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홍의 세상 사는 이야기] (85) 군주민수와 비리법권천의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라퐁텐 우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한 나라의 왕이었던 사자가 죽자, 짐승들은 새로운 왕을 뽑기 위해 모였다. 전부 왕관을 써보았으나 아무에게도 맞지 않았다. 그때 원숭이가 왕관을 쓰고 곡예사처럼 재주를 부리자, 그게 재미있어서 동물들은 원숭이를 왕으로 추대했다. 후에 여우가 보물이 있는 곳을 알려주겠다며 원숭이를 유인하여 함정에 빠뜨린 다음, “그대가 우리를 지배할 수 있는가?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놈이...”라고 조롱했다. 그제서야 원숭이는 왕관을 쓰는 일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가당치 않다는 걸 깨닫고 주저 없이 왕위를 버렸다.

2022년 3월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선출하는 달인데, 여당의 대선 주자는 이미 확정되었고 제1야당은 오늘 주자를 발표한다. 돌아보면 정부 수립(1948년) 이후 73년 동안 모두 12인이 대통령 자리에 앉았다. 훌륭한 업적을 남긴 대통령도 있었지만 대부분 끝이 좋지 않게 물러났다. 왜일까? 꿀처럼 달콤한 권력의 맛을 누리기만 했지, 그 권력으로 무엇을 해야할지 모른 채 허둥대다가 임기를 마쳤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 원인으로 ‘제왕학’에 대한 공부 부족을 들고 싶다. 제왕학은 제왕(대통령)이 되기 위한 지침서 또는 교본이랄 수 있는데, 서양의 제왕학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고 동양의 제왕학은 중국 역대 왕조 군왕의 정치지침서인 사마광의 《자치통감》이 있지만 역시 고전은 《논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자로(子路)가 공자에게 “정치를 하려면 무엇을 으뜸으로 삼아야 하느냐”고 묻자, 공자는 “반드시 정명을 해야 한다”고 답했다.

또 제경공(齊景公)이 정치하는 도리를 물었는데 공자는 군군신신 부부자자(君君臣臣 父父子子), 곧 “임금은 임금, 신하는 신하, 애비는 애비, 자식은 자식 노릇을 해야 한다”고 했다. 君-臣-父-子의 이름을 지녔으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해야 한다. 이게 공자의 정명론(正名論)의 요체이다.

맹자는 공자의 정명론에 따라 이렇게 주장한다.

“국가는 도덕의 조직이므로 국가의 통치자는 도덕적인 지도자여야 한다. 만일 군주가 덕성을 갖추고 있지 못하면 백성들은 혁명을 일으킬 수 있고, 군주를 죽여도 시역(弑逆)의 죄를 범하게 되지 않는다.” 덕을 잃은 군주를 내쫓는다는 중국의 방벌(放伐) 사상은 중국사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고 1911년 신해혁명을 거쳐 중화민국 수립의 계기가 되었다.

정명론에 의하면 통치자의 본질은 왕도(王道)의 실현이다. 통치자(대통령)가 왕도(민주주의와 헌법적 가치)를 따라 정치를 하면 백성이 따를 것이요, 왕도를 벗어나면 민중은 그를 경멸하고 혐오한다. 군주민수(君舟民水)는 민중이 군주라는 배를 띄우지만 뒤집기도 한다는 뜻이다. 비리법권천(非理法權天)은 권력이 법을 누르고 이기지만 그 어떤 권력도 하늘을 거스르지 못한다는 진리를 담고 있다. 이 두 가지는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이 귀 담아 들어야 할 격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 위기에 몰렸을 때 광화문에 모인 군중들은 “이게 나라냐!”고 외쳤다. 필자는 그때 칼럼을 쓰면서 “대통령이 동장보다 못하다"고 그를 나무랐다.

어떤 자리든 지도자가 되려면 그 역할에 걸맞는 그릇(깜냥)이 돼야 하는데, 이게 안 되면 그 자신은 물론 조직(나라)도 엉망이 되고 난장판이 된다.

자신이 대통령 감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라퐁텐 우화의 원숭이처럼 스스로 단에서 내려오는 결단을 해야 한다. 사진=픽사베이.

그러므로 대권에 도전하는 야망가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첫째, 나는 역사의 부름에 응하고 시대의 요청에 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환언하면 세상을 바꿀 능력이 있는지 여부다. 정치는 세상을 바꾸는 힘이고, 정치가는 소수의 힘을 다수의 힘으로 바꾸는 사람이다. 그래서 사회적 갈등 해소와 국민통합은 정치의 본령이 된다.

둘째, 현재 이 나라가 당면하고 있는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할 방안이 있는가? 외교·안보·통일·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노동·보건·복지 등 산적한 현안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내외 정세와 판세를 읽는 심원한 통찰력과 강력한 추진력이 있어야 한다.

셋째, 대한민국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미래 비전과 전략이 있는가? 후손들에게 어떤 미래를 물려줄 것인가는 정치인의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정치는 ‘내일의 세계’를 보여주는 청사진이다.

이상과 같은 질문에 비추어 볼 때, 내가 대통령 감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라퐁텐 우화의 원숭이처럼 스스로 단에서 내려오는 결단을 해야 하리라. 그러나 과거와 현재의 사례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한국인은 ‘원숭이의 용기’조차 본받지 못하는, 동장보다 못한 대통령을 또다시 만나게 될지 모른다.

바라건대 22세기를 향해 항해하는 대한민국호의 선장은 국민 개개인의 에너지를 하나로 결집하여 세계를 선도하는 복된 나라, 번영하는 한국의 길잡이가 되어야 할 것이다. / 장일홍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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