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254) 신발 뒤축 높은 것, 사돈 높은 것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편집자 글]

* 신칙이 : 신발 뒤축, 신발 발굽
* 노픈 거 : 높은 것

직설하지 않고 에둘러 말해 흥미로운 표현이다.

앞뒤 대구(對句)를 구성하고 있는 두 구절의 뜻부터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신축이 노픈 거’는 신발 뒤축 곧 신발 굽이 높다 함인데, 이는 한 집안의 수준이나 위상이 높다는 뜻으로, 사둔(사돈) 집안의 가세(家勢)가 쟁쟁함을 우회적으로 빗대어 말한 것이다.

그러니까 신 뒤축의 높이와 사돈의 지체가 엇비슷해야 한다는 비유다. 신 뒤축이 너무 높으면 걷기에 몹시 불편하다. 매한가지로 사돈 집안이 권세를 부리는 세도가이거나 하면 매우 껄끄러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아주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경우를 대놓아 말하고 있어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신고 다니는 신발 굽이 지나치게 높으면 걸음걸음 떼어 놓기가 여간 거북하지 않은 법이다. 요즘 도시 여성들 하이힐을 떠올리면 되겠다. 뒤 굽이 가늘고 발을 곧추 세운 것만큼이나 높아 계단을 오르내리는 걸 보노라면 아슬아슬하다. 한데 농촌에서 농사짓고 사는 시골여성은 보통 굽이 아주 낮은 구두를 신는다. 분위기에 어울릴 뿐 아니라 아주 편해 보인다. 

여성들이 신고 다니는 구두의 굽 높이만 보아도 한눈에 도농 간(都農間)의 격차가 현저하게 드러난다. 비교되는 것인데, 너무 차이가 심한 두 계층 사이엔 불편한 감정이 없지 않다. 사진=픽사베이.
여성들이 신고 다니는 구두의 굽 높이만 보아도 한눈에 도농 간(都農間)의 격차가 현저하게 드러난다. 비교되는 것인데, 너무 차이가 심한 두 계층 사이엔 불편한 감정이 없지 않다. 사진=픽사베이.

여성들이 신고 다니는 구두의 굽 높이만 보아도 한눈에 도농 간(都農間)의 격차가 현저하게 드러난다. 비교되는 것인데, 너무 차이가 심한 두 계층 사이엔 불편한 감정이 없지 않다.

이러한 현상이, 비단 신발 굽 높이의 편리와 불편함에 그칠 일인가.

A와 B, 이렇게 두 집안의 자녀가 혼인해 사돈지간이 되는 경우를 얼마든지 상정(想定)해 볼 수 있다. A는 명문 세도가로 널리 알려진 쟁쟁한 집이고, 다른 한쪽 B는 아주 초라한 무명가일 때, 문제가 생기기 십상이다. 문제가 생겼다면 심각하다. 시쳇말로 A에 비해 B가 너무 빠지기 때문이다.

“아이고, 신칙이 너미 높으민 안되매, 혼쪽이 너미 높아부난 편치 못허매, 불팬헌댄 말이주.”
(아이고, 신 뒤축이 너무 높으면 안돼. 한쪽이 너무 높으니 편치 못하네. 불편하단 말이지.) 

너무 층이 지면 관계가 원만할 수가 없다는 목소리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고르지 못한 게 세상이다.

사돈 당사자만 아니다. 혼인해 부부가 된 아들딸 또한 심기가 좋을 리 만무다. 가풍, 문화의 차이, 빈부와 성장배경의 차이에다 당장에 제 부모가 겪는 소소한 상황에 이르기까지 신경을 곤두세우게 마련이다.

그러니 그렇게 불편한 걸 뻔히 알면서 굽 높은 신을 왜 신으며, 속 보일까 마음 졸이며 세도 부리는 집안과 사돈 맺을 게 무어냐는 것이다. 물 흐르듯 순리대로 살면 그만인 것을. 남이 신는다고 따라 신을 신이 따로 있고, 만만하게 터놓고 내왕할 수 있는 그만그만한 사이가 좋은 것이지, 탐할 일이 아니라는 보편적 삶의 진실이라는 교훈이 담겨 있다.

유사한 말들로 뒤섞여 써 왔다.

▲도고 노픈 집광 사돈 말라 ▲디딜팡 노픈 거, 사돈 노픈 거 ▲문지방 노픈 거, 사돈 노픈 거 ▲집가지 노픈 거, 사돈 노픈 거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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