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218) 《이능화: 조선무속고》 등 13권

사진=심규호.
다행 이미 중요 심방들의 본풀이를 우리말로 풀이한 책들이 나와 있으니 그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본격적인 연구서들도 적지 않다. 사진=심규호.

제주 좋아하기

제주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많은 이들이 좋아하고 가보고 싶어 하는 섬이다. 덕분에 몰려오는 관광객들로 제주는 언제나 만원이다. 하여 제주는 2002년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을 마련하여 국제적으로 인적, 물적 자원이 자유롭게 이동하고 교류하며, 자유무역과 국제적인 관광이 활성화되는 토대를 깔았고, 2006년에는 독자적인 자치권을 갖는다는 제주특별자치도로 승격했다. 사실 필자는 국제적으로 자유로운 도시라는 말을 아직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진짜 제주가 인적, 물적, 그리고 자본의 왕래가 자유로운 지도 잘 모르겠다. 다만 이런 말은 할 수 있다.

제주를 진정 좋아하고 이해하려면 제주사람을 알아야 한다. 제주사람을 알려면 제주 역사를 알아야 한다. 제주 역사를 알려면 제주인의 삶과 신앙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제주의 신앙을 알려면 제주의 굿으로 들어가야 한다. 제주의 굿으로 들어가려면 본풀이를 읽어야 한다. 본풀이를 읽다보면 비로소 제주신화의 초입에 들어선다. 

제주신화를 만나러 가는 길은 이렇듯 결코 만만치 않다.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우선 아속雅俗의 차별에서 벗어나 아속공상雅俗共賞의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무속과 종교를 차별하거나 신화와 전설을 현실과 동떨어진 옛날이야기쯤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사실 “무속, 종교, 미신, 사이비 등등 이런 말들은 실체에 관한 것이 아니라 그저 하나의 개념일 뿐이다.”(하순애, 《제주신당이야기》, 206) 경전經典의 이데올로기에 흠뻑 빠져 있으면 역사적 사실 또는 진실이 그 배경이거나 뒤편에 자리한다는 눈치 채지 못한다. 이른바 아날학파가 언급한 ‘장기지속’의 역사를 이해하지 못할뿐더러 “그리지 않은 곳도 모두 그림이다(無畫處皆是畫)”는 의미를 알 수 없다. 굳이 알고 싶지 않으면 몰라도 된다. 하지만 제주신화, 제주의 굿, 제주인의 삶과 신앙, 제주 역사를 모르면 제주를 좋아하거나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다.  

제주 굿과 제주신화

제주신화로 들어가려면 우선 제주의 굿부터 알아야 한다. 제주신화의 태반이 굿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굿의 사전적 정의는 “무당(심방)이 신을 청하여 환대하고 환송하는 과정으로 구성된 무속의례이다.” 제주 굿 역시 이러한 정의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 모시는 신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많을뿐더러 본풀이의 비중이 크고, 마을이 형성된 곳곳마다 수많은 신당이 주민(신앙인)들의 삶과 죽음을 관통하는 신성한 장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우선 제주 굿은 크게 네 가지 부분으로 나뉜다. 청신請神부터 송신送神까지 여러 제차祭次로서 기본 의례가 있고, 두 번째로 초공, 이공, 삼공, 문전 등 여러 본풀이가 있으며, 세 번째로 불도, 일월, 시왕 등 맞이굿이 있으며, 마지막으로 세경놀이, 전상놀이, 영감놀이 등 놀이(희곡무가)가 있다.(현용준, 《제주도 무속과 그 주변》 40~42) 소규모의 간단한 비념의 경우와 달리 십 수일간 계속되는 큰 굿의 경우 이러한 내용이 모두 포함된다. 

이 중에서 신화와 관련이 있는 부분은 신들의 내력을 풀어내는 서사무가인 본풀이다. 본풀이는 제석본풀이의 경우처럼 우리나라 곳곳에서 전승되는 서사무가를 말한다. 찬송, 찬불가처럼 심방(무당)이 신을 찬양하면서 그 신의 내력이자 근본을 풀이한다. 하지만 제주의 본풀이는 우리나라 서사무가의 전통과 이어지되 “제주도 선주민의 수렵생활에서 농경사회로 이향移向 과정의 자연을 배경으로 한 여러 가지 생활상의 문화를 신화화하여 설명하고 있다.”(진성기, 《무속학》 21)는 점에서 특별하다. 제주는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이고, 한 가운데 한라산이 우뚝 솟아 있으며, 사시사철 바람이 세고, 어로와 목축, 그리고 농업이 주된 생업이다. 그러니 제주의 신들은 용왕, 바람, 목축, 어로, 농업과 관련이 깊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신화의 보고 본풀이

굿의 근본이 되는 신의 내력을 풀어내는 서사무가, 본풀이는 크게 일반본풀이와 당신본풀이, 조상신본풀이로 대별된다. 천지창조와 만물의 형성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보편적인 삶을 다루는 일반본풀이는 천지 창조신화를 담고 있는 <천지왕본풀이>를 비롯하여 <초공본풀이>, <이공본풀이>, <세경본풀이>, <문전본풀이> 등이 있고, 마을 당신의 내력을 풀어내며 마을 형성의 유래를 읊는 제주 특유의 당신본풀이는 <송당본풀이>, <궤눼깃또본풀이>, <토산여드렛당본풀이>, <칠머릿당본풀이>, <서귀본향본풀이>, <세화본향당본풀이> 등이 있으며, 조상신본풀이는 <구실할망본풀이>, <양씨아미본풀이> 등이 있다. 이외에도 <허웅애기본풀이>, <군웅본풀이> 등 특수한 본풀이도 있다.

이렇듯 마을마다 형성 내력이 다르고 신당마다 모시는 신이 다르니 그 내용이 또한 다를 것이고, 심방마다 버전이 또한 다를 것이다. 그러니 《제주도 무가 본풀이 사전》(진성기)이 나올 만하다. 이른바 1만 8천신이 좌정하고 계시다고 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 신들은 본향당(예를 들어 송당본향당)에서 갈라져 각지의 신당에 좌정하기도 하고, 가짓당의 경우처럼 여성이 시집가면서 새롭게 만들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기성 종교의 경우처럼 일목요연하게 유일한 하나님에서 파생된 족보나 계보를 지닌 것이 아니다. 어떤 신은 하늘에서 내려왔고, 어떤 신은 땅에서 용출했으며, 또 어떤 신은 외지에서 들어온 내방신來訪神이고, 심지어 얼마 전에 돌아가신 집안, 동네 사람이 신으로 등극하기도 한다.  

아이고 어렵다.

제주 굿을 이해하는 데 본풀이가 이리 중요하다고 하여 곧 바로 본풀이를 보겠노라고 달려들면 ‘헉’하고 만다. 예를 들어 제주 송당리에 자리한 송당본향당(백줏당)의 당본풀이를 보면 중국 강남천자국의 백모래밭에서 솟아난 백주또(백줏또, 금백주)와 한라산에서 사냥하던 소로소천국이 혼인하여 아들 18명에 딸 28명, 손주 78명, 도합 일가 378명이 이후 제주 전역으로 흩어져 신당에 좌정했다고 하여 제주 송당계 신화의 원조로 여기게 되었다. 하여 그 자손들과 그들이 자리한 신당을 이렇게 구송하고 있다. 

“웃손당은 금백조, 셋손당은 세멩조, 일손당은 소로소천국, 아들 애기 예레돕, 똘 애기 쑤물 어돕, 가지가지 송애송애 버러진, 큰 아들은 거멀 문국성, 둘쳇 아들은 대정 광정당, 시쳇 아들은 웃내끼, 늿쳇 아들은 내왓당광 경양당 초지허고……”

진성기, 《제주도무가본풀이사전》, 416쪽

알 수 있을까? 대부분이 제주어인데다 채록된 것이기에 망정이자 실제 심방이 구송하는 내용을 들으면 더더욱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을 터이다. 그러니 쉽게 해석한 책이 필요하다.
“둘 사이에 아들이 열여덟, 딸이 스물여덟, 손자들까지 가지가지 송이송이 벌어져, 번성하고 또 번성했다. 큰아들은 거멀 문곡성, 둘째아들은 대정 광정당, 넷째 아들은 정의 시선당, 다섯째 아들은 평대리 멍동소천국…….”(김순이, 《제주신화》, 334)

제주신화에 담겨 있는 본풀이는 심방이 구송하는 것이니 당연히 제주어로 되어 있고, 내용 자체가 상징과 은유로 범벅이 되어 있어 쉽게 다가서기 어렵다. 게다가 “현재까지 수집 채록된 본풀이가 무려 996편이나 될 정도로 방대하다.”(한진오, 《모든 것의 처음, 신화》, 31) 다행 이미 중요 심방들의 본풀이를 우리말로 풀이한 책들이 나와 있으니 그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본격적인 연구서들도 적지 않다. 한 편의 시를 읽을 때도 해설이 필요하지 않은가. 여러 연구서를 보면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다.

신당을 향하여

제주의 굿, 그리고 본풀이를 통해 제주신화의 면면을 살폈다면 이제 비로소 운동화 끈을 질끈 매고 신당을 찾아나갈 때이다. 예로부터 당 오백, 절 오백이란 말이 전해오는데, 과연 당이 얼마나 있었고, 현재는 얼마나 되는지 연구자들마다 각기 다르다. 18세기 이형상 목사가 임오년 12월 20일에 불태웠다는 신당의 숫자는 129개소(당시 인구는 6만여 명)인데, 현재는 340여 곳, 또는 390여 곳이라고 한다. 신당은 물론 신이 좌정하신 곳이자 신앙인들이 모여 비념하는 곳이며, 심방이 굿을 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신당은 그저 그런 장소만이 아니다.

이능화는 《조선무속고》 <제주의 무풍과 신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주의 풍속은 음사를 숭상한다. 그래서 산이나 숲, 강이나 연못, 구릉이나 평지, 나무와 바위에서 모두 제사를 한다. 해마다 초하루부터 정월 보름까지 무격들이 함께 신의 깃발(神纛)을 들고 귀신 쫓는 놀이(儺戲)를 한다. 이때 징과 북을 앞세워 마을을 돌아다니면 사람들은 재물과 곡식을 아끼지 않고 내놓고 제를 지낸다.

《조선무속고》, 459쪽

제사를 지내는 곳, 즉 신당은 이렇듯 예로부터 산과 숲, 강과 연못, 구릉과 평지, 나무와 바위 등 거의 모든 장소를 망라했다. 그래서 문무병은 “제주의 마을은 어딜 가나 신을 모신 성숲이 있다.”고 하여 신당을 포함한 성스러운 숲으로 제주민의 영적인 공간을 표현했다. 탐라국의 발상지인 모인굴(모흥혈), 영적인 하늘나무 ‘폭낭(팽나무)’이 자생하는 숲, 제주인의 탯줄을 태워 묻은 땅(태손땅, 본향), 본향당을 둘러싸고 있는 숲 등등이 모두 성숲이라는 뜻이다.(문무병, 《제주의 성숲 당올레 111》, 12) 이해할 수 있다. 이렇듯 신당은 산자와 죽은 자가 만나는 곳이자, 삶의 고통과 애환을 풀어내는 곳이며, 무엇보다 조상신을 모시는 사당祠堂의 역할을 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제주적’이다. 제주 신당에서 모시는 신들이 “끗발 좋은 신의 이름도 더러 있기는 하지만 육지부와 비교하면 친근하고 소박한 이웃의 호칭이 상대적으로 많은”(하순애, 183) 까닭이 여기에 있다. 다시 말해 신당에 모셔진 조상신들은 영웅이 아니라 보통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신당을 찾아가는 길, 무턱대고 갈 것이 아니라 몇 권이라도 책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한 손에 책 들고, 다른 한 손에 비념의 갈망을 들고 허위허위 신당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제주신화학의 문화혈맥

1970년대는 새마을운동의 ‘새’는 미래지향의 그릇된 형태로 과거부정이라는 우를 범하는 단초였다. 새로움이란 언제나 낡음의 계승을 토대로 해야 한다는 기본을 무시하고, 과거의 것이라면 무조건 뜯고 찢어 훼멸시킴으로써 전통의 단절과 정신적 적막 또는 공황상태를 몰고 왔기 때문이다. 제주에서 그것은 300여 년 전 제주의 풍습을 담은 <탐라순력도>에 나오는 <건포배은巾浦排恩>에서 불타오르는 신당을 연상케 한다. 아래에는 건포(지금의 건입동 포구)에서 유자儒者들이 북면하여 하해와 같은 임금의 은혜에 감읍하고 있고, 위에서는 백성들의 신앙 공동체인 신당이 불에 타고 있다. 이데올로기에 한 번 휩싸이면 똥인지 오줌인지 잘 구분하지 못하기 마련이다. 

신당은 불에 탔지만 없어질 수 없다. 마찬가지로 새마을운동이 민속을 철저하게 탄압하여 지금은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된 제주칠머리당 영등굿조차 사라질 지경에 처했지만 그것은 그것이고, 저것은 또 저것이니, 탄압이 있으면 반발이 있기 마련이고, 끊김이 있으면 이어짐도 있는 법이다. 하여 민속에 대한 연구와 재연(탈춤과 민요)이 되살아나기 시작한 것이 또한 1970년대이다. 이렇듯 1970년대는 민속에 있어 불운과 행운이 교차하는 시기였다. 하지만 뿌리가 없으면 어찌 줄기가 생기고, 가지와 잎사귀가 무성해질 것인가. 

제주민속에 관한 단편적인 기록(사서에 실려 있는)을 한데 묶은 것은 아마도 이능화의 《조선무속고》(1927년)가 아닌가싶다. 그 안에 제주의 민속에 대한 내용은 비록 많지는 않지만 이후 민속연구에 실마리가 되었음이 분명하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 아키바 다카시(秋葉 隆)는 제주에서 무제巫祭에서 쓰이는 신가神歌(본해本解, 본풀이) 16편(서귀봉향당본해, 천주왕 본해, 문전본해 등)을 채집했다고 하는데(석주명, 《제주도수필》 152~153), 종종 그들과 동행한 송석하, 손진태, 임석재는 해방 이후 민속학의 선하를 이루었다. 이후 구비문학에 관심을 가진 국문학자들이나 인류학을 전공한 학자들의 민속 조사와 연구는 눈부시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제주학, 또는 제주신화학의 문화혈맥은 어떻게 이어지는 것일까? 그리하여 어떻게 계승, 발전될 것인가? 

맺는 말 

여러 해 전 제주의 한 인쇄소에서 한어로 번역한 제주 안내책자를 교열하면서 동일한 책의 영문번역서를 흘깃 보다 웃음을 터뜨린 적이 있다. Heart Room. 얼씨구, ‘심방心房’이렸다. 석주명은 신방神房으로 썼는데, 여기서는 마음의 방으로 썼구나. 말도 안 되는 오역이나 심방이 마음속에 있는 방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또 하나의 방, 그것은 현실 또는 실제의 방이 아니라 현실 너머, 실제 밖에 존재하는 방이다. 그 속에 희망이거나 꿈 또는 인간이 아닌 별유동천別有洞天이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것이 바로 살아 있는 사람을 통해 현현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은 누구나 심방이 무당을 지칭하는 제주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확신할 수 없다. “제주를 바탕으로 한 창조적 문화의 발신처는 바로 제주신화다.”라고 하면서 “세계적인 신화의 보고를 지켜야 한다.”(허남춘, 《설문대할망과 제주신화》, 153)는 말이 자꾸만 귓가에 뱅뱅도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참고문헌

이능화: 조선무속고, 서영대 역주, 창비, 2008년 
석주명: 제주도 수필, 서귀포문화원, 2008년 재판(초판 1968년)
현용준: 제주도 무속과 그 주변, 집문당, 2002년
진성기: 무속학, 제주민속연구소, 2005년 / 제주도무가 본풀이 사전, 민속원, 2016년
문무병: 미여지벵뒤에 서서, 알렙, 2018년(제주신화 이야기 시리즈3) / 제주의 성숲 당올레 111, 황금알, 2020년
하순애: 제주도 신당 이야기, 제대 출판부, 2008년
허남춘: 제주도 본풀이와 주변신화, 제대 탐라문화연구소, 2011년 / 설문대할망과 제주신화, 민속원, 2017년  
양영수, 세계 속의 제주신화, 보고사, 2011년 
김순이: 제주신화, 여름언덕, 2020년
한진오: 모든 것의 처음, 신화, 한그루, 2019년

# 심규호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 졸업, 동대학원 중문학 박사. 제주국제대 교수, 중국학연구회, 중국문학이론학회 회장 역임. 현 제주중국학회 회장, (사)제주문화포럼 이사장.

저서로 《육조삼가 창작론 연구》, 《도표와 사진으로 보는 중국사》, 《한자로 세상읽기》, 《부운재》(수필집) 등이 있으며, 역서로 《중국사상사》, 《중국문학비평소사》, 《마오쩌둥 평전》, 《덩샤오핑과 그의 시대》, 《개구리》, 《중국문화답사기》, 《중국사강요》, 《완적집》, 《낙타샹즈》 등 70여 권이 있다.

shim42star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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