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사건 주철희 박사 "4.3특별법 근본적 한계, 가해사실 명시돼야"

30일 오후 2시 제주4.3평화공원 교육센터 강당에서 제주4.3도민연대 주재로 열린 '제주4.3 대전형무소 수형희생자 실태조사 보고회 및 토론회'. ⓒ제주의소리

"그간 4.3을 위해 헌신한 이들의 엄청난 노고에 감사를 표합니다. 이렇게 힘겹게 걸어온 길에 오늘의 발표가 이들을 비판하는 자리가 될 것 같아 매우 송구합니다만, 4.3은 피해자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왜 가해자는 밝히지 못했습니까?"

30일 오후 2시 제주4.3평화공원 교육센터 강당에서 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 주재로 열린 '제주4.3 대전형무소 수형희생자 실태조사 보고회 및 토론회'. 역사학자 주철희 박사는 다소 민감할 수 있는 메시지를 거침없이 던졌다. 제주사회가 피해자 명예회복에는 충실했지만 4.3의 가해자를 묻는데 적극적이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20여년 간 여순사건의 역사에 대해 연구해 온 주 박사는 이날 '제주4.3항쟁 가해자는 누구인가'라는 주제의 발제를 통해 4.3특별법이 지닌 근본적 한계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그는 제주 4.3을 '항쟁'으로 규정하며 "4.3항쟁이 발발한지 어느덧 73년이 흘렀고, 4.3특별법이 제정된 지도 21년이 흘렀다. 4.3사건진상조사보고서가 확정되면서 정부 차원에서 조사한 최초의 보고서가 확정됐고, 4.3위원회가 발족한 지 8년만에 활동 과정을 담은 백서도 발간됐다"며 "4.3특별법 제정을 통해 제주의 문제가 진전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풀지 못한 과제도 산적해 있다"고 전제했다.

주 박사는 "백서를 발간한 지 13년이란 시간을 돌이켜 보면, 추가 진상조사 과제 중 행방불명 희생 실태와 마을별 피해실태는 추가 진상조사보고서를 발간하면서 어느정도 해결된 것으로 보이지만, 여전히 제주4.3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4.3특별법을 제정할 당시와 그렇게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민간인 학살의 가해 주체였던 군과 경찰에 대한 지휘·명령체계도 2003년 최초 4.3진상조사보고서를 작성할 당시와 달라진 점이 보이지 않는다"며 "사건의 본질적인 부분에는 여전히 미흡한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근본적으로 4.3특별법이 지닌 한계를 되돌아봤다. 이와 유사한 사례로 진실화해기본정리법에 따른 진실화해위원회의 김동춘 상임위원이 최근 인터뷰에서 "가해를 밝히는 내용이 포함됐다면 정치권에서 당시 통과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극렬히 반대했을 것으로, 위원회의 문제가 아니라 법적 한계"라고 발언한 것을 예시로 들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발간한 '순천지역 여순사건 2008년 하반기 조사보고서'에 포함된 당시 국군의 지휘·명령체계. 끝에는 이승만 대통령을 명시하고 있다. 사진=발제문 ⓒ제주의소리
진실화해위원회가 발간한 '순천지역 여순사건 2008년 하반기 조사보고서'에 포함된 당시 국군의 지휘·명령체계. 끝에는 이승만 대통령을 명시하고 있다. 사진=발제문 ⓒ제주의소리
30일 열린 '제주4.3 대전형무소 수형희생자 실태조사 보고회 및 토론회'발제에 나선 주철희 박사. ⓒ제주의소리
30일 열린 '제주4.3 대전형무소 수형희생자 실태조사 보고회 및 토론회'발제에 나선 주철희 박사. ⓒ제주의소리

주 박사는 "4.3진상보고서에서 가해자를 밝히지 못한 것 역시 조사의 부실이 아닌 4.3특별법이 갖는 한계 때문이었을 것"이라며 "다만, 6번의 특별법 개정 과정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뤄지지 않았다"고 되돌아봤다.

4.3특별법과 전면 대치되는 사례도 있다. 5.18진상규명법에는 진상규명의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이 법 제3조 3항에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군에 의한 발포 경위 및 책임 소재'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도록 명시했다. 5.18은 진상규명이 필요한 사건을 열거하면서 책임자도 밝히겠다고 규정했지만, 4.3특별법에는 희생자 및 유족의 심사와 의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주장이다.

진실화해위원회에 의해 발간된 여순사건 관련 조사보고서의 사례도 소개됐다. 이 보고서에는 당시 국군의 지휘·명령체계를 명시했는데, 연대장 예하 간부들의 이름은 함OO, 신OO 등으로 무기명 처리했지만, 보고서 내용에는 이들의 이름이 중간중간 명시되면서 대상을 특정할 수 있도록 했다. 무엇보다 지휘 체계를 타고 올라가면 그 책임은 결국 대통령으로부터 나온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주 박사는 "애초에 가해자를 밝히는 내용이 포함됐다면 4.3특별법이 통과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다만, 4.3특별법에는 가해자를 밝히라는 내용도 없지만, 가해자를 밝히지 말라는 내용도 없다. 4.3항쟁이 63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이데올로기에 갇혀있어 다른 논의를 전개하기는 쉽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피력했다.

그는 "외부세력의 끊임없는 방해와 견제로 인해 고육지책으로 원칙을 세웠다고 하지만, 4.3특별법의 목적인 '사건의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을 너무 축소한 원칙이었다고 판단한다"며 "'주민희생'을 핵심으로 규정했다고 하더라도 그 '주민희생'의 가해주체를 밝히는 것이 인권침해 규명에 더 적절한 조치가 아니었을까"라며 "이러한 4.3의 진상보고서는 향후 여순특별법에 의한 진상보고서 등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그러면서 "올해 4.3특별법이 전면 개정됐다. 연이은 법 개정은 법의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며 "4.3 진상조사를 더 철저하고 세밀하게 해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에 대한 가해주체와 지휘·명령체계를 기록하는 것은 역사로 4.3에 있어 매우 중요한 함의를 담고 있다"고 했다.

30일 오후 2시 제주4.3평화공원 교육센터 강당에서 제주4.3도민연대 주재로 열린 '제주4.3 대전형무소 수형희생자 실태조사 보고회 및 토론회'. ⓒ제주의소리
30일 오후 2시 제주4.3평화공원 교육센터 강당에서 제주4.3도민연대 주재로 열린 '제주4.3 대전형무소 수형희생자 실태조사 보고회 및 토론회'. ⓒ제주의소리

주 박사는 "가해자를 처벌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다 죽어버린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다"며 "그럼에도 굳이 가해자를 찾아내 기술하는건 다시는 이러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가해자를 정확하게 역사의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어 토론자로 참석한 제주4.3도민연대 자문위원인 이창수 법인권사회연구 대표도 "가해자에 대한 진상을 밝히지 않고는 책임자를 처벌할 수 없으며, 가해 책임자를 처벌하지 않고 피해자와 그 가족의 명예를 회복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국가가 피해자와 가족의 명예를 공식적으로 회복시켜주는 조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조치가 온전했다고는 볼 수 없다"고 발제자의 주장에 동조했다.

이에 더해 이 대표는 "주 박사는 가해자 문제를 주로 학살을 수행한 토벌군의 명령과 지휘체계 선상에 있는 군과 경찰의 간부집단에 집중해 제기했지만, 여기에 방화, 상해, 고문 등을 저지른 자들도 당연히 포함돼야 한다"며 "공식보고서에 의존하기보다 연구와 시민사회의 자유성을 먼저 확보하고, 가해자의 문제를 연구, 조사, 규명해 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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