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현 작가의 '어떤 지점'과 고현주 작가의 '기억의 목소리'
이세현 작가의 '어떤 지점'

 

제주4.3범국민위원회가 재경제주4.3희생자유족청년회, 4.3 평화재단과 함께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마루아트센터 1관에서 개최한 제주4.3 73주년 하반기 추모문화전시 ‘제주4.3과 친구들 : 겨울나기 좋은 방’이 주목한 사진가들의 4.3 소재 작품들이 4.3 유족들과 서울 시민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앞서 지난 4월 서울 서대문형무소기념관 앞에서 열린 73주년 서울 추념식 및 ‘꽃보다 아름다운, 동행’ 콘서트, 경기아트센터에서 개최한 ‘봄이 왐수다’ 전시를 성공리에 개최한 제주4.3범국민위원회는 73주년 하반기 추모문화제의 일환으로 오는 19일까지 진행 중인 ‘제주4.3과 친구들 : 겨울나기 좋은 방’을 개최, 4.3 전국화와 대중화에 이바지하고 있다.

특히 제주4.3 73주년을 마무리하며 2021년 한 해 연대의 손길을 뻗어준 ‘4.3의 친구들’ 중 올 한 해 제주4.3을 주요 소재로 개인전을 연 사진작가 3인의 작품을 모아 눈길을 끈다. 

올 4월부터 12월까지 서울 류가헌 등에서 각각 개인전 [기억의 목소리 - 사물에 스민 제주4.3 이야기], [나를 품은 살갗], [어떤 지점]을 개최한 고현주‧김일목·이세현 작가는 제주4.3 피해자 유품(고현주)과 4.3 유족인 아버지(김일목), 그리고 4.3을 비롯한 근현대사 공간을 카메라에 담아냈다.

먼저 ‘역사적 기억을 상기시키는 돌팔매’를 주제로 지난 12일까지 사진전 [어떤 지점]을 개최했던 이세현 작가는 근현대사에서 사건의 중심에 있던 장소이면서 현재까지도 밝혀지지 않은 진실을 안고 있는 역사적 공간들, DMZ, 광주 5·18민주광장, 군함도, 일제강점기의 강제노역과 여순사건의 아픔이 자리한 마래 제2터널, 118명 광부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서린 해남의 옥매광산 등 32개의 역사적 공간, 그 풍경을 향해 돌멩이, 벽돌, 흙과 풀 한줌으로 시각화한 ‘질문’을 투척하는 독특한 시선을 자랑한다.

이세현 작가의 '어떤 지점'과 고현주 작가의 '기억의 목소리'
고현주 작가의 '기억의 목소리'

 

그 중 알뜨르 비행장, 곤을동 등 대표적인 4.3 유적에 카메라를 가져간 이세현 작가는 “장소는 어떤 역사가 실재했었다는 것의 물리적 증거”라며 “저는 그 장소에 돌을 던지는 행위를 통해서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적 사건들이 다시 상기되고 그 안에 은폐된 진실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를 바랍니다”라는 소감을 밝힌 바 있다.

1994년생으로 언론사 사진기자를 거쳐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4년째 강원도 화천지역의 이주노동자에 대한 다큐멘터리 작업하며 지난해 온빛다큐멘터리 신진사진가상을 수상한 김일목 작가는 2010년부터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 부친 김명식 선생의 삶을 조명한 개인전 [나를 품은 살갗]을 개최한 바 있다.

4.3 피해자인 김명식 선생은 1944년 제주도 하귀 출생으로, 1977년 ‘10장의 역사연구’ 장시를 발표했고, 그로 인해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의 긴급조치9호로 징역3년을 살았다(지난 2018년 42년 만에 무죄판결). 출소 후 일본행을 선택, 4·3항쟁을 소재로 한 책 [까마귀의 죽음], [화산도]의 재일조선인 김석법 작가 등과 교류하며 제주4·3진상규명운동에 투신했다.
 
1988년~1991년 사이 [제주민중항쟁] 3부작을 엮어낸 김명식 선생은 그로 인해 국가보안법위반 이적표현물 제작 등의 혐의로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대전형무소에서 복역 후 출소하기도 했다. 이후 김명식 선생은 김일목 작가를 비롯한 온 가족과 함께 강원도 화천에서 새 삶의 터전을 잡고, 농사꾼으로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김일목 작가는 “어린 시절 제주4·3항쟁을 겪었던 아버지, 훗날 제주4·3항쟁진상규명을 위해 애쓰셨던 아버지, 거친 국가폭력에 피해자가 되었던 아버지, 그럼에도 말과 글을 멈추지 않았던 나의 아버지, 말과 글은 당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었고 당신 삶의 가치였다”며 “버드나무 가득했던 수렁논을 톱과 쇠스랑으로 일구며 700평의 논에서 벼를 수확해 말리는 아버지, 낡아빠진 지게로 땔나무를 지어 나르는 아버지, 한겨울 장작불을 지피고 대자연의 기운에 몸과 마음으로 위안을 찾아가는 나의 아버지, 그 살갗 속에 내가 있었다”며 4.3 피해자이자 평화운동에 투신한 아버지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표현한 바 있다.

한편, 지난 4월 허은실 시인과 함께 [기억의 목소리 : 사물에 스민 제주4.3 이야기](문학동네)를 출간했던 고현주 사진가는 제주4.3으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의 증언을 토대로 유족들이 간직하고 있는 4.3 관련 유품 22점과 수장고에 보관된 신원불명 희생자의 유품 5점을 카메라에 담아 ‘사물을 중심으로 만나는 제주4.3의 이야기’라는 독특한 시선을 자랑한 바 있다.

지난 2019년 [기억의 목소리 I]에 이어 두 번째 사진집을 개최하고 역시 지난 4월 서울 류가헌에서 동명의 전시를 개최하기도 했던 고현주 작가는 작가노트를 통해 “5년째 4.3 관련 작업을 하면서 많은 유족과 희생자분들을 만난다”며 “제주에 오면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그 아름다운 공간들이 4.3 당시 집단 학살터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제주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풍경은 어쩌면 4.3 영령들의 피의 대가로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제주에 너무 많은 빚을 졌다. ‘기억의 목소리’ 작업은 그렇게 무거운 마음으로 시작됐다”는 소회를 밝힌 바 있다.

이들 세 작가 중 김일목·이세현 작가는 오는 19일 전시 마지막 날 열리는 전시 기념 토크 ‘예술가의 기억법’에 출연, 제주4.3과 작품 세계에 대한 진솔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 줄 예정이다.

제주43TV, 서울의 소리 등 유튜브 채널로도 생중계되는 이번 토크는 두 작가 외에도 4.3을 소재로 한 1인극 [너에게 말한다]의 최민주 연출가, 올 3월 출시된 2D 어드벤처 게임 ‘언폴디드 : 동백이야기’(인디게임 개발팀 코스닷츠) 개발자 김회민·정재령, 최근 문화체육관광부 및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최한 ‘2021 콘텐츠임팩트’ 통합 쇼케이스 참여작인 인터랙티브 VR 콘텐츠 ‘동백꽃 곱을락’(팀 v.ark) 제작자 김보경·배주형 등이 참여, 젊은 감각으로 4.3을 이야기한 다양한 창작자들이 참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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