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미국 정부, 4.3 도민 피해 공식 사과하고 마땅히 배상해야

‘소리시선’(視線)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 편집자 글

우리 근현대의 비극인 제주4.3과 관련해서 하나의 큰 획이 그어졌다. 4.3 희생자들에 대해 국가적 차원의 보상이 이뤄짐으로써 대한민국 역사의 한 축으로 편입된 것이다.

지난 12월 9일 제391회 정기국회 본회의에서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이하 개정안)이 의결되었다. 1947년 3.1절 기념행사 발포사건으로부터 2만7천312일이 지나서야 4.3희생자에 대한 국가보상 법안이 만들어졌으니 만시지탄이다. 앞으로 있을 국가보상은 정부가 4.3 당시 국가폭력을 명백히 인정하고 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4.3희생자와 유족뿐만 아니라 그동안 제주4.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에 노력해온 관계자와 도민들은 이번 개정안 통과에 대해 한결같이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제주4.3 당시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희생자는 1인당 9000만 원씩 균등하게, 후유장애자는 장애 정도와 노동력 상실률에 따라, 수형자는 수형일수를 고려해서 9000만 원 이내 범위에서 위원회가 결정한 보상금을 차등 지급받게 된다. 그리고 희생자와 유족이 보상금 지급결정에 동의하면 민법상 화해가 성립된 것으로 간주되고, 이번에 보상금을 받으면 4·3 피해보상이 완전히 종결된다. 그러기에 70여 년 동안 4.3희생자와 유족들이 겪었던 고통을 생각한다면 그 보상액은 턱없이 부족하고, ‘배상’이 아닌 ‘보상’이라는 데 아쉬움이 크다. 

이번 개정안에서 제주4.3의 역사적 특수성을 반영해 호적(현 가족관계등록)을 정정할 수 있는 특례조항을 두지 않은 것은 대단히 아쉬운 일이다. 참혹했던 4.3과정에서 도민들 가운데 사망하거나 실종됨으로써 출생신고나 혼인신고를 할 수 없어서 실제와는 다르게 호적이 작성된 경우도 적지 않다. 그 경우에 보상금 지급에 혼선을 야기할 수 있고 끝내 보상금을 받지 못할 수도 있어서, 제주도민 사이에 분열과 갈등을 가져올 수도 있다. 국가보상을 통해 진정한 화해와 화합을 도모하려면, 정부와 국회는 희생자와 유족들이 보상금을 받는데 차질을 가져올 법령들을 발 빠르게 정비해야 한다. 그리고 제주특별자치도와 도의회는 그에 따른 후속조치와 준비를 철저히 해서 실제 희생자들이 실질적 보상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미군들이 38선 이남을 통치하던 시기에 4.3이 발발했고, 그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미군정은 당시 국가폭력을 지원했다. 이에 우리는 4.3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다른 나라의 인권을 강조하는 미국 정부가 제주양민을 학살하고 인권유린에 직접 개입한 사실에 대해서 70여 년간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되돌아보면 제주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의 길은 멀고도 험했다. 4.3은 정부수립을 전후하여 발생하였기에 가해 당사자인 이승만 정권은 물론, 박정희와 전두환 군부독재 시기에 4.3은 금기어였고, 그에 대해 말하는 것조차 철저하게 불온시 되었다. 4.3희생자와 유족들이 서러워조차 못했던 암울한 시기에 목숨 걸고 ‘제주4.3’이라는 단어를 세상에 쏘아올린 선각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4.3은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언급되기 시작했다. 당시 대학생과 청년, 일부 지식인과 언론인들이 4.3에 대한 증언을 채록하고 자료를 발굴하면서 그 진상을 세상에 드러내기 시작했다.

제주4.3은 민주정부가 들어서서야 비로소 공식어로 자리 잡았다. 김대중 정부는 2000년에 제주4.3특별법을 제정했고, 노무현 정부는 2003년에 정부 차원의 제주4.3진상보고서를 만들고 국가폭력에 대해 도민들에게 처음으로 사과하였다. 하지만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되면서 제주4.3 진상규명을 향한 발걸음을 다시 멈추었다. 그러나 4.3의 역사는 더디지만 한 걸음 한 걸음 앞을 향해 나갔고, 많이 늦긴 했지만 문재인 정부 마지막 정기국회에서 4.3희생자 국가보상 법안이 마련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고 우리 역사에 진일보를 가져온 사건이다.

제주4.3은 단순한 제주역사와 우리나라 역사만이 아니라 세계사적 의미를 지닌다. 4.3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과 소련이 동아시아를 지배하기 위해 한반도를 남북으로 분할하는 과정에서 제주도민이 참화를 겪게 된 사건이다. 따라서 4.3은 우리 역사뿐만 아니라 세계 역사에도 선명하게 기록되어야 한다. 미군들이 38선 이남을 통치하던 시기에 4.3이 발발했고, 그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미군정은 당시 국가폭력을 지원하였다. 이에 우리는 4.3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다른 나라의 인권을 강조하는 미국 정부가 제주양민을 학살하고 인권유린에 직접 개입한 사실에 대해서 70여 년간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미국 바이든 정부는 4.3으로 인한 제주도민의 피해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마땅히 배상해야 한다.

1948년 집단학살 범죄 방지와 처벌에 관한 국제협약에 따르면, 집단학살은 문명 세계에 의해서 단죄돼야 하는 국제법상 범죄임을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1949년 제네바 협정에 따르면, 전시에도 민간인에 대해 고의적 살인 고문 등 비인간적 행위, 고의적 괴롭힘이나 신체 상해, 군사적 목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대량 파괴와 약탈을 금하도록 규정되어 있고, 더 나아가 모든 재판상의 보장을 부여하는 재판에 의하지 않은 판결 및 형의 집행을 인정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정의(正義)는 한 국가 안에서도 이뤄져야 하지만, 국가들 간에도 이뤄져야 한다. 이번 국가보상을 계기로 우리 정부도 미국 정부에 제주4.3에 대한 책임을 묻고 공식 사과와 배상을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 

윤용택 제주대 철학과 교수. ⓒ제주의소리
윤용택 제주대 철학과 교수. ⓒ제주의소리

과거는 현재와 미래의 거울이다. 잘못된 과거를 기록하고, 기억하며, 교육하지 않으면, 또다시 똑같은 잘못을 반복할 수도 있다. 우리가 제주4.3에 대한 국가배보상을 꾸준히 요구해왔고, 미국에게도 배상을 요구하는 것은 단순히 응보적 차원의 정의 때문만은 아니다. 앞으로 어떤 경우에도 양민을 상대로 비인도적이고 야만적인 국가폭력이 일이 다시는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우리 역사와 세계의 역사에 깊이 새겨 우리 도민뿐만 아니라 전 국민과 온 인류에게 기억하게 하고 교육하기 위한 것이다. / 윤용택 논설위원·제주대 교수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