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과 함께 한 제주대병원 20년] ① 근대의료 태동기, 자혜의원→도립병원 공공의료 기둥 역할

제주를 대표하는 거점 의료기관이자 도민의 의료 안전망 역할을 자임하며 지난 2001년 문을 연 국립 제주대학교병원이 지난 11월 1일 개원 20주년을 맞았다. 섬이라는 지역적 특성상 열악한 의료체계를 극복하고, 인술을 펼치기까지는 인고의 시간이 뒤따랐다. 제주대병원의 역사는 곧 제주 공공보건의료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주의소리]는 약 100여 년 전 제주 근대 의료를 태동시켰던 제주자혜의원으로부터 오늘날 제주대학교병원이 의료자치 실현에 도전하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을 되돌아보고, 미래 100년을 향한 비전과 과제를 다섯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 편집자 주
제주 공공의료기관의 시초, 전남제주자혜의원. 자혜의원은 이후 제주도립병원, 제주도 제주의료원을 거쳐 제주대학교병원으로 분한다. 사진=제주대학교병원20년사  ⓒ제주의소리
제주 공공의료기관의 시초는 1912년 10월 전남도 제주목(濟州牧) 이아(吏衙)터에 설립된 '전남제주자혜의원'(사진, 현 예술공간 이아)이다. 자혜의원은 이후 제주도립병원, 제주도 제주의료원을 거쳐 제주대학교병원으로 분한다. 사진=제주대학교병원20년사 ⓒ제주의소리

오늘날 제주대학교병원은 명실공히 지역 대표 거점병원으로서의 위상을 다졌지만,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는 지난 100여 년 간 제주사회 질곡의 역사를 함께 감내해야 했다.

그 역사는 의료 불모지나 다름 없었던 제주섬에서 인술의 싹을 틔우기 위한 보이지 않는 인고의 시간이었다. 과거 100여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근대 제주 공공의료의 역사는 개원 20주년을 맞은 제주대학병원의 단단한 주초가 된 셈이다. 

옛부터 제주는 섬이라는 지역적 특수성으로 인해 의료 인프라에 상당한 취약점을 드러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기록에 따르면 병자를 돌보는 시설 개념으로 살펴보면 제주지역 최초의 의료기관은 1445년 한센병 치료 시설인 구질막(救疾幕)이다.

탐라지(耽羅志)를 살펴보면 제주목(濟州牧)에는 대문 동쪽 좌위랑에 심약방(審藥房)이 있었으며, 전의감과 혜민서에서 파견된 종9품 외관직인 심약(審藥)이 지방 관아의 의료와 그 지역에 할당된 약재 수급을 책임졌다.

그외 지역은 변변한 의료기관이 존재했다는 기록은 없다. 당시만 하더라도 원시적 민간요법이나 미신적인 방법으로 병을 치료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야말로 의료 불모지였던 제주의 근대적 공공 의료기관의 효시는 1912년 10월 제주목(濟州牧) 이아(吏衙)터에 설립된 '전남제주자혜의원'이다.

제주 공공의료기관의 시초인 제주자혜의원은 1927년 전라남도 도립제주의원으로 이름이 바뀐다. 사진=제주대학교병원20년사 ⓒ제주의소리
제주 공공의료기관의 시초인 제주자혜의원은 1927년 전라남도 도립제주의원으로 이름이 바뀐다. 사진=제주대학교병원20년사 ⓒ제주의소리

자혜의원은 이후 전라남도 도립제주의원, 제주도립병원, 지방공사 제주도 제주의료원, 제주대학교병원으로 변모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식민지 시절의 아픔을 내포한 곳이었다.

일제 시절 자혜의원은 한국 주재 일본군이 저장했던 의약품, 의료기기, 기구 등을 토대로 1910년 세워졌다. 원장이나 의사들도 현역 군의관으로 충당되는 등 사실상 조선 침탈을 위한 군병원의 역할을 맡았다.

이후 일제는 식민지 민심 회유를 목적으로 자혜의원을 공공 의료기관으로 개설했다.

1912년 5월 16일 조선총독부로부터 명칭과 위치에 대한 설립 인가를 받고, 그 해 10월 제주시 삼도1동 부지에 한식 목조 건물을 개조, 병실 16병상을 꾸렸다.

설립 당시 자혜의원은 의사 4명과 간호사 12명으로 구성됐으며, 내과, 소아과, 안과, 이비인후과, 피부비뇨기과, 산부인과, 치과를 개원하고, 이후 외과, 정신병과를 신설했다. 1927년에는 전라남도 도립 제주의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기존 한옥 구조의 도립제주의원은 1935년 개축공사를 시작해 1936년 새단장했다. 시멘트벽돌로 쌓아올린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당시에는 제주도 유일의 양식 구조 건축물이었다.

1936년 개축된 제주도립병원 건물. 당시에는 제주 유일의 양식 건축물로, 건축사적 측면에서도 큰 가치를 지녔지만 1997년 12월 제주의료원 응급의료센터를 짓기 위해 허물어졌다. 사진=제주대학교병원20년사 ⓒ제주의소리

1945년 광복을 거쳐 1946년 제주도 승격과 함께 전남도립제주의원은 제주도립병원으로 새롭게 출발했다. 광복 당시 제주 전역을 통틀어도 의료기관은 제주도립병원을 비롯해 22곳이었다.

그리고,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 4.3의 광풍이 제주에 몰아쳤다. 제주도립병원은 4.3의 역사의 중심에 있었다. 사실상 제주4.3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 1947년 3월 1일 '3.1절 발포사건'이 벌어진 장소가 바로 제주도립병원 인근이기도 했다.

제주4.3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1947년 3월 1일 관덕정 광장 앞에서 경찰의 무차별 발포로 민간인 4명이 즉사했고, 도립병원으로 실려 온 부상자 중 2명도 끝내 숨지는 등 중상자 6명까지 포함해 12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건이 확대되며 발생한 2차 발포 사건은 병원이 사건의 중심이 됐다. 병원에 입원 중이던 경찰이 갑자기 총성이 나고 피투성이가 된 부상자들이 업혀 들어오자 공포감을 느껴 소총을 난사했고, 행인 2명이 중상을 입었다.

제주도 공공의료의 산 역사로써, 의료기관이었기에 겪어야 할 필연적인 아픔이기도 했다.

역사의 상흔을 딛고, 제주도립병원은 한국전쟁 피난민들을 위한 구호 역할의 최전선에 섰다. 1960년대에는 전문의들이 등장해 전문 의료기관으로서의 기틀을 다졌고, 1970년대에 들어서는 거의 모든 전문 과목이 제주에 자리 잡았다.

1964년 4월에는 제주도립병원 서귀분원을 신설해 의료복지에서 소외됐던 산남지역 주민들의 건강을 지켰다. 이후 1976년 1월 서귀분원은 제주도립서귀병원으로 승격됐다. 이는 서귀포의료원의 전신이다.

제주도립병원 역시 1979년 12월 본관을 준공하며 인프라 확충에 박차를 가했다. 운영 병상 수 80병상을 인가받고, 1983년 7월에는 지방공사 제주도 제주의료원으로 전환됐다.

사실상 오늘날 제주대학교병원이 있게 한 전신 제주의료원 시대를 열게 된 배경이다.

제주의료원에서 대학병원으로 개원한 '삼도동 시대'나, '아라동 시대'를 연 지금이나 도민들의 가슴에 개원 20주년을 맞아 성년이 된 제주대학교병원은 여전히 가장 든든한 '치유의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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