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국 제주4.3평화재단 4.3트라우마센터 부센터장이 첫 시집 ‘아쉬운 기억’(도서출판 각)을 펴냈다. 

2000년대 이후 저자의 이름 석 자는 주로 4.3연구소와 4.3평화재단에서 찾아볼 수 있었으나, 민주화시기를 지나온 제주도민들은 늘 문화 현장을 누볐던 발 빠른 마당발로 친숙하다.

불의에 대한 저항, 제주4.3 진상규명 등 거대한 파도 같은 담론에 온몸으로 부딪쳤고 때로는 조직의 일원으로서 힘 쓴 그는 올해 공직자로서 정년퇴임을 맞이했다. 대학문학동인 신세대, 풀잎소리 동인, 제주청년문학회, 제주작가회의 등 문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을 살아왔지만 어떤 인연인지 아직 본인 이름을 내건 책은 없던 와중에,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계기에 맞춰 첫 시집 ‘아쉬운 기억’을 펴낸 것이다.

시집에는 저자가 젊은 시절부터 차곡차곡 쌓아온 시 38편이 담겨 있다. 더불어 동고동락한 든든한 동지들의 따뜻한 격려도 함께 실려 있다. 

키 커부난 죽언
오승국

청춘의 나이가 죄가 되어 
한시 하루 죽음의 두려움에 떨었네

물찻말찻산란이오름 골짝 골짜기에
짐승처럼 숨어살다 봄햇살이 들 때쯤 
하얀 천 깃발 들고 눈물로 하산했주 
젊은 청년들 잡아들여 주정공장 가둬두고
별별 고생 다 시킨 후 

열여덟 살 이상 한 줄로 집합시키난 
영식이 삼촌은 그 나이가 되어도 
키가 한 발밖에 안 되언 
열일곱이엔 허연 살아났고
앞동네 춘식이 형은 열일곱이라도 
훌쭉하게 커부난 폭도질했댄 허영
육지감옥소로 실러부렀주 

세기말 기억
오승국

길고 긴 반역의 세월 앞에
다시 새로운 햇살이
헤어진 뭇 영혼의 상처 위에
부서지고 있습니다

저 황량한 한라의 들판에서
새 생명을 꾸려가는 질경이꽃과 
무리지어 피어나는 억새꽃들에게
패배의 쓸쓸함은 말하지 마십시오
화려한 꽃들은 지고 없으나
그 간절한 시대의 언저리에서
가슴과 가슴끼리 피어나던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
짓밟힌 정의의 숨결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오던, 아

그리운 벗들의 얼굴 위로 
피투성이 팔십년대의 사랑이
용암처럼 흐르고 있습니다

온전한 것 하나도 없는 깡마른 눈물땅에서
어머니의 노동이 물결치던
탑동점령지의 숨비소리는 
까마득히 돌아오지 않고
가고 없는 세월과 사람들이
세기말 햇살에 빛나고 있습니다

강덕환 시인은 추천의 글에서 “그와 같이 발품을 팔며 다녔던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재고 싶어진다. 술집을 전전하던 시절은 물론이고, 기자로서의 취재 현장, 4.3희생자 조사와 유적지 답사, 숱한 문학기행 등을 자양분 삼아 풀어낸 그의 시가 1980~90년대, 그리고 2000년대 초반을 관통하는 사이 희끗희끗 백발과 잔주름이 늘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질긴 것들, 나약한 것들, 움츠린 것들에게 보내는 그의 따뜻한 시선이 여전하기에 동면을 거쳐 새봄에 다시 싹을 틔울 것임을 정녕 믿는다”고 당부했다.

서안나 시인도 “오승국 시인은 제주4.3사건에서부터 신축항쟁까지 그 현장을 발로 뛰며 온몸으로 시를 쓰는 시인이기에, 이 시집은 그가 평생 투신해 온 투쟁의 기록이기도 하다. 또한, 조화로운 공동체 의식 추구와 인간 존재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이 시집이 지닌 소중한 미덕”이라고 추천했다.

김수열 시인은 발문에서 “이제 그는 정년을 앞두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그가 어떤 길을 선택하든 그의 길을 끝까지 지켜보면서 응원할 것이다. 그 또한 주변의 기대와 성원을 잘 알기에 결코 어긋남 없이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것임을 믿는다. 그의 무궁무진한 앞날에 건강과 건필을 기원하면서 첫 시집 출간을 맞아 진심으로 다시 한 번 힘찬 박수를 보낸다”고 강조했다.

오승국 시인.

저자는 1961년 서귀포시 남원읍 태흥리에서 태어났다. 대학 시절 문학 동아리 ‘신세대’와 ‘풀잎소리 문학동인’에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제주문화운동협의회 대표, 제주청년문학회 대표를 역임하며 작품 활동을 했고 공동 창작 ‘용강마을, 그 피어린 세월’을 발표했다. 지금은 제주작가회의에서 활동 중이다.

1998년 '바람처럼 까마귀처럼'(실천문학사)에 시 ‘복수초’ 등 5편을 발표했고, 1999년 제주작가 창간호에 시 ‘모슬포 이야기’ 등 3편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7년 부터 2년간 ‘오승국의 4.3유적지를 찾아서’를 한라일보에 연재했다. 2019년에는 JIBS ‘4.3유적지 기행’을 진행해 방송대상 수상과 국가기록원 영구보존필름으로 선정됐다.

2001년부터 6년 동안 제주4.3연구소 사무처장을 역임했고, 2009년부터 2021년 까지 제주4.3평화재단에 근무하며 트라우마센터 부센터장, 총무팀장, 기념사업팀장, 공원관리팀장을 역임했다. 그동안 ‘4.3유적Ⅰ·Ⅱ’, ‘무덤에서 살아온 4.3수형자들’ 등을 공동으로 출판했다.

104쪽, 도서출판 각,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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