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4월20일 제주신라호텔에서 열린 당시 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정상회담 소식을 전한 4월21일자 경향신문 1면 보도 내용. [사진출처-경향신문]
1991년 4월20일 제주신라호텔에서 열린 당시 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정상회담 소식을 전한 4월21일자 경향신문 1면 보도 내용. [사진출처-경향신문]

30년 전 제주도 개발의 시작을 알린 전직 대통령 노태우 씨가 향년 89세의 일기로 26일 생을 마감했다.

노 씨는 최근 병세가 악화돼 서울대학교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아 왔다. 그동안 의료진의 집중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병상에서 일어서지 못했다.

1932년 12월4일 경북 달성군 공산면 출신인 노 씨는 경북고와 육군사관학교를 거쳐 군인의 길에 들어섰다. 1956년 육군 보병 소대장을 거쳐 1979년 수도경비사령관에 올랐다.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되면서 그해 12월12일 육사 11기 동기생인 전두환 전 대통령과 하나회를 중심으로 군사쿠데타를 일으켰다.

전두환 군부시절인 1981년 육군 대장으로 예편후 민주정의당에 입당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이듬해 초대 체육부장관과 내무부장관을 거쳐 1988년 제13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노 씨는 1988년 4월 제주도 순시 자리에서 당시 이창수 도지사에게 제주를 세계적인 관광지로 개발하도록 지시했다. 제주도개발특별법 논의가 바로 이때부터 시작됐다.

당시 노태우 정부는 제주를 한국의 하와이로 개발한다는 원칙 아래 카지노 확대 방향을 정했다. 민자유치에 대한 제도 개선도 이때 밑그림이 그려졌다.

대통령 지시에 따라 민자당 주도로 1991년 12월 제주도개발특별법이 제정됐다. 이는 현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의 근간인 도내 첫 개발법이다.

이 과정에서 제주도개발특별법 제정반대 범도민회가 구성되는 등 지역사회의 반대 운동이 거셌다. 범도민회는 재벌의 마구잡이식 개발로 자연환경 파괴가 가속화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급기야 1991년 11월7일 나라사랑청년회 건물 옥상에서 양용찬 열사가 제주도개발특별법 제정 저지와 민자당 타도를 외치며 분신한 뒤 투신하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 나이 26세였다.

이와 관련해 노 씨는 “제주도민들이 원해서 법을 만든 것인데 오해가 있는 것 같다. 제주도개발특별법은 개발 이익이 주민들에게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노 씨는 1991년 4월 서귀포시에서 당시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열어 제주를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교류의 장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유족은 부인 김옥숙 여사와 딸 소영, 아들 재헌이 있다.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질 예정이다. 노 씨는 1997년 내란, 군사반란 등의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전직 대통령 예우를 박탈당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