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219) 성희승, 별; 오름에서 편지를 띄우며, 지베르니, 2021

성희승, 별; 오름에서 편지를 띄우며, 지베르니, 2021. 사진=알라딘.
성희승, 별; 오름에서 편지를 띄우며, 지베르니, 2021. 사진=알라딘.

시집을 낸 성희승의 본업은 화가다. 그는 별 작가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많은 별 그림을 그렸다. 그의 별 그림은 무한대의 암혹 속에서도 존재의 빛을 발산하는 별을 통하여 비가시적인 존재를 가시화하는 작업이다. 최초에는 면이나 선으로 이뤄진 별 도상을 캔버스에 담는 작업에서 출발했다. 그가 특정 도상을 캔버스 회화에 도입한 것은 그 이전 작업의 이력에도 담겨있다. 팝아트 계열의 회화 작품들을 해오던 그는 대중에게 익숙한 도상을 끌어들여 새로운 서사를 창출하는 작업을 해왔다. 이런 맥락에서 별 그림을 그림으로써 성희승은 인지하고는 있으나 당장 눈앞에 나타나 보이지는 않은 우주의 별을 회화 작품으로 제시했다. 

그의 별 그림은 어느덧 별 바깥의 공간으로 확장했다. 거대한 캔버스에 선의 연쇄로 우주를 그려내는 화가의 마음은 결국 빛과 어둠의 이중주로 펼쳐내는 새로운 우주예술의 세계로 이어졌다. 그것은 선이라는 조형적 요소로부터 출발했다. 별 도상을 화면에 연출하기 위해서 필요했던 요소는 짧은 직선이었다. 별 도상은 오각형의 연결점들을 교차 연결하는 다섯 개의 직선들로 이뤄진다. 별의 빛을 그 바깥으로까지 확장하기 위해서 그는 비슷한 길이의 직선들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직선들은 삼각형의 연쇄로 화면을 꽉 채운다. 전면회화의 매력은 화면 전체를 여백없이 채워서 정동의 응집력, 즉 정서적 감응을 일으키는 집중력을 높이는 데 있다. 

이렇듯 별에서 출발하여 우주로 확장하고 있는 성희승은 회화를 중심으로 퍼포먼스, 조각, 설치 등의 예술활동을 펼치고 있는 성희승의 다재다능함은 시각예술의 경계를 넘어 문학영역과 만난다. 성희승의 신간 <<별; 오름에서 편지를 띄우며>>는 첫 번째 시집 <<성희승, 별을 그리다>>(엘컴퍼니, 2019)에 이은 두 번째 작업이다. 이 시집은 회화의 3요소인 ‘점, 선, 면’으로 이뤄졌다 1부 점은 점으로부터 출발하여 자신의 예술 세계를 풀어낸다. 점의 연장으로서의 선은 2부를 구성하는 주제로서 무수한 존재들의 연결로서의 선을 주제로 한 시들이 들어있다. 3부 면은 선과 선이 만나 면을 이루는 조형 원리처럼 확장하고 연대하는 공동체적 공감의 세계를 담고 있다. 무수한 점과 선의 연쇄로 우주를 그려내는 성희승은 이렇게 노래한다. 

생각에 또 생각이 더해지듯 / 수없이 반복되는 붓질 / 수행이 만들어낸 결과 / 촘촘한 그물처럼 / 거대한 우주가 탄생한다

성희승의 시 <붓질>은 이 시 한편은 성희승의 에술 세계를 압축적으로 대변한다. 그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와 그림을 그리는 방법과 목적, 과정과 결과가 이 시 한 편에 모두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는 담담하게 자신의 일을 노래한다. 성희승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 화가가 직업인 사람이 시를 써서 시집을 냈다. <붓질>이라는 시를 좀 풀어서 생각해보자. 성희승처럼 같은 모티프를 끝없이 반복하여 거대한 화면을 가득 채우는 전면회화 작업을 하는 화가는 이렇듯 ‘수없이 반복되는 붓질’을 한다. ‘생각에 또 생각이 더해지듯’ 화가는 붓질 위에 또 붓질을 더한다. 그것은 마치 구도자가 수행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그러한 ‘수행이 만들어낸 결과’로 성희승은 ‘촘촘한 그물’을 얽어낸다. 그리하여 ‘거대한 우주가 탄생한다’. 

새벽 오름에 올라 / 새별을 기다리며 (중략)
새별 오름에 올라 / 아름다운 당신들에게 선물처럼 (중략)
샛별 오름에 올라 / 날갯짓하며 유유히 날아가는 새처럼 (중략)
편지를 씁니다 (하략)

‘오름에 올라’를 반복하다가, ‘편지를 씁니다’로 마무리하는 이 시는 두 번째 시집의 제목으로 삼은 시 <별; 오름에서 띄우는 편지>이다. 오름에 올라 별을 노래하는 시인 성희승은 새벽과 새별과 샛별을 오름 앞에 붙여 운(音)을 띄운다. ‘새벽에’ 오름에 올라, ‘새별’ 오름에 올라, ‘샛별’ 오름에 올라, 그는 편지를 쓴다. 시 속의 편지는 또 다른 연으로 이어지며 따옴표 속의 인용문으로서 시를 마무리한다. 

“마음속 / 빛나는 별을 품고 사는 / 가장 보통의 당신에게 
보통의 당신들이 / 가장 빛나는 별이며, / 가장 고귀한 별입니다”

마음 속에 별을 품고 사는 평범한 사람들 모두가 가장 빛나는 고귀한 별이라고 말하는 성희승의 제안은 별을 통하여 낱낱의 존귀함을 밝히고자 하는 성희승의 세계를 잘 보여준다. 그는 하늘과 별, 우주에 대한 신비와 경외는 숭고의 예술을 통하여 인간 존재를 성찰하는 만들어 준다. 우주를 이야기하는 예술은 우주적 정신성의 세계로 나아간다. 예술이 세계에 대한 합리적 이해의 틀을 넘어서 도달하고자 하는 정신성의 세계, 즉 우리가 지금으로서는 미처 다 헤아리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신비와 경외를 남겨놓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저 거대하고 무궁한 우주를 대면하여 그는 숭고와 초월이라는 이상을 지향하며 용맹정진한다. 미술과 문학을 넘나드는 에술가 성희승은 우주의 신비와 경외를 생각하고 또 그 너머 우주의 정신성을 성찰하는 우주예술로 나아가고 있다.

# 김준기

홍익대학교 예술학 석사, 미술학 박사.
현(現)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한국큐레이터협회 회장, 미술평론가.
전(前) 부산비엔날레 전시기획 팀장,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제주도립미술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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