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해군기지 강정의 눈물 15년] ① '제주사랑 해군사랑' 반대편 '생명평화 강정마을'

벌써 15년이 흘렀다. 2007년 4월26일 소위 ‘박수 총회’로 비유되는 강정마을 주민 87명의 비공개 임시총회에서 ‘해군기지 관계의 건’이 만장일치 의결됐다. 당시 마을주민 1500여명 중 단 87명의 박수로 해군기지 건설을 찬성하자 대다수의 강정마을 주민들은 크게 반발했고, 마을은 걷잡을 수 없는 갈등의 소용돌이로 빠져 들었다. 주민들의 거듭된 항의와 집회에도 2016년 2월 제주해군기지가 준공됐다. 민군복합관광미항이란 미사여구로 포장시켜 출범한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강정마을 찬반 갈등은 벌써 15년째 이어진다. 2022년 새해를 맞아 [제주의소리]가 한때 물 좋고 쌀이 좋아 ‘일강정(一江汀)’이라 불리며 건강한 마을공동체를 자랑하던 강정마을을 찾았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해군기지 건설 갈등. 이로 인한 강정의 눈물 15년 세월을 세차례 조명해본다. [편집자 주]
제주에 쌀이 귀하던 시절, 제일 물이 좋고 쌀이 좋아 ‘일강정(一江汀)’이라 불리던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갈등으로 마을공동체가 무너지면서 옛 강정의례회관 한 쪽 바닥에 '일강정민마을회관'이라 적힌 나무 현판이 돌덩이 사이로 초라하게 먼지와 곰팡이를 뒤집어쓴채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바닥에 쓰러진 ‘일강정민’이란 네글자가 가슴에 아리다.  ⓒ제주의소리

임인년(壬寅年) 새해를 며칠 앞둔 2021년 세밑 제주 서귀포시 강정마을. 마을 내부를 쉴새없이 오가는 농사용 트럭들을 통해 바쁜 농번기임을 예상할 수 있었다.

오가다 마주친 주민들끼리 인사를 하는 모습도 보였지만, 일부는 눈을 피하며 그대로 서로를 지나치는 모습도 보였다. 15년 동안 이어진 해군기지 찬반 갈등으로 쌓인 상처와 닫힌 마음의 벽은 무너뜨리지 못하는 듯 했다. 

마을의 크고 작은 행사가 열리던 옛 ‘강정마을의례회관’ 곳곳에도 거미줄이 가득했다. 강정의례회관은 마을주민들의 애경사 대부분과 마을의 크고 작은 행사들을 치르던 빼놓을 수 없는 마을 중심 공간이었다. 

그러나 소위 '박수 총회'로 불리는 비공개 임시총회가 2007년 4월26일 강정마을회관에서 어촌계원을 중심으로 당시 전체 주민 1500여명 중 단 87명만이 참석한 가운데 일사천리로 '해군기지 건설 찬성안'을 만장일치 통과시킨 후부터는 투쟁의 공간으로 변했다.

해군기지 준공 전까지 강정의례회관은 주민들의 해군기지 반대운동의 핵심 공간 역할을 했던 곳이다. 하지만 해군기지 건설에 따른 지원사업으로 마을에 들어선 강정커뮤니티센터 준공 이후부터는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다. 

한쪽에 ‘일강정민’이 적힌 나무 현판이 바닥에 널브러진채 먼지와 곰팡이를 뒤집어 쓰고 있었다. 물도 논도 매우 귀한 탓에 밭농업 중심의 제주에서 쌀은 매우 귀할 수 밖에 없는 곡식이었다. 강정은 몇 없는 제주의 쌀 생산 지역 중에서도 제일 물이 좋고 쌀의 품질도 좋아 ‘일강정’이라 불릴 만큼 살기 좋은 마을이었다. 마을공동체의 결속도 그만큼 좋았다.  

해군기지 준공 전까지 강정의례회관은 주민들의 해군기지 반대운동의 핵심 공간 역할을 했던 곳이다. 하지만 해군기지 건설에 따른 지원사업으로 마을에 들어선 강정커뮤니티센터 준공 이후부터는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다.  ⓒ제주의소리
불이 꺼져 있는 강정마을의례회관 내부 모습. 마을주민들의 애경사 대부분과 주요 마을행사를 이곳에서 치렀다. ⓒ제주의소리

해군제주기지(민군복합형관광미항) 입구쪽으로 이동했다. 여전히 ‘생명평화 강정마을’ 문구가 적힌 노란 깃발들이 휘날리고 있었다. 

'비무장 평화의섬 제주강정마을' 현판부터 제주해군기지를 반대하는 각종 구조물 등이 남아있었다. 녹슬었거나 여기저기 부서져 있는 것들이 주민들의 상처를 닮았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럼에도 무려 10여년 세월을 외롭고 쓸쓸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최근에는 새로운 비닐하우스도 생겼다. 해군기지 준공에 따라 철거된 강정평화센터 용도로 사용되고 있었다. 역시나 바로 앞에는 ‘생명평화 강정마을’이 휘날렸고, 맞은편 해군기지 진입로에는 해군 측이 설치한 '제주사랑 해군사랑'이라는 매우 생경한 입간판이 설치돼 있었다. 길 하나를 놓고 이쪽과 저쪽이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해군기지 건설 강행으로 15년째 찬반 갈등을 겪는, 강정마을의 현 주소다.  

15년전인 2007년 4월13일 국방부는 “제주 해군기지 취소는 있을 수 없다”면서 건설 강행 의지를 거듭 천명했고, 문제의 강정마을 임시총회가 그로부터 10여일 후인 4월26일 열렸다. 마을 향약 기준 게시일에도 미치지 못한 임시총회 개최를 알리는 공고문 총회 안건에는 ‘해군기지 관계의 건’이 의결됐다. 

당시는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마을이 해군기지 후보지로 떠오르면서 위미마을 주민들의 거센 반대운동이 한창인 때였다. 그런 시기에 강정마을 임시총회에 '건설'이나 '찬성' 혹은 '반대'라는 명확한 총회개최 사유를 밝히지 않은 두루뭉술한 '해군기지 관계의 건'이라는 공고문을 내걸고 정작 임시총회장에선 '해군기지 유치의 건'을 놓고 박수로 만장일치 통과 시켰다. 

해군기지로 인한 강정의 눈물 15년의 시작이다. 당시 임시총회에는 1500여명의 강정마을 주민 중, 어촌계원을 중심으로 단 87명만이 참석했다. 

강정마을 곳곳에서는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구조물과 벽화 등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제주의소리
제주해군기지 입구 근처에 여전히 반대운동의 흔적이 남아 있다. 해군기지 공사로 인해 연행 700여명, 기소 587건, 구속 60명, 벌금 총 3억원, 구상금 34억5천만원이라저 적힌 팻말이 눈에 띈다. 치열했던 반대운동의 상처 중 아주 일부분이다.  ⓒ제주의소리
"거짓과 폭력에 의해 세워진 해군기지는 평화를 지킬 수 없다"고 적힌 펼침막.   ⓒ제주의소리

당시 윤 모 마을회장이 주도한 기습적인 임시총회에서 해군기지 유치 찬성을 의결하자, 분노한 강정마을 주민들은 2007년 5월17일 다시 임시총회를 열어 절차적 정당성을 상실한 4월 임시총회에 대해 각종 문제를 제기했다. 

결국 주민 주도로 강정마을은 2007년 8월10일 마을 향약에 근거한 공식 총회를 열었다. 마을주민 436명이 참석했고 이들 중 95.4%인 416명의 압도적 찬성으로 해군기지 유치를 결정한 윤 모 마을회장 해임안을 통과시키고 강동균 씨를 신임 마을회장으로 선출했다. 

이후 마을회가 정식으로 '해군기지 유치의 건'을 다시 상정해 개최한 마을총회에 이번엔 주민 725명이 참석했다. 이들 중 93.8%인 680명이 유치 반대 의견을 내놨다. 

'해군기지 유치의 건'을 명확히 알리지도 않고 비공개로 개최해 87명이 일사천리로 해군기지 유치 찬성을 의결해버린 마을총회에 분노한 대다수의 마을주민들이 이후 총회에 436명, 725명씩 잇달아 참석해 의결하면서 진짜 마을총회가 이뤄진 셈이다. 

그러나 정부는 계속된 강정 주민들의 해군기지 유치 반대 의견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2008년에는 제주해군기지가 아니라 ‘민군복합형관광미항’이라는 새로운 대안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주민반발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유화책일뿐이었다. 앞에선 당근을, 뒤에선 국정원과 경찰, 해군, 제주도가 해군기지 건설 반대운동에 진력한 주민과 활동가들을 감시하고 구속하는 등 채찍을 끊임없이 휘둘렀다. 

당시 도지사는 김태환 지사였다. 제주군사기지반대 범도민대책위원회와 강정마을회 등 도내 29개 단체로 꾸려진 ‘김태환 제주도지사 주민소환운동본부’는 2009년 5월5일 당시 김태환 지사 ‘주민소환’을 선언했다. 전국 최초의 광역단체장 주민소환이었지만, 청구인수 부족으로 실제 소환에 이르지는 못했다. 

그렇게 절대보전지역 해제, 구럼비 발파, 군 관사 행정대집행, 국방·군사시설 실시계획 승인 등의 절차가 속속 진행됐다. 

제주해군기지 앞에 '제주사랑 해군사랑'이라는 입간판 붙어 있다. 해군기지 건설 강행으로 15년 이어지고 있는 마을주민 갈등이 여전한 가운데, 해군사랑이란 슬로건이 이처럼 생경할 수 있을까. ⓒ제주의소리
제주해군기지 진입로 맞은편으로 생명평화 강정마을을 알리는 노란 깃발들이 쓸쓸한 바람에 펄럭인다.  ⓒ제주의소리 

각종 논란속에 2016년 2월26일 제주해군기지는 준공됐다. 당시 황교안 국무총리는 “이곳을 미국 하와이나 호주 시드니 같은 세계적인 민군복합항으로 발전시키려 한다”고 밝혔지만, 7년이 지난 지금까지 민군복합항이란 명칭은 공염불에 그친다. 

강정의 아픔은 계속되고 있다. 2016년 3월 해군은 강정주민들로 인해 해군기지 공사가 지연됐다는 이유로 주민과 활동가를 상대로 수십억원에 달하는 구상권을 청구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강정마을에도 희망의 빛이 비추는 듯 했다. 2017년 12월 문재인 정부 출범 첫 해, 이낙연 국무총리는 국무회의에서 강정마을 주민들에게 청구한 구상권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2018년 10월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관함식’ 참석차 직접 강정마을을 찾기도 했다. 관함식은 국가원수가 해군 함대를 검열하는 의식을 말한다. 

이날 관함식을 통해 해군은 각종 국방 기술력을 홍보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관함식 직후 이어진 주민과의 간담회에서 “(제주해군기지 건설 과정이) 절차적 정당성과 민주적 정당성을 지키지 못해 깊은 유감”이라고 주민들에 사과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강정마을 주민을 찾아 식수한 기념 표석. ⓒ제주의소리
제주해군기지 건설 이후 새롭게 들어선 강정커뮤니티센터.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해군기지 건설 이후 새롭게 들어선 강정커뮤니티센터.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해군기지 건설 이후 새롭게 들어선 강정커뮤니티센터.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해군기지 건설 이후 새롭게 들어선 강정커뮤니티센터.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문 대통령 사과 이후, 해군 참모총장의 공식 사과도 나왔다. 지난해 8월 제주 출신인 당시 부석종 해군 참모총장이 강정마을을 찾아 해군기지 건설 과정에서의 일을 사과했다. 이어 해군본부는 강정마을회와 '민군상생발전을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 

올해 5월31일에는 제주도와 제주도의회, 강정마을회가 함께한 ‘상생화합 공동선언식’도 열렸다. 당시 원희룡 제주도지사와 좌남수 도의장, 강희봉 마을회장이 무대에 올라 상생화합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 

‘다시 부는 상생 화합의 바람’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선언식은 오랜 고통을 겪은 강정마을 주민들이 제주도와 도의회의 사과를 받아주는 형태로 진행됐다. 그러나 15년 동안 깊게 패인 상처가 이같은 퍼포먼스로 어찌 치유될 수 있을까. 

해군기지 반대운동에 희생된 주민들은 문 대통령과 해군 참모총장의 사과, 공동선언식의 공통점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처음부터 해군기지 반대에 운동에 참여한 주민 대부분은 초대받지 못한 자리였단다. 

제주해군기지 강정의 눈물이 15년째 마르지 않는 이유다. 

초대 받지 못한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주민회는 문재인 대통령과 해군참모총장의 사과, 공동선언식 때마다 집회를 열어 이 같은 상황에 대해 규탄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강정해군기지 반대주민회 강동균 공동대표는 “진정성 있는 사과라면 해군기지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여야 하는 것 아닌가. 해군기지를 찬성했던 사람들을 불러 보아 사과한다면 반대하는 사람들은 뭐가 되는가. 진정성 있는 사과라고 받아들일 사람이 누가 있는가”라고 바로 어제 일처럼 분을 삭이지 못했다. 

분명한 교훈이 있다. 그럴듯한 포장된 말과, 상생화합을 내건 번듯해 보이는 퍼포먼스가 열번 스무번 아무리 반복된다 한들, 민주적 절차적 정당성이 결여된채 강행된 해군기지로 인한 반대운동에 희생된 주민들을 배제한 사과나 상생화합 자리는 ‘일강정(一江汀)’ 복원에 일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강정은 지금도 신음하고 있다.  

2018년 10월 제주에서 열린 국제관함식 당시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2018년 10월 제주에서 열린 국제관함식에 참석한 뒤 강정마을회를 찾아 사과하는 문재인 대통령. 현장에는 해군기지 반대주민회는 초대받지 못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2018년 10월 제주에서 열린 국제관함식 당시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2018년 10월 제주에서 열린 국제관함식 개최를 반대하는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주민회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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