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개발에 우선하는 도민 기본권 보장 위한 특별법 제정 필요하다

‘소리시선’(視線)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 편집자 글
제주도개발특별법 반대 시위. ⓒ제주의소리
제주도개발특별법 반대 시위.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분신

제주특별자치도특별법(특별법)이 제정된 지 30년. 지금 생각나는 인물은 1991년 중앙정부의 일방적 특별법 제정 강행을 반대하며 스스로 몸을 사르고 세상을 떠난 양용찬 열사다. “나는 우리의 살과 뼈를 갉아먹으며 노리개로 만드는 세계적 관광지 제2의 하와이보다는 우리의 삶의 터전으로서, 생활의 보금자리로서의 제주도를 원하기에 특별법 저지를 외치며 이 길을 간다”는 그의 유서를 다시 읽는다. 조용하면서도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았다던 25살 청년의 비장한 죽음을 추모하는 도민들이면 자문(自問)을 던져야 할 지금이다. “우리 삶은 나아졌는가.”

살림살이가 좋아진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삶과 살림살이는 다르다. 경제적 문제가 삶의 전부는 아니다. 헌신을 통해 관철하려고 했던 제주 미래에 대한 양 열사의 확신과 달리 흘러간 우리의 현실을 생각하면 현재의 삶이 오히려 부끄러울 따름이다. 제주 미래에 대한 양 열사의 철학은 제주인의 주체성 수호와 정체성 보존으로 요약된다. 양용찬 열사 30주기를 맞이한 우리는 어쩌면 세속적 행복을 위해 악마에게 자신의 영혼을 판 파우스트가 아닐까. 물론 과장된 표현이다. 그러나 돈을 위해 양 열사가 염원했던 공동체적 삶을 희생한 느낌은 지울 수 없다. 

독재

그래서 “지난 30년 동안 제주도는 자본과 탐욕의 섬으로 추락했으며, 제주도민의 삶은 더욱 피폐해졌다”는 한 시민운동가의 평가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특별법은 지방자치가 시행되기 전 노태우 정부에 의해 추진됐다. 대통령을 직선제로 선출했지만, 여전히 서슬 퍼런 군부독재의 억압적 권력이 횡행하던 시절이었다. 제주 미래를 위한 좌표이며 청사진임에도 도민들의 주체적 의사는 철저히 배제됐다. 형식적인 공청회가 있었지만 전적으로 반영된 것은 중앙권력의 독단적 의지였다. 특별법이 ‘도민을 위한’ 것일지는 모르지만 ‘도민에 의한’ 법은 아닌 것이다.

당시 한 언론사의 여론조사 결과는 응답자의 70퍼센트가 실질적인 반대 의사를 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 경험하는 개발의 모순은 당시에도 마찬가지로 제기됐던 문제였다. 특별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제주시 한복판에 초고층 마천루가 올라가고, 한라산 중턱의 허허벌판에 대형 리조트들이 자리 잡았으며, 곶자왈 원시림이었던 곳에는 영어도시가 서구적인 세련미를 뽐내고 있다. 또 경관이 좋은 곳이라면 어디든지 저마다 개성미가 넘치는 호텔들과 카페들이 즐비하다. 인공시설들이 자연을 대체한 것이다. 개발로 인해 쫓겨난 것은 자연만이 아니다. 

모순

주어진 자연환경을 대대로 삶의 터전으로 삼아왔던 주민들도 마찬가지다. 대도시 인근의 낙후지역 개발이 활성화되면서 원주민이 밀려나는 현상인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 대도시가 아닌 제주에도 악성적인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특별법 제정 직전 제주도의 사유지에 대한 외지인 소유가 25%였지만 2018년 기준 37%에 육박한다. 특히 주요 관광지와 경관지역은 원주민 소유가 거의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부적인 이유나 사정이야 어쨌든 도민을 위한 개발 정책이 실상에선 제주도의 주인을 급속도로 외지인으로 바꾸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모순을 특별법 제정 당시에도 충분히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1978년에 시작한 제1차 중문관광단지가 개발이 완료된 후 땅을 잃은 주민들의 70% 이상이 호텔이나 관광지 주변에서 날품팔이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는 보도는 당시 도민 사회에 큰 충격을 준 바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땅을 헐값으로 팔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공익사업이 아닌 사익창출을 위한 민간의 개발 사업이라도 사업자가 일정부분만 땅을 확보하면 나머지는 토지주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강제적인 토지수용을 허용하는 독소조항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제주국제자유도시를 선포한 지 19년,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한지 15년이다. 그로 인해 양적 성장을 이룬 것은 분명하나, 잃은 것 또한 적지 않다. 제주특별자치도가 도민의 삶의 질 증진을 위해 어디로 가야할지 밀도있는 논의들이 지속돼야 한다. 그래픽 이미지=최윤정 기자. ⓒ제주의소리
양 열사가 온 몸으로 막으려 했던 미래가 현실이 됐다. 제주 미래를 위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먹고사는데 급급하던 보릿고개 시절에 만든 개발특별법에 우선하는, 도민의 삶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특별법이 필요하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잿밥

이 조항은 특별법 초안에도 들어갔지만 도민들의 거센 반발로 삭제됐다. 하지만 여전히 특별법에는 투기성이 아닌 생계형 토지의 성격상 규모가 작을 수밖에 없는 주민들을 개발사업자와의 협상에서 ‘을’의 불리한 입장으로 전락시키는 장치들이 숨어 있다. 더욱이 제주도의 요지 대부분이 외지인, 특히 대자본이 소유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개발을 주요 목적으로 하는 특별법이 도민이 아니라 대규모 자본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는 비판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한마디로 특별법은 도민이 아닌 ‘특별한’ 사람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편법이다. 

대규모 개발을 종전보다 더 용이한 방법으로 가속화하기 위한 특별법으로 인해 제주도는 단기차익을 노리는 투기성 자금을 위한 최적의 사냥터가 돼 버렸다. 사업시행자가 용도지역의 행위제한을 면제받게 해주는 것이나 도지사가 개발사업자에게 쉽게 인허가를 내줄 수 있는 조항들은 개발 촉진을 위한 것이지만 특혜성 인허가 비리와 이를 통한 부동산 차익상승의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충분했다. 그 결과 제사보다 잿밥에 눈독을 들이는 땡추들이 판치는 현실이 됐다. 당초 개발보다 땅값 자체에 관심이 있는 투기꾼들이 ‘폭탄 돌리기’를 한 결과는 뻔하다. 

호구

개발예정지로 지정됐다가 급격한 땅값 상승으로 사업성이 떨어져 개발을 포기한 토지들이 하이에나 떼가 달려들어 뜯어먹다 남긴 짐승의 시체처럼 여기저기 흉물로 남아 있다. 언제 공사를 재개할지 기약 없다. “무분별한 개발에 규제를 가하고 주민들에게 개발이익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한다”는 특별법 취지가 무색하다. 특별법 주요 명분인 지역균형개발, 자연환경보전, 지하수보호, 개발이익 환원 중 제대로 실현된 게 전무하다. 섣부른 균형개발로 인해 제주도 전 지역이 난개발로 신음하고, 허술한 환경보전정책은 오히려 곶자왈과 생태계 파괴를 재촉한다.

지하수보호 조항 또한 한진그룹이 위법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먹는 샘물의 개발 및 판매에 대한 허가를 넉넉히 취득할 정도로 비웃음거리가 돼 버렸다. 그렇다고 개발이익이 제주도로 제대로 환원됐는지도 의문이다. 특히 관광업계에 고용된 제주 젊은이들의 급여 수준은 전국에서 최악이다. 그럼에도 관광객 폭증으로 인한 각종 쓰레기와 오폐수 등 환경문제와 부동산 값 폭등에서 비롯되는 경제, 사회적 문제들은 오로지 우리 도민들이 떠안는 형국이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가져간다는 푸념으로 모자라다. 제주의 실제 주인이 완전히 바뀐 격이다. 

추모

초대형 카지노가 시내 주택가 한복판까지 깊숙이 쳐들어온 현실은 막장개발의 결과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허황된 일확천금 대박의 꿈을 쫒는 도박꾼을 유혹하기 위해 한밤을 대낮처럼 밝히는 카지노의 현란한 네온사인 불빛에 새우잠을 청해야 하는 주민들이 굴복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양 열사가 온 몸으로 막으려 했던 미래가 현실이 된 것이다. 제주 미래를 위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먹고사는데 급급하던 보릿고개 시절에 만든 개발특별법에 우선하는, 도민의 삶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특별법이 필요하다. 그것이 양 열사의 값진 희생을 추모하는 길이다. / 김헌범 논설위원, 제주한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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