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풀의 노래
강덕환

짓밟혀 억눌린 서러움쯤
힘줄 돋운 발버둥으로 일어서리라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후미진 구석
모로 누워 새우잠 지새우는
목 타는 들녘의 얼룩진 밤에도
가녀린 목줄에 핏대 세우며
흔들림도 꼿꼿이 서서 하리라
없는 듯 낮게 낮게 엎디어
봄을 예감해온 눈빛끼리
밑동에서 길어 올린 자양분
은밀하게 서로 나누면
인동의 단맛 스미고 스며
마침내 열리는 눈부신 봄날

강덕환 시인(제주작가회의 회장)이 오랜만에 새 시집을 들고 왔다. 

‘섬에선 바람도 벗이다’(삶창)는 지난 2010년 제주4.3 시집 ‘그해 겨울은 춥기도 하였네’ 이후 11년 만의 신간이다. 강산이 한 번 바뀔 긴 시간 동안 시인은 제주도의회 정책자문위원, 제주작가회의 회장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모처럼 책으로 독자들과 만난 시인은 ▲이 섬에 내가 있었네 ▲뼈와 살 맞춰 피와 숨 불어넣고 ▲아무 쌍 어시 ▲꽃은 섬에서도 핀다 등 모두 4부에 걸쳐 50여편의 시를 채웠다.

익숙한 제주 풍경을 고귀한 시심으로 바라보고, 지금껏 그리고 평생 동안 품을 제주4.3에 대한 변함없는 진심도 내비치며, 주변 일상과 돌아가는 세상사를 자신 만의 글로 해석했다.

돌아눕는 계절
강덕환

그슬린 겨울만이 마지막 여운으로 남아
햇빛 앉은 돌담 위로
발돋움하고 보는 아침이 열린다
먼발치로 다가서는 일상의 되풀이가
흙 묻은 껍질을 깨트리며 일어서고
맨몸으로 살아온 씨앗에게도
눈부셔 비비는 시간이 머문다
태곳적에도 요동(搖動)의 역사는 
아침에서부터였을까
뿌리에서부터였을까
기다림에 살이 터져 새싹을 추스르는 대지는
본래는 한 덩이였던 육체를 둘로, 셋으로
수만 개로 가르는 아픔을 견디라 한다
하늘에 다다르려는 가지에도
아직 가리지 못한 한 뼘의 공간으로 남기를 빌며
계절은 이제 돌아누울 자리를 다독인다

문예평론가 김동현은 추천사에서 “그러고 보니 시인은 대학 시절 ‘신세대’라는 문학동아리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빠르지는 않았지만 멈추지 않았다. 지금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몸매가 날렵해서 ‘날으는 생이꽝’, ‘날아다니는 새의 뼈’처럼 말랐던 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후덕해진 오늘까지 그는 매일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중”이라며 애정 어린 격려를 전했다.

시인은 책머리에서 “어쩌나 / 섬과 바람 / 이념과 생존 / 표준말과 제줏말 / 분단과 통일 // 이 불편한 동거 앞에 / 나의 언어는 / 여전히 어쭙잖다. / 모자란 탓이다.”라는 겸손한 소감을 보였다.

강덕환은 제주 출생으로 시집 ‘생말타기’(1992)로 등단했다. 4.3시집 ‘그해 겨울은 춥기도 하였네’(2010)가 있다.

시집보다 조사 연구 자료집을 더 많이 펴냈다. ▲제주4․3유적지기행-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학민사) ▲만벵디사건의 진상과 증언(7․7만벵디유족회) ▲무덤에서 살아나온 4․3수형자들(역사비평사) ▲4․3문학지도Ⅰ․Ⅱ(제주민예총) ▲제주4․3 70년 어둠에서 빛으로(제주4․3평화재단) 등을 공동 집필했다. 

120쪽, 삶창,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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