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그 앞에 어떤 꽃도 놓지 말아야 한다 / 김효철 객원논설위원

‘소리시선’(視線)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 편집자 글

전두환, 그가 지난 23일 숨졌다. 얼마 전 혈액암을 앓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졌지만, 지난해까지 골프를 칠 정도로 건강했기에 갑작스럽다. 

우리에게 전두환은 독재자이자 학살자다. 그가 우리 사회에 한마디 반성과 사죄하는 말도 남기지 않고 떠난 게 당혹스럽다. 영원히 사과를 받을 수 없이 살아가야 하는 수많은 피해자 나아가 국민 모두를 생각할 때 허탈한 마음은 분노로 이어진다.

아무리 죽음 앞에 관대하고 연민을 느끼는 것이 우리들 정서이고 관습이라지만 그가 총칼로 국민을 학살한 내란 수괴인 데다 끝내 반성조차 없음에 슬픈 감정을 느낄 수는 없다.

우리에게 전두환은 1980년대를 지배하던 독재자다.

군인 출신인 전두환은 육사생도시절 5.16 군사쿠데타를 지지하는 시위를 주도해 독재자로서 일찌감치 싹을 보였다. 정치군인이 된 그는 12·12 군사쿠데타에 이어 1980년 ‘민주화의 봄’을 짓밟았다. 그리고 권력을 위해 5.18광주민주항쟁을 총칼로 진압하고 수많은 국민들을 살상했다. 역사 앞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른 것이다. 전두환은 권력을 잡고 나서도 무자비한 권력을 휘두르며 민주주의와 인권을 유린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정권에 항의한다는 이유로 투옥되고 고문을 받고 살해됐다. 언론들도 문을 닫거나 통폐합되었으며 교수·교사들은 학교에서 쫓겨났다.

ⓒ오마이뉴스
장례 3일차인 25일,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전두환씨 빈소 앞 모습. ⓒ오마이뉴스 김종훈

제주에서도 전두환과 관련한 기억은 오래된 추억으로 기억하기엔 암울하고 참혹하다. 1982년 2월 5일에는 이른바 한라산 중턱에서 공군 수송기 C123기가 추락해 특수전사령부 707대대 소속 특전사 대원 47명과 공군 6명이 숨졌다. 제주국제공항 준공식과 제주도 연두 순시를 앞둔 전두환 당시 대통령을 경호하던 중 발생한 사고였으나 전두환 정권은 철저하게 언론을 통제하고 대침투작전 훈련 중 일어난 사고로 둔갑했다. 그리고 그 당시 희생당한 군인과 유가족들에게 진심어린 사과조차 하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났다.

뿐만 아니다. 전두환 정권 아래에서 고문을 당하며 간첩사건으로 조작돼 옥고를 겪은 제주도민들도 여럿이다.

제주대학교를 비롯한 학교에까지 경찰들이 상주하며 학생들이 감시하고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탄압했다.

지금은 국가가 추념하는 4.3은 더더욱 금기시됐다. 진실을 알리는 어떠한 일조차 무자비한 탄압받던 시절이다. 총칼에 쓰러진 원혼을 달래고 진실을 알리는 유인물이 배포되거나 집회만 열어도 잡혀가 고초를 겪어야 했다.

학생처럼 보이면 길에서도 경찰들이 불심검문으로 가방을 열어보고 수상한 책이라도 들어있으면 연행하고 또 고문했다. 

박종철 열사도 이한열 열사도 전두환 정권이 무참히 살해했다. 광주시민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하거나 고문하고 잡아 가두고 탄압했다.

학살자, 살인마, 독재자라는 표현이 과장도 거짓도 아닌 전두환이다.

그런 그가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내란죄로 사형선고를 언도 받으면서도 지금까지 진심어린 사과 한마디 없었다. 아니 사과는 커녕 온갖 망언으로 광주학살만큼이나 국민 가슴에 상처와 분노를 남겼다.

그가 군사 반란죄로 유죄를 받고 법원으로부터 선고받은 추징금은 2205억 원이다. 골프장을 수도 없이 드나들면서도 “29만 원밖에 없다”며 추징금 납부를 거부했다. 

25년이 지나도록 956억 원이 여전히 미납상태다. 그러고도 추징금 납부를 묻는 질문에 “자네가 좀 납부해주라”며 비아냥거렸다.

여전히 재판 과정에서도 반성은 없었고 광주민주항쟁을 폭동이라고 폄훼하고 진압을 정당화했다. 또 2017년 4월에 발간한 회고록에서도 ‘광주 폭동’이라거나 ‘발포명령은 없었다’며 왜곡과 회피로 분노를 샀다. 광주시민을 향한 ‘헬기 사격’ 목격하고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향해서는 ‘가면을 쓴 사탄’,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는 망언을 했다가 사자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해 재판을 치르는 중이었다.

자기한테 감정이 안 좋다는 젊은 사람들을 향해서는 “나한테 당해보지도 않고”라며 섬뜩한 농담을 던져 전두환 독재시절 온갖 고초를 겪었던 사람들을 분노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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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 3일차인 25일,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전두환씨 빈소 앞 모습. ⓒ오마이뉴스 김종훈

그는 살아온 인생 내내 그가 저지른 악행에 대해 반성과 사죄는커녕 왜곡과 무시, 비아냥으로 일관해왔다.

그렇게 한 시대를 어둠 속으로 내몰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한과 고통을 안겼던 학살자 전두환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나 장례 형식과 조문을 놓고 정치권이 시끄럽다. 

하지만 그 앞에 어떤 꽃도 놓지 말아야 한다. 전두환에 대한 애도는 죽은 자에 대한 연민과 인간적 도리로 포장한다 해도 독재자이자 학살자에 대한 미화와 동조다. 그 숱한 만행과 악행을 벌이고도 반성과 사과조차 없이 떠난 그를 애도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다. ‘전두환도 군사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를 잘했다’는 평가도 마찬가지다.

죽은 자에 대한 연민으로 포장된 잘못된 애도가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하는 씨앗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전두환은 역사 속 인물이 됐지만, 우리에게는 역사를 올바로 써 내려가야 할 과제가 남겨졌다.

광주학살 발포 명령자를 비롯한 진상규명은 아직도 이뤄지지 않았다. 그날 광주에서 행방불명된 이들 가운데 여전히 가족 곁으로 돌아오지 못한 이도 많다. 5공 시절 전두환과 희희낙락하며 권력을 누리고 민주주의를 유린했던 군부와 정치인, 언론인, 종교인, 법조인들로부터 참회와 사과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수많은 시민들이 피로써 이룬 민주주의는 사회 양극화와 불평등을 극복하는 힘으로 나아가야 한다.

2021년 11월 23일, 전두환은 스스로 용서받을 기회마저 버린 채 영원한 역사 속 죄인으로 남게 됐다.

김효철 (사)제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 상임대표 ⓒ제주의소리<br>
김효철 (사)제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 상임대표 ⓒ제주의소리

아직 광주 망월동 묘지에 잠들지 못하는 원혼이 있고 전국 곳곳에는 상처입고 살아가는 수많은 피해자가 있다. 하지만 끝끝내 사과 한마디 없이 떠난 그로인해 남은 자들에게는 이제 치유 받을 마지막 기회마저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치유하지 못한 상처를 안은 채 영원한 고통 속에 살게 됐다. 전두환, 그가 남긴 마지막 학살이다.

학살자 전두환, 그 죽음을 애도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 김효철 객원논설위원, (사)제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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