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해군기지 강정의 눈물 15년] ③ 강정마을 해군기지반대주민회 강동균·고권일 대표

벌써 15년이다. 2007년 4월26일 소위 ‘박수 총회’로 비유되는 강정마을 주민 87명의 비공개 임시총회에서 ‘해군기지 관계의 건’이 의결됐다. 당시 마을주민 1500여명 중 단 87명의 박수로 해군기지 건설을 찬성하자 대다수의 강정마을 주민들은 크게 반발했고, 마을은 걷잡을 수 없는 갈등의 소용돌이로 빠져 들었다. 주민들의 거듭된 항의와 집회에도 2016년 2월 제주해군기지가 준공됐다. 민군복합관광미항이란 미사여구로 포장시켜 출범한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강정마을 찬반 갈등은 벌써 15년째 이어진다. 2022년 새해를 맞아 [제주의소리]가 한때 물 좋고 쌀이 좋아 ‘일강정(一江汀)’이라 불리며 건강한 마을공동체를 자랑하던 강정마을을 찾았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해군기지 건설 갈등. 이로 인한 강정의 눈물 15년 세월을 세차례 조명해본다. [편집자 주]
2013년 5월10일 제주해군기지 공사장 앞에서 서귀포시가 반대측 천막 철거를 위한 강제대집행에 나서자 강동균 당시 강정마을회장이 쇠사슬을 천막과 몸에 연결해 강하게 저항하는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2013년 5월10일 제주해군기지 공사장 앞에서 서귀포시가 반대측 천막 철거를 위한 강제대집행에 나서자 강동균 당시 강정마을회장이 쇠사슬을 천막과 몸에 연결해 처절하게 저항하는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2015년 1월31일 국방부의 강정마을 군관사 부지 주민농성 천막 행정대집행 당시 '생명평화 강정마을' 깃발을 들고 망루에 올라 저항하던 고권일 당시 강정마을 부회장.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2015년 1월31일 국방부의 강정마을 군관사 부지 주민농성 천막 행정대집행 당시 '해군기지 결사반대' 깃발을 들고 망루에 올라 저항하던 고권일 당시 강정마을 부회장.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국가가 파괴한 강정마을공동체...15년 잔혹사 

해가 바뀌었지만 제주 강정마을은 여전히 잔혹하고 혹독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국가가 파괴한 마을주민들의 삶은 15년째 혹한처럼 이어지고 있다. 

2007년 4월26일 강정마을 향약에 위배된 소위 ‘박수 총회’로 제주해군기지 유치가 결정된 이후 15년간 이어진 찬반 갈등. 어떤 이들은 ‘해군기지가 준공된지가 언젠데, 아직도 반대하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았다”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있다. 

마을주민들에게 숱한 상처를 남기며 2016년 2월26일 강정마을에 제주해군기지가 준공됐고, 강정마을회와 별도로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주민회’도 출범했다. 

반대주민회의 대표는 3명. 강동균 전 강정마을회장이 상임대표직을 맡고, 조경철 전 마을회장과 고권일 부회장이 각각 공동대표직을 수행하고 있다. 

해군기지 반대 투쟁. 누군가는 해묵은 사안이라 치부할 수 있으나, 의좋고 물좋아 제주에서 제일 살기 좋은 마을이었던 강정마을이 해군기지 찬반 갈등이 15년째다. 주민들간 깊은 갈등의 골은 지금까지 보다 앞으로가 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전 원희룡 제주도지사까지 해군기지 추진 과정과 절차에 문제가 있었다며 마을주민들에게 공식 사과했지만, 약속했던 진상규명과 진심어린 공동체회복 노력은 이행되질 않았다.

절차적 정당성을 결여한 국책사업의 강행으로 주민들간 깊어진 반목과 갈등은 좋든 싫든 이곳에서 살아가야 할 주민들에게 물과 기름처럼 기약없는 이질적 삶을 강요하고 있는 셈이다. 

이미 준공은 됐지만 해군기지에 마을을 더이상 빼앗기지 않겠다며, 2022년에는 또다른 방식의 해군기지 반대 투쟁을 멈추지 않겠다는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주민회 강동균(65)·고권일(59) 대표를 [제주의소리]가 만났다. 인터뷰는 강동균 상임대표의 자택에서 진행됐다. 

 

  쪼개진 구럼비, 갈라진 마을주민들

지금은 사라진…, 서귀포시 강정마을 중덕 바닷가의 검은 구럼비 바위는 강동균과 고권일뿐만 아니라 강정마을 주민이라면 누구나 대대손손 가꿔온 특별한 공간이다. 

바위 주변에 제주어로 ‘구럼비’라 부르는 까마귀쪽나무 군락이 자생해 마을사람들은 길고 넓은 현무암질의 그 너럭바위를 ‘구럼비 바위’라고 불렀다. 구럼비 바위에서 솟아나는 용천수인 '할망물'은 토신제와 출산 등 마을과 각 집안에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마다 마시는 신성한 물이었다. 

유년시절엔 또래들과 구럼비 해안에서 멱을 감고 뛰어놀다 그 너른 바위에 드러누워 젖은 몸과 옷을 말렸던 곳이고, 어른이 되어선 고된 농사일 뒤에 선후배들과 어울려 낚시하고 막걸리 잔을 기울이던 곳이다. 

구럼비에선 큰 소리를 내면 큰 파도가 덮친다 해서 어렸을때엔 뛰어놀다가도 큰 목소리를 감추던 그런 신성한 곳이 2010년 9월 팬스가 쳐지고 통제되더니, 2012년 3월 7일 바위는 발파돼 산산이 쪼개졌다. 그 자리에 제주해군기지가 들어섰다. 마을주민들도 부서진 구럼비 바위처럼 찬반으로 쪼개졌다.    

강동균과 고권일은 여섯살 터울의 동네 형 동생이자, 서귀포고 선후배이다.

마을주민들은 2007년 해군기지 유치 결정을 내린 당시 윤 모 마을회장을 탄핵하고 강동균을 마을회장에 선출했다. 이후 세차례나 마을회장을 연임하며 7년간 최일선에서 해군기지 반대운동을 이끌었다. 반대 활동 과정에서 업무방해 등 혐의로 구속됐었고, 유치장을 밥먹듯이 들락거려야 했다.  

고권일은 사실 잘나가는 만화가였다. 서울에서 신문, 잡지에 만화를 연재하며 20년 가까이 인기만화를 그려온 베테랑 만화가였다. 서울에서 뉴스를 통해 고향 강정마을에 해군기지 유치 결정이 내려졌다는 의아한 소식을 접했고, 2008년 말 어머니의 병환으로 고향에 돌아온 후 숙명처럼 해군기지 반대운동의 중심에 서게 됐다. 

제주해군기지가 완공됐지만 강동균과 고권일은 주민들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라도, 마을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해군기지 반대운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해군기지가 강정마을에 존재하는 한 반대주민회 활동을 멈출 수 없습니다. 강정마을은 해군기지의 위성마을이 아니에요. 해군을 계속 견제·감시해 후손들에게 ‘일강정’을 물려줄겁니다”

 

다음은 강동균 상임대표와 고권일 공동대표와의 인터뷰 요지. 

제주해군기지가 들어선 강정마을에서 만난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주민회 강동균 상임대표, 고권일 공동대표. ⓒ제주의소리
제주해군기지가 들어선 강정마을에서 만난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주민회 강동균(65) 상임대표, 고권일(59) 공동대표. ⓒ제주의소리

벌써 15년이 흘렀다. 결국 해군기지가 들어섰는데 지치지 않는가?

강동균
“왜 지치지 않겠는가? 많이 지쳤고, 나이도 먹었다. 해군기지 건설 과정에서 몸싸움도 많이 했고, 유치장에도 여러 번 들어갔다.(웃음) 이제는 몸싸움의 단계는 아니다. 힘든 싸움이지만, 멈출 수 없는 싸움이다.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았다”

고권일
“반대주민회에 운영위원회가 있다. 어르신들이 ‘나이가 많아 함께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격려해주신다. 많은 주민들이 생계도 뒤로한 채 해군기지 반대 투쟁을 했다. 지금은 밀린 생계를 챙기는 주민들이 많은데, 겉으로는 해군기지 반대 투쟁에 관심을 끊은 척 해도 현재 강정마을 상황에 대해 가슴 아파한다”

현재 마을 상황은 어떤가?

강동균
“해군을 견제하면서 강정마을을 지켜야 하는데, 해군에게 ‘콩고물’을 얻어먹으려는 사람들이 더러 생겼다. 우리까지 포기하면 강정마을을 통째로 해군에게 뺏기는 것 같다.”

제주해군기지가 들어선 강정마을에서 만난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주민회 강동균 상임대표, 고권일 공동대표. ⓒ제주의소리
15년간 이어진 해군기지 반대 투쟁이 지치지만, 멈출 수 없다고 말하는 강동균 대표. ⓒ제주의소리

해군기지 건설 과정에서 각종 마을발전 계획도 수립됐고, 이미 완공됐기에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는데, 어떤가?

강동균
“강정커뮤니티센터가 새롭게 생겼다. 처음에는 강정마을 재산으로 주기로 했는데, 결국 행정의 재산이 됐다. 마을회는 임대해 사용하는 상황이다. 비닐하우스 비가림 시설 지원사업이 있는데, 지금은 갈수록 자부담 비율이 높아져 돈 없는 사람들은 신청도 할 수도 없다”

고권일
“민군복합항이라는 이름으로 크루즈 터미널도 생겼다. 크루즈 터미널에 강정 주민 3명? 4명? 정도가 취업했다. 이 정도가 전부인 것 같다. 달콤한 유혹에 넘어간 주민들도 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모두 허구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고 깨닫게 될 것이다.”

‘아직도 반대하느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강동균
“이제는 멈출 수 없는 싸움이다. 예전처럼 몸싸움 등은 못하더라도 지속적인 견제·감시가 필요하다. 최근에도 해군이 허가도 없이 공유수면에 철조망을 설치했다가 결국 철거했다. 반대주민회의 견제가 있었기 때문에 해군의 불법 사실이 밝혀졌다”

고권일
“해군이 군사훈련을 핑계로 마을에서 민간인을 향해 총구를 겨눈 일도 있다. 강력히 항의하니 줄었다. 또 당초 해군은 기지 건설에 필요한 모든 장비를 해상으로 공급받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준공 이후 장갑차 등이 마을을 지나갔다. 장갑차가 지나간 마을 교량은 최대 5톤의 하중만 견딜 수 있다. 반대주민회 차원에서 항의를 했고, 그제서야 해군이 마을교량 등의 이용을 자제하고 있다”

제주해군기지가 들어선 강정마을에서 만난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주민회 강동균 상임대표, 고권일 공동대표. ⓒ제주의소리
고권일 대표가 지난 15년간의 해군기지 반대 투쟁을 떠올리고 있다. ⓒ제주의소리

문재인 대통령과 해군 참모총장의 사과, 제주도-제주도의회의 공동 상생화해 선언식도 있었다. 그럼에도 진정성이 없다고 말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강동균
“상생이라 해놓고 해군기지에 찬성하는 사람들만 만난 것 아닌가. 진정 상생을 원한다면 지금까지 해군기지 반대 투쟁을 이어오는 사람들과 대화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해군기지 반대주민에게는 연락도 오지 않았고, 대통령-해군 참모총장 사과 자리에 초대 받지도 못했다”

고권일
“해군기지 반대 투쟁 과정에서 업무방해 등으로 붙잡힌 사람들이 많다. 강정마을과 관련된 사람들은 다 공안검찰이 담당한 사실을 알고 있는가. 상생이라고 하지만, 상생이 아니다. 그냥 ‘너희는 가만히 있어라’라고 하는 것 같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강동균
“철거된 강정평화센터를 최근에 비닐하우스 형태로 다시 지었다. 해군기지 반대 투쟁의 이야기를 담은 ‘강정이야기’를 몇 년간 발행하지 못했다. 2022년부터 다시 발행을 시작, 해군의 실태와 민낯 등을 도민들에게 적극 알려나갈 계획이다” 

고권일
“코로나19로 인해 강정생명평화대행진을 열지 못했다. 2022년에 다시 대행진할 계획이다. 제주의 환경과 가치를 지키는 사람들과 함께 하려고 한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강동균
“나이가 들었지만, 걸을 수 있는 한 생명평화대행진 가장 선두에서 깃발을 들겠다”

고권일
“사실 해군기지 반대 싸움에 이겼으면 제2공항 문제도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한다. 제주에 해군기지가 생겼으니 공군기지도 생길 것 아닌가. 제2공항은 공군기지와 연관됐다고 생각한다. 중앙정부에 휘둘리지 않는 풀뿌리 민주주의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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