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전 치중한 대선 판도, 제주 공약은 '흐릿'...지방선거 흥행도 미진

제20대 대통령선거까지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 하루가 멀다하고 요동치는 대선 정국에서 제주 지역사회 이슈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6월 치러질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분위기가 고조돼야 함에도 '대선 블랙홀'에 제주정가가 얼어붙은 분위기다.

이번 대선은 각 후보의 도덕성과 자질 검증 등의 '공중전'에 치우치면서 그외 이슈는 뒷전으로 사라진 모습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제주 방문은 지난해 9월,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방문은 지난해 10월로, 두 후보 모두 경선 정국에서만 한 차례씩 모습을 드러냈을 뿐이다.

방문 시기·빈도가 곧 지역에 대한 관심도로 치환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그만큼 각 후보들의 정책의 선명성이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 각 후보들이 호남·영남 등 정치 지형에 있어 효과적으로 작용할 지역을 주로 방문하고 있다는 소식만 신문지면을 통해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이전 사례를 돌아보면 2012년 실시된 제18대 대통령선거의 경우 선거일이 임박할수록 지역 차원에서도 꾸준히 주요 이슈가 등장했다. 당시 박근혜-문재인-안철수 후보 등 '빅3' 체제가 일찌감치 구성되면서 제주해군기지 갈등 해법을 비롯해 제주4.3 해결, 신공항 건설 등의 논의가 이뤄졌다. 각 정당별 주자가 확정된 8월부터 후보들의 방문이 이어졌고, 야권 단일화가 성사된 이후에도 지역 내 진영 간 토론이 활발했다.

직전에 치러진 2017년 제19대 대통령선거의 사례를 단순 대입하기는 쉽지 않다.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으로 인해 선거일이 확정된 것도 불과 50여일 전이었고, 각 정당의 후보가 확정된 것도 선거일 기준 한 달 전이었다. 그럼에도 다섯명의 대선 후보들의 차별화된 '제주형 공약'을 제시하며 비교가 가능토록 했다.

이에 반해 아직까지 이번 대선에서는 후보를 평가할 수 있는 공약이나 정책은 경선 후보 당시에 제시했던 정도고, 진영별 공약도 대동소이한 수준이었다.

제주 제2공항에 대한 입장은 대표적인 사례다. 제2공항 추진 여부는 사실상 차기 정부로 공이 넘어간 만큼 대선 결과에 따라 운명이 엇갈리게 된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제2공항 문제에 대해 "환경 문제와 관련해 환경부와 국토부의 의견이 엇갈린다. 절차적인 문제도 있는 만큼 도민들의 의사가 반영되도록 앞으로 더 토론하고 고민해야 한다"며 신중론을 유지했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도 "제주에 항공기가 더 접근할 수 있도록 공항은 더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서도 "다만 성산쪽에 부지에 대해서 제주도민 사이에 찬반 양론이 있는 걸로 알고 있고 현안은 제주도민의 의사를 존중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온도의 차이는 있어도 '도민의사 수용'이라는 원론적 입장에서는 두 후보의 입장이 같았다.

그나마 지난달 제주를 찾았던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제2공항 백지화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지만, 쉽게 반등하지 못하고 있는 지지율만큼이나 지역사회의 관심에서 멀어져있다. 최근 지지율 상승을 일궈낸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등판도 하기 전이다.

제주특별법을 활용한 자치분권 실현에 있어서도 기존 정치권이 제시해 온 내용을 차용했을 뿐, 특별하다고 판단하기 어렵다. 제주4.3에 대한 보수정당의 태도가 전향적으로 바뀌면서 차이점이 사라졌다. 이재명 후보의 '환경보전기여금', 윤석열 후보의 '관광청 신설' 등의 공약은 차별성은 살렸지만, 아직 아이디어 제안 수준이다.

지방정가의 한 관계자는 "대선 판도가 워낙 치열하게 돌아가고 있지 않나. 하루가 멀다하고 사건이 터지고, 지지율이 바뀌고 있다. 이전과 달리 지역 구도가 아닌 세대·성별 구도가 핵심이 된 것도 원인이 됐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 관계자는 "아직 한 달 반 정도의 시간이 남은만큼 상징성 차원에서라도 후보별 제주 방문은 반드시 이뤄지게 된다. 이때 확실히 선점할 수 있는 이슈를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치열한 대선 구도는 곧바로 치러질 전국동시지방선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4년 주기로 실시되는 전국동시지방선거와 5년 주기로 실시되는 대통령선거가 같은해에 치러진 것은 20년 전인 2002년이다. 이마저 지방선거일은 6월 13일, 대선일은 12월 19일로 일정상 접점이 없었다.

불과 석 달 간격으로 대선과 지방선거가 실시될 전례 없는 상황에서 지방선거는 상대적으로 관심 밖에 있다. 대선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지방선거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한 탓이다.

제주도지사 유력 후보들도 물밑에서는 활동하고 있지만, 아직 공식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는데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판국에 '자기 정치'를 하고 있다는 비난을 듣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여권에선 현역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예상 후보들이 즐비한 반면, 범야권의 경우 아직도 뚜렷한 후보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이 같은 흐름이 반영된 결과다.

도지사 선거 후보군으로 분류되는 한 정치권 인사 A씨는 "이번 지방선거는 대선 결과와 운명을 같이 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을 만나서도 개인적인 지지를 구하기보다는 당의 승리를 우선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다양한 의견을 듣고 있는 과정"이라고 말을 아꼈다.

여권의 유력 주자 B씨는 "다른 지역에서는 2월 1일 예비후보 등록에 맞춰 활동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제주는 속도가 더딘 편"이라며 "3명의 현역 국회의원들이 모두 출마자로 분류되는 것에 문제가 있지 않나 싶다. 국회의원으로 대선 준비위원회를 조직하면 고스란히 다음 지방선거에서 자신의 조직이 되지 않겠나"라는 상대적 박탈감을 토로하기도 했다.

야권 후보로 점쳐지는 C씨도 "대선이 워낙 팽팽하게 진행되다보니 개인적인 행사를 갖는 것도 부담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코로나 상황도 있고, 대선도 겹치다보니 지방선거가 묻히지 않나. 상대적으로 정치 신인의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는 지형"이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그간 제주가 한국정치의 '풍향계' 역할을 해온만큼 대선 정국이 달아오를수록 지역정치에 미치는 파장도 커질 전망이다. 후보자들의 물밑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지만, 결국 3월 9일 대선을 전후로 보다 선명한 구도가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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