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조천리 조천 야학당, 중문동 옛 중문119센터 건물을 선택했다. 서귀포시는 공간을 문예재단에게 빌려주고, 문예재단은 공간을 받아 문화 공간으로 관리·운영한다. 재단은 올해 조천과 중문 공간에 각각 1억5000만원을 투입해 리모델링·시범 사업을 추진하고, 내년부터 본격적인 예술 문화 사업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옛 중문119센터 건물을 활용하고자 문예재단과 서귀포시는 협약을 체결할 방침이었지만 최근 체결 시기를 연장했다. 표면상으로는 ‘업무협약 내용을 수정·보강하기 위한 것’이라는 이유지만, 최근 도의회에서 제기된 '중장기 예산 확보' 지적을 의식한 조치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무엇보다 센터 건물에 대한 안전진단 여부를 두고 양 기관이 엇갈리는 형국이다. 재단은 서귀포시 자치행정과를 통해 건물 안전진단을 D등급으로 확인했다는 입장인데, 정작 서귀포시는 해당 건물에 대한 안전진단 자체를 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재단은 지난 7월 28일 서귀포시 자치행정과와 가졌던 회의의 회의록을 근거로 들고 있다. 제주의소리가 취재 과정에서 입수한 해당 회의록에는 자치행정과장 K씨가 “공간은 주민들이 함께 공유하는 방향으로 잡아야 한다”며 “해당 건물(옛 중문119센터)이 구조안전진단 D등급으로 나왔기 때문에 보강이나 이런 계획들이 나와서 사용해야 되는 거고, 아니면 이걸 멸실하고 신축을 해야 한다”고 매우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제주문화예술재단이 작성한 지난 7월 28일 문예재단 미래문화팀-서귀포시 자치행정과장 간담회 회의록. 취재 과정에서 제주의소리가 입수한 회의록에는 K과장이 "해당 건물(옛 중문119센터)이 구조안전진단 D등급으로 나왔기 때문에 보강이나 이런 계획들이 나와야 사용 가능하고, 아니면 멸실하고 신축해야 하지만 재정적 부분이 검토 안된 상황"이라고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그러나 K과장은 26일 [제주의소리]와의 통화에서 “당시 재단 직원들이 찾아온 적은 있지만, 자신이 D등급이라고 말한 적은 없다. 옛 중문119센터 건물 역시 2019년 12월 소방서로부터 재산관리를 인수받은 이래, 석면 조사는 진행했지만 안전진단을 받은 적이 없다”고 발언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안전진단 여부에 따라 예비-정밀안전진단 등의 절차를 밟아야 하는 과정을 고려하면, 안전진단의 사실 관계는 사업 진행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전망이다. 옛 중문119센터 건물은 지상 3층으로 1985년 1월 준공됐다. 대지 439㎡, 연면적 548.29㎡다. 

이런 문제뿐만 아니라 사업 타당성에 대한 의문도 꾸준히 나오는 상황이다. 사업 추진을 위해 문예재단과 서귀포시가 체결하는 협약 내용을 보면 ▲재단이 공간 운영을 소홀할 경우 계약을 취소할 수 있는 조항 ▲공간에 대한 서귀포시의 지도·점검 조항 ▲공간 사업비는 재단(수탁자)이 부담하는 조항 등이 포함돼 있다. 문예재단 입장에서는 확실한 인력·재정 계획이 없다면 조직뿐만 아니라 일선 직원들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재단이 옛 중문119센터 건물을 위해 올해 마련한 예산은 1억5000만원. 문제는 2025년까지 국비 지원 사업 선정을 가정해 최대 20억원까지 예산을 마련하고, 만약 국비를 확보하지 못할 경우 재단 예산으로 운영하겠다는 입장이다. 국비 공모 사업의 선정이라는 불확실성뿐만 아니라 ‘안되면 재단이 부담한다’는 것은 아니면 말고 식의 태도와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서귀포시가 다양한 ‘방어 조항’을 협약에 추가하는 이유도 이런 불안한 배경과 맞물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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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중문119센터 유휴공간 문화재생 중장기 운영계획안 중 예산 조달계획서 부분. 사진=이상봉 도의원.ⓒ제주의소리

이와 관련해 더불어민주당 이상봉 도의원(노형동을, 행정자치위원장)은 지난 22일 보도자료를 통해 옛 중문119센터와 같은 사업인 조천읍 야학당도 ▲중·장기 운영계획과 예산 확충 방안 부실 ▲야학당 조성 추진단 위원이 실시설계·감리 담당 등의 문제가 우려된다고 피력했다.

그러면서 “행정의 유휴공간을 활용해 지역주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변신하는 것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면서 ”중장기적인 예산 확보 방안 마련도 없이 일단 시작해 놓고 보자는 것은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사업 담당 부서, 문예재단 미래문화팀 P팀장은 “이상봉 의원이 지적한 20억원 예산 문제나 지적 사항에 대한 사실 관계 여부는 직접 찾아가서 설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특히 “건물 특성에 맞는 국비 공모 사업을 적극 발굴·응모한다면 사업비가 20억원도 50억원도 될 수 있다”는 유동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충분한 예산확보, 운영계획이 세워지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올해는 시설 개·보수와 파일럿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내년부터는 실질적인 문화 예술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다. 3년에서 5년 정도 운영하면 공간이 지역에 안착되고 시민들의 반응도 확인하면서, 서귀포시와 협의하며 발전적으로 공간 운영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재단은 이미 예술공간 이아, 산지천 갤러리, 김만덕 객주, 예술곶 산양과 최근 제주도로부터 위·수탁을 받은 가파도 레지던시를 운영하고 있고 아트플랫폼도 추진 중이다. 

예술공간 이아, 산지천 갤러리 등은 공간 개관 이후 운영비 부족 문제로 애를 먹었다. 예술곶 산양은 지난해 시범 운영을 거쳐 올해 정식으로 문을 열었고, 가파도 레지던시 역시 올해부터 재단이 맡아서 운영하고 있다. 덩달아 이승택 이사장이 추진한 인력·조직 개편은 큰 생채기를 남기고 여전히 잔불이 남아있는 상황이다.

재단은 중문119센터를 ‘전시+레지던시+네트워킹’ 공간으로 운영하고, 조천야학당을 시민 공공 문화공간으로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시민 향유 기회를 늘리고 창작 여건을 넓히는 시도 자체는 일면 바람직하다. 하지만 그런 시도를 뒷받침할 관리 방안이 균형 있게 병행돼야 한다는 사실은, 재단의 다른 공간 사례들을 통해 익히 확인되고 있다. 때문에 옛 중문119센터, 조천 야학당을 포함한 공간 사업이 이승택 이사장의 치적을 위해 무리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시선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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