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택배근로자 실태조사 '모욕 경험 있다' 61%..."노동환경 개선해야"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많게는 하루 12시간 가까이 일하면서 고객으로부터 심한 모욕까지 당해야 하는 제주지역 택배기사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택배회사 간 과열 경쟁으로 치닫는 기존의 구조에서 벗어나 노동자의 부담을 덜어주는 정책대안이 시급하다는 제언이 나왔다.

제주특별자치도는 23일 '제주지역 택배근로자 근로 실태조사 및 근로환경 개선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는 올해 7월 27일 '생활물류 서비스산업 발전법' 시행에 따라 제주지역 택배 물류 형태 및 근로에 대한 전반적인 실태를 파악하고, 택배노동자 보호를 위한 정책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실시됐다.

제주특별자치도 비정규직근로자지원센터에 의뢰해 진행된 이번 설문조사는 지난 5월말부터 3개월에 걸쳐 실시됐다. 구조화된 설문지를 통해 면접조사원 1대1 직접대면조사 방법, 온라인 조사를 병행한 결과 217명의 택배노동자와 택배산업관련 이해관계자 50명 등이 조사에 응답했다.

제주지역 택배노동자의 평균 연령은 39.5세로 조사됐다. 한국교통연구원의 2020년 화물운송시장 동향에 따르면 일반화물 차주의 연령은 평균 52.8세, 개별화물차주의 평균 연령은 57.9세, 용달화물 차주의 평균연령은 62.6세로, 택배노동자의 평균 연령은 매우 낮은 편이다.

택배산업의 급격한 성장과 낮은 진입장벽, 제주지역의 좋은 일자리 부재, 택배업무가 일한 만큼 벌 수 있다는 인식으로 젊은 층의 진입이 활발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택배노동자의 주당 근로일수는 주 6일이 58.1%로 가장 많았고, 주 5일이 41.0%로 조사되면서 평균 5.6일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속 회사별로 우체국택배와 쿠팡택배의 경우 주 5일로 조사됐고, 그외 택배회사는 대부분 주 6일 이상 업무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평균 출근 시간은 오전 6~8시대로, 퇴근시간은 오후 6~8시대였고, 휴식시간을 제외하면 물량이 평소인 하루 평균 근무시간은 10시간 42분 가량이다. 물량이 많은 때는 12시간 이상씩 근무하는 경우도 허다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통상 작업물량은 코로나19 이전에는 하루 택배 200박스, 잡화 27박스로, 평균 227박스로 조사됐다. 코로나19 이후에는 배송 물량이 다소 늘어 평균 배송건수는 212건, 잡화건수는 28건 등 240박스 정도로 조사됐다. 코로나19 이전부터 택배일을 한 택배 기사의 물량 증가량은 8.9%로 파악됐다.

근무 여건도 열악했지만, 뒤따라오는 업무 환경도 택배 기사들의 고충을 가중시켰다.

택배일을 하면서 지난 1년동안 고객으로부터 부당한 경험을 당한적이 있는지 묻는 질문에 무려 61.3%에 달하는 택배 노동자가 '본인의 잘못과는 무관하게 고객에게 욕설이나 모욕적인 말 등 인간적인 모욕을 당한 경우가 있다'고 답했다. 모욕을 당한 횟수는 연평균 15.7회로 월 1회 이상 고객의 언어적 폭력에 노출됐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고객에게 신체적인 폭행을 당한 경우도 전체 조사자의 2.3%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배송과 무관한 집안일 등을 요구받은 경우는 9.7%가 있다는 응답을 보였으며, 해당 횟수는 연평균 6.5회로 나타났다.

고객에게 심한 모욕이나 신체적 폭행을 당한 응답자를 대상으로 주로 어떻게 대처했는지 묻는 질문에는 '특별한 대처 없이 참고 계속 일했다'라는 응답이 85.0%로 가장 많았고, 회사를 포함한 기관 도움을 받은 경우는 9.8%에 불과했다.

경조사, 건강문제 등 개인사정으로 쉬어야 하는 경우 배송처리를 어떻게 하냐는 질문에는 '기사들이 알아서 다른 동료에게 부탁한다'는 응답이 62.7%로 가장 많았고, 24.9%는 '회사에서 알아서 처리해 준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회사에서 처리해준다는 의견은 특정 택배사에 국한된 사안에 그쳤다.

쉴 정도로 아픈데도 불구하고 일을 한 경우는 조사자의 70.0%가 해당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평균 횟수 7회로 많은 택배기사들이 건강이 안 좋아도 무리하면서 일을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개인사정으로 쉬는 경우 배송처리방법이 다른 동료에게 부탁하는 비중이 많은 등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함에 따라 사실상 아파도 쉬지 못하는 작업 환경에 노출돼 있었다.

연구진은 "택배회사 간 과열 경쟁으로 인해 택배단가는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택배기사의 건당 수수료도 낮아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택배업체마다 노동자와의 계약관계가 상이하나 회사가 노동자를 직접고용하는 비중은 많지 않으며, 일반적으로 계약관계는 택배업체-대리점-택배노동자의 계약구조로 이뤄져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계약관계가 여러 단계를 거치다보니 택배노동자가 가져가는 수수료가 줄어드는 문제도 발생한다"며 "배송물량이 늘어나고 노동시간이 증가함에 따라 노동강도는 심해져 결국 택배노동자는 장시간의 고된 노동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고 분석했다.

특히 "주 6일 근무에 하루 11시간 이상 일하며 휴일조차 없는 일자리가 됐으며,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 위탁계약 택배노동자의 경우 사용할 수 있는 연차가 없기 때문에 아파도 쉬지 못하며 당일의 배송물량을 소화해야만 하는 현실"이라며 "부득이 경조사나 병가, 휴가 사용시 자신이 배송할 물품을 동료기사들이 대신해 배송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봤다.

연구진은 이를 개선하기 위해 "부당한 비용 징수 행위, 계약내용 외 업무강요 행위, 일방적인 손해배상 책임설정 행위 등 심사 지침이 금지하는 행위들의 구체적 사례들을 검토할 필요가 있고, 택배노동자와 사용자 간 계약관계에 적용되는 표준계약서의 제작 및 확산 또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또 "화물 상하차·분류 등 노동 강도가 높거나 장시간의 노동력이 요구되는 작업의 부담을 덜어주는 첨단기술장비 도입이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첨단기술장비 도입은 택배서비스 제공을 위한 일련의 절차에서 발생하는 각종 업무를 보조하거나 대체함으로써 업무의 효율성과 효과성을 극대화해 종사자의 노동강도를 낮추고 근로여건을 개선함은 물론 서비스의 품질을 제고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와 함께 "택배차량이 정비를 받는 시간에 휴식을 취하거나 기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쉼터 조정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고, 택배노동자의 갑질 피해를 대비한 심층 상담 매뉴얼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최명동 제주도 일자리경제통상국장은 "이번 연구를 계기로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근무하는 택배노동자들에 대한 정책방안 모색에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내년에 추가 설치되는 ‘혼디쉼팡‘이 이동노동자들의 근로환경 개선 및 소득증대에 큰 기여를 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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