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홍의 세상사는 이야기] (86) 도(道)란 무엇인가?

1.

오래 전, 20대 때 노자의 ‘도덕경’을 읽다가 던져버렸다.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고, 도(道)와 덕(德)의 개념도 애매모호했기 때문이다.

도덕경 제1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말할 수 있는 도는 늘 그러한 도가 아니요, 이름 붙일 수 있는 이름은 늘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도대체 처음부터 뭔 헛소릴 지껄이는지 아리송하다. 만일 노자가 예수처럼 비유를 들어가면서 구체적으로 설명했다면 난 도덕경을 끝까지 읽었을 거다.

최근에 나는 미망에 둘러싸인 달을 가리키는 노자의 손가락을 찾았다.

사진=알라딘.
사진=알라딘.

2. 

‘장자’ 천하편에 노자의 중심사상은 태일(太一), 유무(有無), 상(常) 등이라고 했다. 노자의 도를 이해하기 위해선 이 중심사항을 하나씩 살펴보고 퍼즐을 맞추거나 모자이크처럼 조각을 맞추어 전체상을 그려보는 수밖에 없다.

명제Ⅰ, 태일과 유무란 무엇인가?

태일은 도이다. 유무는 유명(有名)과 무명(無名)의 약칭이다. 노자는 도를 무명이라고 했다. 형상을 가진 만물은 모두 이름이 있다. 그러나 도는 형상이 없는 하나의 개념이요, 지칭일 뿐이다. 그래서 무명인 것이다.

명제Ⅱ, 상이란 무엇인가?

이 세상의 사물들은 가변적인데 만물의 변화를 지배하는 법칙 그 자체는 불변적이다. 노자는 이 법칙을 상이라고 부르면서 “이것이 바로 도이니, 도는 영구하다. 그러므로 도에 따라서 사는 사람은 종신토록 위태하지 않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자연의 법칙’을 알고 그것에 따라서 행위를 해야 한다고 경고한 거다. 

상은 도를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키워드를 찾으면 도덕경은 그리 어려운 책이 아니다.

명제Ⅲ, 노자의 무위사상(無爲思想)은 어떤 것인가?

무위는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하지 않음’ 또는 ‘함이 없음’이다. 그러나 무위가 완전히 행동을 정지하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니다. 무위는 억지로 하지 않고, 인위적이거나 인공적(人工的)이 아닌 자연스런 행위를 뜻한다.

명제Ⅳ, 도와 덕은 어떤 것인가?

노자에 의하면 도는 만물을 생성시키는 근원이고, 덕은 그 생성 과정에 생기는 것으로서 만물을 육성하는 행위(덕행)라고 보았다. 노자는 도와 덕을 존귀하게 여겨야 하고 될 수 있는 대로 소박하게 살라고 한다. 소박함이란 노자와 도가의 중요한 사상 가운데 하나다.
나는 도덕(道德)은 도와 덕을 합친 말이라고 생각한다. 또 도덕은 도덕(導德)이다. 덕으로 이끄는 행위가 도덕이다.

3. 

이상과 같이 노자의 중심 사상을 살펴본 결과, 나는 “도는 만물을 생성하는 자연 법칙이다”라고 정의한다. 이 정의를 뒷받침하기 위해 ‘나무의 도(道)’를 만들어 보았다.

사진=장일홍.

이 ‘다이아몬드 법칙’(나는 자연 법칙을 이렇게 부른다)에서 아래와 같은 해설을 도출해낼 수 있다.

① 나무가 생성과 재생을 반복하는 순환의 과정에서 일정한 법칙, 곧 자연 법칙이 생겨난다.

② 나무의 생성·재생이라는 현상을 지배하는 본질은 자연 법칙이다.

③ 자연 법칙에 의해 만물이 생성되므로 ‘도는 만물을 생성하는 근원이다’

④ 현상은 눈에 보이지만 본질은 숨겨져 있다. 그래서 ‘도는 숨어 있다’

⑤ ‘되돌아오는 것은 도의 움직임이다(反者道之動)’라고 노자가 말한 것은 자연 법칙 상의 순환을 의미한다.

⑥ 현상으로 나타나는 사물들(나무, 꽃, 열매)은 이름이 있지만 본질(道, 법칙)은 이름이 없다. ‘도는 무명(無名)이다’

4. 

나는 도덕경을 읽으면서 내내 이런 의문이 들었다.

(가) 변변한 참고 문헌도, 선학(스승)도 없었던 2500여 년 전의 노자가 어찌 이런 심오한 생각을 했을까?

(나) “조물주가 만물을 창조했고, 만물의 운행을 주관한다”이 한 마디면 끝날 일을 가지고, 노자는 왜 우리를 ‘난해의 바다’에 빠뜨려 허우적거리게 하는가?

(다) 어쩌면 노자의 사상(철학)은 신이 부재하던 시대의 관념의 산물이 아닐까? 결국 도(道)란 신 없는 세상의 대체물이 아닐까?

언젠가 공자는 ‘조문도석가사의(朝聞道夕死可矣)’라고 했다. 아침에 진리를 깨치면 저녁에 죽어도 좋아….

진리에 목 마른 자의 갈증과 허기의 표현이 아닐까 싶다. / 장일홍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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