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축항쟁 120주년 기념 ‘변방의 우짖는 새’ 토크콘서트

“제주에서의 항쟁은 견디다 견디다가 더 이상 못해서 총 맞아 죽느니 싸우자고 일어난 거죠. 신축항쟁도, 제주4.3도 마찬가지입니다. 연속돼 왔던 것입니다. 변방에서의 이재수의 싸움, 저는 이것(소설 변방에 우짖는 새)을 4.3에 대한 은유로서 썼습니다. 신축항쟁이 곧 4.3입니다.”

노년의 소설가는 또렷하게 외쳤다. 신축항쟁을 다룬 자신의 소설 ‘변방의 우짖는 새’는 4.3까지 흘러온 제주지역의 항쟁 정신을 재조명하기 위한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12일 제주문학관에서 열린 문학토크콘서트 ‘변방에 우짖는 새’는 현기영 선생을 초청해 소설에 대한 이야기들을 듣는 자리다. 소설 ‘변방에 우짖는 새’는 1981년부터 이듬해까지 신문에 연재됐고, 1983년 책으로 나왔다. 1898년 방성칠난과 1901년 신축항쟁을 소재로 다루면서 ‘순이삼촌’ 이후 제주4.3의 의미를 제주 역사에서 찾으려고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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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항쟁 120주년 기념 문학토크콘서트 '변방의 우짖는 새'가 12일 제주문학관에서 열렸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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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오른쪽부터 현기영, 김수열, 김수미. ⓒ제주의소리

토크콘서트는 현기영 선생에게 김수열 시인과 독자 김수미 씨가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듣는 순서로 진행됐다. 연극인 강상훈, 강지훈, 정민자 씨는 희곡 ‘변방에 우짖는 새’의 한 대목을 낭독했고, 소금인형은 노래 공연을 선보였다.

“만약 유신시대가 아닌 지금 같은 시대에 소설을 시작했다 해도 4.3, 전통을 주제로 작품 활동을 이어갔을까?”라는 질문에 대해 현기영 선생은 “안 쓸 수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기영 선생은 “순이삼촌을 쓰고 고초를 겪으면서 신축항쟁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다”면서 “항쟁의 연장선상에 4.3이 있었다. 집필하기 전 연구하듯 이재수에 주목했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4.3과 신축항쟁은 제주도 공동체가 가진 위대한 항쟁이다. 왜 위대한가. 제주도의 항쟁들은 지금까지 변방이라는 이유만으로 외면되고 배제되고 삭제됐다. 한국 역사는 중앙 중심, 엘리트 중심, 지배계급들의 역사라면 변방은 곧 민중이고 민중의 역사가 내재돼 있다. 엘리트만의 역사에서 핍박 받고 차별받는 민중, 그들의 역사를 대변하는 게 바로 제주도의 역사”라며 “신축항쟁은 구한말 프랑스 제국주의에 대항한 행동이다. 만약 국권이 일본에게 빼앗기고 나서 아무런 이의제기나 저항을 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겠느냐. 4.3도 마찬가지다. 분단을 막으려고 한 마음이 4.3이었다. 분단을 획책하고 관철시키려는 세력에 대해 저항하고 ‘이건 아니다’라고 말한 제주도민들이다. 4.3은 일제 의병처럼 할 말을 한 것”이라고 상세히 설명했다.

1901년 5월 무장한 제주도민들(민군)이 제주성을 포위하고 천주교 신자인 같은 도민 300여명을 살해했다. 이후 민군 주모자들은 정부에 의해 사형 당했다. 그 당시 다수 백성들은 막대한 세금 부담을 지고 있었으며, 동시에 천주교 세력의 횡포에도 고초를 겪었다. 주진오 상명대학교 교수는 지난 10월 8일 열린 신축항쟁 120주년 학술대회에서 “(신축항쟁이) 이렇게 엄청난 사건으로 확대된 것은 선교사들이 직접 무장하고 교인들을 지휘해, 민회를 습격해 인명을 살상하고 장두를 체포해 간 행위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한 바 있다.

현기영 선생은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약 200년간 이어진 제주도에 대한 출륙금지령을 ‘속국 취급’이라고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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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기영 선생. ⓒ제주의소리

그는 "제주는 지정학적으로 사방으로 뻗어갈 수 있다“며 “중앙에서는 제주도를 제후, 번국, 속국으로 봤다. 진상 바치는 일이 너무 힘드니 젊은 남자들은 육지와 일본을 도망가고, 중앙은 계속 진상 업무를 부여하기 위해 200년 간 묶어놨다. 제주에서 빠져나간 남자 가운데 일부는 다도해로 흘러갔고 임진왜란 때 이순신을 도와서 왜군을 무찌르는데 도움을 준다”고 설명했다.

40여년 전, 집필을 위한 취재 과정도 일부 설명했다. 현기영 선생은 “서광리를 찾아가려면 하루에 한 번 버스가 있던 시절이었다. 서광리 중산간에서 당시 젊은이들을 만났는데 ‘우리는 역행했다’고 말했다. 바로 반역의 땅이라는 의미”라며 “뿐만 아니라 신축항쟁 당시 인물들의 자세한 면면까지 기억하면서, 항쟁에 대한 기억들이 젊은 사람에게까지 내려 왔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소설은 1987년 같은 제목의 연극으로도 만들어져 서울 대학로에서 공연됐다. 현기영 선생은 그 당시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말해줬다. 그는 “1987년 6월 항쟁의 분위기가 가득한 대학로에서 관객들의 대단한 환호를 받으며 재공연까지 이어졌다. 재공연 때였는데, 대통령에 나오겠다고 밝힌 노태우 후보가 ‘변방의 우짖는 새’를 보러 왔다. 관람 후에는 금일봉을 극단에게 전달하고 갔는데 기억이 난다”고 밝혔다.

현기영 선생은 “4.3을 마지막으로 항쟁은 끝났지만, 그 이후로도 여러 가지 인권 운동, 민권 운동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결국 제주도 공동체적 삶의 역사는 외세와 맞설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몽골, 왜구, 프랑스 제국주의, 육지 군경까지. 이런 상황에서 항쟁은 불가피하게 있을 수 밖에 없다. 제주에서의 항쟁은 견디다 견디다가 더 이상 못해서 총 맞아 죽느니 싸우자고 일어난 것이다. 신축항쟁도, 제주4.3도 마찬가지로 연속돼 왔다. 변방에서의 이재수의 싸움. 나는 이것을 4.3에 대한 은유로서 썼다. 신축항쟁이 곧 4.3이다”라고 강조했다.

이번 문학토크콘서트는 (사)제주민예총(이사장 이종형)이 주최하고 신축항쟁 120주년 기념사업회(공동대표 좌남수, 송재호, 김수열)와 제주작가회의(회장 강덕환)의 공동 주관하며, 제주도가 후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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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의 우짖는 새'를 낭독극으로 선보인 배우 강지훈(왼쪽), 강상훈.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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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의 우짖는 새'를 낭독극으로 선보인 배우 강지훈(오른쪽), 정민자.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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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인형이 '신축창의가'를 부르고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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