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인 연세대 인간평화와 치유연구센터 연구원 “4.3은 자력적 회복, 화해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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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효인 연세대 인간평화와 치유연구센터 연구원은 ‘회복적 화해를 위하여’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캄보디아와 스페인의 과거 극복·회복과 제주4.3의 사례를 비교, 제주4.3은 시민사회 참여와 피해자들의 자기 주도성에 의한 ‘회복적 화해’를 이뤘다고 말했다.ⓒ제주의소리

제주4.3이 국제사회와 국가로부터의 화해가 아닌 시민사회 참여와 피해자들의 자기 주도성에 의한 사회적 회복, ‘회복적 화해’를 이뤘다는 주장이 나왔다.

4.3트라우마센터는 12일 오전 10시 제주4.3평화공원 4.3평화교육센터에서 ‘4.3트라우마센터 전국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지난해 5월 시범 운영 방식으로 제주와 광주에 문을 연 뒤 처음으로 개최된 학술대회는 ‘트라우마, 개인과 사회 치유를 위한 길’을 주제로 4.3을 비롯한 국가폭력 트라우마의 회복과 사회적 치유를 위한 중요 개념을 정리하고 토론하기 위해 마련됐다. 

강효인 연세대 인간평화와 치유연구센터 연구원은 이 자리에서 ‘회복적 화해를 위하여’라는 주제를 통해 국가폭력과 대량학살의 대표사례인 캄보디아와 스페인의 과거 극복·회복과 제주4.3의 사례를 비교하며 4.3의 회복적 화해에 대해 언급했다.

강 연구원은 캄보디아의 경우 국제사회 주도적, 스페인은 국가 주도적인 화해와 회복에 머물러 통합적 형태의 화해와 회복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지만, 4.3의 경우 아래로부터의 요구로 시작돼 자생적인 화해와 상생의 길을 달성해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20세기 발생했던 국가폭력과 대량학살의 사례는 오늘날 국제사회 관심에서 비켜 간 것처럼 보이지만, 오늘날과 여전히 연결돼 있어 중요한 문제”라며 “한 번 일어난 일은 또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홀로코스트 생존자 프리모 레비의 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고 운을 뗐다. 

이어 “이제까지 과거극복의 보편적 담론인 평화구축, 전환기적 정의, 화해연구는 제도와 기관의 설립, 위로부터 부과되는 정책 등에 집중돼 있었던 한편, 트라우마와 치유, 회복은 행위자의 정신심리에 대한 연구로 분리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캄보디아와 스페인, 제주는 모두 국가폭력에 의한 민간이 대량학살과 공동체 내 상호살육이 자행됐으며 가해자와 피해자, 유족이 한 마을에 공존하며 세대를 잇는다”며 “이들은 보복과 폭력이 재발, 공동체를 해체시킬 수 있다는 우려로 가해자 색출과 처벌보다 화해의 경로를 택했다”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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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연구원은 4.3트라우마센터 전국학술대회에서 ‘회복적 화해를 위하여’라는 주제발표에 나서 4.3의 회복적 화해에 대해 역설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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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트라우마센터는 12일 오전 10시부터 제주4.3평화공원 4.3평화교육센터에서 ‘4.3트라우마센터 전국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제주의소리

# 국제사회, 국가 주도 화해·회복 이룬 캄보디아·스페인

강 연구원은 캄보디아의 경우 1975년부터 1991년까지 이어지는 크메르 루즈 체제와 캄보디아 내전 당시 폭력이 있었으며, 국제사회의 주도로 화해와 회복을 이루고 있다고 소개했다. 

캄보디아의 과거 극복은 국제사회의 기대와 막대한 지원, 국내 권위주의 정부의 타협과 저항의 관계 속에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그는 “캄보디아는 법원 안에 특별재판부(ECCC)가 설립되는 등 아시아권에서는 유일하게 국제사회가 국가폭력 책임자에 대한 사법적 단죄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며 “반면 국가 일방 억압에 대항할 수 있는 시민사회의 힘은 약해 회복적 화해로의 달성은 힘들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캄보디아는 국제사회 주도로 ECCC와 비정부기구가 설립돼 화해와 회복을 견인하려 하나 국내 정치면에서는 권위주의의 강화, 시민 사회면에서는 비정부기구가 국제사회에 의존적인 형태로 진정한 화해와 회복 모두 요원한 상태에 그친다”고 주장했다.

또 스페인의 경우 1936년부터 1975년까지 스페인 내전과 프랑코 체제에서의 폭력 시기를 겪고 이후 정권이 바뀌며 국가 주도적인 과거 극복 노력이 이뤄졌다고 했다.

스페인은 16세기 반종교개혁의 전통적 보수와 19세기 노동운동 이후 등장한 급진적 좌익 간 대결로 프랑코가 쿠데타로 정권을 획득하게 되면서 좌우 대결의 정점인 내전이 발발, 정권에 의해 5만 명이 넘는 사람이 법적, 초법적 방식으로 처형당했다.

강 연구원은 “스페인은 좌파와 우파 간 화합을 기반으로 한 국가주도의 방식으로 화해와 회복을 달성해왔다”라면서 “정책적으로 화해를 내세웠으나 정권의 정당성 확보를 위한 조치라는 점에서 거짓 화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국가주도적 프로세스 속에서 피해자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결국 예술로만 표출돼왔다는 것. 국가의 용서가 피해자와 유족들이 용서할 권리를 앗아간 격이 돼 사회적 트라우마를 연장시켰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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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트라우마센터 전국학술대회 두 번째 심포지엄 토론 참여자들. 사진 오른쪽부터 좌장 박명림 연세대 지역학협동과정 교수, 이재승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상임위원, 신보경 연세대 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 기초연구조교수.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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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쪽부터 정영은 4.3트라우마센터장 / 제주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강효인 연세대 인간평화와 치유연구센터 연구원. ⓒ제주의소리

# 제주인 강한 열망, 아래에서부터 시작된 ‘진정한 화해’

그는 제주4.3의 경우 민주화를 통한 진상규명으로 시작돼 한국 정치지형에서 흔치 않은 진보와 보수 간 협력적 구도를 달성하는 등 국제사회와 국가주도의 캄보디아, 스페인의 사례와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제주4.3의 아래로부터의 화해와 회복은 한국의 민주화와 결을 같이 하며 진영 간 화해를 이뤘다는 점에서 세계사적으로 유래를 찾기 어려운 과거극복 사례라는 것이다. 

강 연구원은 “제주는 광주항쟁의 진상규명운동을 통해 강력한 권위주의 국가에 맞서는 강력한 민중의 힘을 확인했다”며 “정치와 언론, 문화예술, 학생운동 등 각계각층에서 자발적인 단체가 형성돼 4.3의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4.3진영으로 발전했다”고 말했다. 

이어 “시작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4.3진영와 민간단체의 노력, 시민사회의 동력 등이 과거 극복을 견인하고 있다”며 “제주사회문제협의회는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 진상규명이 이뤄져야 한다며 화해론의 싹을 틔웠다”고 피력했다. 

또 “4.3진상조사보고서 발간은 화해 담론을 본격적인 과거 극복 담론으로 등장하게 했으며, 보고서의 사실을 토대로 도민들은 4.3의 원인을 구조적 관점에서 이해,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가 역사의 희생자라는 인식을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도민들의 자각과 4.3운동진영의 전략적 목적으로 인해 화해와 상생 담론은 4.3해결의 방향으로 굳어졌다”며 “국제기구와 비정부기구 등에 의해 평화와 화해 담론이 이식된 캄보디아, 스페인과 달리 제주는 자생적으로 화해를 발굴, 보편화 했다”고 설명했다. 

강 연구원은 지방자치단체 부활 이후 4.3을 선결과제로 내세운 제주도의회 활동으로 제주의 주체성이 드러난다고도 했다. 

그는 “도의회는 정부와 국회에서 진행되는 위원회 결성, 진상조사보고서, 특별법 등을 먼저 구체화시켰다”며 “지방정부와 의회가 자율적으로 과거사 문제의 실질적인 해결을 위해 힘을 쏟았다는 것은 국제적으로도 주목할만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이어 “도의회는 가해자 색출보다 모두가 피해자라는 개념으로 접근했으며, 이 같은 자발적인 활동은 4.3특별법과 특별위원회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덧붙였다. 

또 “제주는 4.3진영의 지속적인 감시와 압력을 원동력으로 마을공동체 내부 가해-피해 집단과 중앙의 보수-진보 진영 간, 민관, 중앙과 지방 간 화해 등을 점진적으로 달성한 회복적 화해의 전형”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오늘의 제주는 과거의 비극적 사건으로서가 아닌 평화와 화해, 상생의 상징으로 표상된다”며 “폭력 이후 사회가 상흔을 딛고 비약적 성장을 이뤄내는 ‘외상 후 성장사’로 불러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강 연구원은 “제주는 아래로부터의 진상규명에 기반한 정의의 요구로부터 시작, 민관 모두 화해와 상생의 길을 달성하고 있다”며 “이는 자생적이며 자력적인 회복적 화해의 사례이며 국제사적으로 보다 심도있게 연구돼야 할 사례”라고 피력했다. 

4.3트라우마센터 전국학술대회는 ‘트라우마 치유의 실제’, ‘트라우마 사회 치유를 위한 조건’을 주제로 한 두 번의 심포지엄과 전우택 연세대 의대 교수의 ‘트라우마와 스토리텔링 프로그램’ 특강으로 구성됐다.

첫 번째 심포지엄은 김문두 제주대 의대 교수가 좌장을 맡고 △전진용 국립건강정신센터 정신건강사업과장의 ‘트라우마 치료에서 중요한 것들’ △최현정 충북대 심리학과 교수의 ‘집단 트라우마와 신체 경험 치유’ △유미 아트포미 미술치료연구소장의 ‘트라우마를 위한 미술치료’ 등 주제발표가 진행됐다. 

두 번째 심포지엄은 △정영은 제주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트라우마와 회복, 리질리언스’ △이재승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상임위원의 ‘트라우마와 이행기의 정의’ △강효인 연세대 인간평화와 치유연구센터 연구원의 ‘변혁적 과거 극복과 회복’ △신보경 연세대 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 기초연구조교수의 ‘집단적 트라우마와 통합적 치유’ 발표가 이어졌다. 좌장은 박명림 연세대 지역학협동과정 교수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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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트라우마센터 전국학술대회 전경.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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