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레아트센터 연극 ‘챙’

ⓒ제주의소리
연극 '챙'의 출연 배우 정민자. ⓒ제주의소리

1인극 ‘챙’은 오케스트라 심벌즈 연주자인 주인공 대신 그의 아내 혼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를 풀어낸다. 클래식 연주곡 정도가 효과로 가미될 뿐 오롯이 대사에 집중한다. 주요한 소재인 심벌즈가 무대에서 울리는 장면은 딱 한번 뿐이다. 그렇게 누군가의 기억을 통해 차분히 되돌아보는 한 사람의 인생을 통해서, 연극은 인생의 목적과 가치에 대해 성찰하게 만든다.

적어도 중년 이상의 심벌즈 연주자 함석진이 경비행기 사고로 실종된 지 1년 째. 그의 아내 이자림(배우 정민자)은 생전 배우자가 찾던 연습실을 찾아 오케스트라 동료들과 함께 남편을 기억한다.

작품은 아내의 입으로 두 사람이 인연을 맺은 풋풋한 시절부터 이별의 순간까지를 회고한다. 하숙집에서 처음 만난 더벅머리 음대생, 우연한 기회로 다시 이어진 인연, 부모의 반대를 무릅쓴 결혼, 연주자 경력이 단절될 뻔 했던 위기의 순간과 재기, 그리고 예상치 못한 실명 위기와 가족과 이별한 마지막 여행. 

묵묵한 성격으로 나름의 굴곡진 궤적과 극적인 결말을 지닌 함석진의 인생에 덧붙여, 작품은 ‘심벌즈’라는 악기 특성을 통해 메시지를 부각시킨다.

하다못해 악기 연습실에서도 반기지 않는 투박함에 때로는 긴 연주곡에서 한두 번 등장하거나 아예 빠지기도 하는 존재감. 그러나 심벌즈 연주자는 곡 처음부터 박자를 세면서 기다린 끝에 절정의 순간을 장식한다. ‘침묵 없이 소리 없고, 소리 없이 침묵도 없다’는 함석진의 유서는 심벌즈 악기에 대한 철학적 평가인 동시에, 어쩌면 고단하게 느껴질 삶의 무게가 당신을 빛나게 하는 과정임을 말해준다. 

돌이켜볼 때 작품의 첫 인상은 인생에서 언젠가는 쩌렁쩌렁 귀청을 울리는 심벌즈의 ‘챙’ 울림 같은 최고의 순간이 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러 번 곱씹을 때마다 작품은 어느 특정 한 순간 보다는 인생 전체에 대한 고찰로 다가왔다.

심벌즈에게는 클라이맥스를 화려하게 장식하기 위해서만이 아닌 그 순간을 기다리는 모든 연주 과정이 가치 있다. 그렇듯 나를 빛내줄 ‘그 순간’ 보다, 비록 한 없이 맴도는 것 같아도 살아가는 모든 장면이 실은 우리에게 가장 소중하다는 재발견이다. 극 중 이자림이 남편의 심벌즈를 힘껏 치자 쩌렁쩌렁한 마찰음 뒤에 울림의 여운이 더 길게 소극장을 채우는 것처럼.

국내 대표 극작가 이강백이 쓴 연극 ‘챙’은 배우 정민자라는 인물과 결합해 큰 감동을 선사한다. 음악 한 길을 걸어가면서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는 위기를 가까스로 극복하며 끝까지 예술가로 남은 작품 속 심벌즈 연주자를 보며, 배우 정민자와 작품 연출을 맡은 강상훈은 남다른 감정이 들지 않았을까. 딸이 작품을 먼저 보고 엄마 정민자에게 ‘챙’을 추천했을 때는 연극 안에서 낯설지 않은 뒷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짐작해본다. 

앞서 설명했듯 무대 위에는 배우 한 명 뿐이다. 음악이 종종 등장하지만 대사 중심의 연극이기에 더욱 정적으로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앞으로 남은 시간이 지나온 나날보다 적거나, 한 걸음 한 걸음을 떼기 어려운 순간을 보내고 있다면 연극 ‘챙’은 당신을 차분하게 위로해주는 작품이 되리라 본다.

‘챙’은 20일부터 30일까지 세이레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 시간은 오후 7시 30분이다. 관람료는 1만5000원, 청소년 8000원.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